밑줄긋기/역사사회2020. 2. 7. 18:59
플로팅 시티

플로팅 시티

수디르 벤카테시 저/문희경

《괴짜 사회학》으로 세계가 주목한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의 신작. 시카고 빈민가에 뛰어들어 10년간 갱단과 생활하며 연구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 종사자들과 함께하며 기존의 사회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목격한다.

과거에는 계층과 지역의 경계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자리를 떠나 경계를 뛰어넘으며 전에 없던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부유하고(float) 있었다. 저자는 뉴욕에서 새롭게 맞닥뜨린 변화의 비밀을 풀 열쇠를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지하경제에서 찾는다. 그리고 복잡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골목길과 빌딩 숲을 부유하며 이민자와 매춘부, 사교계 명사와 거리의 마약상들에게서 이야기를 채집한다. 저자의 연구회고록 방식으로 기술된 이 책에서 우리는 삶의 비루함과 숭고함이 공존하는 현장을, 변화에 맞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몸부림을, 부글부글 뒤끓고 있는 자본의 수도 뉴욕의 지하 세계의 현장과 그 미래의 편린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Chapter 1 |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 도시

 

마약상과 현대미술의 만남

 

뉴욕 전역에서 교외에 거주하던 중산층과 상류층이 역이주하는 역사적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났고 언론에서도 호들갑스럽게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지하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이동하고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조짐을 보였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거나 논평하지 않았다. 고급 주택화의 여파로 도심에서 근근이 살아온 하층민들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헬스키친의 남아시아인 포르노 상점 매니저와 나이지리아인 택시 운전사부터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야심 찬 히스패닉 매춘부와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고급 콜걸에 이르기까지, 뉴욕에 휘몰아친 대대적인 변화로 인해 끊임없이 새로운 승자와 새로운 패자가 양산됐다.

 

뉴욕은 미국의 미래를 제시하는지도 몰랐다. 정확히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경계가 허술한 새로운 세계가 손짓했다. 나는 내내 브리콜라주(bricolage), 곧 현재 있는 것의 파편들을 짜 맞춰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기법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양상을 관찰하면서 범죄의 지하 세계가 주류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새로운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버드 출신의 성매매 브로커

 

한번은 갤러리를 빌려서 파티를 열고 20달러와 50달러짜리 지폐 수백 장을 벽에 죽 붙여놓은 적도 있었다. 상류층 출신치고는 고상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그러다 문득 내가 인도의 카스트에서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가진 브라만 출신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브라만들은 모든 일을 고상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남을 돕는 기분이에요.” 그녀가 덧붙였다.

한두 번 들어본 말이 아니었다. 불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자신의 행위를 고상하게 표현하려 든다. 성매매 종사자는 스스로 유사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치료자라고 말한다.

 

그간 이쪽 세계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지켜봐 왔다. 선한 사람들이 돈과 두려움과 존경심이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짓을 저지르는 사례를 무수히 보았다.

 

이동하고 변화하는 삶이라는 새로운 주제

 

지금 아날리스는 내게 불편한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현장에서 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연구할 때 좀 더 편한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정하자니 씁쓸했다. […] 사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대전제는 누구에게나 연구하고 도표로 기록할 만한 각자의 작은 세계와 경제가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사회적 역할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다들 한목소리로, 고정되고 변함없는 삶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이동하고 변화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눈을 돌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계선을 긋는 대신 경계를 뛰어넘었다.

 

뉴욕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것이 뉴욕 사람들을 정의하는 사실이고, 이들의 진정한 공동체는 이들이 맺은 관계의 총합, 곧 뉴욕의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형성한 수많은 사회적 유대였다. 따라서 지리적 영역을 사회화의 원초적인 도시 단위로 이해하는 개념을 버리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과제였다.

 

가령 한 개인의 출신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의한다거나 교육은 성공의 주요 예측 요인이라는 법칙은 일단 접어두어야 한다. 이런 당연한 법칙으로는 마약상이 왜 미술관에 드나드는지,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이 왜 부업으로 마담 노릇을 하는지에 관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지하 세계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뉴욕의 변함없는 정수(精髓)인 돈과 성공이지만 한편으로 지하 세계는 21세기에 뉴욕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Chapter 2 | 뉴욕, 뉴욕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과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으면 좋은 연구일 리가 없다고 보는 식.

 

진실이 커지고 진부한 편견이 줄어들수록 더욱 바람직한 사회 정책이 나오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연구한 사람들의 삶이 향상될 터였다.

 

나는 개인을 연구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결과를 반드시 더 큰 모집단에 적용해야 했다. 도시 전체, 뉴욕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지하철 하나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처지였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

 

뉴욕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요.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가냐고요?”

그는 웃었다. “ 말이 그 말이라니까.”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술집이 점점 더 시끄러워져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샤인은 앞으로 몸을 내밀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젠장, 나도 몇 년째 똑같아요. 갈수록 초조해요. 나 혼자 계속 묻습니다. 이제 뭘 하지? 내가 뛰어들어 해낼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래서 고모한테 물어봤어요. 고모는계속 가라, 계속 가면 돼, 조카야라고만 하시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죠. 이 여편네가 뭐라는 거야?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듣기나 한 거야? 문제는 어디로 가냐는 건데.”

 

뉴욕의 지하경제를 어떻게 연구할까

 

거리의 해적판 비디오와 공예품부터 자동차 수리와 성매매까지 다양하게 거래되었다. 다만 거래하는 장면이 내 눈에 잘 띄진 않았다.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한 개인이 사는 지역이 그 사람의 직업, 교육 수준, 결혼 상대, 심지어 범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까지 결정한다고 보았다

[…]

하지만 세계화에 주목하는 새로운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멀리 떨어진 지역들이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기존 생태나 어쩌면 새로운 생태까지 모두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일반화 가능성 문제(generalizability problem)

 

사라진 길거리의 매춘부들

 

침투성 있는 경계

 

부유하는 공동체

잠시 후 내게 인도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면서 10대 시절과 대학교에 다닐 때 인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는 벌로 생각하고진지하게 고민해보라면서 보냈지만 그녀는 무척 좋아했다.

돌아올 때는 훨씬 똑똑해진 느낌이었어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됐거든요. 이게 답이에요, 수디르. 그냥 신경 쓰지 마요. 와인도 똑같아요. 맞고 틀리고가 없어요,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만 알면 돼요.” 그리고 그녀는 쾌활하게 윙크했다. 미국 상류층의 성전(聖殿)에 들어온 걸 진심으로 환영하는 첫인사였다. “이젠 그냥 마시면 돼요. 진탕.”

 

내가 갱단과 일하면서 이내 알아낸 사실이 있다. 갱단 두목들은 그의 동료들도 참여한다는 투로 슬쩍 던지면 입을 열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내게 경쟁자의 비밀을 흘려주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들이 경쟁자들에 비해 얼마나 더 똑똑하고 돈 많고 재능이 뛰어나며 더 폭력적인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비밀을 흘린 적은 한 번도(거의) 없지만 그들은 질투심만으로 기꺼이 참여해주었다

 

이들은부유하는공동체였다. 이전의 연구 경험으로 나는 지하 거래에서는 항상 일이 틀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이들 공동체는 암시장의 유대 관계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변하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부유는 일종의 가변성을 의미할 뿐 결코 자유롭게 떠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바에서 쫓겨나거나 같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신뢰를 잃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대체로 누구 하나가 관계에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갈등이 뒤따르고, 서로 편을 가르고, 작은 세계가 분열된다.

 

9번가의 포르노 비디오 숍

사실도시 재개발이라는 전국적인 사업은 원래 시카고에서 낙후한 동네를 재개발하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카고의 역대 시장들은 주로 쓰러져가는 동네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토지를 민간 개발 사업(스포츠 경기장, 대학, 고속도로 등)에 팔아치웠다. 빠른 속도로 사회를 표백하는 방식이었다. 반면에 뉴욕의 고급 주택화는 정맥주사와 비슷했다. 낡은 건물이 무너지고 주인이 바뀌는 식으로 보다 유기적으로 새로운 동네가 조성됐다. 결과적으로 과도기의 공동체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다양한 민족과 계층이 섞여서 잘 어우러지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현재 첼시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으로 예술가와 동성애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의사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수입을 올리려고 만준의 가게로 찾아와 보험이 없는 불법체류 노동자를 진찰했다. 이렇게 가게 뒷방에서 아기를 둘이나 받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분쟁을 해결하고, 소규모 벤처 사업을 시작하고, 여자들은 영주권을 받기 위해 결혼할 남자를 만났다. 이런 일들이 끝이 없었다. 거래가 거래를 낳았고, 거래할 때는 반드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오래 얼쩡거리다 보면 거래에 끌려들어 가기 마련이었다.

 

나무가 아니라 뿌리를 관찰하는 법

 

예측 가능성은 지하 세계에서 필수 요건이었다. 지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어깨너머를 살피며 뒤에 따라붙는 약탈자를 경계하는 데다, 뉴욕은 워낙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곳이라 불안 수준이 높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자원, , 기회가 전반적으로 가속되는 현상은 사회관계의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새로운 형태의 위험에는 새로운 형태의 기회가 따르기 마련이고, 나는 위험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Chapter 3 | 흔들리는 토대

 

헬스키친의 이웃들

 

여기가 아빠가 일하는 곳이라고. 아빠는 이 가게에서 일한다. 이 동네에서 일한다. 여긴 별별 사람이 다 있단다. 쓰레기통도 많고. 하지만 이 사람들도 너희하고 똑같아. 무언가를 찾고 있단다. 우리 모두 찾고 있어. 이게 내가 딸들한테 해준 말이에요.”

 

지하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용하고 이용당한다

 

사회학자가 하는 일의 절반은 스스로 만든 가설에서 구멍을 찾는 일이다. 나는 매춘부, 포주, 마담, 불법 직업 소개업자, 사회보장 카드 위조 업자를 더 많이 만나야 했다.

 

다만 샤인이 나를 이용해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고 싶지는 않았다.

샤인이 아까보다 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걸로 얻어먹는 게 있으면 어쩔래, 친구? 그러면 어쩔 거냐고? 우리가 지금 교회에 있는 건 아니잖아?”

샤인은 지하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용하고 이용당한다고 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샤인은 내게 정당한 경고를 해주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매매를 둘러싼 어떤 사회 연결망

 

섹스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했다. 성적 결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연결했다. 감춰진 세계 전체를 실로 엮어서 지역사회를 수천 가지 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아시아인들은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거나 직접 운영했다. 서아프리카 남자들은 클럽 입구에서 호객 행위를 했다. 이들의 아내는 성매매 여성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비밀리에 비디오 가게 뒷방이나 클럽에서 청소부나 잡역부로 일했다. 그리고 내가 주로 인터뷰했던 성매매 종사자들은 세계 각지(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싱가포르,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로서 섹스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다. 이들은 분명 회사 전용기로 이동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영자 못지않게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이들이 (매춘부에 대한 기존의 수상할 정도로 편리한 시각처럼) 마약을 사려고 성매매를 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대다수는 합법적인 직장에서 시간제로 일하면서 또 하나의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편입되어 있었다.

 

좋은 사회학에서는 항상 밀착 연구와 원거리 조망이 결합된다. 좁혀 들어가다 물러나고 다시 좁혀 들어가다 물러나면서 자료의 빈틈 위에서 섬세한 춤을 춘다. 나도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니 이 지역에 사는 이민자와 최하층 미국인들에게는 세계적인 대도시의 삶이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취약한 부분은 커졌다. 예를 들어 거리의 매춘부가 줄어드는 현상에서 이런 상황이 크게 눈에 띄었다. 전에는 하룻밤에 300달러에서 400달러 정도 벌던 여자들이 요즘은 하룻밤에 100달러를 벌기도 힘들어서 거리의 외로운 남자 손님 하나를 두고 자기네끼리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 모두 불황의 늪에 빠져 장차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내가 뉴욕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개인적인 불안을 나누면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줄리아니 시장이 타임스퀘어 주변 정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중 누구도 성매매라는 경제 동인을 빠트리면 경제를지탱하던 수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협받을 거라는 측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을 합법 경제로 끌어내면 된다는 낙관적인 생각은 사실 청교도적 위선에 불과했다. 이들에게는 범죄가 바로 정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 항상 어깨너머를 살피고, 경찰에게는 범죄를 숨기고 도둑에게는 성공을 숨겼다. 그리고 조만간 드러나듯 때로는 싸움에서 패했다.

 

정상적인 세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은행 계좌를 꼭 만들고 싶어요. 비자카드가 필요해요. 그리고 돈을 적게 내도 진찰해줄 괜찮은 의사를 찾아야 돼요. 아니면 합법적인 부업을 구해서 경찰에 붙잡혀 주머니가 털리는 일을 모면해야 돼요. 정화돼야 해요.”

안젤라가 말하는정화에 담긴 역설에 나는 웃음이 났다. 언론에서 맨해튼을 쾌적한 도시로 만들기 위한 줄리아니의 전략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 말이 안젤라의 입에서 나오자, 지하 세계의 음영이 더해지면서 돈세탁과 정체성 변화의 메아리가 더 크게 울렸다. 하지만 같은 정서가 두 경우 모두에서 진실이었다. 미드타운이 더러운 동네에서 중심지로 변모하듯이 안젤라는 거리의 매춘부 생활을 청산하고 그나마 나은에스코트 서비스로 옮겨 가고 싶어 한 것이다.

 

현대 도시의 성노동자에게는 공동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다. 새로운 성매매는 더 이상 후미진 뒷골목에 국한되지 않고 친구나 손님을 통해 도시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이런 식으로 도시 안에서 멀리까지 연결된 즉흥적인 사회 연결은, 일찍이 1960년대에 시카고의 사회학자 모리스 야노비츠(Morris Janowitz)가 발견해서유한책임 공동체라고 부른 현상이다.

 

만준과 그의 친구들은 어떤 식으로든 유한책임 공동체와 같은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네트워크를 이루는 모든 당사자가 매우 취약해 보이는 현실을 감안할 때 네트워크가 얼마나 유지되느냐가 문제였다. 미래를 제시하는 모형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적응 양태일까?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들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는 개인이나 업소가 성매매를 제안하는 광고가 갈수록 늘어났다. 누군가는 돈을 번다는 뜻이었다. 안젤라와 그녀의 친구들이 아니라면 누굴까? 성공과 실패의 양상은 어땠을까? 결과는 어땠을까? 실패일까? 감옥일까? 죽음일까? 그들은 낯선 미국 땅에 잘 스며들었을까? 아니면 저축한 돈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을까? 이번에도 나는 일반화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모든 가능성을 탐색해보려 했다.

예상은 되지만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백인 중산층 출신으로,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를 소유하고 안젤라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만 내 예상은 순전히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서 사실일 수도 있지만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오직 자료로만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이런 일을 10년이나 했으면 연구 대상의 고통에 무뎌질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글을 써도 안젤라와 만준 같은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학은 사회 개혁이라는 원대한 꿈에서 발전했지만 이제 개혁가들은 경제학에 희망을 건다. 사람들에게 학비를 대주어 학교에 보내고 배를 곯려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하는 식이다. 삶의 모든 문제를 사실상 보상과 숫자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만준이 단지임금노동자이고 그가 겪는 고통은시장 외부 효과에 지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내 친구가 사라진 이유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의 어떤 갈등 해결 방식 때문이었다. […] 여기서 지하 세계의 취약한 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 지하 세계에는 진짜 폭력이 있었다. […] 민족지학자들은 항상 연구 대상과 그들의 비극적이고 취약한 모습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통찰은 고통스러워진다.

 

“살아남는 건 쉬워요.” 산토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교육도 많이 받은 데다 근면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도 성공해요. 그리고 밤에 악마가 찾아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데 한참 걸렸다. 산토시가 보기에 만준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악마의 손에서 받아먹으면 네 손이 악마의 손이 된다. 지하경제에서 이런 일을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파티가 끝나자 산토시가 내 옆으로 와서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것도 보셔야죠. 교수님이 기억해주십사 하는 장면이에요. 우울한 일만 기억하지는 말아주세요. 교수님도 어릴 때 추억이 있을 거예요. 지금하고 비슷하지 않았나요?”

그래요, 산토시. 많이 비슷해요.” 이렇게 말하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를 동정하지 마요. 우리를 피해자 취급하지 마요. 우리는 그저 힘들게 사는 사람들만은 아니에요. 일리가 있는 조언이긴 하지만 나는 서로 모순된 듯 보이는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고심했다. 첫째는 대도시 뉴욕에서는 가난한 이민자도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고 무한한 기회의 장으로 여기는 관점이다. 산토시처럼. 두 번째는 뉴욕을 승자에게는 엄청난 사회적 혜택을 보장하지만 패자에게는 파국적인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무자비한 계급 도시로 보는 관점이다.

 

유럽의 백인들이 대규모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이민자 거주지를 세우고 미어져라 몰려들어 제2의 고향을 건설한 뒤 대다수가 불법 시장을 기반으로 물물교환을 하고 돈을 빌려주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미국화했다. 모두 미국의 기업가정신을 훌륭하게 전수받은 셈이다. 점차 신용을 쌓고 합법적인 직장을 구해서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금의 세계화는 전혀 새로운 동화(同化)의 서사를 써나갔다. 오늘날의 이민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흑인과 여타 유색인종일 가능성이 높았다. 2000년 이후 뉴욕에 들어온 이민자 대다수는 멕시코, 가나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출신이다

 

이렇게 새로 밀려든 이민자들은 긴 이름을 줄이지 못하거나 억양을 버리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하찮은 일자리에서 보수가 좋은 공장이나 공무원으로 이동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대도시에서 사라진 탓이었다. 그 대신 이민자들은 부유층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임금 서비스 분야에서 점원, 택시 운전사, 청소부, 유모, 식당 보조 등으로 일했다. 이들 일자리는 주로 불법 노동이라 승진할 기회도 거의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의지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과거 세대의 저소득층 노동자들과 달리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은 노조에 가입해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뉴욕에서 인구 셋 중 하나는 빈곤층이었다.

 

오늘날 세계화의 승자들은 막대한 부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음식과 음악 같은 매력적인 혜택을 누리기 바빠서 그들의 즐거움에 기여하는 보이지 않는 최하층 계급의 참상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Chapter 4 | 사다리 오르기

마약상의 기업가정신

샤인은 사업 얘기를 할 때 항상 뉴욕을 구역으로 나누어 말했고, 코카인 판매에 관한 한 미드타운은 베이징만큼 멀었다. 그래서인지 샤인이 자주 하는 말 중에는저 아래라거나저기 밖에라거나 심지어그들이 있는 곳이라는 말도 있었다.

 

샤인에게 백인 친구도 있고 돈 많은 친구도 있지만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백인의 돈을 받는다는 건 어찌 보면 그들에게 자신을 판단할 권리를 넘겨준다는 뜻이었다.

 

부자들에게 지하경제란

그런데 대화가 잠시 잠잠해졌을 때 놀랍게도 그들은 부유한 자선가 젊은이들의 암시장 활동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 모두 세무 당국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철저히 은폐된 활동이었다. 요령껏 빠져나가는 것도 그들에게는 일종의 스포츠였다.

놀라운 역설이었다. 기본적으로 같은 활동이지만(법의 그늘 아래서 밀매하고 몰래 빠져나가는 활동) 어느 집단에는 스포츠이고 다른 집단에는 생사가 걸린 사안이라니.

 

무엇보다도 지하 세계는 곧 최하층민의 영역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깨트리는 도전이기도 했다.

 

조너선 코졸(Jonathan Kozol)의 《야만적 불평등(Savage Inequalities)》과 알렉스 코트로위츠(Alex Kotlowitz)의 《키 작은 보헤미안(There Are No Children Here).

 

‘남자가 있는 가구원칙이란 집안에 남자가 살면 여자가 받는 복지연금을 취소한다는 조항이다(1968년에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성차별적이고 파괴적이며 가정 파탄을 일으키는 법일 뿐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법이기도 했다. 다른 시민들(백인 농업 가정)이 받는 유사한 정부 지원에는 도덕성 조항이나 행동 제약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 인종에게는 온갖 굴욕적이고 생색내는 원칙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실비아가 벳시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추궁하던 기억이 나면서 신선한 역설이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실비아든 벳시든 둘 다 어딘가에 고용된 상태가 아니었다. 실비아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벳시는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알고 보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늙은 창녀의 새로운 도전

“자기야, 그래서 문제야. 스스로 개똥 취급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잖아.”

나는 움찔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보다도 유독 가난한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면 스스로를 패대기쳤다. 사회가 그들에게 믿으라는 대로 믿으면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는 전적으로 자기네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회학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가장 슬픈 현상 중 하나였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이들

나는 문 앞에서 신부에게 농담을 건넸다. “어떻게 그렇게 되도 않는 이상을 고집하십니까?”

신부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경계를 뛰어넘는 이들의 조건

이렇게 말해두지.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직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뜻이지?”

그럼. 그래도 모르는 거야.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얽매일테니. 우리 할머니 말씀이야.”

 

그들과 어울리려면

여기 사교 파티에서 나는 사회적 수집품에 가까웠고 막연히 굴종하는 역할이 내게 주어져서 무척 불편했다.

 

부유하는 것은 언제든 가라앉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의 경험을 지켜보면서부유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세계적인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연줄을 제공하고, 암시장에서는 어디서나 이런 연줄을 돈벌이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 연줄로 만드는 능력을 얻는 반면에 삶이 무자비하고 상품화된 관계로만 유지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판매 가능한 물건으로 치환되지만 누가 꼭 사준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뭐든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항상 실패할 위험을 안고 있다. 보니와 안젤라는 바로 이런 사업가다운 열정을 보이면서 대도시 뉴욕에서 부유할 수 있는 기회를 발판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다지려 했다. 하지만 뉴욕은 사줄 사람을 보장하지 않았고, 부유하는 것은 언제든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

 

샤인은 항상 조직원을 내보낼 때는 대화로 서로의 기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고 믿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훌륭한 경영인이었다. 샤인이 내건 요구 조건은 지속적인 비밀 엄수였다.

[…]

합리적인 접근법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1) 젊은이들이고 2) 대책 없는 젊은이들이고 3) 젊은이들이라는 점이었다.

 

“나한테도 그 애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지만 걔들도 날 믿어줘야지. 내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지켜보면서 지들도 배울 수 있으니까.”

내가 아는 한 갱단 두목들은 무자비한 범죄 조직을 이끈다는 자각이 없다.

 

이들은 항상 성인 남자를 멘토로 삼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말썽 많은 청소년들에게 접근하고, 항상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풀지만 결국 불행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나는 막후의 세계를 보았다. 이런 청년들이 해고당한 사실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샤인 같은 갱단 두목은 결코 푸근하게 안아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달래지 않는다. 개 패듯이 팬다. 이쪽 세계가 원래 그렇다.

[…]

알 카포네가 말했듯이다정한 말 한마디에 총을 얹으면 다정한 말로만 대할 때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예정된 운명을 거부하려는 몸부림

 

‘도움 받을 자격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이라는 오랜 편견은 언제나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샤인과 안젤라, 카를라와 만준은 중산층이나 상류층 사람들 못지않게 근면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사실 이들은 생각이든 행동이든 모든 면에서 매우 역동적이었고, 더불어 맹렬한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단지 똑같이 노력해도 모든 창조적 파괴의 효과가 부유층에서만큼 빠르게 쌓이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모이니한 보고서에서는 진실이 뒤로 물러나고 비난만 전면에 드러났다. 백인 가정에서도 이혼율과 중독자 비율이 높지만 백인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복잡한 병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에 부딪히지 않았다.

 

나는 몇 년간 시카고 빈민가를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사실 회복탄력성과 경제적 창의력이 뛰어나고 그 이유는 이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는 사회 계급이 전복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

사회학자들이 한 개인의 인종과 교육, 부모의 수입을 비롯한 몇 가지 개인적 특성만으로 그 사람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있다.

 

엘리엇 리보(Elliot Liebow)의 설명.

“흑인 하층 계급의 아버지와 아들이 여러모로 비슷하게 사는 이유는…… 아들이 밖에 나가서 독립적으로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실수를 경험하기 때문이고……”

 

결과는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도록 포부를 불어넣지 못한다.

 

 

Chapter 5 | 경계의 균열, 연결되는 세계

 

매춘부의 아메리칸드림

 

남자와 여자가 자주 싸우면서도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에 더 슬퍼지는 이야기.

 

초기에는 마고가 여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주었다. “오후 5~6시에 바에 들어서는 남자들이 있어요.” 마고가 열심히 설명했다. “통근하거나 출장을 왔거나, 아니면 밤에 시내에서 볼 일이 있는 조금 외로운 사람들이에요. 한마디로 손쉬운 먹잇감!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그 남자들에게 창녀를 만나는 게 아니라조금 도움이 필요한’, 말이 그렇다고요, 괜찮은 아가씨를 만난다는 느낌을 심어줄 방법만 찾으면 돼요. 옆에 예쁜 아가씨가 하나 더 있으면 쓰레기가 된 기분이 조금 줄어들어요.”

 

승진을 미끼로 성관계를 요구한 상사가 있었는데, 건방지고 추잡한 권력 추종자로서 마고를 깔보던 남자였다. 만약에 거꾸로 그녀가 승진하려고 성관계를 제안했다면 창녀라는 딱지가 붙었을 것이다. 해고당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위선자들인가!

 

그건 아메리칸드림의 종소리였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질까? 성매매도 여느 직업처럼 꿈의 무대가 될 수 있을까? 과연 매춘부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을까?

 

새로운 갈등에는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

 

샤인도 나도 더 이상 빈민가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운타운의 바가 연루된 일이고, 그러면 백인도 개입된다는 뜻이라 더는 과거의 규칙대로 할 수 없었다. 샤인은 이제 그가 정복하려는 새로운 세계에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상류층의 구토에 관한 사회학적 고찰

 

사립 고등학교의 일부 명문가 자제들은 택시나 리무진을 세워놓고 잠깐 짬을 내서 반쯤 소화시킨 그날의 술과 음식 찌꺼기를 길가에 쏟아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연극을 하듯이 길거리를 무대로 상상 속의 멋진 작품에서 억울하고 비극적인 주인공을 연기했다. […] 술 취한 모습들 중에서 일부는 계급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걸까? 사회경제적 표지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자기표현의 한 방법일까? 억지로 삼켜야 하는 모든 기대를 게워내는 걸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샤인과 안젤라, 카를라와 마찬가지로 이들 부잣집 자제들도 꼭 재기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 아메리칸드림의 한가운데 숨겨진 추악한 비밀일까? 고대 로마인과 같은 수준의 갈망과 자기혐오일까?

 

부유층 자제들의 연극을 구경하던 중 문득 카를라와 샤인의 갈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이 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성공한다 해도 굳이 토하는 걸로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창녀를 구합니다

 

계층 이동의 열쇠, 문화 자본

 

카를라가 정말로 큰돈을 벌고 싶으면 좋은 음식을 즐길 줄 알고 정치와 오페라에 관해 대화를 나눌 줄도 알아야 했다. […] 점점 더 문화 자본으로 경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성공의 필수 요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네트워크의 연결자, 브로커

 

법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들 나름의 조직 체계를 마련한다.

 

등줄기가 쭈뼛하는 느낌이었다. 연결성이라. 내가 처음에 던졌던 몇 가지 질문이 새삼 떠올랐다. 세계적인 대도시가 사회학자들에게 새로운 공간인 이유는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국경과 경계선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연결성은 부자들, 그러니까 항공료를 감당하거나 현지에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새로운 차원의 연결성이 존재했다. 노동계급 사이의 연결성으로, 불법적이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영역에 연루되어 있어서 흔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지하 세계에서 연결성이란 낯선 환경을 넘나들며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기도 했다.

 

 

Chapter 6 | 섹스가 모든 것을 연결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에 관한 새로운 사회학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계급을 뛰어넘는 데 필요한 개별적 요소(교육, 경험, 전문 지식 등)를 밝혀내거나, 각 계급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고 각 계급이 합법과 불법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몇 퍼센트를 차지하며 정부가 암시장에서 세금을 걷지 못해 입는 손해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고 있는지 묻거나, 세계적인 대도시를 변화시킬 만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핵심은 매춘을 합법화하거나 마약 거래를 활성화시키자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포부라는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데 있다

 

부업으로 성을 파는 여성들

첫 번째는 예술가를 꿈꾸는 유형으로 연기자나 모델이나 무용수가 되려고 뉴욕에 온 사람들이었다. […] 매춘은 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수단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비즈니스 세계의 말단에서 일하던 사람들로, 주로 판매원, 변호사 보조, 비서, 인사과 직원이었다. […] 이들에게 매춘은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이자 나아가 보복의 방법이기도 했다. 남자들에게 죄를 지은 대가로 돈을 내게 하는 것이다.

 

부유층 성 매수자와의 인터뷰

연애는 위험부담이 크고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런데 돈을 내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

더 좋은 남편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연구자의 잘못된 개입

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모든 남자는 위로받아야 한다.

[…]

사회학에는 경험 법칙이란 것이 있다.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의미하지는 않다는 법칙이다.

[…]

이 남자들이야말로 바로 내가 찾던 대상으로서, 상류층과 하층민을 잇는 또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거울이기도 했다.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이고, 위로받고 싶은 욕구는 나의 욕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창녀들을 위한 교양 학교

지하경제를 관찰하며 세계적인 대도시의 삶에 대해 배운 것들

 

새로운 세계에서는 문화가 지배한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성공의 도구함에 들어간다(자칫 빈민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어서 위험한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회학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뉴욕의 상류층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길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사실은 단 하나의 길, 즉 섹스를 통하는 길밖에 없었다.

 

섹스는 경계를 뛰어넘는 이상적인 수단으로 뉴욕을 정의하고 연결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극히 친밀한 행위이자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내밀하고 사적인 일로 여기도록 훈련받은 행위가 보이지 않는 실이 되어 뉴욕 사회 각계각층을 하나로 연결하는지도 몰랐다.

 

다시 마틴을 돌아보니 그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받는지 떠들고 있었다. 그가 아니라, 나 말이다. […]

사회학은 어디선가 멈춰야 하고 그게 어디든 여기보다는 나아야 했다. 마틴의 경우는 절박하게 달라붙는다는 말의 완벽한 예이자 지나치게 절박해서 그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계선이 움직이고 장벽이 허술한 세계에서 내가 느낀 불안은 불길한 징후일까 아니면 실마리일까? 절박하게 달라붙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Chapter 7 | 그들의 기업가정신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자본주의가 창조적으로 파괴되자(변화인가 죽음인가) 여기 임기응변에 능하고 결단력 있는 남자는 아는 매니저가 없는 바에 들어가고 안면을 튼 적도 없는 경비가 지키는 호텔에 들어가고 믿음이 가지 않는 백인 고객들에게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죽음은 은유가 아니었다.

 

갈등은 지하 세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할렘의 암시장에서 사람들은 완력을 이해했다. […] 사회학적으로 보면 물리적 충돌은 암암리에 다뤄야 하는 사회 규범이었다.

 

상류층 그녀의 성매매업 창업 동기

 

백만장자의 딸들이 왜 몸을 팔까?

 

“왜 그렇게 우리한테 관심이 많아요? 그냥 섹스잖아요. 섹스와 돈,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돈이 아주 많잖아요. 당신네는 이미 부자예요. 백인이고, 세계 어디든 휴가를 즐기러 다니고. 분명 집에 청소부도 있을 테고.”

[…]

“객관적으로 여러분에게는 다른 기회가 있잖아요. 제가 연구하는 대다수 여자들에게는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킴벌리가 말했다.

 

킴벌리와 조조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특권 의식을 드러내며 정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 처음에 이런 특권 의식은 돈 주고 못 산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오직 돈으로만 살 수 있었다.

 

“아무튼 복잡할 거 하나 없어요. 우린 돈을 좋아하고 돈을 벌려면 이 길이 제일 빠르니까. 그게 뭐 어때서요?”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고, 정 안 되면 <스카페이스(Scarface)>(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3년 영화 - 옮긴이) 식으로 허세를 부리며 사회규범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과시하려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신과 화해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반대였다. 아날리스와 킴벌리, 조조는 한 번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정당화하기를 거부하면서 승리감에 도취된 것 같았다.

 

배에 실은 물건 중 절반은 신고하지 않은 물건이거든요.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 정도 규모로 법을 어길 수 없어요

 

생계가 아니라 부와 영향력이 목적이다

 

지난번 사건으로 받은 영향이 이런 거였을까? 순수에서 경험으로의 순례길에 올라 결국에는 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던 부모와 똑같이 마키아벨리적 삶의 태도로 돌아온 것이다. 특권 의식에는 승리가 필요했다. 아날리스와 그걸갖지못한 여자들의 차이는 여기 있었을까?

 

만준과 산토시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불법 경제와 합법 경제를 오가면서 어쩔 수 없을 때는 법을 어기지만 언젠가는 성매매에서 완전히 발을 뺄 날이 오기를 바랐다. 반면에 아날리스와 그녀가 관리하는 여자들에게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일은 일종의 게임이었고, 게임에서 진다고 해도 죽거나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여성의 자율성을 운운하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매춘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다

 

미래에는 돈을 좇는 도둑과 자유를 좇는 경찰만 존재할 뿐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미래가 밝은 것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말 중에 적절한 표현이 있다. 장점이 없으면 있는 척하라.

 

나는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도 예전에 카를라나 안젤라가 비슷한 중압감과 욕망에 굴복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만큼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때는 연구자로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다 보면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걸 기대하기 마련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이유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빈민과의 차이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해놓고 세상이 그들을 차별한다고 떠들고 가르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냉소와 오만의 옷을 입고 부유층인 걸 과시하려 하지만 그 역시 보통 사람처럼 칼 융의 위대한 금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드러내려는 욕구가 감추려는 욕구보다 크다.”

 

모호한 경계, 확장되는 관계

 

아날리스에게 브리트니와 JB는 단순한 고용인이나 동업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날리스의 관계망의 핵심이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단지 용기를 내서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과거의 세계를 떠나거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빈민가의 가난한 사업가들이 작은 어항을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단지 큰 물고기한테 잡아먹힐까 봐만은 아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외부인으로 배척당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아날리스 같은 개인주의자도 관계망에서 지원을 받아야 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친구와 가족과 옛 동업자들을 뛰어넘는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인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맥을 쌓아나간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새로 인맥을 만든다기보다는 이전의 관계망을 확장한다는 뜻이다

 

아날리스가 브리트니와 끝낸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매번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식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늘 이런 식이라 사실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에스코트 업계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걸핏하면 매니저나 에이전시를 떠났다가 몇 달도 안 돼서 돌아왔다. 경제학에매몰 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날리스든 샤인이든 사람 하나 자르기가 힘든 이유는 일을 시키기 위해 벌써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는 이런 걸 그냥 신뢰라고 한다.

 

아날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 있는 눈치였다. “샤인이 도와줄 거예요.” 이 지점에서 내 이야기의 호가 맞물렸다.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샤인과 아날리스가 갤러리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엮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기분 나쁜 예감이었다. 어차피 둘은 어느 파티에서건 만날 인연이었겠지만 내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내심 질투가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안의 과학자는(그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흥분했다. 아날리스와 샤인의 만남이야말로 내가 연구에서 밝히려고 했던 지점이다. 뉴욕은 다양한 계층과 민족과 배경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었고, 여기서 어떤 관계보다 고통스럽고 유용한 위험한 관계가 시작됐다. 새로운 관계에서는 꼭 상하 구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이 도시만큼이나 오래된 관계였다

 

대학 시절에 나는 엔트로피 개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고체 상태의 모든 물체는 녹아서 기체가 된다느니, 창조적 파괴라느니, 하는 얘기였다. 공장들은 혁신 한 번만 일어나면 구식으로 전락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허물어지는 과정에 있었다. 부르주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전통에 구애받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정반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엔트로피를 포용했다.

 

엔트로피는 뉴욕의 지하 세계에도 적용됐다. 뉴욕에서는 누구나 항상 변화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초점을 바꾸고 손실을 인정하고, 실패한 뒤 한시라도 빨리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의 야망을 부채질하는 내면의 악마였다. 탐욕, 시기, 무모한 행동,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마약을 팔든 에스코트 사업을 하든 웬만하면 감옥에 가지 않는다. 적정 수위를 지키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대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아날리스가 불법 세계에서 묻은 검댕을 마술처럼 깨끗이 씻어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어쩐지 위태로워 보였다. 아날리스는 그녀의 계층이 규칙을 정하고 깨트릴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범죄의 세계에서 몽상가는 성공하지 못한다. 지하 세계는 스스로 한계를 알고 시장(과 경찰)이 어느 선까지 봐줄지 이해하는 경영자에게 적합한 영역이었다.

 

 

Chapter 8 | 지하경제에서 빠져나가는 길

마담의 은퇴

큰돈을 잃을 이유가 없어. 돈 떼먹고 도망치는 일은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아. 매춘부들은 대부분 정직한 편이야. 그렇다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마고는 나한테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요, 수디르. 시도 때도 없이 말한다고요. 당신의 목소리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그 사람들은 당신한테 목소리를 들려줄 줄 알아요. 그래서 당신이 그들에게 달려가는 거고요. 힘없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범죄자들, 미치광이들에게로. 왜 자꾸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요? 잘 생각해봐요. 왜 항상 그들에게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찾으려 하냐고요?”

 

경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

“수디르, 이런 애들한테는 제가 필요해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마고, 샤인, 안젤라, 만준을 비롯한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카를라 역시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녀의 사회자본은 사회비용이었다. 왠지 모르게 자선을 베풀다가는 암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을 도우려는 카를라의 본능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빈민가는 어항 같아요. 끊임없이 어항에서 뛰쳐나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막상 벗어나면 숨이 막혀서 다시 어항으로 뛰어들려고 해요.

 

여기서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없어요

여기서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없어요, 수디르. 당신만 빼고. 당신은 이야기를 좇고 사람들을 따라다니지만 늘 한자리에 머물러 밖에서 구경만 해요.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안에 있는 건 뭐고 밖에 있는 건 뭔지 몰라 당황하죠.”

[…]

“하지만 그래서 이 도시가 대단한 거예요. 누구든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정말로 달라지니까요. 상관없어요.”

 

‘거기 서서 구경만 하면 파도가 자넬 덮칠 거야. 때가 되면 선택을 해야 돼.’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징징대는 거 아니에요.” 카를라가 말했다.

아니, 그러고 있잖아! 지금 징징대고 있잖아! 창녀들이 징징대며 신세 한탄 하는 소리라면 신물이 나. 이 바닥에서 벌어먹고 살 거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다른 애들이 맞든 말든 내버려 두든가 아니면 네가 얻어터지든가. 누군가는 맞아. 어느 쪽을 택할래?”

 

자신이 매니저로 성공하기 시작한 때는 누군가 다칠 거라는 조건을 수용한 날이라고. 폭행은 이 세계의 일부였다. 적어도 희생자가 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는 있었다.

무척 슬픈 이야기다.

 

10년의 연구가 남긴 것

우리의 관계는 성격적 결함이나 연구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식, 특히 어떤 이유에서건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공동체는 나를 지탱해주는 동시에 내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의 삶이 내게 파문을 일으키고 내 삶이 그들에게 파문을 일으키면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지지 체계의 외연을 넓혀서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하는 저편으로까지 확장해나갔다.

 

나는 모두에게 그만큼 빚을 졌다. 아니, 훨씬 더 큰 빚을 졌다.

 

 

“난 실패했어.” 내가 다시 말했다.

[…]

형도 그런 말을 자주 했어. 실패했다. ‘난 실패했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다시는 그 말을 입에 담지 마. 그냥 달라졌다고 해, . 난 달라졌어, 라고 하라고.’”

 

실패가 샤인을 규정하지는 못했다. 질긴 생명력이 그를 규정했다. 지하 세계에서는 이것만 있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갔다. 물러섰다가 다시 접근하고 새롭게 상상하는 법을 배우는 능력.

 

“책을 썼는데 아무도 읽지 않으면 과연 책을 쓴 걸까?”

샤인은 웃었고, 그 순간 샤인도 내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샤인도 내 저력을 감지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힘이 났다.

 

이야기, 혼돈의 도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

 

성공의 열쇠는 즉흥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인맥을 신속히 쓰고 버리는 능력이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죄를 용서하고 실패를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나서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회는 언제든 주어진다. 뉴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다면 당신이라고 왜 변화하면 안 되겠는가?

그러면 누구나 가능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부유하려고 시도한 많은 사람이 결국 가라앉고 말았다. 더욱이 계층 이동이나 경제적 발전을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면 대다수가 실패했다

[…]

그래도 이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학적 캐리커처를 초월한 사람들이다.

 

뉴욕을 연결하는 실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야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 하나의 이야기가 실 한 가닥처럼 모두 한데 엮여야 전체를 이룰 수 있다. 뉴욕의 전통적인 열망과 경계를 뛰어넘는 이야기가 사회학에 유용한 이유는, 단지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자극해서 과학으로 추출한 표본에 살을 붙여 자료로 만들어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도시 자체의 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도시의 양상을 온전히 보지 못할지도 모르고 언제까지나 내게는 대답보다 질문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샤인이 계속 마약을 팔고 갤러리를 여는 꿈을 꾸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작은 이야기의 공동체를 더 큰 세계로 넓혀나가야 했다. 여기는 뉴욕이고 저 아래 반짝이는 불빛들은 지식과 상업의 달콤한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손짓하는 수백만 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답을 다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았다.

부유해야(float) 했다.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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