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2. 13. 15:11
서부전선 이상없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저/홍성광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제1차 대전 체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병사가 견뎌 내는 전장을 감정의 개입 없이 담담하게 그려 내고 있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허황된 애국심에 들뜬 담임선생의 권유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입대했다. 입대해 보니, 그리고 전장으로 와보니 생각했던 어느 것과도 달랐다. 전쟁 속에서 그저 생존과 기본적인 욕구 외에는 안중에 없는 기계로 변한 그들은, 만일 평화가 온다고 해도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인간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전장 속에서 피어난 전우애이지만, 그 역시 허망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을 포함하여 친구들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예술 작품인 동시에 의심할 수 없는 진실. ─ 슈테판 츠바이크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1

 

차덴과 뮐러는 어디선가 세숫대야를 몇 개 구해 와서는 여분의 음식을 넘칠 정도로 가득 담아 왔다. 차덴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음식을 탐하기 때문이고, 뮐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만일을 위해서다.

 

처음 군에 들어와 막 병영 생활을 시작했을 때 대형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이었던가. 그곳에는 문이라는 게 없다. 기차 칸에서처럼 스무 명이 나란히 앉아 엉덩이를 까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실 군인이란 끊임없이 감시를 받아야 된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약간의 창피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배우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다른 일까지 친숙해지게 되었다. 여기 바깥에 나오면 이런 일까지 일종의 쾌락으로 느껴진다. 전에는 왜 이런 일을 늘 소심하게 그냥 지나쳐 버리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소변을 보는 일도 먹고 마시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던가

 

군인에게는 소화와 배설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숙한 영역이다

 

하마터면 우리가 오늘 변기 위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까딱 잘못했으면 우리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모든 게 새삼스럽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 붉은 양귀비꽃과 훌륭한 식사, 담배와 여름 바람, 이런 것들이 말이다.

 

세상의 불행이 종종 키 작은 사람들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다. 이들은 키 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왕성하고 융통성은 부족하다.

 

칸토레크는 […] 우리 반 친구들을 모조리 이끌고 지역 사령부에 가서 자원입대하게 만들었다

[…]

제군, 여러분은 함께 갈 거지?”

이런 교육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끼 주머니 속에 준비해 두고 있다가 끄집어내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놓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 한 명은 망설이며 군 입대를 내켜 하지 않았다. […] 하지만 혼자 열외가 되어서는 좋을 일이 없었다. 심지어 부모들도 이 무렵 걸핏하면 〈겁쟁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기 때문이다. 사실 모두들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즉각 전쟁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이라면 전쟁의 결과에 대해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물론 벰이 죽은 것이 칸토레크 선생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런 것을 그의 탓으로 돌린다면 대체 세상에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칸토레크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파멸을 맞게 된다.

 

이들은 열여덟 살의 우리들을 성인 세계와 중개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했다. 노동과 의무, 문화와 진보의 세계, 즉 미래의 세계로 말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들을 조롱하기도 했고, 이들을 속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권위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서 더 깊은 통찰 및 인간적인 지식과 결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동료가 처음으로 죽는 것을 보자 우리의 확신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우리 또래가 어른들보다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점은 상투어를 사용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뿐이다. 처음으로 쏟아지는 포탄을 뚫고 돌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화를 맞으면서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의 세계관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이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우린 다른 사람이 되었고, 대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른의 세계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린 어느새 끔찍할 정도로 고독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독과 싸워 나가야 했다.

 

케머리히는 안색이 누렇고 창백해서 처참하게 보인다. 얼굴에는 이미 낯선 주름들이 보인다. 우리는 그를 하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주름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그것들은 주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길한 징조라고 할 수 있다. 피부 밑에서는 생명이 더 이상 맥박 치지 않고 있다. 생명이 이미 몸 가장자리에까지 밀려 나와 있다. 몸속에서는 죽음이 활개치고 있고, 두 눈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거기에 우리의 전우 케머리히가 누워 있다.

 

누구나 한 번은 그 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 뮐러가 크로프에게 묻는다. 「그 칸토레크 선생은 대체 뭐라고 썼냐?

크로프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강철 같은 청춘이래.

우리 셋은 모두 화가 나 웃는다. 크로프는 욕을 퍼붓는다. 그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수없이 많은 칸토레크 같은 사람들은!

강철 같은 청춘. 청춘이라! 우리는 모두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다고? 청춘이라고? 그건 다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2

 

 

칸토레크 선생이 강철 같은 청춘이라 부른 스무 살에 불과한 우리들, 크로크, 뮐러, 레어 그리고 나에게는 모든 일이 불투명하다. […] 그저 약간의 몽상, 약간의 취미 그리고 학교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 아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칸토레크는 우리가 바야흐로 인생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뭐 그렇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생활 속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에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좀 더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하나의 중단이다. 그들은 전쟁을 넘어서서 멀리까지 생각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사로잡혀 언제 풀려날지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상야릇하고 우울한 방식으로 거칠게 변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이제 자주 슬픔에 빠지지도 않는다.

 

다른 맥락은 다분히 억지로 꾸민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이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두기로 했다. 단지 사실만이 우리에게 옳고 중요하다. 그런데 좋은 장화는 흔하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막연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삶에 그리고 우리의 눈에 비친 전쟁에도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10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10년 동안의 학창 시절보다도 더 단호하게 변했다. 우리는 네 권으로 된 쇼펜하우어 전집보다 잘 닦은 단추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라워하다가 그런 다음에는 분노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 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신이 아니라 구둣솔이 아닌가 하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입대한 후 3주가 지나자 제복에 은실이 달린 우편배달부의 힘이 예전의 우리 부모, 우리 교육자 그리고 플라톤에서 괴테에 이르는 모든 문화계 인사를 합친 것보다 더욱 막강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례, 부동자세, 분열 행진, 받들어총, 우향우, 좌향좌, 뒤꿈치를 맞붙이며 차렷하기, 욕지거리 및 온갖 부당한 횡포. 우리는 애당초 우리의 임무를 이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서커스의 말처럼 용감무쌍하게 조련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내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심지어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은 꼭 필요하고, 다른 어떤 것은 쓸데없다는 것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군인은 이런 것을 냄새 맡는 데 비상한 후각을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신병이 받을 수 있는 훈련이란 빠짐없이 다 받았다. […] 우리는 강건하게 되고, 의심을 품게 되고, 동정심이 사라지게 되고, 복수심에 불타게 되고, 거칠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우리가 이런 수련 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참호 속으로 보내졌더라면 우리 대부분은 아마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닥칠 일을 대비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마음속에서 견고하고, 실제적인 연대감이 싹텄다는 사실이었다. 전쟁터에서 전쟁이 가져다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전우애였다!

 

그가 입을 열고 소리라도 치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울기만 할 뿐이다. […] 그는 지금 열아홉 살 된 자신의 조그만 생명과 홀로 대면하면서, 그 생명이 자신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 중에서 가장 당황스럽고 괴로운 이별이다.

 

오늘만 해도 열여섯 명이 죽었어. 자네 친구는 열일곱 번째지. 금방 스무 명까지 찰지도 몰라.”

나는 온몸에 맥이 풀린다. 갑자기 더는 이러쿵저러쿵 탓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더는 욕하지 않을 거다.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3

 

크로프는 사색가이다. 그는 선전 포고를 할 때는 투우 경기를 볼 때처럼 입장권을 구해서 음악을 울리며 일종의 축제처럼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 다음 원형 경기장에서 양국의 장관과 장군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서로 달려들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는 자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엉뚱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보다 그게 더 간단하고 낫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조그만 권력을 줄 때도 그와 마찬가지 일이 생기지. 즉 고기를 문 개처럼 권력을 덥석 물고 늘어지는 거야.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인간이란 원래 속성이 짐승과 다름없기 때문이야. 거기에 어쩌면 버터기름을 바른 빵처럼 예의라는 게 발라져 있을 따름이야. 군대의 본질적 속성은 늘 누가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그런데 고약한 일은 누구나 너무 지나치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야. 하사관을 졸병을, 소위는 하사관을, 대위는 소위를 미칠 정도로 못살게 쪼아 대는 거야.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금방 자기도 그런 짓을 예사로 하게 되지.

 

「그렇긴 하지만 규율이란 건 있어야지.」 크로프가 무성의하게 아무렇게나 말한다.

카친스키는 툴툴거리며 말한다. 「그들은 늘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대지. 그래, 그게 규율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횡포가 되어서는 안 돼.

 

누구나 이 점은 수긍한다. 참호 속에 들어가야만 훈련이 중단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방에서 벌써 몇 킬로미터만 벗어나도 다시 훈련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쓸데없는 짓은 경례와 분열 행진이다. 군인이란 하여튼 무슨 일이건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4

 

포연(砲煙)과 안개로 공기가 뿌옇다. 화약 연기로 혀 안쪽이 알알하다. 포탄에서 나는 폭음으로 우리가 탄 트럭이 흔들리고, 뒤쪽으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나며 모든 게 흔들린다. 은연중에 우리의 얼굴색이 변한다. 우린 사실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참호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여기는 전선이다. 우리는 전선 지대에 와 있다〉고 쓰여 있다.

 

우리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더 파리하지도, 더 붉지도 않다. 또한 더 긴장해 있거나 더 풀려 있지도 않지만 보통 때와 같지는 않다. 우리는 핏속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전선이란 이처럼 전선을 의식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식이 전류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최초의 유탄(榴彈)이 지지직 하고 터지면서 지축을 뒤흔드는 순간, 불현듯 우리의 혈관, 손과 눈 속에서는 은밀한 기대감,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더 강렬하게 깨어 있다는 의식, 왠지 이상야릇하게 오감이 나긋나긋해지는 느낌이 생긴다. 말하자면 온몸이 일시에 완전한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비명 소리는 아직 계속된다. 그것은 사람의 비명 소리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카친스키가 말한다. 「말들이 부상당해 지르는 소리야.

난 아직 말들의 비명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이는 세상의 참상이며, 고통에 괴로워하는 피조물이다.

 

소년 병사는 수송 과정을 도저히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2~3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온갖 고통은 그가 죽을 때까지의 이 기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직은 몸이 마비 상태라 그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시간만 있으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고래고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앞으로 비록 며칠간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는 미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루 이틀 더 산다고 해서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카친스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렇게 어린 녀석이….」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저렇게 어리고 천진난만한 녀석이….

 

5

 

 

「지금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면 뭐 할 거니?

「우선 가까운 역으로 가서는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거지. , 평화란 말이야, 알베르트.

「내 어머니야!

 

카친스키와 데터링, 하이에는 다시 옛날 직업을 가질 거야. 군에 오기 전에 이미 직업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히멜슈토스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우린 직업이 없었어. 우리가 여기 전선을 벗어나면 어떻게 직업에 적응할 수 있을까?

 

「평화라는 말을 들으면, 그리고 정말 평화가 온다면, 난 무언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어져.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여기서 온갖 역경을 이겨 낸 만큼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말이야.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하지만 내가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온 것, 즉 직업이니 학업이니 월급 같은 온갖 것을 생각하면토할 것 같아. 그런 것은 늘 있어 왔기에 역겨워. 그러니까 난 아무것도 찾지 못하겠어, 아무것도, 알베르트.

 

그 때문에 사실 고향에 돌아가면 모두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지 않을까? 2년 동안 한 일이라곤 총 쏘고 수류탄 던진 것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양말 벗듯이 이런 습관을 간단히 벗어던질 수도 없을 테니까. 우리 모두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 일치를 본다. 여기 우리뿐만 아니라 어디 있든 유사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심각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덜 심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우리 세대의 공통된 운명이다.

 

「전쟁이 우리 모두의 희망을 앗아 가버렸어.

사실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의지가 없어졌다. 우리는 도피자들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과 현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할 줄 아는 일이란 카드놀이와 욕하는 것, 전쟁하는 일밖에 없으니 말이다. 스무 살 청년의 일로 너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스무 살 청년에겐 너무 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카친스키와 나는 이런 포화 속에 서로 마주 앉아 있다. 다 해진 군복을 입은 두 병사는 한밤중에 거위 한 마리를 구워 먹고 있다. 우리는, 말은 별로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서로 자상하게 배려해 주고 있다. 내 생각에 연인들도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두 사람의 인간이고, 두 개의 근근이 이어 가는 생명의 불꽃이다. 밖에는 어둠의 장막이 쳐져 있고 죽음의 소용돌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우리는 죽음의 언저리에서 위험에 처한 채 안전하게 앉아 있다. 우리의 손 위로 거위의 기름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서로 가까이 접근해 있다. 시간은 마치 공간과도 같다. 어떤 부드러운 불꽃에 가물거리며 감정의 빛과 그림자가 이리저리 일렁거린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는 그를 모른다. 전에는 우리 둘의 생각이 같은 적이 없었으리라. 지금은 둘이 거위를 한 마리 앞에 두고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가까이 느끼고 있다.

 

6

 

전방은 하나의 우리와도 같은 곳이다. 그 안에서 우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초조하게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우연하게 일어나다 보니 우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

포탄에 맞는 것도 우연이듯이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연이다.

 

다음 날에는 에담산 치즈가 나온다. 거의 누구에게나 치즈 4분의 1쪽이 지급된다. 에담산 치즈가 맛이 좋기 때문에 이는 어느 정도 잘된 일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수상한 냄새가 난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이 두껍고 붉은 둥근 치즈는 늘 격전이 벌어질 징조였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사나운 맹수로 변했다. 우리는 싸우는 게 아니라 초토화되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우리 뒤에서 철모를 쓴 채 두 손을 들고 쫓아오는데 그 순간 우리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우리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죽음을 목도했고, 사흘 만에 처음으로 죽음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우리들의 광적인 분노는 극에 달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무력하게 단두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적에게 보복하기 위해 파괴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물결은 우리를 잔인하게 만들어 우리가 노상강도며 살인자며 악마가 되게 한다. 이러한 물결은 불안이며 분노며 생존욕이란 형태로 우리의 힘을 배가시켜 준다. 우리에게 이러한 생존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했고 구원을 쟁취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저편에서 적들과 함께 돌격해 온다 해도 당신은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의 가슴을 향해 수류탄을 던질 것이다!

 

이제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또 우리가 힘쓸 일이 생길 것이다. 배불리 먹는 것은 훌륭한 엄폐부처럼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음식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모든 추억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추억에는 늘 정적이 감돈다는 사실이 가장 주된 특성이다. 실제로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런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말없이 침묵하며 눈짓과 몸짓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소리 없는 현상이다. 그 침묵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군복의 소매와 총을 꼭 쥐고 추억의 아스라한 유혹에 빨려 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유혹에 내 몸이 차츰 늘어나서는 이러한 추억들의 배후에 있는 조용한 힘에 은은히 녹아내릴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억이 그렇게 조용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선에는 정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방 지역은 너무 넓어서 우리는 절대로 전선을 벗어날 수 없다. 후방의 예비대나 휴양소에서도 웅웅거리는 포격 소리와 둔중하게 우르릉거리는 포격 소리가 언제까지나 우리의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멀리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예전의 영상이 소망보다는 오히려 슬픔, 즉 무시무시하고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적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은 과거에 존재했지만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추억은 지나가 버렸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지나가 버린 다른 세계이다.

 

훈련을 위해 아침노을과 검은 숲 그림자 사이에서 황무지를 향해 행군하면서 군가를 부를 때, 추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있다가 우리 바깥으로 나온 격정적인 추억이었다. 하지만 여기 참호 속에서는 추억이 우리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우리 마음에 추억이라는 게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다. 추억은 지평선 저 멀리에 있으며, 하나의 현상으로 우리를 엄습하는 불가사의한 반사(反射)이다. 우리는 반사된 그 빛을 두려워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추억은 강렬하며, 우리의 욕망도 강렬하다. 하지만 그 추억에 우리가 다다를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장군이 되겠다는 기대처럼 허망한 것이다.

 

우리는 추억 속에 살아 있고, 추억 속에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추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사랑하며, 추억의 모습에 감동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전사한 동료의 사진을 보고 〈이것의 그의 특징이고, 이것이 그의 얼굴이다〉라며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지냈던 날들이 우리의 추억 속에서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게 전우 자신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행객처럼 청춘의 풍경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들에 의해 불타 버린 상태에 있다. 우리는 장사꾼처럼 차이점들을 알고 있고, 도살자처럼 필연성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낼 수 없는데도, 끔찍할 정도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고는 있지만 과연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버림받은 상태에 있고, 나이 든 사람들처럼 노련하다. 우리는 거칠고 슬픔에 잠겨 있으며 피상적이다. 나는 우리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집중 포격, 저지 포격, 연막 포격, 지뢰, 독가스, 탱크, 기관총, 수류탄이것들은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의 온갖 공포를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몇 주일, 몇 달, 몇 년이 흘러갈 것인가? 아직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어 가는 사람들의 핏기 없는 얼굴 속에서 우리 옆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우리는 두개골이 없어도 살아 있는 사람을 본다. 우리는 두 다리가 다 날아간 병사가 달리는 것을 본다. 두 다리가 절단되었는데도 비트적거리며 인근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두 무릎이 박살 난 어떤 상병은 2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두 손으로 기어서 몸을 끌고 온 경우도 있다. 어떤 다른 병사는 흘러내리는 창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응급 치료소까지 온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입과 아래턱, 얼굴이 없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또한 우리는 과다 출혈로 죽지 않으려고 이빨로 팔의 정맥을 두 시간 동안이나 꽉 물고 있던 병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밤은 찾아오며, 유탄은 쉭쉭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죽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누워 있는 조그마한 황폐한 공간은 적의 우세한 화력에 맞서 무사히 보존된다. 몇 백 미터만 적의 수중에 넘어갔을 뿐이다. 그러나 1미터마다 한 명씩 죽어 간다.

 

7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끔찍하게 멸시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매우 만족스럽다. 참호 생활도 그렇듯이 뭐든지 습관 들이기 나름이 아니던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습관 들이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급히 잊어버리는 이유 같다. 그저께만 해도 우리는 포화 속에 있었는데, 오늘은 어리석은 짓을 하며 이 지역을 쏘다니다가, 내일은 다시 참호 속으로 돌아간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곳 싸움터에 있어야 하는 한, 전선의 나날은 그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치 돌멩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가라앉게 된다.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전선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우리는 나중에 탈진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공포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곰곰 생각하다가는 공포에 질려 죽고 만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고 싶다. 그러기에, 평화 시에는 장식적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타당치 않은 감정 때문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배 속에 있는 대로 집어넣고 마셔 대며 피워 댄다. 순간순간이 황량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어차피 언제 갈지 모르는 덧없는 인생이 아닌가.

우리가 공포에 등을 돌리면 전선의 공포는 가라앉는다. 우리는 심하고 노골적인 농담을 하면서 공포에 대처한다. 누가 죽으면 그가 엉덩이를 오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저항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전시에 우리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모든 것이 전후에는 다시 깨어난 다음 비로소 생과 사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판자벽에 기대고 있는 이 소녀는 우리에게 하나의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이런 아가씨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깜빡 잊고 있었다. […] 이것이 바로 평화란 것이다. 평화란 이런 것이 틀림없다고 우리는 흥분해서 느낀다.

 

몸을 그녀에게 밀착시키고 두 눈을 감는다. 이런 상태로 전쟁이며 공포며 비열함도 다 잊어버리고 젊고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깨어나고 싶다.

 

여기에 나의 어머니와 누나가 있고, 여기에 나의 나비 채집 상자가 있으며 마호가니 피아노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이곳에 와 있지 않다. 그 사이에는 베일이 쳐져 있으며 약간의 간격이 있다.

[…]

「파울, 전선에서 고생 많았지?

어머니, 그런 것을 물으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하겠어요! 어머니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결코 납득하지도 못할 거예요. 그리고 납득할 필요도 없어요. 나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뇨, 어머니, 뭐 별로 고생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나의 유일한 낙임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그들은 물론 내 말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 것이다. 이들은 내 말에 공감하지만 늘 절반밖에 공감하지 않는다. 이들의 나머지 절반은 생각이 다른 데 가 있다. 이들의 생각이 이렇게 분산되어 있으니, 아무도 온몸으로 나의 말에 공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 자신도 나의 의견을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간들이다. 나로서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경멸스럽기도 하다.

 

이 방이 말을 걸어야 하며, 이 방이 나를 낚아채서는 안고 가야 한다. 나는 이 방에 속한다는 사실을 느끼고자 하고, 내가 다시 전선에 나갈 때 다음 사실을 알도록 귀 기울이려고 한다. 즉 귀향의 물결이 일면 전쟁은 가라앉아서 익사해 버린다는 것을. 전쟁은 끝나며, 전쟁은 우리를 좀먹지도 못한다. 전쟁은 우리에 대해 단지 외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따름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 다오. 나의 마음을 받아들여 다오. 예전의 내 생명이자 아무런 걱정 없고 멋진 너에게 부탁하노니, 나를 다시 받아들여 다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느닷없이 어떤 끔찍한 미지의 감정이 내 마음속에 용솟음친다. 나는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으며,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내가 아무리 부탁하고 애를 써보아도 아무것도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해서 슬픈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 그리고 과거는 나를 외면하고 저버린다. 이와 동시에 나는 과거의 추억을 너무 되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한 명의 군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휴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흔들림이다. 휴가가 끝나면 만사가 훨씬 더 힘들어진다. 지금 벌써 이별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제발 말해 주렴. 진실을 말해 줘야 해. 네가 날 위로하려고 그렇게 말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그게 나를 더 괴롭힌다는 걸 모르니? 나는 모호한 말은 견딜 수 없어.

[…]

나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마구 두들겨 팬다 하더라도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녀가 가엾기는 하지만 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어쨌든 현실을 수긍해야 한다. 그녀가 진실을 알든 모르든 아들은 이미 죽고 없다.

 

「프랑스에 가면 여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 어머니, 어머니! 전 어머니에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왜 저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 수 없나요?

「싸움터에 나가서도 부디 조심해야 돼, 얘야.

, 어머니, 어머니! 왜 저는 어머니를 두 팔로 안고 죽으면 안 되나요? 이렇게 불쌍한 개들이 어디 있을까요!

「파울아, 매일 너를 위해 기도하마.

, 어머니, 어머니! 우리 일어나서 이 방에서 나가요. 여러 해 지나서 이러한 모든 고난이 끝나면 어머니와 나만의 세계로 돌아가요. 어머니!

 

전선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군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와 모든 일 때문에 그저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절망적이고 한도 끝도 없는 그런 모든 일들 때문에 말이다. 휴가를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8

 

인간이란 외로울 때는 자연을 관찰하고 사랑하게 되는가 보다.

 

이들은 더 인간적이다. 내 생각에 이 러시아 포로들은 이쪽의 우리 독일군보다 서로 간에 훨씬 더 우애가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는 어쩌면 단지 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와 아울러 이들에게는 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질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도 사는 게 아닌 것이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익명으로, 아무 잘못도 없이 갇혀 지내고 있다. 내가 이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면, 즉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무엇에 짓눌리는지를 알고 있다면 목표로 똘똘 뭉친 내 아픈 마음이 동정심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등 뒤에서 피조물의 고통, 삶의 끔찍한 우울과 인간들의 무자비함만을 느낄 뿐이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 조용한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들이 우리의 친구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어딘가의 탁자에서 어떤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평상시 같으면 세상의 멸시를 받고, 최고형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소름이 끼친다. 여기에서 더 이상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는 나락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은 그럴 시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슴에 간직한 채 묻어 두고 싶다. 내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이것이 내가 참호 속에서 생각해 낸 목표이자 위대한 것이고 일회적인 것이다. 모든 인간성이 이처럼 파탄 난 후에 내가 존재의 가능성으로 찾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이 공포의 세월을 보상할 만한 앞으로의 삶의 과제가 아닐까?

 

그래요,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래요. 가난한 사람들은 다 그렇죠. 이들은 감히 수술비 같은 것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걱정할 뿐이죠.

 

9

 

「우린 우리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온 거 있지. 그럼 대체 어느 쪽의 생각이 옳은 거야?

「양쪽 다 옳다고 할 수 있지.

 

「대체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심하게 모욕할 때 일어나지.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모욕한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난 여기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네.」 차덴이 대꾸한다. 「난 모욕받은 느낌이 들지 않거든.

 

「국가라, 국가라.」 차덴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능청스럽게 말한다.

「헌병이니 경찰이니 세금, 이런 게 너희들이 말하는 국가지. 국가가 그런 거라면 난 사양하겠어.

「맞아.」 카친스키가 말한다. 「차덴, 넌 처음으로 바른말을 했구나. 국가와 고향은 정말 다른 거야.

「하지만 그것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야.」 크로프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말한다. 「국가가 없는 고향은 생각할 수 없어.

 

우리들은 거의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 직공이나 하급 공무원이야. 그럼 무엇 때문에 프랑스의 열쇠공이나 구두 수선공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는 거니? 아니야, 모두 정부가 하는 일일 뿐이야. 난 군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인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었어.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전쟁이란 게 있는 거지?」 차덴이 묻는다.

카친스키는 어깨를 추스른다. 「전쟁으로 분명 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 거지.

 

「황제는 아직까지 전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 좀 위대한 황제라면 다 적어도 한 번은 전쟁을 하는 거야. 그래야 유명해지니까. 교과서를 한번 살펴봐라.

 

「내 생각에는 전쟁이란 오히려 일종의 열병인 것 같아.」 알베르트가 말한다. 「사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느닷없이 전쟁이 터지는 거야. 우린 전쟁을 바라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주장하지. 그런데도 세계의 절반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어.

 

갑자기 온몸에 알 수 없는 온기가 넘쳐흐른다. […]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강한 소리이고 더 안전하게 나를 보호해 준다. 그건 내 동료들의 목소리이다. 나는 이제 어둠 속에 혼자 떨고 있는 한 조각의 목숨이 아니다. 나는 이들의 일원이고 이들은 나에게 소속된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공포와 목숨을 지니고 있다

 

그 사나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목을 그르렁거리고 있다. 그 소리는 마치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숨결 하나하나가 외치는 소리나 천둥소리 같다. 하지만 고동치고 있는 것은 내 맥박뿐이다

 

그때 그 사나이가 눈을 번쩍 뜬다. 그는 내가 다가가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몸은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지만, 눈 속에는 도망을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인다. 일순 마치 몸을 이끌고 달아날 힘이 그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숨에 몇 백 킬로미터라도 내달릴 기세다. 몸은 조용히, 까딱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란 얼마나 서서히 죽어 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나이가 숨을 쉴 때마다 나의 심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분이다. 이 사람은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을 갖고 나를 찔러 댄다. 즉 나의 시간과 나의 생각을 마구 찔러 대는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안 있어 신음 소리보다 침묵이 더 견디기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으면 하고 생각한다.

 

오랜 침묵이 계속된다. 나는 말을 하고 싶어져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한 어쩌면 그를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내 가슴에 단단히 박혀 결코 빠져나가지 않을 못인 셈이다. 이름은 모든 것을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들일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나 내 눈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봐, 전우여, 오늘은 자네가 당했지만, 내일은 내가 당할 거야. 하지만 내가 용케 살아남게 되면 우리 둘을 망가뜨린 이것과 맞서 싸우겠네. 자네의 생명을 앗아 가고, 나의나의 생명도 앗아 가는 이것에 맞서서 말이네. 전우여, 자네에게 약속하겠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이네.

 

「너로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어차피 우리는 여기에 사람을 죽이려고 와 있는 거야!

 

10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가졌던 생각이 잠시라도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면, 나는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객관적으로 된다. 그러한 생각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되도록 가볍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 위해 온갖 기회를 이용한다.

 

그는 이미 자신의 발을 더는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그 다리로 여기까지 왔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불안감 때문에 죽자고 달려왔으리라. 우리의 두 다리가 달아났다 하더라도 무릎만 가지고 달려왔을 것이다.

 

「이곳 2층 복도에서는 아침마다 수녀들이 기도를 드려. 그들은 그것을 아침 예배라고 하지. 너희들도 들으라고 문을 열어 놓은 거야.

분명 뜻은 좋지만 우린 뼈와 두개골이 아플 뿐이다.

「부질없는 짓이야. 방금 잠이 들었을 때는 말이야.

 

가끔 적십자사의 보조 간호원이 오기도 한다. 이들은 착하지만 때때로 솜씨가 좀 서툴기도 하다. 이들은 다른 침대로 옮겨 누일 때 환자를 아프게 한다. 그러다가 정작 자신이 너무 놀라서 환자를 더욱 아프게 하기도 한다.

 

「너희들 수술받으면 안 돼! 말하자면 그건 그 늙은이의 학문적인 열정이야.

「지금은 자유로이 뛰어다닐 수 있지만 너희들은 그 늙은이의 메스에 걸려들게 되면 불구의 몸이 되고 말아. 그에게는 실험용 집토끼가 필요한 거야. 그 때문에 그에게는 전쟁이 절호의 기회인 셈이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신체 위에 아직 얼굴이 붙어 있고, 그 얼굴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게 정말 신통하다. 그런데 이것은 단 하나의 야전 병원, 단 하나의 병동일 뿐이다. 독일, 프랑스 및 러시아에는 각기 수십만 개의 야전 병원이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쓰이고, 행해지고, 생각된 모든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이와 같은 대대적이니 유혈 사태, 수십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이러한 감옥을 수천 년의 문화로도 막지 못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거짓되고 무의미한 것인가.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야전 병원이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여러 민족들이 적대 행위에 내몰리며, 말없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우둔하고도 유순하고 순진무구하게 서로를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무기와 말을 발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더욱 교묘하고도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수년 동안 우리가 해온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받은 최초의 직무였다. 우리가 삶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다. 죽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두 사람은 폴란드 말로 서로 대화를 나눈다. 부인은 약간 얼굴을 붉히고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우리는 선량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손으로 내젓는 동작을 해 보인다! 악마가 모든 선입견을 빼앗아 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선입견들은 다른 시절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엔 가구공 요한 레반도프스키, 총상을 입고 불구가 된 군인이 누워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부인이 있다. 언제 부인을 다시 볼지 누가 알겠는가. 남편은 아내를 안으려고 한다. 그리고 준비가 됐으니 남편을, 아내를 안아야 한다.

 

나의 벗 알베르트 크로프와 헤어지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군에 들어오면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11

 

전쟁이란 암이나 결핵, 유행성 감기나 이질처럼 죽음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전쟁의 경우에는 훨씬 더 자주, 더 다양한 모습으로, 더욱 잔혹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쉬고 있을 때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포화 속에서 누워 있을 때는 생각이 죽어 있다. 전쟁터는 바깥에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도 있다.

 

교양과 교육이 빚어내는 차이는 거의 사라졌고, 아예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군인이며, 그런 다음에야 특이하고도 부끄러운 방식으로 개별적 인간이 된다.

세상에는 위대한 형제애라는 것이 있다. 민요에서 보이는 동료애, 죄수들 간의 유대감,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 간의 절망적인 협조 정신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빛을 삶의 한 단계로 통합하는 것이 형제애이다.

 

죽음과의 경계선에 처한 이곳의 생활은 엄청 단순한 선을 그리고 있다. 이곳의 생활은 가장 필수 불가결한 것에 국한되고, 여타의 모든 것은 활기가 없는 잠 속에 빠져 있다. 그것이 우리의 원시성이자 우리의 구원이다.

 

삶에 대한 모든 표현은 오로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타의 모든 것은 불필요하게 힘을 낭비한다고 해서 배제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유일무이한 방식이다.

 

모든 다른 표현들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반면, 오직 삶만은 죽음의 위협에 맞서 계속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본능이라는 무기를 주기 위해 우리를 생각하는 동물로 만들었다. 명료하고 의식적인 사고를 할 때 우리를 덮치는 공포로부터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삶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둔탁하게 스며들었다.

 

적응이란 게 단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이때야말로 위험한 순간이다. 이때의 적응이란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얻으려고 가슴 졸여 긴장하는 것이다. […] 우리의 내적인 힘은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퇴보를 위해서 긴장하고 있다.

 

새로 도착한 아군 부대는 빈혈에다가 요양이 필요한 소년들이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이들은 배낭조차 짊어질 힘이 없지만 죽을 목숨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들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다가 무참히 사살당하고 만다.

 

한번은 목제 의족을 한 사나이가 앞에 나아갔는데도 그 군의관은 〈출정 가능〉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카친스키는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그런데 이때 그 사나이가 군의관한테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난 목제 의족을 하고 있지만 지금 싸움터에 나갔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으면 나무 머리를 달고 군의관이 되겠소!〉」 우리 모두는 이 답변을 듣고 마음 깊이 통쾌한 기분을 느낀다.

 

탱크는 조롱의 대상에서 중요한 무기로 바뀌었다. […]

공격하는 적의 제일선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탱크들은 기계들이다. 탱크의 쇠사슬을 두른 벨트들이 전쟁처럼 끝없이 굴러온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포탄 구덩이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가 멈추지 않고 다시 기어 올라오는 모습은 가차 없는 파괴 그 자체이다.

 

포탄, 독가스 연기, 탱크의 소함대가 짓밟고 갉아먹으며 목숨을 앗아 간다.

이질, 유행성 감기, 장티푸스가 목을 조르고 불태우며 목숨을 앗아 간다. 참호, 야전 병원, 공동묘지, 결국 우리가 갈 데라곤 이곳들밖에 없다.

 

1918년 이번 여름만큼 많은 피를 흘린 적도 없을 것이다. 나날은 금색과 푸른색 옷을 입은 천사처럼 왠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섬멸의 링 위를 맴돌고 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가 전쟁에서 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1918년 여름 - 휴전과 평화에 관한 거칠고 자극적인 풍문이 떠돈다. 그러한 소문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이전보다 전방으로 가는 것을 더 힘들게 한다!

 

1918년 여름 - 불타 버린 전쟁터 위를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

 

그는 정강이뼈에 총을 맞은 것이다. 카친스키는 절망적으로 부르짖으며 신음한다. 「지금 와서, 바로 지금 와서….

 

12

 

다들 평화와 휴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모두들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가 다시 무산된다면 이들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토록 평화에 대한 희망이 간절하다. 만약 이들의 희망을 앗아 간다면 이들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평화가 오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나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휴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생각은 여기서 막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나를 우세한 힘으로 끌고 가고 기다리는 것은 이런 감정들이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욕망이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며, 피인 동시에 살아남은 것에 대한 희열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인간이 되었다. 하여튼 우리는 커나가서, 몇몇은 적응해서 살아가고, 다른 몇몇은 순응해서 살아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이럭저럭 세월이 흘러가고, 결국 우리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피를 불안하게 만든 그 여린 마음, 불확실한 것, 당혹하게 하는 것, 앞으로 다가오는 것, 미래의 온갖 영상들, 꿈과 책에서 나오는 멜로디, 여성에 대한 도취와 예감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포화와 절망과 군대 위안소 속으로 사라졌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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