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3. 17. 15:48
런던 스케치

런던 스케치

도리스 레싱 저/서숙

『런던 스케치』는 영국에서는 1992년에 출간된 작품집으로 레싱의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발표한 런던과 관련된 짧은 스케치와 이야기들을 묶어놓은 것으로, 카페나 병원, 지하철 등 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런던 사람들의 삶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눈길로 그려낸 열여덟 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런던의 면모를 하나씩 관찰해 나가다 보면 독자들은 차가운 잿빛 도시만이 아닌, 맥박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도시 런던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런던의 오늘을 선명하게 묘사했으며,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듯 레싱은 현대인의 삶을 특징짓는 복잡한 인간 관계들을 능숙하게 해독해 내고 있다.

『런던 스케치』에 수록된 작품들은 원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크게 Story와 Sketch로 나누어볼 수 있다. Story들에는 현대인의 삶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러나 만만치 않은 무게를 지닌 문제들이 짤막한 단편 속에 강렬하게 녹아 있다. 작품의 또 다른 한 축이 되는 Sketch들에는 주로 카페나 병원, 공원, 지하철 등 일상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Story들이 등장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객관화된 시선으로 특정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레스 레싱은 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서머싯 몸 상(1956),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다. 20세기 영국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이다.

 

 

데비와 줄리

 

하늘색 코트를 입은 뚱뚱한 여자가 다시 거울 앞으로 갔다. 여자는 거울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두 뺨은 천연두를 앓는 것처럼 새빨갛고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달라붙어 있는데 사람들은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를 주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데비가 그녀를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다.

 

준비가 덜 된 듯했고 뭔가 모자란다고 느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닥치고 있는 일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느낄 뿐이었다.

 

갖고 싶은 건 가져, 값을 치르진 말고!” 그것이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그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다. 그러나 줄리는 더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데비의 아파트에 오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딘가로 떠나려 하거나 이제 막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집에 가는 것뿐이었다. 집에 가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는 확신했다.) 그녀를 쉽게 내쫓아 버릴 집.

 

그녀는 울고 있는 부모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불행한 얼굴은 상실감으로 차 있었다.

 

그녀는 내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을 거야! 심지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거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견디어왔지만 말이다. 이제 그들이 그녀로 인해 얼마나 슬퍼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기진맥진함에서 오는 투시력과 지난 몇 달 동안의 깨달음으로 인해서 자기 부모들이 서로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비는 그 두 사람의 궁합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음성을 높이는 일도 없었고 논쟁을 하지도 않았다. 찻잔과 식사와 커피잔과 비스킷으로 매일매일이 채워졌으며 그 일들은 언제나 취침 시간을 향해 정확하게 똑 같은 시간에 행해졌다. 그들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직 둘이서만 있었다. 마치 자신들을 소멸시킨 것 같았다.

 

줄리는 냉소적인 목쉰 웃음을 웃고 있었다. 불행한 웃음이었다. 그녀의 딸 로지가 이곳에 올 수 없었던 것은 줄리 자신이 이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난 로지를 런던에 있는 데비의 집으로 데리고 갈 거야. 줄리는 끝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데비가 받아들인 건 임신한 줄리였다. 그것이 치러진 대가였다.

 

참새들

 

불만에 찬 게으름.

 

그 여자의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는 성급한 태도로 과자를 먹어치우려고 벌써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항상 자기 앞에 벌어진 일은 무슨 일이든 금세 해치워버리고는 자신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장애아의 어머니

 

풍요하고 다양한 광기가 인류를 충동질했고 그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이 광기를 다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그 애를 극진히 위하고 사랑하는데 그 여자애는 가족에게 얻는 것보다 더 좋은 무엇을 특수학교에서 배울 것인가?

 

그 여인, 그 어머니는 어린 딸이 모자라는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여자는 하여간 그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다. , 그것은 놀라운 일, 기적이었다!

 

공원의 즐거움

 

울타리 안에는 야생 동물이 있다. 울타리 밖 자유로운 쪽으로는 인간과 개들이 있다.

 

개들은 철조망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다. 그들은 여기저기 코를 비비며 자신들과 그 짐승들의 관계 - 그 짐승들의 냄새는 태곳적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 가 정말로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봐, 잠깐만.” 그들의 본능이 그들에게 속삭인다. “개가 반드시 인간을 따라다닐 필요는 없어.”

 

그러나 여기 주인들이 온다. 여기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질서를 세우려고 달려온다. “빨리 이리 와, 본조! 그러프! 피피! 룰루! …… 나쁜 녀석! 빨리 와!” 집단은 무너지고 개들은 차분하게 주인에게 돌아간다.

 

지하철을 변호하며

 

이 거리는 늘 가난했다. 지금도, 평화와 풍요의 이 특별한 시대에도 가난하다.

 

스팀이 들어오는 괜찮은 대기실이 있기는 한데 창문이 하나 깨져 있고 늘 낙서가 되어 있다. 젊은이들은 부술 수 있는 것을 모두 부수면서 무슨 말을 하는가? 그 짓을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고 대개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타락하는 게 아니다. […] 그들에게는 체계적인 파괴에 대한 욕구가 있는 듯하다. 어떤 요구인지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이 여자는 런던의 총명한 젊은이 세대에 속하던 사람이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이십 년대였다. 말할 때 그녀는 정답게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지만 실은 외롭다. 그녀는 내가 또는 누구도 자기 말에 동조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면 낙원 같은 섬에서 살았던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녀와 다른 두 소녀는 차표를 밀어 넣고는 지상 세계로 통하는 터널을 따라 날아가지만 젊은이 셋은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뛰어든다. 그들의 젊음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어서 승무원들은 아예 상관 않기로 작정한다. 상관하는 것은 나비들을 때리는 것처럼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새 카페

 

멜로드라마란 우리에게 익숙한 일련의 감정적인 사건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그와 비슷한 일들을 본 적이 있다 해도 그것을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놀랄 만큼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드물게 부부에 대해 할 수 있는 말들은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그들은 온전한 하나가 둘로 나누어진 절반이었으며 일심동체였다.

 

넋이 나간 듯한 남자의 얼굴 위로 빠르게 감정들이 지나갔다. 후회도 있었다. 그러나 자의식에 찬, 폼으로 하는 듯한 그런 후회였다. 그는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의식이라는 생명선을 놓지 않을 것이었다.

 

진실의 대가

 

인생, 그건 신의 작은 대본이지.

 

그녀는 늙었어. 할머니가 되기로 작정을 한 거야. 난 아직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내 말은,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기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거지.

 

난 당신 남편과 지금도 예전에도 절대로 같이 잔 적이 없어요.” […] “, 그래요? 당신이 그랬어요? 우습군요. 난 잊어버렸어요……. 그러나 달다시피 난 신경 안 썼어요.” 여자는 신경 썼어. 그 여자는 그걸 잊기로 작정한 거야. 나를 믿었건 믿지 않았건 그녀는 지독하게 신경을 썼던 거고 나는 그런 그 여자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 왜냐하면 나는 무고했으니까.

 

폭풍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은 우스꽝스러운 욕구.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단순히 투덜거리는 노인네의 불평이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고 내가 그의 택시에 탄 뒤 계속 보고 듣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개 때문이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저녁은 집에서 먹는 게 나을 거요.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걸 식당에서 먹겠다는 거요? 놀러 다니고 돈을 쓰고 절대로 조용히 멈춰서 생각하는 법은 없고.” 그의 목소리는 상처받은 감정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음악가였어요. […] 여자 때문이었어요. […]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들이 모두 택시 운전사였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어요. 그녀를 위해 난 택시 운전사가 됐어요. 나는 런던을 전부 돌면서 런던에 대해 배우면서 몇 달을 보냈지요. 그게 어떤 건지 당신은 알아요?”

물론 알죠. 런던 택시 운전사는 면허증을 얻기 전에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지요. 누구나 알아요.”

그래요, 그건 진짜 시험이에요. 길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합니다. 몇 달 동안 나는 거기 매달렸지요. 몇 달이고. 오래전 일입니다. 지금 나는 다른 여자와 살아요.” […] “난 동물들이 좋아요. 우리보다 낫지요. 친절하고 우리처럼 잔인하지 않아요.”

 

그 여자

 

순진한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 토리당과 노동당이 따로 도착해서 그들만의 무리를 지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함께 도착하기도 하고 짝을 지어 같이 서 있기도 한다. 그들은 경계선 밖에 있으므로 구속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감시당하고 있지 않으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그곳에는 전체적으로 함께 섞이면서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흙구덩이

 

그녀의 관점이 아니라 그의 관점에서 방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여자에게는 그가 실제로 그녀가 방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했던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그가 모든 면에서 그녀와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여자에게로 가버렸다는 사실은 명백한 비판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굳이 겨울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면 메마르고 늙어버린 그의 얼굴에서 그녀가 이십오 년 전에 알고 있던 모습을 찾을 것임을, 그 또한 그녀에게서 과거의 그녀 모습을 찾을 것임을, 걱정스럽기는 해도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비밀스럽고도 억누를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옛 연인들이 늙어가며 만나는 방식이다.

 

연약함으로부터 해방되기란 쉽지 않았다. 이혼한 후 오년, 어느 파티에서 그가 그녀를 응시했다. […] “사라, 어찌 된 거요?” 여자는 그 말에 너무도 격분한 나머지 그에게 침을 뱉었다. […]

한동안 여자는 자신이 목격한 대체 어찌 된 거요?”가 뜻하는 거짓된 감상에 격분했다.

 

그의 선택이 잘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여자는 어쨌건 상관하지 않았다. 상관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은 예기치 못했던, 위대한 기적 같은 해방이었다. 그 모든 것, 그 고뇌와 고통, 그리고 방에 물면서 깨어 누워있는 것 등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들이었다! 그 무슨 엄청난 시간 낭비인가.

 

그 집은 사람들과 소음, 음악, 전화 울리는 소리, 커다란 목소리, 특히 로즈의 목소리와 노랫소리, 개 짖는 소리, 현관 벨소리, 청소기 소리로 요동쳤다. 가정생활.

 

전혀 다른 길이 없었소. 난 로즈에게 갈 수밖에 없었소.” 갑자기 그가 말했다. 그에게는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말을 해야만 했던 거다! 변명하기 위해서, 애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첫 아내인 그녀가 인정해야만 하는 절대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무엇을 설명해야 했던 거다. 그는 타당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녀로부터.

 

지금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냐. 어쩔 수 없었던 일을 후회할 수는 없어. 후회를 하면 그건 시간낭비야.”

 

새처럼 자유롭게 출발하리라……. 아니, 그 말은 틀렸다. 새들은 인간만큼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조직과 힘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의 속성을 보건대 인간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의 짧고 소중한 시간 동안만 자유로운지 모른다.

 

그는 여자에게 와서 몸을 굽혀 빰을 그녀의 빰에 대고 부드럽게 비볐다. 그것은 애인이 아닌 남편의 권리 주장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 여자는 그가 층계를 뛰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온갖 종류의 전화와 사건, 그 모든 것은 다 합리적이다. 그리고 표면에는 세련된 선의라는 본질이 있다. 제임스가 오늘 오후 그녀를 보러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표면에는…….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미지의 것을 가지고 온다. 인류의 먼 과거에 뿌리를 두고 미래를 향해 뻗어 있는 가능성과 기회들을 가지고 온다.

 

, 그녀를 떠나 로즈에게 갔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가지고 갔었는가! 그리고 지금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도망가. 여자는 자신을 무섭게 꾸짖고 있었다.) 남아서 끝을 보기란 얼마나 쉬운가.

끝을? 어째서 끝을?

 

사라는 전쟁 때 어린아이였다. […] “물론 그 모든 것이 어땠는지를 정말로 이해할 수는 없지. 영국 사람일 경우에 말이야. 다시 말해, 너의 일생이 안전했다면 말이야.” (그 말에는 계속 자신의 삶은 안전할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일상적인 삶의 바깥에 있는 공포였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는 그 모든 것을 거쳐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수용소에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말은 그 모든 것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접할 필요가 없는, 접할 수 없는 공포를 뜻했다.

 

그 여자는 세 번,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들의 귀여움을 받는, 어린애 같고 화를 잘 내는, 정부 같은 아내가 되었으며 그들은 그녀가 일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아내가 될 없다고 그녀를 버렸다.

 

제임스의 좋은 아내로서의 로즈는 하나의 조립물, 하나의 배역이었던 거다. 귀염받는 예쁜 어린아이 같은 정부가 하나의 배역이었던 것처럼.

 

로즈, 미친 듯이, 필사적으로, 겁이 나서, 제정신이 아닌 채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지금쯤 그녀는 그 제일 친한 친구가 갑자기 친구가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감당하기에 로즈는 너무 지나치므로, 너무 넘치므로.

 

로즈는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하게 숨 쉬듯이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거짓말은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인 그 끔찍한 장소로부터 구해 준 것이었다.

 

로즈, 사라가 아닌.” “그 여자, 내가 아닌.” 여자는, 느리고 육중한 대낮 같은 자아보다 훨씬 더 똑똑한 그녀의 그 부분(우리 모두의 그 부분)으로부터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

 

당신 말은, 헨리, 내 애인이 그의 전처 애인인 당신에게 그가 나를 못 만난다고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건가요?”

그런 말이지요, 그래요.”

흐느낌, 저주, 기도일 수도 있는 소리.

 

지난 밤에 난 헨리와 안젤라와 같이 있었어요. 그렇게 된 거지요.”

셋이서?”

아니, 사실은 넷이서. 내 아내, 그러니까 나의 전처 올가도 거기 있었어요.”

 

난 이 모든 상냥하고 밝은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요.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건강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어리석어요. 그런 태도는 우리 보두에게 고통일 뿐이에요.”

그건 하나의 관점일 뿐이지요, 말하자면.”

맙소사,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장난스런 태도가 난 정말 싫어요.”

모든 진실을 말이지요?”

 

왜 당신은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죠?” 그는 물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여자는 알았다.) 그가 처음으로 한 진실한 말이었다.

 

미숙함.” 여자는 연극하듯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나에요. 난 성숙하지 못해요.” […] “그러나 개수작들이죠.

[…]

그의 행동은…… 그는 확실히 미숙하죠. 왜 내가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는 듯 감춰야 하나요? 그런 게 성숙이라면, 그러면……”

 

질투라! 만일 당신이 내 충고를 원한다면, 그러면, 아니, 시작하지도 마세요. 질투가 끼어들지 않게 말이오. 난 알아요. 내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후회하니까.”

올가하고?”

그래요, 올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도. 질투한다는 건 나의 불행이지. 그리고 이제 난 질투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해요. 질투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요.”

 

안젤라와 조디가 마침내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아슬아슬한 (조디에겐 그렇게 보였다.) 주말을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코니와 제인은 어른들에 대항하여 자기들끼리 짝을 이루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코니와 제인이 비판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 비난은 그 애들 공통의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 나이 또래가 갖는 오만한 결벽성으로 정제된 것들이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지요.” 브리오니는 드디어 요약해서 말했다. “내가 나의 일, 스테인드 글라스 일을 했으면 일류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난 아직도 그 일을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난ㄴ 이곳의 모든 일이 좋았어요.”

좋다는 말이 또 나왔다.

 

저이들은 저렇게 말을 하지요. 말을 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같이 섹스를 할 수 없으니까.”

 

난 내일 아침 일찍 떠나려고 해요.”

[…]

그렇게 가차없는 통찰력으로 차 있다는 것이 언제나 이로운 건 아닐 겁니다.” […] “난 당신이 틀리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당신이 얻는 것이 뭡니까? 나와 함께 참아봐요. 나도 그 생각을 해봤어요 .당신이 날 생각하게 만들었죠. 내가 모든 세부적인 것들의 의미를 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질까요…….” […] “어쩌면 난 내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 채 결정을 내린 거겠죠……. 결국 나는 안젤라와 결혼할 것이고 우린 행복해질 겁니다…….” 말끝이 흐려졌다. 좋지 않은 순간이었다. 만일 헨리가 조디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러면 온갖 종류의 새로운 조정, 복잡한 일, 새로운 균형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떠오르고 있었다.

 

침묵. “당신들은 물론 모두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 있죠.”

당신네들은 너무도 자족하고 있어요! 너무도 만족스러워 해요!”

그는 여자를 보았다.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짧게, 적나라하게 이글거리는 이 여자의 불행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그들 모두와의 최상의 관계를 다 놓쳐버렸어요. 난 가장 좋은 친구가 없어요. 전 남편이라든가 아내였던 사람이라든가.” 그녀의 웃음은 비참한 비명 같았다.

헨리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요. 또 한 명의 좋은 친구겠죠.”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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