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4. 15. 13:35
페스트

페스트

알베르 까뮈

알베르 카뮈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작품들을 통해 존재의 부조리성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다뤘다. 그가 다섯 번째 발표한 작품에 해당하는 『페스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흑사병이라고도 하는 죽음의 질병 페스트에 관한 책이다. 작가는 페스트의 가공할 위력을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으로 불러들여 오랑 시민들의 모습을 아주 담담한 문체로 관찰해 나간다.

반항 한 번 못해 보고 맥없이 목숨을 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페스트 안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질서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이 내린 심판의 결과물이며 인간으로서 응당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고, 질병이 모든 죄를 덮어 버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 기뻐하는 이도 있다. 그들 곁에 의사 리유가 있다. 그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인 환자의 물집을 째서 고름을 뽑아내는 일을 수행할 뿐이다.
비참한 현실 앞에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선 리유를 빌어 이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하고 참담한 이 소설을 통해 카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

 

 

제1부

 

본 기록의 대상이 되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일반적인 여론에 따르면, 일상에서 좀 벗어난 그 사건들이 일어날 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랑은 언뜻 보기에도 평범한 도시이며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그저 그런 프랑스의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

 

어떤 도시 하나를 아는 데 손쉬운 방법이란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한데 반대로 오랑은,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도시, 이를테면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다. 따라서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관해서라면 구태여 정확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서로를 집어삼킬 듯 우리가 흔히 성행위라 부르는 것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들거나, 아니면 둘씩 짝을 지어 지루한 습관 속에 서로를 얽어맨다. 이 양극단 사이에 흔히 중간이란 없다. 이 역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사람들은 시간도 없고 생각도 짧아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도시가 지닌 보다 더 특이한 점은 죽음에 이르러 사람들이 처하게 되는 어려움이다. 하기야 어려움이란 적절한 표현이 아니고, 무언가 불편하다는 말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오랑에서는 극단적인 날씨, 이곳에서 사람들이 다루는 사업의 중요성, 보잘것없는 도시 환경, 짧은 석양, 오락거리들의 수준 등 모든 상황이 건강할 것을 요구한다. 아픈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자신이 정말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했던 점은, 다름 아니라 우리 도시와 이곳에서의 생활이 갖는 진부한 측면이다. 하지만 사람들이란 일단 습관을 붙이고 나면 곧 별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더욱이 우리 도시가 바로 이 습관을 조성하고 있는 이상, 모든 것이 최고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산다는 건 분명 그리 열정적이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 시민들은 적어도 무질서를 모르고 지낸다. 솔직하고 우호적이며 활동적인 우리 시민들은 여행객들에게 늘 합당한 평판을 불러일으킨다. 생기 없고 초목 없고 더군다나 영혼마저 없는 이 도시가 휴식을 주는 듯 보이고, 사람들은 결국 이곳에서 고이 잠든다.

 

사건의 추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울 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와는 반대로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기록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순들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일이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주민 전체의 생명과 직결되었으며, 따라서 그가 언급할 내용의 진위에 대해 수천의 증인들이 자신들의 가슴으로 판단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오로지 〈그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수위의 죽음은 불길한 조짐들로 가득했던 시기의 끝이자, 비교적 더 힘들고 초기의 놀라움이 서서히 공포로 뒤바뀐 또 다른 시기의 시작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 시민들 가운데 다른 부류의 사람들, 그러니까 수위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 역시 미셸 씨가 앞서 간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 그와 동시에 반성의 시작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의문: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 그 긴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것. 방법: 치과 대기실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낼 것, 일요일 오후를 집 베란다에서 보낼 것,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진행되는 강연을 들을 것, 가장 길고도 가장 불편한 철도 노선을 고른 다음 물론 서서 여행할 것, 공연 매표소에 줄을 서고 표는 절대 사지 말 것 등등.〉

 

호텔에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가 나에게 〈쥐들이 배에서 사라지면 말이죠…〉라며 이 모든 쥐들 때문에 뭔가 불행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선박의 경우에는 맞지만 도시의 경우에는 그런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불행이란 어떤 것인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불행이란 예측 불가하므로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리샤르의 대답이었다. 「도청 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할 겁니다. 한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전염의 위험이 있다는 겁니까?」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우려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리샤르는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지사에게 그 문제에 관해서 보고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자살의 동기에 관해 의견을 나눴는데, 그랑은 용어의 선택을 놓고 매우 소심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그들의 논쟁은 결국 〈남 모를 슬픔〉이라는 표현으로 일단락됐다.

[…]

코타르에게 그랑의 진술을 읽어 주고 나서 자신이 한 행동의 동기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경찰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남 모를 슬픔, 그거 참 좋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쥐들 때문에 그렇게 떠들어 대던 신문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들은 길에서 사람들은 자기 방에서 죽어 갔기 때문이다. 신문이란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나 관심을 둔다.

 

「그래요, 카스텔.」 그가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페스트가 틀림없어 보입니다.」

카스텔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어라 대답할지 알고 있겠지? 〈수년 전부터 온대 지방에서는 그것이 자취를 감췄습니다〉라고 말이야.」 나이 많은 의사가 말했다.

「자취를 감춘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긴 한가요?」 어깨를 으쓱하며 리유가 대답했다.

「그렇지, 파리에서도 고작 20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좋습니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 심하지 않기를 바라야죠. 하지만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재앙이란 사실 공동의 문제이지만, 일단 닥치면 사람들은 쉽사리 믿으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렇지만 전쟁이든 페스트든 사람들은 늘 속수무책이다. 의사 리유 역시 우리 시민들이 그랬듯 속수무책인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찌할 바 몰라 했던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무언지 모를 불안과 그래도 다 잘되리라는 믿음 사이에서 그가 어찌할 바 몰라 했던 것 역시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가지 않을 거야, 너무 바보 같잖아.〉 하기야 전쟁이란 바보 같기 이를 데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멈추지는 않는다. 바보 같은 짓은 언제나 끈질기고, 이는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만 했으며,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휴머니스트였다. 그들은 재앙을 믿지 않았다. 한데,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를 벗어난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흔히 재앙이란 비현실적인 것, 잠에서 깨면 사라지고 마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재앙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악몽이 점점 진행됨에 따라 사라지는 것은 사람들, 그것도 제일 첫 번째는 휴머니스트들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사를 계속했고, 여행 계획을 세웠으며, 개인적인 견해들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었다. 미래며, 여행이며, 토론들을 앗아 가버리는 페스트를 그들이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벌어진 이상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경험한 30여 차례에 걸친 끔찍한 페스트가 1억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음을 떠올렸다. 한데, 1억의 사상자들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이 일어나면 한 명의 사상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도무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한 명의 사상자란 그가 죽은 걸 우리가 보았을 때야 비로소 중요성을 가지며, 인류의 역사에 걸쳐 뿌려진 1억의 시체들은 그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하다

 

유리창 너머 저편으로부터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전차의 경적 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지며 순식간에 잔혹함과 고통을 약화시키는 듯했다. 오직 바다만이 생기 잃은 체스 판 모양의 집들 저 끝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과 결코 쉬지 않는 그 무엇이 이 세상에 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의사가 창문을 열자 도시의 소음이 갑자기 커졌다. 이웃 작업장으로부터 짧게 반복되는 기계톱 소리가 들려왔다. 리유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바로 그곳에, 매일매일의 노동에 확신이 있었다. 나머지는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무의미한 몸짓들일 뿐이었고, 멈출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조제프 그랑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

그는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든가, 자신의 몫을 요구한다는 전제하에 자신이 맡은 보잘것없는 일거리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대담함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을 〈계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유난히 어려워했다.

[…]

그는 우리 도시의 영향력 있는 사업가이기도 한 시장이 좋아하는 말들 중 하나가 지닌 적절함을 인정했는데, 시장은 결국(그는 자기 사고의 모든 중요성을 담은 〈결국〉이라는 이 단어를 강조하곤 했다), 그러니까 결국, 굶어 죽는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어쨌거나 조제프 그랑의 거의 금욕주의에 가까운 생활은 실제로 잡다한 근심들로부터 그를 결국 해방시켜 주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이 페스트임을 잘 알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당연히 무자비한 조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료들이 주춤하는 이유도 사실은 그 점에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페스트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사가 흥분하더니 어쨌든 그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것이 신중히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카스텔이 말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그것을 페스트라 부르건 아니면 열병이라 부르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여러분만이, 이 도시의 절반이 생명을 잃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페스트라는 여러분들의 공식적인 인정이 제게는 필요합니다.」 지사가 말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 병은 이 도시의 절반을 죽음에 몰아넣을 우려가 있습니다.」 리유가 말했다.

리샤르가 약간 흥분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실이란 우리의 동료가 페스트라 믿는다는 것입니다. 증상에 대한 그의 진단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고요.」

 

「선생의 생각을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선생은 이것이 바로 페스트라는 데 확신을 갖고 계신가요?」

「문제를 잘못 제기하신 겁니다. 이건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이란….」 지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페스트가 아니라 할지라도, 페스트 발생 시에 따르라고 정해진 예방 조치들이 어떻게든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제가 의견을 하나 가져야 한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랑이 놀란 인상을 보이자 코타르는 예술가라면 많은 일들을 해결할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왜 그렇죠?」 그랑이 물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모두 다 아는 거죠. 그에게는 더 많은 것들이 용납되거든요.」

 

오후에 리유는 카스텔과 의견을 나누었다. 혈청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리유가 물었다. 「그것들이 쓸모가 있을까요? 이번 세균은 이상하거든요.」

「오! 나는 생각이 다르네. 이놈의 괴물들이란 언제나 유별나거든. 하지만, 결국엔 같은 거지.」

「적어도 그렇다고 짐작하시는 거겠죠. 사실, 우리는 아는 게 전혀 없어요.」

「물론 난 그렇게 짐작하고 있네. 하지만 다들 마찬가지 아닌가.」

하루 종일 의사는 페스트를 생각할 때마다 매번 그를 괴롭히는 가벼운 현기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겁을 먹고 있음을 인정했다.

 

리유는 인간이란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음을 주지시켰다.

「아! 그게 아닙니다. 제가 하려던 말은 돌본답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전염병 얘길 하던데요. 그게 사실입니까, 선생님?」

「사람들이야 늘 이런저런 말들을 떠들어 대죠. 당연합니다.」 리유가 말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한 열 명 정도 죽으면, 이건 뭐 세상 다 끝난 듯한다니까요.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도대체 무엇이 필요할까?」

「지진입니다. 진짜 지진 말이에요.」

 

다음날 아침이면 10여 명의 환자들이 림프샘염으로 구부정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멍울을 절개해서 병세가 호전되는 경우는 오직 두서너 건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결국은 병원일 테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계절의 모든 것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불과 사흘 만에 열병 발병율은 네 배나 뛰어올랐다. 사망자가 열여섯에서 스물넷으로, 스물여덟로, 서른둘로 증가했다. 나흘째 되던 날, 당국은 어떤 유아원에 임시 병동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시한 농담으로 자신들의 불안을 감춰 오던 우리 시민들은 예전보다 더 풀이 죽어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사망자의 수가 또다시 30여 명에 육박하던 어느 날, 베르나르 리유는 〈그 사람들 겁이 났어요〉라고 말하며 도지사가 그에게 내미는 공문을 받아 보았다. 공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었다. 〈페스트 발병을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하시오.〉

 

 

제2부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도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처음 몇 주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모든 시민들의 감정이 되었고, 두려움과 함께 이 길고 긴 유배 기간 동안 가장 큰 고통이 되었다.

실제 도시로 통하는 성문들이 폐쇄되자 벌어진 일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당한 셈이었다.

 

전염병의 이렇듯 돌발적인 공격으로 인한 첫 번째 결과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마치 개인적 감정이란 없는 듯 행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결같이 절절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재고 불가능한 형편.

 

미래란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완전하고도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차지하는 존재, 여전히 그토록 가깝지만 어느새 이미 저 멀리로 사라진 그 존재의 추억을 뿌리치지도 못한 채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우선은 우리 자신의 고통이고 다음으로는 집에 없는 사람들, 즉 자식이나 아내 또는 연인으로 인한 고통이었다.

 

이처럼 페스트가 우리 시민들에게 첫 번째로 가져다준 것은 유배 생활이었다.

[…]

우리가 우리 안에 끊임없이 지니고 있던 그 공허함,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고 싶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 흐름을 재촉하고 싶다는 가당치 않은 욕망, 너무나도 또렷한 그 감정, 불붙은 채 날아가 버리는 화살과도 같은 그 기억, 그것은 분명 유배의 감정이었다.

 

특히 우리 모든 시민들은 계속되는 이별을 견뎌 내느라 간직해 오던 습관을 매우 빨리, 심지어 공공연히 버리고 말았다. […] 고통의 차원에 필적할 정도로 굳건히 자신들에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틴다 하더라도, 어느 날 이따금 우연히 만난 친구라든가 신문에 실린 기사 하나 또는 스치듯 지나가는 의심이나 혹은 불현듯 떠오르는 혜안이 그들로 하여금 전염병은 6개월 이상, 어쩌면 1년, 아니 그 이상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해방될 날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미래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도 않았으며, 늘 고개를 푹 숙인 채 지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수인들과 모든 망명자들의 깊은 고통, 다시 말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씹곤 하는 이 과거라는 것조차도 후회의 쓴맛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랑베르 기자나 그 밖의 사람들과 같은 경우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페스트로 인해 갑작스레 여행객 신세가 되어 버린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들의 고향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별의 고통이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겪고 있는 대대적인 유배 생활의 와중에서 그들은 가장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자신의 고유한 속성인 불안을 우리 모두는 물론이고 그들에게 야기시켰을 때, 그들은 공간에도 묶여 있는 처지라 페스트에 감염된 현재의 피난처와 잃어버린 그들의 고향 사이를 갈라놓는 벽에다 몸을 부딪치며 악착같이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랑이란 없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의 사랑이 보잘것없다는 사실 또한 담담한 태도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추억이란 더욱 까다로운 법이다. 그리고 극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외부로부터 다가와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이 불행이 우리에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부당한 고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괴롭히도록 했고,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한편이 되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질병이 갖는 수법의 하나이다.

 

절망이 그들을 공포로부터 구했으니, 그들의 불행에는 분명 좋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병으로 실려 가게 된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는 무슨 수를 써볼 겨를이 없었다. 알 수 없는 어떤 그림자와 나누던 기나긴 마음속의 대화로부터 끌려 나오자마자 그는 곧바로 흙이라는 가장 무거운 침묵 속에 내던져졌다. 그에게는 어떻게 해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

 

대중의 반응이란 즉각적이지 않았다. 실제로 페스트 3주째의 사상자가 302명이라는 발표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한편으로 본다면 모두가 페스트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닌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도시의 그 어느 누구도 평소 일주일에 사상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직은 조금 더 사랑하고, 돈을 버느라 일하고,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사랑하는 것도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 일만 하는 남편에, 가난에, 서서히 닫혀만 가는 미래에, 저녁 시간 식탁 주위를 맴도는 침묵에, 이런 세상에 열정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전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요!」

「어쩌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사람이 되신 겁니다.」

 

「아니지요.」 원망하듯 랑베르가 말했다. 「이해 못 하세요. 이성적인 말씀만 하실 뿐입니다. 그저 남 이야기 하듯이 추상적이시라고요.」

의사는 공화국 여신상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자신이 이성적인 말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말을 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을 말씀하시려는 거지요. 그런데 공익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선생님은 추상적인 관념 속에서 살고 계신 겁니다.〉 일주일간 사망자 수가 평균 5백 명에 달할 정도로 페스트가 맹렬히 세를 떨치는 매일매일 그가 병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정말로 추상적이었을까?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추상적인 것이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할 때, 바로 그 추상과 제대로 붙어야 한다. 다만 리유는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한 폭의 추상화처럼 단조로웠다.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리유 자신이었다. 그날 저녁 공화국의 여신상 아래서 랑베르가 사라져 버리고 없는 호텔 문을 계속 바라보다가 리유는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시작하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심함을 의식하며 그렇다는 것을 느꼈다.

 

추상적인 것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금 닮아야 한다. 하지만 랑베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는가? 랑베르에게 추상적인 것이란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리유는 어떤 의미에서 신문 기자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행복보다 더 강력한 것인 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기에, 따라서 그런 경우에만은 반드시 추상적인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리유는, 또한 무엇보다도 새로운 각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적 관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를 테면 우울한 투쟁과도 같은 것,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지배한 그 투쟁을 계속 추적할 수 있었다.

 

파늘루 신부는 […] 하루하루 공포와 죽어 가는 이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이 하늘을 향해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유일한 가르침을 외쳐 부르기를 그 어떤 희망보다도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맡아 하시리라는 것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말이죠, 선생님, 제 원고가 출판사의 손으로 넘어가는 날, 제 원고를 읽은 편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동료들에게 〈여러분, 훌륭한 작품에 경의를 표합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 그랑

 

「5월 달의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아한 모습으로 말을 타는 여인이 멋진 밤색 암말 위에 올라 불로뉴 숲의 꽃들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바로 선의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서 랑베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다. […] 그러나 그들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도 그와 다를 바가 없으며, 따라서 그의 경우가 그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특수하지 않다는 사실을 에둘러 환기시키곤 했다.

 

새벽 4시에 사람들은 보통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밤이 배신의 밤이었다 하더라도 모두들 잠을 잔다. 그렇다, 그 시각에 사람들은 잠을 자고 그 덕에 마음이 놓인다. 왜냐하면 불안한 영혼의 크나큰 욕망이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끝없이 소유하겠다는 것이거나, 혹여 사랑하는 이가 곁에 없다면, 재회의 순간에나 끝날 수 있을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으로 그 존재를 깊이 빠뜨려 버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꽃들도 이제는 봉오리가 아니라 활짝 핀 채 도착했고, 아침 장사가 끝나고 나면 먼지 덮인 인도 위로 꽃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기력을 소진해 버린 봄이 지천으로 활짝 핀 수천의 꽃들 속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다가 페스트와 무더위라는 두 배의 무게에 눌려 서서히 뭉개지려 한다는 걸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은 행복한 계절이 만들었던 구릿빛 광채를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페스트가 만든 태양은 모든 빛을 퇴색시키고, 그것이 무엇이건 기쁨이라는 것 자체를 쫓아 버렸다.

그것이 바로 전염병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 차라리 지진이라면! 한번 크게 무너지고 나면 더 이상 이런저런 말 할 필요가 없잖아요. 죽은 사람, 산 사람, 수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할 일은 다 한 것이니 말입니다. 한데 몹쓸 전염병이라뇨!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마음 한구석에 그걸 달고 사는 겝니다.

 

수첩에는 파늘루 신부의 설교도 적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논평과 함께였다. 〈나는 이와 같은 열렬한 교감을 이해한다. 재앙의 초기와 말기에 사람들은 언제나 화려한 웅변술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 법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어느새 습관을 이미 되찾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실에, 다시 말해 침묵에 익숙해지는 때야 말로 바로 불행한 시기다. 좀 더 두고 보자.〉

 

그(노인)가 유지해 온 은둔 생활에 타루가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그는, 종교에 따르면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처음 반은 상승이고 나머지 반은 하강인데, 하강의 시기에 있어서 인간의 하루하루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식으로 대충 설명했다. 더군다나 그는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설명이 끝난 뒤 신은 분명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만일 존재한다면 신부님들은 불필요한 존재들이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주정뱅이들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웃는다.〉

 

〈우리 식당은 끓는 물에 식기를 소독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그런 식의 광고를 그만두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손님들이 너무나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손님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

 

오랑 시민들이 이 전염병을 다른 병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던 초기에는 종교가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들은 쾌락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낮이 되면 사람들 얼굴에서 생생히 드러나는 불안이, 붉게 타오르는 먼지투성이 황혼 녘에는 일종의 격렬한 흥분과도 같은 것, 모든 사람들을 열의에 들뜨게 만드는 어설픈 자유로 용해된다.

 

「하느님을 믿으십니까?」

이번에도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이번 질문에 리유는 주저했다.

「아니요,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분명히 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질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됐죠.」

「선생님과 파늘루 신부의 다른 점이 바로 그 점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늘루 신부는 학자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죽어 가는 모습을 충분히 본 적이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내세우며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골 마을의 하급 신부라도 자신의 교구에서 종부 성사를 집전하고 임종하는 사람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어 봤다면 저처럼 생각할 겁니다. 그런 신부라면 재앙에서 훌륭한 점을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우선은 치료부터 하려 들겠죠.」

 

「선생은 하느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그렇게도 헌신적이십니까?」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문 채 의사는 이미 답을 했다고 말하며 만일 자신이 전지전능한 단 한 분의 신을 믿는다면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그만두고 신에게 그 일을 맡길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 신을 믿는다고 확신하는 파늘루 신부조차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신에게 완전히 내맡기진 않기 때문이며 바로 그 점에 있어서 적어도 리유 자신은 신이 만든 세상과 투쟁하며 진리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

「그러려면 대단한 자존심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제게는 필요한 만큼의 자존심이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는 모릅니다. 지금 현재로는 환자들이 있고 그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뒤에 그들은 반성할 테고 저 역시 그렇겠죠.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치료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보호해야 하고요. 그뿐인 거죠.」

 

「선생 같은 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질서란 죽음에 의해서 해결되니 만큼 어쩌면 신으로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죽음에 맞서 투쟁하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번 페스트가 선생님에게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네….」 리유가 말했다. 「패배의 연속이죠.」

 

「그런데, 타루 씨.」 그가 말했다. 「뭣 때문에 이런 일에 나서는 겁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따르고 싶은 도리 때문이겠죠.」

「어떤 도리 말인가요?」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악이란 거의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배움이 없는 선의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하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덜 무지하거나 더 무지하다. 따라서 우리가 미덕 또는 악덕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며, 가장 절망적인 악덕이란 전부 다 알고 있다고 믿고 그런 이유로 감히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라는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가능한 최대의 혜안이 없다면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투쟁을 해야 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든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든 경험하지 않도록 최대한 막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유일한 방법이란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것뿐이었다. 이 진실은 훌륭하지도 않았고, 단지 논리적 귀결일 뿐이었다.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 안으로 바깥세상이 들여보내는 격려와 응원을 라디오에서 듣거나 혹은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의사 리유의 생각은 적어도 그랬다. […] 그것은 오직 인간이 자신과 전 인류를 연결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상투적인 언어의 범위 안에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고통을 진실로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가혹한 무력감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선생과는 사실 상관없지요.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어쨌거나 단 하나 분명한 점은, 우리가 페스트와 함께 지내게 된 이후로 저는 이곳에서 기분이 아주 최고로 좋답니다.」

 

타루는 그(판사)에게 이번 사건들로 업무가 가중됐는지 물었다.

「천만에요. 우리가 흔히 일반법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새로운 조치들에 대한 중대한 위반 행위들을 심리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존의 법이 이만큼 준수되었던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 양반의 인품이 설교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다들 그래요.」 타루가 말했다. 「사람들은 단지 그럴 기회가 없는 거라고요.」

그는 웃으며 리유를 향해 한쪽 눈을 깜빡였다.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인생에서 제가 할 일이랍니다.」

 

그(랑베르)가 후일 리유에게 했던 말에 따르면, 바로 그 순간 구급차가 어둠을 가로지르며 도망치듯 저 멀리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자신과 아내를 갈라놓는 장벽에서 탈출구를 찾느라 온 힘을 다한 나머지 여태껏 아내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고 지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들이야 대책들을 이미 세워 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각자가 자기 일처럼 여겨야 합니다.」

코타르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타루를 바라보았다. 타루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전염병은 각자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각자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대 문은 모두에게 항상 열려 있다는 얘기였다.

[…]

「코타르 씨, 어째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 거죠?」

상대방은 불쾌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둥근 모자를 집어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경우라면 아직도 제 몸을 바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스페인 내전도 치렀으니까요.」

「이제는 저도 인간이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

「인간이란 고통도 오래 견디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행복도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자, 좀 보세요, 타루. 선생은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습니다.」

「그것 보세요. 한데 선생은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관념이 아닙니다, 랑베르.」

그러자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된 채 기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관념이라니까요, 어설픈 관념인 거죠. 그가 사랑에 등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는 더욱더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겁니다.」

 

「이 모든 일에 영웅주의가 거론될 여지는 없어요. 정직함의 문제죠. 비웃음을 살 수도 있는 생각입니다만,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정직입니다.」

 

「제가 짐작하건대, 두 분은 모두 이 와중에 잃을 것이 하나도 없으시겠죠. 착한 사람들 편에 있다는 건 훨씬 더 쉬운 거예요.」

 

 

제3부

 

8월 한복판에 이르자 사실상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자 개인의 운명이란 더 이상 없었고, 페스트라는 집단의 역사와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정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극심한 것은 이별과 유배의 감정이었으며, 거기에는 공포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겉으로나마 포위당한 사람들 간의 결속을 주민들에게 강요했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관계들을 산산조각 내고 개인들을 자신들만의 고독 속으로 내몰아 버렸다. 이 점은 혼란을 초래했다.

 

전염병 초기 장례식의 특징이란 신속함이었다. 모든 형식들이 간소화되었고 대개 의식은 생략되었다. […] 저녁 시간에 임종한 환자는 송장이 된 채 홀로 밤을 보냈으며 낮에 죽은 환자는 지체 없이 매장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략 15분 후면 그들은 이미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렇게 모든 일들은 최대한 신속하고도 위험이 벌어질 일들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했었다. 확신컨대 최소한 초기에는 유가족들이 갖는 인간적인 감정에 상처를 입혔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페스트가 유행하는 시기에 그런 감정을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결국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희생되었다.

 

예를 들어 용기를 주는 영웅이나 빛나는 무훈처럼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이야기라고는 지금 여기에 소개할 내용이 전혀 없어서 유감스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사실 재앙만큼이나 별 볼 일 없는 것도 없고, 엄청난 불행이란 그것이 계속된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따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페스트로 인한 끔찍한 하루하루는 모두 다 집어삼켜 버릴 듯 거침없는 기세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과도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밑에 있는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릴 듯 끊임없이 계속되는 제자리걸음과도 같았다.

 

당시의 극심한 고통, 가장 깊으며 동시에 가장 일반적인 고통은 이별이었으며, 페스트의 그 단계에서 이별의 고통에 대해 보다 더 상세히 새로운 기록을 하는 일 또한 양심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이별의 고통이 당시 비장함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민들, 적어도 이별로 가장 심한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그 상황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당시 그들에게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페스트의 두 번째 단계에서 그들은 기억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같은 말이긴 하지만, 그 얼굴에서 살집이 다 사라져 버린 나머지 마음속으로부터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형편없는 것인 만큼 더욱더 효과적인 페스트의 질서 속으로 그들은 들어간 셈이다. 도시의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숭고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 모두가 획일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 처음 몇 주간 엄청나게 북받쳐 오르는 흥분 상태가 지나고 나자 좌절감이 뒤를 이었는데, 이것을 체념이라고 본다면 잘못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잠정적 동의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우리 시민들은 순종적이었고, 흔히 말하듯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상황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불행을 공동체 모두의 불행과 어떻게든 떼어 놓고 생각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그런 혼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억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안에 자리를 잡아 갔다. 사실을 말하자면 모든 것이 그들에게 현재가 되었다. 그 점을 분명히 말해야 하는데, 사랑의 힘, 심지어 우정의 힘마저도 페스트가 모두에게서 앗아 가버렸던 것이다. 사랑이란 조금이라도 미래를 요구하는 법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에게는 순간들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형언할 길 없는 우울함이 그들을 사로잡고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려 한다는 경고 같은 것을 보내곤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페스트 초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지만 자신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자질구레하게 많은지에 놀랐고, 거기에서 전문가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만 흥미를 가질 뿐이었고, 일반적인 견해 말고 다른 생각이란 없었으며, 심지어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

 

이미 잠을 자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고, 그 모든 시간들은 길고 긴 수면이었다. 도시는 눈뜬 채 잠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얼핏 아문 듯 보이던 상처가 밤이 되자 갑자기 다시 쓰라려 오는 그런 드문 순간들에야 그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운명에서 벗어났다. […] 아침이 오자 그들은 재앙으로, 달리 말하자면 판에 박힌 듯한 일상으로 복귀했다.

 

 

제4부

 

「인정머리라고는 도무지 없군요.」 어느 날 누가 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물론 그에게는 인정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살기 위해 태어났던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도 매일 스물네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그에게는 그저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의 인정밖에는 없었다. 고작 그 정도의 인정이 어떻게 감히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그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극도의 피로가 만든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 사건이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이런 무관심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던 부주의에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은 반드시 필수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또 그들의 여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이는 모든 조처들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 바로 거기에 진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페스트에 맞선 투쟁 그 자체가 그들을 페스트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요행수를 바라며 도박을 하고 있었던 셈인데, 요행이란 그 누구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코타르)가 원치 않는 단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있는 것이다. 혼자서 옥살이를 하느니 모두와 함께 포위당해 있는 편이 그에게는 낫다.

[…]

《이것 보세요, 제가 장담합니다. 사람들을 함께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그들에게 페스트를 갖다 주는 겁니다. 선생 주위를 좀 보시라니까요.》

[…]

결국 페스트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페스트는 고독하지만 고독을 원치 않는 사람과 공범을 이룬다. 왜냐하면 코타르는 겉보기에도 분명 공범자이고, 심지어 기꺼이 즐기는 공범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루는 코타르의 태도에 못된 구석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전 이미 다 겪어 봐서 잘 안다고요〉라는 코타르의 말에는 승리감보다 불행이 더 많이 묻어났다. 타루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 생각에 그자는 위로는 하늘에, 옆으로는 도시 성곽에 갇혀 버린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다.>

 

제가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체포되고 나면 나는 이런 걸 할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체포는 하나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고요. 반면에 페스트는…. 제 생각을 알고 싶으신가요? 저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만히 놔두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거라고요. 물론, 그냥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닙니다.

[…]

실제로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니다. 그는 오랑 시민들이 보여 주는 모순을 가감 없이 평가하고 있다.

 

페스트가 부지불식간에 그들 어깨에 손을 올려놓거나, 어쩌면 사람들이 여전히 무사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바로 그 순간 그렇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공포의 와중에서, 물론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먼저 맛보았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이 갖는 잔인함을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함께 느끼지는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 아직은 페스트로 죽지 않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매일 무너져 내리기 직전에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공포 속에서 산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포를 맛볼 차례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고도 있다. […] 공포는, 그가 오롯이 혼자서 겪던 때와 비교해서 감당하기가 조금은 수월해 보이는 것이다.

 

타루는 자신도 기쁘며, 몸조심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타루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나이쯤 되면 사람들은 결국 진심으로 말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거든요.」

 

「의사 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남아 있고 싶어요.」

[…]

랑베르는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만일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자신이 남겨 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단호한 어조로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에 부끄러울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사랑에 등을 돌릴 만큼 가치 있는 건 없어요. 한데 저 역시 그렇게 했지요, 영문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

「병도 치료하면서 동시에 그것까지 알 수는 없어요. 그러니 되도록 빨리 병부터 치료합시다. 그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저는 지금 막 은총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

「그게 바로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겁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군요. 우리는 신을 모욕하는 말이건 신에게 올리는 기도건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그 무언가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

「선생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 겁니다.」

[…]

「인간의 구원이란 제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이에요. 전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건 인간의 건강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미신적인 행동들로 일상의 종교 활동을 대신하고 있었다.

[…]

한 예로 우리 시민들이 예언을 남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봄에는 이제나저제나 열병이 곧 끝나기를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전염병이 얼마나 지속될는지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기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감에 따라 이 불행이 정말로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염병 종식이 앞날에 대한 모든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점성가들이나 성당의 성인들에게서 유래한 각종 예언들이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퍼져 나갔다.

 

파늘루의 설교 […]

더 이상한 것은 그가 〈여러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제는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가장 혹독한 시련은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은혜가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기독교인이 당면한 문제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은혜이며,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 우리는 페스트라는 장벽 아래 있는 것이며, 우리가 은혜를 찾아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장벽들이 만든 죽음의 그림자에서다. […] 「형제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전부 다 믿거나 전부 다 부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감히 모든 것을 부정하겠습니까?

 

기독교인은 신의 뜻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내맡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해하지만,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부여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한가운데로,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선택을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의 고통은 우리 모두가 매일 맛보아야만 하는 쓰디쓴 빵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정신적 굶주림으로 죽고 말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의 사랑은 까다로운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고, 나라는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만이 아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지울 수 있으며, 어쨌든 오로지 그 사랑만이 그것을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것을 그저 원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자, 인간이 보기에는 잔인한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단호한 믿음이며, 이제 우리는 이것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만일 신부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겁니다.」

 

파늘루의 연설을 전해 들은 타루는 전쟁 통에 두 눈이 빠져 버린 젊은이의 얼굴을 보고 나서 신앙을 잃은 어떤 신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파늘루 말이 맞아요.」 타루가 말했다. 「죄 없는 자가 두 눈을 잃었을 때, 기독교 신자라면 신앙을 잃거나 혹은 두 눈을 잃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파늘루는 신앙을 잃고 싶지 않은 거고, 그는 끝까지 갈 겁니다. 그가 하려던 말이 바로 이거죠.」

 

「제가 신부님 곁에 있겠습니다.」 그가 신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신부가 말했다. 「한데, 성직자들에겐 친구가 없지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겼으니까요.」

 

가난한 가정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했고, 반면에 부유한 집안에서는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페스트가 자신의 일에 쏟아붓는 무소불위의 공정함으로 인해서 우리 시민들에게 평등 의식을 고취시켰을 수도 있었겠으나, 이와는 반대로 극단적이고 만성화된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사람들 마음속에 부당하다는 감정만을 더욱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물론 죽음이라는 빈틈없는 평등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이 잊힌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알던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들을 잊어버렸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을 수용소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단계를 밟느라 고생을 해야 했기에 마찬가지로 그들을 잊어버렸다. 수용소에서 끄집어내는 일에 급급하다 보니 정작 끄집어낼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결국 사람들은 설령 불행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불행에 처한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집안일이라든지 날아다니는 파리나 때마다 먹는 식사며 심지어 가려움 따위까지, 이를테면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을 돌리지 않고 매 순간 그것 하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들이나 어딘지 가려운 경우는 언제든 있다. 그래서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젊었을 때 난 내게 죄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달리 말하자면 생각이란 것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살았던 거죠. […]

그러던 어느 날 생각을 곰곰이 해보기 시작했답니다. 이제는….

[…]

인간의 수면은 페스트 환자들 목숨보다 신성하니까요. 선량한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위선적인 취미가 필요할 텐데, 그런 취미란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죠. 하지만 저는 말이죠, 그때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위선적인 취미가 제게 남아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던 거예요. 달리 말하자면,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지냈던 겁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다 바쳐 페스트와 투쟁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아 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수천 명의 죽음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의했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런 죽음을 야기했던 행동들과 원칙들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그 죽음을 부추겼다는 것을 알았어요. […]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였던 거죠.

 

페스트균에 전염된 그 더러운 입들이 사슬에 매여 있는 한 사람에게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내리고, 이어서 그자가 두 눈을 뜬 채 살해당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수많은 고뇌의 밤들을 보내도록 한 뒤에, 실제로 그가 죽도록 모든 절차들을 조정하는 그런 더러운 경험이었던 겁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더 이상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희망하도록 한다는 것,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편안한 죽음이라도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시름을 덜어 주며, 인간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가급적 나쁜 짓을 덜 끼치며, 심지어는 이따금씩이라도 약간의 선을 행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상관없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선생님 편에서 어떻게든 이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 말고 이번 전염병에서 내가 배운 것이라고는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것은 한층 더 골치 아픈 일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피곤한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데, 그 이유야 오늘날 모두들 조금씩은 페스트 환자니까요.

 

나는 정도를 걷기 위해 분명히 말하고 행동할 결심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약 내가 재앙 그 자체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의 동조자는 아닙니다. 나는 죄 없는 살인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보시다시피 이건 그리 대단한 야심이 아닙니다.

 

「결국, 제 관심사는 말이죠….」 타루가 솔직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은 믿지 않으면서 말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신 없이 성인일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오늘날 제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많은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스러움 따위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정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십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죠.」 리유가 말했다.

「해수욕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 성인이 될 사람에게 그 정도라면 품위 있는 즐거움입니다.」

 

다시 옷을 입고 나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났다. […] 리유는 타루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전염병이 자신들을 잊고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또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 또다시 시작해야 했고 페스트는 그 누구든 오랜 시간 잊는 법이 없었다.

 

아직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란 너무 기다리다 보면 결국엔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는 법이라, 우리 도시 전체는 미래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성서의 축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옥에서의 명절과도 같았다. […]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너무나 늙고 기력을 다해 버린 희망, 사람들로 하여금 그냥 그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드는 희망, 그저 바보같이 끈질기기만 할 뿐인 그런 희망밖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5부

 

모두의 기쁨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했던 가족들은 이론의 여지 없이 바로 그 순간 병원에서 페스트와 대결하고 있는 환자를 둔 가족들, 그래서 격리 수용소나 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재앙이 끝났듯이 자신들에게도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희망을 비상용으로 간직해 두려 했고, 권리를 실제로 갖기 전까지 꺼내 쓰지 않으려 버텼다. 따라서 모두가 기쁨에 환호하는 가운데 빈사의 고통과 환희의 중간 지점에서 이렇듯 막연한 기다림, 이렇듯 말없이 지새우는 밤이란 그들에게 더욱더 잔인한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성스러움의 근사치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겸손하고 자애로운 악마주의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데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영화관 최신작들이죠.」 타루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란 가능한 모든 의지를 발휘한다고 할지라도 전부 다 잊을 수는 없기에 페스트는 적어도 사람들 마음속에 상흔을 남길 것이라 생각한다.

 

「리유!」 마침내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나에게 사실 그대로 말해 줘야 합니다. 내게는 그것이 필요해요.」

「약속하죠.」

상대방의 큼직한 얼굴이 미소로 살짝 일그러졌다.

「고맙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싸울 겁니다. 하지만 지는 싸움이라면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리유가 몸을 숙여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럴 수는 없지요. 성인이 되려면 살아야지요. 맞서 싸우세요.」

 

리유는 어머니의 생각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치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사랑이란 그 표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머니와 그는 언제나 말없이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녀는 ─ 아니면 그는 ─ 살아 있는 내내 자신의 애정을 한 치도 드러내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타루 바로 곁에 살았음에도 우정의 시간을 실제로 갖지도 못한 채 그날 저녁 타루는 그렇게 죽어 버렸다. 타루는 스스로 말했듯이 싸움에서 진 것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리유가 이긴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단지 페스트를 경험했고 추억한다는 사실을, 우정을 경험했고 추억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정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추억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와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과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타루가 말한 바 있었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타루는 고통과 모순 속에서 살면서 희망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가 신성함을 추구했고, 인간들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 생명의 온기와 죽음의 모습, 거기에 바로 배움이 있었다.

 

죽음 앞에서 실현되지 못했던 평등이 해방의 환희 속에서 단 몇 시간이나마 이루어지고 있었다. […] 진정한 해방을 알리는 것은 네거리마다 나와 있는 악단들이라기보다 바로 그들이었다. 왜냐하면 말도 없이 기쁨에 취해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은 행복을 누리는 승리감과 행복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은 채 난리법석의 한가운데에서 페스트가 이제 완전히 물러났고 공포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랑베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사람을 망설임 없이 되찾을 수 있었다. 적어도 얼마간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절실히 원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래서 가끔은 손에 쥘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애정임을 이제 그들은 알게 된 것이다.

반대로 인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에 호소하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타루는 스스로도 말한 바 있었던 불가능한 그 평화에 도달한 듯 보였지만, 죽음 안에서, 그러니까 평화가 그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어져 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

 

그래서 리유는 그랑과 코타르가 살고 있는 거리로 접어들면서 인간만으로,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으나 경이로운 사랑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에게는 이따금씩 기쁨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랑은 […] 자신이 잔에게 편지를 썼고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전 그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도 했다. 〈제가 말이죠, 형용사란 형용사는 죄다 없애 버렸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한데 동료 되시는 분은 말입니다.」

「죽었습니다.」

「이런!」 노인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소리쳤다.

「페스트였어요.」 리유가 덧붙였다.

「그랬군요.」 잠시 후 노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듯 한마디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일 좋은 사람들이 늘 먼저 떠나 버립디다. 인생이란 그런 거죠. 한데 말이죠, 그 양반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

「아무튼 저는 그 친구분이 좋았습니다. 뭐, 그냥 그랬다는 겁니다. 남들은 이렇게 말하죠. 〈페스트야. 우리가 페스트를 견뎌 냈다니까.〉 자칫하다간 이건 뭐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겁니다. 한데 말입니다, 페스트란 대체 무언가요? 인생인 거죠, 바로 그거죠, 뭐.」

 

의사 리유는 침묵하는 사람들 무리에 끼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페스트에 희생당한 사람들 편에서 증언하기 위해서,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 하나만이라도 남겨 두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재앙 한가운데서 배우는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보다 감동할 점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끝을 맺으려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기록이 완전한 승리의 기록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로부터 들려오는 환희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이 기쁨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듯 기뻐하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책에서 알 수 있듯이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지도 않으며, 가구들이며 이불이며 오래된 행주 같은 것들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잠든 채 지내거나 침실, 지하 창고, 트렁크, 손수건 심지어 쓸데없는 서류들 나부랭이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대를 기다리다가,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밑줄긋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