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저/서창렬

『모스크바의 신사』는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고전 문학을 연상시키는 작풍과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 매력 있는 등장인물을 잘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작 『우아한 연인Rules of Civility』에 이어 큰 성공을 이루었다. 토울스는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람에 대한 믿음, 이야기꾼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에이모 토울스는 암울한 시대를 재치 있게 풍자하고,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이라는 한 개인의 소중한 하루를 통해 시대의 숨은 낭만을 밖으로 꺼내놓는다.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에 정통한 백작답게 그의 하루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여 만들어낸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서사가 지나치기 쉬운 시대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발견해 세심하게 조명한다. 백작의 다락방 서가를 가득 채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디킨스의 책은 그의 우아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고급 와인과 요리, 발레와 영화 이야기는 시절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는 호텔 안 평범한 소동이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고, 스치듯 지나가는 인물과 물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하나의 큰 이야기를 완성한다. 아름다운 묘사, 한 편의 미스터리를 읽는 것 같은 정교한 구성, 시대를 뛰어넘은 명작들의 향연이 독자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물한다....

 

 

나는 아주 잘 기억한다  

 

그것이 걸어서 손님처럼 찾아와

야생 고양이 같은 기운찬 가락으로

잠시 우리 곁에 머물렀던 때를.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목적은 어디 있는가?  

 

많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나는 눈길을 피한 채 배를 깎으며

이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고개 숙여 잘 자라고 말한 다음

테라스 문을 지나

또 하나의 온화한 봄날의

해사하게 아름다운 봄빛 속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나도 이건 안다:  

 

페트롭스카야 광장의 가을 단풍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아테나움 납골당 유골함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멋진 중국풍의 파란색 탑 안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브론스키의 안장 주머니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소네트 30, 1연에서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스물일곱 붉은……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1~19행)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1913

 

 

비신스키 직업은?

로스토프 직업을 갖는 것은 신사의 일이 아닙니다.

비신스키 좋아요. 그럼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죠?

로스토프 식사와 토론. 독서와 사색. 일상적인 잡다한 일들.

비신스키 시도 쓰죠?

로스토프 나는 깃펜으로 펜싱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신스키 (작은 책을 들고) 당신이 1913년에 발표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이 긴 시를 쓴 사람인가요?

로스토프 내가 썼다고들 하더군요.

 

로스토프 모든 시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이그나토프 로스토프 백작, 이 방에 있는 여러 사람이 당신은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서 놀라고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소.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놀랍지 않소. 매력은 유한계급의 마지막 야망이라는 걸 역사가 보여주었으니까. 내가 놀랍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의 시를 쓴 사람이 이토록 눈에 띄게 목적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이오.

로스토프 사나이의 목적은 오직 신에게만 알려져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이그나토프 그건 그렇소. 그 생각이 당신에겐 정말 편리했겠군요.

 

이그나토프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단신은 총살될 테니까. 다음 사건.

 

 

1

 

1922

 

대사

 

트렁크가 위층으로 옮겨지고 나자 백작은 마지막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와, 엄청 무거운걸.” 한 사환이 다른 사환에게 말했다.

“왕은 성으로 힘을 돋우고,” 백작이 말했다. “신사는 책상으로 힘을 돋우니까.”

 

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을 때 백작은 체커 게임에서 이웃집 아이에게 철저히 졌다. 눈물이 나고 욕설이 튀어나왔다. 체커 도구를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 어린 백작이 비참한 마음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있을 때 할머니가 방으로 찾아왔다. 침대 발치에 앉은 할머니는 얼마간 동정심을 나타냈다. “지는 것은 정말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지.” 할머니가 말했다. “게다가 그 오볼렌스키 가문 아이는 말썽꾸러기니까. 그런데 사샤, 왜 그 아이가 기분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려는 거니?”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나 가족과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 우리는 끊임없이 가까운 사람의 어깨를 붙잡고서 그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고, 머잖아 그로부터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작별을 고하는 법은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물건과 작별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배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친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극성스럽게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

 

“친애하는 친구들.” 백작이 말했다. “여러분은 당연히 오늘 일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면담을 위해 크렘린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거기서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현 정권의 당국자 몇 사람이 나는 귀족으로 태어난 죄로 여생을 한 장소에서 보내는 형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이 호텔입니다.”

 

그는 이것이 단지 그가 가까스로 풀려났다는 소식만으로 만들어진 자리라고 생각할 만큼 안이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표단이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해 포츠머스 조약에 서명한 것이 1905년 9월이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강화 조약 이후 17년 동안에―한 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러시아는 세계대전과 내전, 두 번의 기근, 그리고 이른바 적색 테러를 겪었다. 간단히 말해서 러시아는 격변기를 거쳐왔고, 그런 탓에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향이 좌든 우든, 적색이든 백색이든, 자신의 개인적 처지가 나아졌든 나빠졌든, 지금은 분명 국가의 건강을 위해 건배할 시간이었다.

 

대공은 젊은 백작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고, 역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

 

해안으로 떠밀려 온 영국 국교도

 

그리고 책은? 책은 전부 다! 그는 그렇게 허세스럽게 말했었다. 그러나 아침의 햇빛 속에서 생각하니 그가 그렇게 지시한 것은 분별 있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사환들을 감동시키고 보안대 병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는 유치한 충동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들은 백작의 취향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겠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라고 선언했을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백작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고독을 그에게 제공하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우리에게 원한을 품어 언제든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굴복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동정과 연민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법으로―대담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때로는 같은 효과를 낸다…….

 

“당신은 어떤…… 돈을 융통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나 보군요?” 그리스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이 든 그리스인은 이 얘기를 하면서 돈이라는 단어 앞에서 아주 잠깐 말을 멈추었다. 백작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잠깐 말을 멈춘 것은 완벽한 기교였다. 수십 년에 걸쳐 섬세하고 미묘한 대화에 숙달된 사람의 기교였다. 그렇게 말을 멈춤으로써 그는 대화 상대에게 서로의 상대적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전혀 내비치지 않은 채 동정의 요소를 표출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백작님의 시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백작은 고맙다는 뜻으로 빙긋 미소 지었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콘스탄틴, 시를 쓰던 나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로스토프 백작님, 시인으로서 백작님의 시절이 지나갔다고 한다면 유감스러운 사람은 우리입니다.”   

 

모든 시기는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 혼란의 시대라 할지라도…….

 

요리사의 창의력을 진정으로 시험하려면 오히려 궁핍한 시기에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보다 궁핍을 더 잘 제공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백작에게는 복수의 기질이 없었다. 장대한 작품을 구상할 상상력도 없었다.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꿈을 꿀 정도의 공상적인 자아도 없는 게 확실했다. 그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으로서 백작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인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억류자일 터였다. 그것은 바로 해안으로 떠밀려온 영국 국교도였다. 배가 난파되어 ‘절망의 섬’에서 살게 된 로빈슨 크루소처럼 백작은 실질적인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유지해나가야 하리라.

 

예약

 

낮 12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유럽에서. 온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작은 전날 책상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약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으로서는 사전이나 성경―그런 책들은 필요한 내용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마음먹고 정독하는 용도의 책이지 ‘읽는’ 책이 아니다―에 버금가는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백작이 몽테뉴에게 따져 물었다.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다음 가게는 파티마 페데로바의 꽃 가게였다. 자연스레 시대의 피해자가 되고 만 파티마의 가게 선반은 썰렁하게 비었고, 창문들에는 1920년 이래로 종이가 도배되어 있었다. […] 요컨대 파티마는 꽃의 향기, 색깔, 목적 등을 벌보다도 더 잘 알았다.

글쎄, 파티마 꽃 가게는 폐업했는지도 몰라, 백작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파리의 꽃집들도 로베스피에르 ‘통치’ 시기에 문을 닫았었지만, 지금 그 도시에는 꽃들이 넘치고 있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메트로폴에도 꽃이 풍성해지는 때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백작은 거울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처럼 자신의 모습을 눈여겨 살핀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오랫동안 백작은 신사란 불신감을 가지고 거울을 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거울은 자기 발견의 도구이기보다는 자기기만의 도구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젊은 미인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각도에 맞추려고 30도쯤 몸을 돌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는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이후로 모든 세상이 그녀를 오직 그 각도에서만 바라볼 거라는 듯이!)

 

그래, 백작은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사실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은하수도 돈다. 더 큰 바퀴 속의 작은 바퀴인 셈이다. 천체는 돌면서 시계의 작은 망치가 내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를 낸다. 그 천체의 종소리가 울리면 아마 거울은 불현듯 자신의 보다 더 진정한 목적에 맞게 일할 것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아는 사이

 

피아차는 […] 모든 부류의 러시아인들이 와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우연히 친구를 만나고, 뜻하지 않게 논쟁에 끼어들고, 일없이 시간을 때우는 곳이었다. 거대한 유리 천장 아래에 자리 잡고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일 없이 그대로 앉아 마음껏 감탄하고 분개하고 의심하고 웃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이는 어린이와 개 특유의, 예의에 대한 관념이 없는 호기심으로 백작을 살펴보고 있었다.

 

“공주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보통의 젊은 아가씨들처럼.” 백작이 대답했다.

[…]

“아빠가 얘기하길, 공주는 패배자들이 군림하던 시대의 타락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래요.”

 

“왜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모든 국민들보다 더 열렬히, 전폭적으로 결투를 수용했을까?” 그가 계단통에 대고 수사적으로 물었다.

일부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걸 야만성의 부산물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러시아의 길고 무자비한 겨울, 익숙한 기근, 정의에 대한 거친 감각 등등을 고려하면 상류층 사람들이 최종적인 폭력 행위를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받아들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투가 러시아 신사들 사이에 만연했던 것은 다만 장려한 것, 숭고한 것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이라는 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백작의 견해였다.

 

사실, 결투는 관련한 신사들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새벽에 외딴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잿더미 뒤쪽이나 폐품 하치장에서 결투가 벌어졌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결투는 눈 덮인 자작나무 사이 빈터에서, 또는 구불구불한 강의 강둑에서 벌어졌다. 또는 나무에 핀 꽃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어느 가문 사유지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졌다……. 요컨대 결투는 오페라 2막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배경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어떤 행위든 간에 배경이 장려하고 대의가 숭고하기만 하다면 지지자가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투 장소가 더 아름다워지고 권총이 더 멋있게 만들어지면서 잘난 남자들은 점점 더 사소하고 하찮은 모욕에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형국이 되었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말해서 새 세대는 이전 세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 고마움의 빚을 지고 있단다. 우리의 나이 많은 분들이 밭을 경작하고 전쟁에 나가 싸웠어. 그분들이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키고, 일반적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한 거야. 그러한 노력을 해왔으니, 설령 그 노력이 변변찮다 할지라도, 그분들은 마땅히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거란다.”

 

“공주가 과자를 달라고 부탁할 때 ‘부디’라고 말하는 게 아주 적절하다는 건 나도 알겠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뭘 권유받았을 때 왜 공주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예절은 사탕 같은 게 아니란다, 니나. 너한테 가장 잘 맞는 것들을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반쯤 먹고 남은 것을 다시 상자 속에 집어넣을 순 없어…….”

 

여기저기

 

술에 취해 2층 계단에 주저앉는 것으로 끝난 그 찝찝한 밤 이후로 백작은 아페리티프를 끊었다. 술이 자신의 기분에 건강하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스러운 금주 행위는 영혼의 활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할 일은 너무 없고, 할 일 없이 때우기엔 시간이 너무너무 많아서 인간 감정의 공포스러운 수렁이라 할 수 있는 권태감이 계속해서 백작의 마음의 평화를 위협했다.

 

겨우 3주가 지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 정도로 종잡을 수 없다면, 3년이 지났을 땐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종잡을 수 없게 될 것인가?

 

하지만 길을 잃었으나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종종 운명이 길잡이를 제공한다. 크레타섬의 테세우스에게는 아리아드네와 그녀가 준 실 뭉치가 있었고, 그 덕에 그는 안전하게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가 있었듯이 유령이 사는 동굴을 지나가는 오디세우스에게는 티레시아스가 있었다. 그리고 메트로폴 호텔의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에게는 니나 쿨리코바라는 이름의 아홉 살배기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랬다, 백작은 낮 동안 파티마 꽃 가게가 열려 있을 때 그 가게를 찾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꽃을 자르고 꾸미는 일을 하는 방 안으로 들어가본 적이 있던가? […]

그렇고말고. 백작은 속으로 외쳤다. 메트로폴 호텔에는 방 뒤에 방들이 있고, 문 뒤에 또 문들이 있지. 리넨 제품 보관실, 세탁실, 식료품 저장실, 전화 교환실!

 

실은 그는 선상 생활의 극히 ‘일부’만을 경험했을 뿐이다. 생명력이 충만한, 그 항해를 가능케 해주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말이다.

니나는 상갑판에서 바라본 전망에 만족하지 않았다. 밑으로 내려갔다. 뒤로도 갔다. 여기에 가고 저기에 갔다. 니나가 호텔에 있는 동안 벽은 안으로 좁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영역과 복잡성이 모두 확대되면서 밖으로 팽창했다. […] 만약 니나가 이 호텔에서 충분히 오래 지낸다면 호텔은 러시아 전체가 될 것이다.

 

특권층과의 싸움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한 볼셰비키의 승리가 아무리 확고하다 해도 그들도 머잖아 연회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 그들도 뭔가를 기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론』 출간 100주년 기념이든 레닌의 수염 25주년 기념이든 간에 아무튼 기념 연회를 열게 될 것이다

 

화려함은 끈질긴 힘이니까 말이다. 영악함도 끈질긴 힘이다.

 

“내가 저기에 있고, 저 숙녀가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백작이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인류에겐 적당한 정도의 슬픔이 있단다.

 

그날 밤 늦은 시간에 백작은 침대에 혼자 앉아 옛 스위트룸을 찾아갔던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커피 탁자 위, 접힌 신문 옆에 놓여 있던 스푼과 찻잔의 모습이었다. […]

백작이 스위트룸 317호에서 본 것은 단순히 오후의 차 한 잔이 아니라 자유인인 한 신사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이었던 것이다.

 

집회

 

“아저씬 너무 고지식해요.”

“난 고지식하지 않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자기가 고지식하지 않다고 전적으로 장담할 수는 없는 법이야. 장담하면 고지식한 사람이 되니까 말이다.”

 

볼셰비키들은 어떻게든 이유를 달아서 어떤 형식으로든 가능한 한 자주 집회를 가졌다. 한 주 사이에 무슨 위원회, 무슨 간부회의, 세미나, 총회, 대의원 대회, 협의회 따위의 다양한 모임을 열어서 규약을 제정하고 행동 방침을 수립하고 불만 사항을 모아서 제기했다. 대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들을 가장 새로운 명칭을 붙여 요란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백작이 이 같은 모임들을 엿보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석자들의 이념 성향이 역겹기 때문이어서는 아니었다. […] 백작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정치적 담론들이 너무 지루했다.

하기는 그게 바로 고지식한 사람들의 논쟁거리 아니던가……?

 

고작 10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 사교계의 사람들은 전부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채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모여 마주르카를 추었고, 차르를 위해 건배했었다. 그러나 몇몇 집회를 지켜보고 난 뒤, 백작은 더욱더 놀라운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혁명에도 무도회장은 바뀐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계획적으로—여기서는 묵직한 말을 하고 저기서는 재치 있는 말을 하며—감명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는 이제 ‘잠시’ 실례하겠다며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일단 무도회장을 나가고 나면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자기는 대수롭지 않은 관습적인 예절 따위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대신 아주 많은 모임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참석하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평판을 강화할 것이다.

 

“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들이 당신을 ‘각하’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당연히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당신을 부를 때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가 해야 할 일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할레키 씨. 그리고 신사가 해야 할 일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지요.”

 

백작은 철학적인 사색에 잠겼다. 각하, 예하, 성하, 전하.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한때는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신뢰할 수 있는 표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백작은 이 대목에서 애매한 동작으로 손을 빙빙 돌렸다.

“흠. 아마도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사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가차 없이 변한다. 필연적으로 변한다. 창의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시대는 변하면서 케케묵은 경칭과 사냥용 호른뿐 아니라 은으로 만든 호출종과 자개를 입힌 오페라글라스, 그리고 이제는 쓰임새가 없어진 온갖 종류의 공들여 만든 물건들을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제는 쓰임새가 없어진 공들여 만든 물건들, 백작은 생각했다. 그럼 혹시…….

 

<추적>이라는 작품 너머에 두 개의 벽판이 있었다. […] 벽판이 열리면서 숨겨진 캐비닛이 드러났다. […] 완벽을 기해 공들여 만든 두 자루 권총이 평화로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놀라워.” 그가 말했다. “놀라울 따름이야.”

 

고고학

 

미하일은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상대방의 수나 몸집의 크기에 상관없이 기꺼이 어려운 싸움에 자신을 내던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수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람을—설령 그 사람의 명분이 형편없다 해도—방어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빛’은 청소년기에는 보통 가벼운 경멸의 대상이고 성인 시절에는 신중한 배려의 대상이기 십상인데, 아무튼 그 빛은 영원히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 이후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백작은 자신의 이상을 열정적으로 표출하는 미하일의 얘기를 들으면서 무척 놀라워했고, 미하일 역시 도시의 살롱에 대해 설명해주는 백작의 얘기에 무척 놀라곤 했다. 그해에 두 사람은 스레드니 대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두 수선 가게 위층의 셋방을 얻어서 함께 지냈다.

 

맞아. 그 시절은 낙원 같은 나날이었어, 미시카가 생각했다. 그러나 낙원이 그러하듯 그 시절은 과거에 속했다. 그 시절은 조끼와 코르셋, 카드리유와 베지크, 영혼 소유권과 공물 납입, 그리고 구석에 쌓인 성상들과 관련 있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교묘한 책략과 천박한 미신의 시대였다.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은 저녁 식사에 소고기를 먹고, 대다수 무지렁이들은 그저 인내하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진짜 소중한 유물은 책장 위에 놓인 좁고 기다란 액자 속의 사진이었다. 그것은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포츠머스 조약에 서명한 남자들을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

처음에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시작했던 전쟁을 펜을 놀려서 마무리했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었다.

 

라프 총회, ‘러시아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 약칭.

“사실 수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서로 다른 양식을 옹호해왔지만, 내년 6월엔 한자리에 모여 ‘노바야 포예지야’, 즉 신시新詩를 구축하는 논의를 하게 될 거야. 보편적인 시 말이야, 사샤. 망설이지 않는 시, 굽실거릴 필요 없는 시. 인간 정신이 주제에 담겨 있고 미래가 시상詩想에 담겨 있는, 그런 시 말이야!”

 

“철기시대와 함께 증기 엔진, 인쇄기, 총이 만들어졌지. 이것들은 아주 다른 삼위일체야. 이 도구들은 부르주아 자신의 이익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부르주아에 의해 발달했지만, 바로 그 엔진, 인쇄, 총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가 노동, 무지, 학정에서 해방되기 시작했지.”

 

“‘그렇다면 시는 어찌 되는가?’ ‘글은 어찌 되는가?’”

“시는 이제 4행시니 강약약격이니 정교한 수사법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예술이 아니야. 우리의 시는 행동의 예술이 되었어. 우리의 시는 대륙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고 별들에게 음악을 전달할 거야!”

 

이제는 시인이 시를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시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자신의 시대와 심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

그러한 사람은 로맨스나 직업적 성공의 기회는 잊어버려야 한다. 로맨스나 직업적 성공은 시대에 발맞추어 사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이 그것 대신 택할 수 있는 것은 노새처럼 시끄럽게 울어대거나, 또는 못 보고 지나친 서점에서 발견한 못 보고 넘어간 책에서 가능한 한 많은 위안을 찾는 것이리라.

 

그러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딱 알맞은 때에 딱 알맞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 그리하여 오랜 세월을 낯선 바다에 표류하던 고독한 뱃사람이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하늘을 보니 그곳에 익숙한 별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모든 가치 있는 면을 위해서 건배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아마도 예수승천교회의 종들은 볼셰비키에 의해 다시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종들은 애초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셈이었다. 백작이 아는 바로는, 나폴레옹의 퇴각으로 이 땅에 남아 예수승천교회의 종을 만드는 데 쓰인 그 대포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라로셸 성당의 종으로부터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라로셸 성당의 종들은 ‘30년전쟁’에서 노획한 영국제 나팔총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종에서 대포로 바뀌고, 대포에서 다시 종으로 바뀌는 끊임없는 변모. 그것이 철광석의 운명이다.

 

“알아요, 알아요.” 니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모두 그 말도 내게 해줘요.” “음,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땐,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많단다.”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땐 그들이 모두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니나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렇지만 왜 모두의 얘기를 들어야 해요? 모두가 『오디세이』를 썼나요? 모두가 『아이네이스』를 썼나요?” 니나는 고개를 저으며 명확히 결론지었다. “모두와 극소수의 차이는 숫자의 차이일 뿐이에요.”

 

“네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육이 세계적인 감각, 세계에 대한 경이감,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감각을 너에게 제공할 거라는 뜻이야.”

“그런 것들은 여행을 하면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지 않아요?”

“여행?”

“우린 지금 지평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죠? 시야의 끝에 있는 지평선 말이에요. 그걸 얻기 위해선 학교에서 가지런하게 줄을 맞춰 앉아 있는 것보다 실제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교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그가 말했다.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거나 아니면 활력이 주는 탓에 우리는 갑자기 몇몇 익숙한 사람들과만 사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너처럼 멋진 새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을 굉장한 행운으로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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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는 모든 러시아인에게 양심의 자유(제13조), 표현의 자유(제14조), 집회의 자유(제15조)를 보장한다는, 하지만 이 자유가 ‘사회주의 혁명에 해를 끼치는 데 이용된다면’ 이러한 권리 중 어느 것이라도 철회할 수 있는 자유(제23조)를 보장하는 역사적인 문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밤새도록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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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3

 

여배우, 유령, 벌통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예컨대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조차도―한 해가 지나는 것을 꼼꼼히 기록할 수단을 찾고자 한다. […]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365개의 눈금을 나뭇조각에 새기거나 감옥 벽을 긁어서 표시해둘 것이다.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두고 온 세상의 시간이 필연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 고립된 그들에게 힘든 한 해를 또 한 번 참고 견뎌내고 이겨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는 투지, 혹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철저한 낙관주의를 통해 그들이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찾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365개의 눈금은 불굴의 정신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주의력은 분 단위로 측정해야 하고 절제력은 시간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굴의 정신은 연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로 얼마 전에 호텔 로비에서 잠깐 동안 만난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 지방 설화에 따르면 숲속 어딘가 깊숙한 곳에 석탄처럼 까만 사과가 열리는 나무 한 그루가 숨겨져 있대요. 그런데 그 나무를 찾아서 열매를 먹으면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당신은 숲속에 숨겨진 사과를 찾으면 그걸 먹을 거예요?”

백작은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집과 여동생과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백작이 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 기억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상황에 따라서는 한발 뒤처지는 것이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백작은 새삼 깨달았다.

그로서는 그게 훨씬 더 편안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부단한 경계심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발 뒤처지는 것이 한발 앞서는 것보다 더 편안하면서 더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커피 한 잔보다 더 많은 쓰임새가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우아한 리모주 도자기 컵에 마시든 집에서 양철 컵으로 마시든 간에 커피는 새벽녘에 부지런한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고, 정오에는 생각에 잠긴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밤중에는 괴로운 사람의 정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1924

 

정체불명

 

어떤 사람이 친구로부터 과소평가받아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분이 상할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친구란 모름지기 서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들은 자신의 자식들 가운데 반전反轉을 가장 사랑한다.

 

할머니는 곧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었다. 인내라는 것은 그토록 쉽게 시험당하기 때문에 우린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는 거야…….

 

그 모든 와인 병에 라벨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백작이 놀란 목소리로 내뱉었다.

안드레이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 목록이 존재하는 것은 혁명의 이상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식품부 인민위원 테오도로프 동무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것은 귀족의 특권과 인텔리겐치아(지식층)의 나약함과 투기꾼의 약탈적 가격 책정을 보여주는 표지 같은 것이라는 거죠.”

[…]

“이제 앞으로 보야르스키는 모든 와인을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으로만 구분하여 단일한 가격으로 판매할 겁니다.”

 

병 속의 내용물은 한 국가나 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복잡한 역사의 산물이다. 와인의 색깔, 향, 맛은 분명 그 와인이 태어난 지역의 특유한 지형과 고유한 기후를 나타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와인은 생산된 해, 생산된 지역의 모든 자연 현상을 드러낼 것이다. 한 모금만 마셔도 와인은 생산지의 그해 겨울 추위가 풀린 시기, 여름 강우량의 정도뿐 아니라 그해 바람의 특징이나 구름 낀 날이 어느 정도나 되었을지에 관한 것까지 머리에 떠오르게 할 것이다.

그랬다. 한 병의 와인은 시간과 공간의 최종 추출물이고, 개성 그 자체의 시적 표현이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와인은 익명의 바다로, 평균과 무지의 영역으로 던져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어떤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까지는 수 세대가 걸린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찾기 마련이다. […] 그것들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임에도 우리네 일상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은 빙하의 움직임처럼 더딜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에 물질적 신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 아래서는 이 시간의 진행이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동안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백작은 이제 인정하게 되었다. 민중의 궐기, 정치적 혼란, 산업의 발달……. […] 특히 새로운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망설임이나 작은 이견도 불신하며, 무엇보다도 자기 확신을 중시하는 사람들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1926

 

안녕

 

우리 인간은 결국에는 철학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이다.

 

책에 의해 형성된 신중한 고찰을 통해서든, 새벽 2시에 커피를 마시며 벌이는 열띤 토론을 통해서든, 또는 타고난 성향에 의해서든 우리는 모두 결국엔 근본적인 틀을 채택해야 한다.

 

“이 실험의 본질은 뭐니?”

“우린 한 가지 실험으로 유명한 두 수학자의 가설을 시험해보려고 해요. 특히 중력의 속도에 대한 뉴턴의 추정과, 질량이 다른 물체들이 같은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갈릴레이의 법칙을 시험할 거예요.”

[…]

“니나…….”

실험 내용을 들여다보던 니나가 고개를 들었다.

“비록 이 가설들이 오랜 세월 동안 검증받아왔다 할지라도 나는 네가 그걸 다시 실험하는 건 지극히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니나가 백작을 잠시 살펴보았다.

“네.” 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는 언제나 나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분이에요.”

 

백작이 모든 게 순조로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 그리고 사실 이미 위안을 얻었다.

 

“이건 사건의 연쇄인 거예요. 노보바츠키 공녀의 생일 축하 잔치가 열렸던 그날 밤 내가 대범하게 그의 차용증서를 찢어버렸을 때, 난 나의 행동에 대한 얘기가 공주의 귀에까지 들어갈 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형세를 역전시켜 그 비열한 녀석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에 희열을 느꼈던 것입니다. 내가 만약 그렇게 잘난 체하며 그의 체면을 깎지 않았다면 그자는 옐레나를 꾀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욕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그를 총으로 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가 마수리아에서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10년 전 내 누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나는 내가 속했던 곳에—누이 곁에—있었을 겁니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존재한 곳에서는 언제나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 추방은 인간 희극의 제1장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서 하느님은 카인에게도 그 벌을 내렸다. 그렇다, 추방은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국외가 아니라 자국 땅으로 추방하는 개념을 터득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일찍이 18세기에 차르는 적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시베리아로 보내는 형벌을 택했다. 왜?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이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러시아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형벌로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 추방당한 자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서 집을 짓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추방당한 자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국 대신 자기 나라로 추방하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국 추방은—시베리아로 보내든 ‘6대 도시 금지’형에 처하든 간에—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시간의 흐름에 부식되어 흐릿해지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 바로 너머의 것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는 종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모스크바의 훌륭하고 장려한 것들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그 어떤 모스크바 사람보다도 더 애틋하게 그러한 훌륭한 것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 모든 게 끝이다.

 

 

3

 

1930

 

 

다리가 세 개인 농에서 커피 원두가 든 양철통을 꺼내,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한 스푼 넣고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조그마한 손잡이를 계속 돌리는 동안에도 방은 여전히 미약하나마 수면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졸음이 시각과 감각, 형상과 형식, 얘기된 것들과 해야 할 것들에 계속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각각의 요소에 제 나름의 비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이 그라인더의 작은 목제 서랍을 열자, 세상과 세상 속 만물이 연금술사들이 선망했던 바―갓 간 원두의 향―대로 바뀌었다.

 

아라크네의 기술

 

역사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서 기념이 될 만한 사건들을 짚어보는 일이다. 역사가는 시간의 흐름에 힘입어 과거를 돌아보면서 백발의 육군 원수가 지도 위에 펼쳐진 강의 굽이를 가리키는 듯한 태도로 특정 날짜를 짚어낸다. 바로 저 지점이었네, 역사가는 말한다. 그게 전환점이었지. 결정적 요인이었다네. 그 운명의 날로부터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었지.

 

마침 때맞추어 그의 안내데스크에 놓인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사환의 종이 세 번 연속 울렸으며, 누군가가 “동무! 동무!”라고 소리 질렀다.

아, ‘동무’라, 백작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시대를 대변하는 단어가 하나 생겼군…….

 

놀라운 의미론적 효용성을 지닌 이 동무라는 말은 만나서 인사할 때도 사용하고, 헤어질 때도 사용할 수 있었다. 축하의 말로도, 경고의 말로도 사용되었다. 행동에 대한 요구이자 불만을 토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친구든 적이든 상관없이 같은 나라 사람 누구에게나 한 단어로 부를 수 있는 곳이 전 유럽을 통틀어 러시아 말고 어디에 있는가?

 

항상 비추어라,

모든 곳을 비추어라,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우려라고? 아마 미시카는 평생 카테리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 그 상실감은 우리가 마땅히 예상하고 대비하고 생의 마지막 날까지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살이 같은 사랑을 하루살이 신세에서 면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애끓는 슬픔뿐이니까.

 

“그냥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니나가 너무 열정적으로, 너무 자신 있게, 너무 외곬으로 얘기하는 걸 들으니 그 애에게서 유머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 그렇지만 나는 그 애의 행복이 그곳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그 애를 믿으셔야 해요. 설혹 그 애가 외골수라서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때가 되면 깨닫게 될 거라고 믿어주셔야만 해요. 결국 우리 모두 다 그렇잖아요.”

 

오후의 밀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상반되는 두 영혼은 재결합할 수 있었을까? 무슨 운명의 뒤틀림이 이들을 스위트룸 311호로, 그리고 서로의 품으로 이끌었을까?

뒤틀린 것은 백작의 인생행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는 자신의 침실에서 보야르스키로, 또 그 반대 방향으로 호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 꼬이고 돌아가고 틀어지고 다시 되돌아간 운명은 백작의 인생행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안나의 인생행로였다.

 

안나가 손으로 승강기를 가리켰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한잔 더 하자는 초대의 손짓임이 분명했다. […] 유감스럽게도 그에겐 다른 약속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곧바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젊은 감독이 바깥 거리로 사라진 순간, 안나의 미소와 어깨가 축 처졌다. […]

그녀는 즉시 어깨를 펴고 턱을 치켜든 다음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찬미자들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계단을 내려오는 기술은 습득했지만,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는 기술은 아직 습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타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삶을 살던 사람이 엄청난 좌절을 경험할 때, 그 사람에게는 여러 대안이 주어진다. 수치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자신의 처지에 닥친 모든 변화의 증거들을 감추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모은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려버린 상인이라면 고급스러운 양복을 닳아 해질 때까지 입으면서 이미 오래전에 회원권이 말소된 전용 클럽에서의 무용담을 줄줄이 늘어놓을 것이다. 만약 자기 연민에 빠진 자라면 자신이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세상으로부터 물러날 것이다. 아내 때문에 사회적 수모를 당하고 오랜 세월 고통을 겪은 남편이라면 집을 떠나 도시 반대편의 작고 음침한 아파트로 이사할 것이다. 아니면 백작과 안나처럼 그저 간단히 ‘초라한 자 연맹’에 가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라한 자 연맹 회원들은 우아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몰락했기 때문에 어떤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 그들은 여전히 동료들 사이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들이 나누는 인사에는 경계심이 깃든 찬사, 연민이 담긴 야심, 그리고 속으로는 웃는 겸양이 배어 있다.

 

동맹

 

“감히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의 관료로서 당신이 하는 일은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그저 몇몇 흥미로운 사람들을 추적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만 해둡시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가택 연금하는 게 임무를 수행하기에 한결 용이할 텐데요.”

“실은,” 글레브니코프가 백작의 말을 정정했다. “그들을 땅속에 묻는 게 임무 수행에 더 용이하지요…….”

 

압생트

 

비숍은 부지배인으로 승진한 이래 모든 질문의 끝에 말줄임표를 덧붙이는 버릇이 생겼다. 그 버릇으로부터 우린 뭘 추론할 수 있을까……? 이 특별한 구두점을 잘 막아내야 한다는 것……? 의문문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는 질문을 하고 있지만 이미 자신의 견해를 세워 놓았으므로 그에겐 대답이 필요 없다는 것……?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시작된 이래로 죽음은 늘 부지불식간에 찾아왔지, 그는 설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소리 없이 마을에 도착한 다음 여관에 방을 하나 잡고, 골목길에 잠복해 있거나 혹은 슬그머니 시장을 어슬렁거리지. 그러다가 주인공이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한숨 돌리려는 그 순간에 죽음은 그를 찾아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백작은 인정했다. 하지만 삶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죽음만큼이나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얘기하는 스토리텔링은 거의 없지.

 

“옐레나, 집단들의 집단화, 부농들의 빈농화…… 틀림없이 꽤 그럴듯해 보일 거야. 심지어 가능성도 꽤 높아. 하지만 그게 불가피한 걸까?”

“불가피한 게 뭔지 내가 말해주지. 불가피한 것은 말이야, 삶이 니나에게도 찾아갈 거라는 거야. 니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만큼이나 진지하긴 하지만, 아주 초롱초롱하고 생기 넘치는 아이라서 삶이 그 애로 하여금 악수를 하고 혼자 떠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삶은 택시를 타고 니나를 뒤따라갈 거라고. 그러다 우연히 그 애와 마주치겠지. 삶은 결국 그 애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삶은 구걸하고, 맞바꾸고, 공모에 가담하겠지. 필요하다면 교묘한 속임수에 의존하기도 할 거야.”

“세상이란 참…….”

 

부록

 

그렇지만 이 야심찬 노력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서는 백만 명에 이르는 부농들—부당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자 공공선의 적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지역에서 가장 유능한 농부들—을 추방할 필요가 있었다.

 

1938

 

적응

 

아이는 조용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자기 몫의 접시를 소리 없이 말끔히 비운 아이는 백작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로 올라가서 두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말없이 백작을 응시했다. 그 시선 또한 범상치 않았다. 붓꽃처럼 짙고 심연처럼 불길한 아이의 눈길은 백작을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수줍음도 조급함도 내비치지 않는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젠 뭘 할까요, 알렉산드르 아저씨?

 

“저 애는 몸무게가 15킬로그램 정도밖에 안 돼. 키는 1미터도 안 되고. 배낭에 든 짐은 서랍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하잖아. 저 애는 말을 걸지 않으면 거의 얘기를 안 해. 심장 박동은 새의 박동만큼이나 약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애가 어떻게 이토록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거지?”

 

일을 마친 밤 시간에는 공상의 나래와 여행의 추억과 역사에 대한 사색을 펼치고 나서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여행 배낭과 헝겊 인형을 가지고 나타난 이 어린 방문객이 방의 모든 차원을 바꾸어버린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백작은 주위 사람의 존재에 결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마음을 여는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다.

스물두 살 무렵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에게는 불편하다거나 방해된다거나 심란하다는 따위의 말이 해당되지 않았다. 백작은 예상치 못한 그 어떤 것의 출현도, 그 어떤 발언도, 그 어떤 변화도 여름 밤하늘의 폭죽처럼 다 환영했다. 경탄과 환호의 대상으로 환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를 제작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백작이 (어린 소피야가 좋아하는 질문 형태를 흉내 내며) 물었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백작의 아버지는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 시계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백작의 아버지는 스토아학파와 몽테뉴의 신봉자였으며, 우리의 창조주는 오전 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았다고 믿었다. 즉, 6시 이전에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하고, 중간에 휴식 시간 없이 일에 몰두한다면 정오 무렵까지는 하루치의 노동을 완수하게 된다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의 시각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심판의 순간이었다. 정오의 종이 울리면 근면한 인간은 오전을 알차게 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는 양심이 깨끗해진 상태에서 점심 식탁에 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정오의 종이 울릴 때 어리석은 인간―침대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조간신문을 세 개나 읽으며 아침을 먹거나, 응접실에서 무의미한 잡담을 하며 오전 시간을 낭비한 사람―은 신의 용서를 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대안이 없었다.

백작의 아버지는 오후 시간에는 조끼에 들어 있는 시계에 맞추어―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철도 노선 위에 있는 기차역들이기라도 하듯이 분 단위로 표시해가면서―살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오히려 점심 식사 전에 온전히 충실한 시간을 보냈으므로 오후에는 현명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믿었다. 즉, 버드나무 길을 산책하거나, 영원한 고전을 읽거나, 정원의 퍼걸러 아래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따뜻한 불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닌 일들,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에 몰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시계 종소리는?

그 소리는 절대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하루를 충실히 잘 살았다면—근면과 자유와 신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았다면—그 사람은 12시 자정이 되기 훨씬 전에 곤히 잠들어 있어야 했다. 따라서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의 두 번째 종소리는 명백히 하나의 충고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낮 시간을 지나치게 낭비한 탓에 어둠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아 헤매야만 하는 것 아닌가?’ 종소리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승, 하강

 

“내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알겠지요?” 백작이 설명을 마무리하며 말했다.

“소피야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알 것 같아요.” 마리나가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괜찮아요, 알렉산드르. 지금까지 애들하고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서 걱정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 잘 해내실 거라 믿어요. 그래도 미심쩍다면, 어른들과 달리 애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애들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소피야, 너 200까지 셀 줄 아니?”

“아뇨.” 아이가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100까지 두 번 세면 되잖아요.”

 

“포기하는 건가요?”

“인정하는 거란다.” 백작이 말했다.

“그건 포기랑 같은 뜻인가요?”

…….

“그래, 포기랑 같은 의미야.”

“그럼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당연했다.

그는 몸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창피했다.

“포기한다.” 그가 말했다.

 

“아직 빠진 게 아니야. 이제 빼야만 하는 문제라네. 여기.”

샬라모프가 책상 위로 팔을 뻗어 체호프가 베를린에 대한 첫인상을 누이와 공유한 구절, 특히 독일인의 놀랍도록 맛있는 빵과 외국 여행을 해보지 않은 러시아인은 빵이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모를 것이라는 구절을 가리켰다.

“이 부분을 빼야 한다고?”

“맞아. 바로 그거야.”

“무턱대고 말이지.”

“자네가 원한다면.”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간결함을 위해서지.”

“그렇게 하면 종이가 절약되겠군! 6월 6일 편지의 이 구절을 뺀다면, 그럼 이 구절은 어디다 둬야 하나? 은행에다? 옷장 서랍에다? 아니면 레닌의 무덤에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원인과 결과, 영향과 파급 효과를 고려하는 데 그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을 감안하여―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백작의 경험에 의하면,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왜냐하면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을 몰아가려 하지만, 논리라는 것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분명한 이해나 확신의 상태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는 그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결국 그들은―마치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가장 사소한 변덕의 영향에, 그리고 성급하고 무모한 행동의 유혹에 노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삶이 유동적일 때는 침대가 아무리 안락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걱정거리—그 걱정거리가 얼마나 큰지 작은지,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 상상 속의 것인지에 관계없이—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인 듯싶다.

 

결과적으로 거의 다 망쳤을 뿐이다. 불가코프는 수년 동안 한 단어도 쓰지 않았다. 아흐마토바는 펜을 놓아버렸다. 이미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만델시탐은 다시 체포되었다. 그리고 마야콥스키는? 오, 마야콥스키…….

미시카는 자신의 턱수염을 잡아당겼다.

지난 1922년, 미시카는 사샤에게 이들 네 사람이 합심하여 러시아의 새로운 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게 바로 정확히 그들이 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침묵의 시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래, 침묵도 하나의 의견일 수 있지.” 미시카는 혼잣말을 했다. “침묵도 저항의 한 형태일 수 있지.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 있어. 또한 시의 한 유파일 수도 있어. 나름의 운율과 비유와 관습을 보유한 시의 유파일 수 있다고. 연필이나 펜으로 쓸 필요 없이, 가슴에 들이댄 총부리를 앞에 두고 영혼에 쓰는 시 말이야.”

 

이후 며칠 동안 가장 중요한 점을 강조하면서도 가장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능력에 대해 오랫동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한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담과 삽입 어구와 각주의 달인이 되어야 했으며, 나중에는 소피야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의 가차 없는 질문 공세를 미리 생각해두는 법을 터득하기까지 했다.

 

춤추듯 날뛰는 근심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경우, 최상의 방법은 초원을 뛰노는 양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양이라면 허브를 넣어 맛을 내고 레드 와인 리덕션을 곁들여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백작은 완전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소피야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백작은 아침에 딱딱한 바닥에서 잠이 깬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런 다음 로비, 피아차, 보야르스키, 안나의 스위트룸, 지하실, 마리나의 사무실 등 자신이 그날 오갔던 곳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그날 하루 몇 개 층이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렸는지 꼼꼼히 계산했다. 마음속으로 그날의 행적을 따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 층 한 층 세어나간 결과, 마지막으로 하루에 두 번 울리는 시계가 있는 방에 올라왔을 때까지의 총합계는 59였다. 그 시점에서 그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잠에 빠져들었다.

 

1946

 

소동, 응수, 사건

 

“혹시 농을 괴고 있는 저 책, 『안나 카레니나』 아니니?”

소피야의 눈이 그의 시선을 좇았다.

“네, 그럴 거예요.”

“그런데 왜 『안나 카레니나』가 저기 있는 거냐?”

“몽테뉴랑 두께가 가장 비슷했거든요.”

“두께가 가장 비슷했다고!”

“뭐가 잘못됐어요?”

…….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안나 카레니나는 네가 몽테뉴만큼 두껍다고 해서 너를 농 밑에 받침대로 끼워두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것뿐이야.”

 

백작은 맞은편의 미시카를 바라보면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의 흐름에 목이 메었다. 한편으로는 젊었을 때부터의 오랜 친구를 뜻하지 않게 만난 데서 오는 특별한 기쁨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늘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백작은 미시카의 행색이 드러내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에 직면해야 했다. […] 하지만 미시카의 모습에는 단순히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 남은 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한 시대가 그 시대의 산물에게 새겨놓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미시카는 야바스에서의 삶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얘기하는 동안 1인칭 복수형을 너무 자주 사용해서 백작은 그가 수용소에서 만난 동료 죄수와 함께 야바스로 이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미시카의 ‘우리’라는 말이 특별한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서히 명확해졌다. 미시카에게 ‘우리’라는 말은 모든 동료 죄수들을 포괄하는 말이었다.

 

“밤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가 말했다. “삽을 내려놓고 터벅터벅 걸어서 막사로 간 다음엔 귀리죽을 먹어. 그러고 나선 담요를 턱까지 올려 덮은 채 잠을 자려고 애를 쓰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떤 예상치 못한 생각들이 찾아들곤 해. 평가받고 싶고 무게를 재보고 싶어 하는 초대받지 않은 기억들이지.

 

“러시아가 서구에 기여한 다섯 번째 것?”

“그래. 다섯 번째 기여. 불타는 모스크바.”

“1812년의 일 말인가?”

“나폴레옹이 새벽 2시에 호출을 받고 크렘린에 새로 마련된 침실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점령한 도시가 시민들에 의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상상할 수 있겠어?”

“그래, 모스크바를 불태운 것이야말로 지극히 러시아적인 행위였어, 친구.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건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건 사건의 한 형식이었어. 수천 개의 역사에서 따온 하나의 사례일 뿐이야.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창조한 것을 파괴하는 데 기가 막히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는 걸 증명해왔다네.”

 

“사샤, 어떤 나라든 나름의 대형 캔버스를 보유하고 있지. 이른바 신성한 복도에 걸린, 후대를 위해 국가의 정체성을 요약한 걸작 말이야. 프랑스인들에게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그렇고,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렘브란트의 <야경꾼>이, 미국인들에게는 <델라웨어를 가로지르는 워싱턴>이 거기에 해당되지. 그렇다면 우리 러시아인들에게는? 우리에겐 쌍둥이가 있지. 니콜라이 게의 <알렉세이 황태자를 신문하는 표토르 대제>와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라네. […] 그런데 이 그림들은 무얼 묘사하고 있을까? 한 그림에서 우리의 가장 개화된 차르는 금방이라도 사형을 선고할 것처럼 장남을 의심의 눈초리로 뜯어보고 있어. 다른 그림에서는,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던 이반 뇌제가 자신의 장남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지. 하지만 이미 홀을 아들의 머리에 휘두름으로써 최고 권력을 행사한 후였다네.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밝은 색상의 첨탑과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둥근 지붕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우리의 교회들을 우리는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어. 우리는 옛 영웅들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있고, 거리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떼어내고 있지. 마치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시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아니면 시인들 스스로 침묵하기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어.”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샤? 국민들 마음속에 기꺼이 자신들의 예술 작품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도시를 유린하고,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기 자손을 죽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국가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불현듯 이 자기 파괴 성향이라는 것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경멸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데, 그건 우리가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보다 더 냉담하거나 덜 개화되었기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것을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어. 우리는 어떤 나라의 국민들보다도 더 그림이나 시, 기도, 사람의 힘을 믿기 때문이지.”

미시카는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을 꼭 기억해둬, 친구. 우린 아직 모스크바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불태운 건 아니라는 것을.”

 

오시프는 노련한 과학자처럼 두 사람이 방금 본 영화를 냉정하게 해부했다. 뮤지컬 영화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한 백일몽으로 빈곤 계층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안된 달콤한 과자’였다. 공포 영화는 ‘노동자의 공포를 예쁘장한 소녀들의 공포로 대체한 교묘하기 짝이 없는 손재주’였다. 버라이어티 코미디는 ‘말도 안 되는 마약’이었다. 그리고 서부극은? 그것은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기만적인 선동이었다. 악은 가축들을 훔치고 약탈하는 집단들에 의해 대표되는 반면, 선은 다른 사람의 신성한 사유 재산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외로운 개인으로 묘사되는 우화였다. 결론은? ‘할리우드는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세력이다.’

 

“앞으로 남은 20세기를 우리 러시아인과 미국인이 이끌어갈 거요. 우리 두 나라만이 과거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과거를 밀어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인은 자기네가 소중히 여기는 개인주의를 위해 그렇게 했지만, 우린 공동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할 겁니다.”

 

오시프는 대공황 시절에 할리우드가 아주 교묘한 속임수로 혁명에 필수적인 세력을 약화시켰다는 주장을 매우 설득력 있게 펼쳤다. 하지만 백작은 오시프의 분석이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웠다. 물론 1930년대 미국에서는 화려한 뮤지컬과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행했다. 하지만 재즈와 마천루 역시 유행했다. 그것들도 불안정한 국가를 잠재울 목적으로 고안된 마약이었을까? 아니면 대공황조차도 잠재울 수 없었던,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국가 정신의 자취였을까?

 

“칵테일은 여러 가지를 뒤섞은 혼합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 재료는 두 가지로 한정되어야 하고요.”

“겨우 두 가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해주는 재료여야 해요. 각자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고 각자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그리고 대화 중에 서로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 그런 두 재료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진과 토닉 같은.” 그는 자신의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면 버번과 물이거나…… 또는 위스키와 소다수거나…….”

 

예전부터 예의 바른 사람들은 이런 술집에 모여 들곤 했답니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영혼들과 한자리에 모여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서 말입니다.”

“또는 낯선 사람들과?”

대령이 손가락 하나를 공중에 세웠다.

“낯선 사람보다 더 마음이 통하는 영혼은 없지요

 

“여기 러시아에는 어느 정도 해체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서 깊은 아름다운 건물들을 파괴하는 행위는 사라진 것들에 대해 약간의 슬픔을 자아내는 동시에 앞으로 올 것들에 대해 얼마간 흥분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고려할 때, 위대한 것들이 영속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어 볼까요. 그는 2천 년 전에 시장을 배회하면서 마주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자신의 생각을 설파했지요.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습니다. […] 중세 내내 우린 그를 무시했습니다. […] 그런데 어찌 된 건지 그 모든 일들에도 이 친구가 시장에서 설파했던 위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 인간은 부고 기사를 쓰는 재주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3세대 후에 어떤 사람이, 혹은 그 사람의 업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고손자가 3월의 어느 화요일 아침에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모르는 것만큼이나 알지 못하죠. 운명의 여신이 후세 사람들에게 뭔가를 건네줄 때는 뒷전에서 주기 때문입니다.”

 

백작은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수많은 걱정거리―학업, 옷, 예절 등―가 뒤따르지만, 결국 부모의 책임이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키움으로써 아이가 목적 있는 삶을, 그리고 신이 허락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부록

 

그렇지만 외아들인 일리야가 베를린 전투에서 숨졌을 때.

모든 담요, 모든 책, 모든 옷가지를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 그날의 모습 그대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을 안드레이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이 조심스럽게 보존된 방이 그들의 슬픔을 누그러뜨리기보다는 오히려 지속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그는 이제 아들의 소지품들을 치워버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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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회색 책상 뒤에 앉은 이 조그마한 회색 친구의 임무는 웨이트리스들이 물어오는 정보를 기록하는 일뿐만이 아니었다. 웨이트리스들에게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한편 그들이 지금의 자리를 얼마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지 넌지시 비침으로써,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는 좀 더 불길한 빈정거리는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확실히 확보하는 것도 이 친구의 임무였다. 그렇지만 성급하게 이 친구를 비난하지는 말도록 하자.

그는 샬랴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야르스키에서 식사해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는 간접적인 삶이 배당되어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삶이 할당된 것이었다

 

수용소의 주민들…… 신분을 박탈당한 이 죄수들은―몇백만 명에 달했다―완벽한 일체가 되어 움직였으며, 궁핍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공유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언제 어디서 만나든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지붕 아래에, 또는 서로의 탁자에 상대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으며, 서로를 형제, 자매, 친구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떤 상황 아래서도 결코 동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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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50

 

아다지오, 안단테, 알레그로

 

니나는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중간에 망설임 없이 말을 끊으며 반대 주장을 펼치고는 그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거침없이 선언하곤 했지만, 소피야는 상대의 얘기를 공감의 미소를 지으며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기 때문에 보통 자신의 얘기를 꽤나 길게 거리낌 없이 표출한 상대방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자신의 주장에 문득 의문을 품기 시작하곤 했다…….

 

“바실리, 우리 나이가 되면 모든 게 빨리 지나간다네. 사계절이 우리 기억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니까.”

[…]

“그렇지만 그것도 나름 위안이 되기는 해.” 백작이 말을 이었다. “시간은 우리 곁을 흐릿한 상태로 달려가기 시작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지. 사람이 열일곱 살이 되어 진정한 독립의 첫 시기를 경험하게 되면 감각이 아주 예민해지고 감성이 섬세해져서 모든 대화, 모든 표정, 모든 웃음이 영원히 기억 속에 새겨지지. 그리고 그 민감한 시절에 사귀게 된 친구들이라면? 끊임없이 샘솟는 애정을 가지고 이후로도 평생 동안 만나게 되는 거지.”

 

“아마도 그건 천상의 균형 문제일 거야.” 그가 말했다. “일종의 우주적 평형이지. 아마 시간 경험의 총합은 일정할 거야.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이 특별한 6월 어느 날의 생생한 인상을 더 많이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린 우리 몫을 포기해야만 해.”

“아이들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우린 잊어야 하는 거로군요.” 바실리가 요약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불쾌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이렇게 늙은 나이에 변치 않는 기억들의 새로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하는 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지. 우리는 오히려 그들이 경험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게 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해.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게 해야 해. 담요를 푹 덮어주고 단추를 꼭꼭 채워주는 대신, 그들에게 믿음을 갖고 그들 스스로 덮고 채우도록 해야 해. 그리고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자유 앞에서 실수한다 해도 우리는 느긋하고 관대해야 하며, 신중한 태도를 잃으면 안 돼. 우린 그들이 우리의 감시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독려해야 해.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인생의 회전문을 통과할 때 우린 뿌듯하게 숨을 내쉬는 거지…….”

 

“사랑스러운 곡이지. 그런데 이 곡엔 원도 있고, 선도 있고, 점도 있어. 지난 한 세기 동안 피아노를 배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쇼팽의 이 소품을 연주했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종의 암기 행위였지. 네가 했던 것처럼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천 분의 일도―아니 십만 분의 일도―안 될 거야.”

 

“이 곡의 경우, 전 엄마를 생각해요. 얼마 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걸 생각하고 나서 연주를 시작하는 거죠.”

[…]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당신의 공간 감각은 정말 뛰어나네요.”

젊은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

“그건 제가 훈련받은 건축가이기 때문일 겁니다. 화가가 아니라.”

“지금 호텔을 설계하고 있는 건가요?”

건축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상황이라면 저는 새장만 설계해도 행복할 겁니다.”

백작의 얼굴에 나타난 호기심을 간파한 젊은이가 자세히 설명했다. “당분간 모스크바에서는 수많은 건물이 지어지겠지만, 건축가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습니다.”

 

“이 식당은 모스크바 시 전체를 위해 설계되었으며,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임 장소 역할을 해왔지요.”

“지난 40년 동안 토요일 밤만 되면 각계각층의 러시아인들이 저 분수 주위에 몰려들어, 옆 탁자에 앉은 사람이 누가 되었든 기꺼이 대화에 뛰어들곤 했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즉석에서 로맨스가 싹트기도 하고, 러시아의 푸시킨과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 중 누가 더 훌륭한지를 놓고 진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래요, 난 택시 기사가 인민위원과 어울리고, 주교가 암거래상과 교류하는 걸 봤어요. 언젠가 한번은 젊은 여성이 노인의 생각을 바꿔놓는 걸 실제로 목격한 적도 있고요.”

 

“방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의 총체라는 말씀이군요.”

“이 특별한 방에서 이루어진 교류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교류 덕분에 세상이 나아졌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가 여기 모스크바의 음악원에서 수학한 것은 사실이고, 거기서 무소륵스키 메달까지 수상했다더군요. 피아차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랍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요.” 아우드리우스가 사무적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리처드가 잠시 바텐더를 살펴보았다.

“흠, 그게 바로 인생의 본질이지. 안 그래요?”

 

진화의 속도라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은 회색가지나방의 날개가 희든 검든 전혀 개의치 않는 반면에 회색가지나방이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연이 진화를 설계할 때, 진화의 힘이 영겁이 아닌 수 세대의 기간 동안 발휘되도록 설계한 이유였다. 나방이나 인간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려고 말이다.

 

삶의 상황이 우리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1952

 

아메리카

 

음식을 주문하고 애피타이저가 나올 때까지의 이 시간은 분명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탓에 자신들이 커플로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이 시간, 젊은 연인들이 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남편과 아내의 경우, 서로에게 들려줄 긴박하고 간절하며 놀라운 일이 이제는 더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불현듯 불안해하면서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 대부분이 이 위험한 틈새 시간을 불길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안…… 안나 우르바노바를 식사에 초대하려는지, 또는 초대하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해서 마리나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이냐?”

“마리나 아줌마는 아빠가 아빠의 단추들을 각각의 상자에 담아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래요.”

“이런 식이죠. 이 상자에는 파란 단추들만 담고, 저 상자에는 검은 단추들만 담고, 또 다른 상자에는 빨간 단추들만 담는 거죠. 아빠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여기서도 맺고 저기서도 맺는데, 그 관계들이 서로 구분되도록 하고 싶어 한대요.”

“그렇다니? 나는 내가 타인들을 단추처럼 취급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구나.”

 

10일 뒤, 말렌코프 당 총리는 총서기 자리를 보수파인 흐루쇼프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써 두 정적 간 양두정치의 막이 올랐다. 상반되는 견해의 소유자로서 서로 애매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두 인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미묘한 균형은 이후 몇 년 간 전 세계가 러시아의 향배에 대해 그저 추정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후자’만 가능할 거라고 여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겠어요?”

“‘전자’를 꿈꾸는 데는 돈키호테 같은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난 알아요.” 백작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모든 걸 고려해볼 때, 전자가 가능성이 훨씬 희박하다 해도 사람이 어떻게 후자의 높은 가능성에 복종할 수 있겠어요? 그건 인간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훔쳐보고 싶은 것은,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의 방식과 비교해보고 싶은 것은, 너무나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죠. 그래서 후자의 힘이 이 도시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조차도 전자의 힘은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사샤. 난 인간이라는 존재가 당신이 얘기하는 ‘전자’의 선율에만 의지해 춤을 출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우리가 어디에 살든, 우린 어느 정도 현실과 부닥쳐야 해요. 러시아에서는 그게 ‘후자’에게 약간 머리를 숙이는 것일지도 몰라요. […] 러시아의 중심에는―러시아의 문화, 러시아의 심리, 러시아의 운명의 중심에는―크렘린이 서 있어요. 천년 동안 벽으로 둘러싸였던 요새이고, 바다로부터는 6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죠. 크렘린의 담이 이젠 공격을 방어할 만큼 충분히 높지 않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담은 여전히 러시아 전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요.”

 

“자동 차고 문이 뭐예요?”

“사람을 대신하여 저 혼자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차고 문이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편리함이라는 게 뭔지 얘기해줄게요.”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정오까지 잠을 잔 다음에 누군가를 시켜 쟁반에 받친 아침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 약속 시간 직전에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것. 한 파티장의 문 앞에 마차를 대기시킴으로써 얘기만 하면 즉시 다른 파티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 젊었을 때 결혼을 피하고 아이 갖기를 미루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1953

 

사도와 변절자

 

소피야가 이 곡을 선택했을 때 백작은 곡이 ‘즐겁다’, ‘매우 발랄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려를 에둘러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우려를 표명한 다음에는 세 발짝 물러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도 아니고 두 발짝도 아닌, 세 발짝이었다. 어쩌면 네 발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발짝은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이 걱정한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그 결정이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미시카 일로 오셨군요…….” 잠시 후 백작이 말했다.

“네.”

“언제였나요?”

“딱 일주일 전이에요.”

그는 카테리나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지 묻지 않았으며, 그녀 역시 굳이 얘기하려 들지 않았다. 시대에 배반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다.

 

“저는 평생 시를 써본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시를 쓴 사람은 미시카입니다.”

“우리가 졸업했을 때는 정치적 갈증이 담긴 시를 쓰는 건 여전히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미시카의 배경을 고려할 때, 비밀경찰은 아마도 그를 빗자루로 쓸어버렸을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둘이 함께 마르고 와인 한 병을 비운 다음, 우리는 그 시를 내 이름으로 출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 이름이죠?”

“아무리 비밀경찰이라 해도 경마 클럽 회원이자 차르의 자문역인 분 대자인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목숨을 구한 사람은 바로 나였어요.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시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1922년에 총살되었을 겁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카테리나는 백작의 제안에 처음에는 놀란 표정이었으나, 곧 그 제안을 물리치고 마음에서 지웠다. 하지만 잠시 뒤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을 기억해주세요.”

 

아빠, 내 무덤에 흙을 덮을 때, 참새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빵 껍질을 부숴서 뿌려주세요. 그러면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게 될 테고, 혼자 누워 있는 게 아니니까 기쁠 거예요. 

 

이 인용구를 읽자마자 백작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분명 너그럽지만 신경질적이기도 했던, 너무나 짧게 살다간, 그리고 이 처량한 아이처럼 세상의 모든 불공정함에도 세상을 원망하려 들지 않았던 친구를 위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백작의 울음은 자신을 위한 울음이기도 했다.

 

 

5

 

1954

 

갈채와 환호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 종족 가운데 하나를 사막에 떨어뜨려놓으면, 그들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텐트에서 잠을 자며, 낙타 등에 올라타고 돌아다닌다. 북극에 떨어뜨려놓으면, 그들은 물개 가죽으로 몸을 두르고, 이글루에서 잠을 자며,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들을 소비에트의 기후에 떨어뜨려놓는다면?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낯선 사람들과 정답게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옷장 서랍의 절반에 자기 옷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스케치북에 상상의 건물들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그들은 적응한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파리의 삶을 경험했던 러시아인들에게는 앞으로는 두 번 다시 파리를 보지 못하리라고 인정하는 것이 적응의 한 방식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연과 망설임과 성급함에 좌지우지되도록 설계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아빠가 지금 제 맘을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시는 중이라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네요. 솔직히 아빠, 두려운 마음과 제 결정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럼 뭣 때문이니?”

“그냥 가고 싶지가 않아요.”

“어떻게 가고 싶지 않을 수가 있니?”

“전 아빠랑 여기 있는 게 좋아요.”

 

“소피야, 내가 너한테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서 두렵구나. 네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난 너를 이 건물의 사방 벽 내부로 한정된 삶으로 너를 끌어들였어. 우리 모두가 그런 거야. 마리나, 안드레이, 에밀, 나, 우리 모두가. 우린 이 호텔이 진짜 세상처럼 넓고 멋진 곳으로 보이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어. 네가 이 안에서 우리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네 엄마 말이 정확하게 맞았어. 사람은 금박으로 장식된 홀에서 <셰에라자드>를 들음으로써, 혹은 자기만의 동굴에 갇혀 『오디세이』를 읽음으로써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실현하는 게 아냐. 사람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딤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거야. 중국 땅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나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항해에 나섰던 콜럼버스처럼 말이야.”

 

“내겐 너를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단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악원 경연 대회가 열렸던 밤이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안나와 네가 우승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가 아니야. 그것은 바로 그날 저녁, 경연을 몇 시간 앞두고 네가 경연장으로 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성년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먹은 그는,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현명했다. 인생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주어진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천 번에 걸친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우리의 능력은 흥하다가 이울고, 우리의 경험은 축적되며, 우리의 의견은―빙하가 녹듯 매우 느리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천천히 점진적으로―진화한다.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안나의 침실 문이 열리고 드레스 차림의 소피야가 앞으로 걸어 나왔을 때, 백작에게는 그 순간이 바로 소피야가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는 시점이었다. 경계의 한쪽에는 백작에게서 우정과 조언을 기대하는, 몸가짐이 바르고 차분하면서도 동시에 상상력이 기발한 다섯 살, 열 살, 또는 스무 살의 소녀가 있었다. 경계의 다른 한쪽에는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기댈 필요가 없는 분별력과 우아함을 갖춘 젊은 여성이 있었다.

 

발표

 

그는 그걸 보여주고자 오른손을 탁자 위에서 들고 있었는데,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에밀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신이기에 늙어가는 한 인간에게 질병을 주되, 하필이면 그 인간이 동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자 모든 사람들의 눈에 돋보이게 만드는 바로 그 특징을 앗아가는 질병을 주는 세상을 만들었단 말인가?

 

한 정당의 리더 46명을 초청하여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은 U자형 자리 둘레에서 식사하도록 하는 것은 얼마간 혼란을 유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산당은 ‘자연 상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그것은 인간이 지금껏 만들었던 구성물을 통틀어 가장 복잡하고 가장 의도적인 구성물 가운데 하나였다. 한마디로 모든 위계 조직 가운데 가장 위계적인 조직이었다.

 

이 부분을 읽은 여러분은 혹시 로스토프 백작이―스스로를 예의범절의 표본이라고 주장하는 그가―탁자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이야기들을 엿듣지는 않았는지, 다소 냉소적으로 묻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의 질문과 냉소는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최고의 하인들이 그렇듯, 유능한 웨이터의 기본 업무가 바로 엿듣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화들

 

“더 일찍 얘기하면 네가 반대할까 봐 두려웠단다.”

“그래요. 전 반대예요.”

“안다.” 그가 소피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소피야, 최선의 행동이 처음엔 탐탁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실은 거의 언제나 탐탁지 않아 보이지.”

 

“장소가 바뀌었대요!” 소피야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아버지와 딸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교환했다.

“어디로?”

막 대답을 하려던 순간, 소피야가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난감하다는 표정과 함께 눈을 떴다.

“기억을 못하겠어요.”

“괜찮다.” 걱정은 기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백작이 딸을 안심시켰다.

 

백작은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력을 발휘하여, 부모로서의 충고를 두 가지 간단명료한 요소로 제한하였다. 첫째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이었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을 털어놓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다. 그는 소피야가 없으면 자신이 얼마나 상심하게 될지 솔직히 털어놓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피야의 위대한 모험을 생각하기만 하면 자신이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혔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소피야,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이제까지 인생이 나로 하여금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게 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어. 바로 네 엄마가 너를 이 호텔 로비로 데려온 날이란다. 그 시간에 내가 이 호텔에 있었던 것 대신에 러시아 전체를 통치하는 차르 자리를 내게 준다 해도 난 절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제휴

 

두 사람의 월간 모임은 1930년에 처음 시작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백작과 오시프의 만남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 언젠가부터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되었다.

 

“예, 정말 오랜만입니다.” 백작이 맞장구를 쳤다. “언제 만나서 영화 한 편 봐야 할 텐데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오시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굳이 계획 따위가 뭐 필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의지 아니겠어요?”

 

적들의 대결(그리고 용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공평한 마음의 소유자인 운명의 여신은 대체로 성공의 가능성과 모든 노력에도 실패할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마지막 순간에 여권을 훔쳐야 하는 절박한 처지로 백작을 몰아넣은 운명의 여신은 백작에게 작은 위안을 하나 선사했다. 9시 30분, 백작이 핀란드인 부부에게 디저트를 드시겠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들은 너무 피곤해서 얼른 자야겠다는 이유로 디저트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잔인함은 굳이 꾸밀 필요가 없다. 잔인함은 얼마든지 침착할 수도 있고 조용할 수도 있다. 한숨을 쉴 수도 있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을 수도 있고, 앞으로 자기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든 거기에 대해 동정 어린 용서를 구할 수도 있다. 천천히 움직일 수도 있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막무가내로 움직일 수도 있다. 비숍은 지도를 자잘하게 파인 흠이 있는 대공의 책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다음,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작을 지나쳐 미끄러지듯 나갔다.

 

“당신 같은 부류의 인간이란.” 그가 비꼬면서 말했다. “당신은 늘 당신의 행동이 옳다고 확신하지요. 마치 신이 당신의 그 값비싼 예의범절과 유쾌한 일 처리 방식에 감동한 나머지, 뭐든 당신 맘대로 해도 좋다는 축복을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오. 그야말로 오만함의 극치죠.”

 

지난 세월 동안 호텔에 투숙했던 다양한 손님들에 관한 파일 외에도 직원들 개개인에 관한 파일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 그것들은 인간적 약점에 대한 꼼꼼한 기록으로, 지각, 무례한 행동, 불평, 음주, 태만, 물욕 등등의 구체적 사례들이 적혀 있었다. 파일에 적힌 내용을 그저 그럴싸하다거나 부정확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이러한 인간적 약점들에 대해 잘못을 저질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백작은 그들 중 누구에 대해서든 각자의 장점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이 50배는 더 많이 포함된 파일을 작성할 자신이 있었다. 친구들의 파일을 끄집어내 책상에 쏟아부은 백작은 캐비닛으로 돌아가서 알파벳 R에 해당하는 파일들을 다시 점검했다. 자신의 파일을 찾아낸 백작은 그것이 가장 두툼한 파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절정

 

백작이 이런 계산 과정에서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은, 야간 점등이 된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 보는 스물한 살의 여성이 받을 충격이었다. […] 여름이 시작되는 날 밤에, 박수갈채를 받은 후에, 외모를 바꾼 후에, 어둠 속으로 탈출한 후에 개선문과 루브르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고전적인 전통에서는 건축의 뮤즈가 존재하지 않지만, 적절한 상황에서는 어느 건물의 외관이 한 인간의 기억에 인상을 남기고,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고, 심지어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 소피야였지만 그녀는 콩코드 광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치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듯 천천히 광장을 빙 돌아보았다.

 

 

그 후

 

그 후……

 

아내는 가지 말라고 말렸다. 약속 장소에 나간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고 그녀는 따졌다. 경찰이 자정에는 순찰을 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경찰은 일부러 자정 무렵에 거리를 돌아다녀요.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바보들이 약속을 잡는 시간이니까요!

 

때때로

 

그토록 오랜 세월 고향에 돌아가기를 바랐던 여행자들이 귀향하자마자 다시 고향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에게는 사무치는 감정이 무자비한 시간의 영향과 합쳐져 실망만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고향의 풍경은 그가 기억하는 풍경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고향의 사과 주스도 예전만큼 달콤하지가 않다. 예전의 건물들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고, 멋진 오랜 전통은 심란한 새로운 오락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때는 자기가 이 작은 우주의 중심에서 살게 되리라고 상상했지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전혀 없지는 않다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옛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 있으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옛날에 살던 집의 폐허 앞에 선 이 여행자는 충격이나 분노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수풀이 무성한 길을 바라보면서 지었던 것과 똑 같은 아쉬움과 평온함이 깃든 미소를 지었다. 옛 모습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과거의 장소를 찾는다면 즐겁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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