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5. 30. 14:4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 위대한 사상가, 혁명의 거울 톨스토이.

『안나 까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 세계적인 명작으로 칭송받는 장편소설도 그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지만, 그가 평생 쓴 5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통해서도 그의 삶과 문학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젊은 20대의 청년 똘스또이가 겪은 전쟁을 바탕으로 한 「습격」과 「세바스또뽈 이야기」에는 전쟁터의 우울한 참상과 생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영지 경영과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힘쓴 모습이 드러나는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와 「바보 이반」에는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초라한 귀족의 생활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서 인생을 찾고자 했던, 〈회심〉을 거친 똘스또이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를 평생 동안 번뇌하게 만든 〈죽음〉이라는 주제는 「세 죽음」, 「알료샤 항아리」, 「홀스또메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가장 강렬히 드러난다.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의 모든 작품들 면면에 녹아 있다.  

 

 

습격

어느 자원병 이야기

 

「아니, 가라고 하지도 않은 곳에 주제넘게 나서는 게 용감한 건 아니지.」

「그럼 뭐가 용감한 건가요?」

「용감한 게 뭐냐고? 용감한 게 뭐냐….」 대위는 그와 같은 질문을 처음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되풀이했다. 「용감한 사람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지.」 잠시 생각하더니 그가 말했다.

 

나는 플라톤을 떠올렸다. 플라톤은 용기란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게,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군!」 대위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젊음이란!」

[…]

「아무것도 보지 못한 주제에 뭘 기뻐하나! 자주 출정하다 보면 기뻐할 수가 없어. 우리가 지금, 그러니까 장교 스무 명이 간다고 해보게. 그중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부상을 당해. 그건 틀림없어. 오늘은 내가, 내일은 그가, 또 모레는 다른 누군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기뻐한단 말인가?」

 

자기가 하는 행동 중 하나라도 스스로의 소신대로 하는 법이 없었다. 늘 전형대로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에게 적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고 피로 모욕을 씻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이 그에게는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는 인류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경멸의 감정이 매우 드높은 시적 정서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만나 보게 된 그의 정부(물론 체르께스 여인이었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선하고 온순한 사람이며 매일 밤 음울한 일기를 쓰면서도 줄이 쳐진 종이에 수입과 지출을 정산해 적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가 되고자 하는 바가 자기에게만 보이고 동료들과 병사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그를 보아 주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단언컨대 그 누구에게서도 내가 경험하는 불안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농담하고 웃고 이야기했다. 다들 다가오는 위험에 개의치 않고, 관심도 없다는 투였다. 마치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 길로 되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예견하면 안 된다는 듯이!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이렇게 별이 총총한 가없는 하늘 아래 꼭 다투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멋진 자연에서 마음속에 원한과 복수심, 또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절멸시키려는 욕심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악한 것도 자연, 아름다움과 선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인 자연과 만나면 사라져 버려야 할 것만 같은데.

 

진정으로 웅장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또 익숙하지도 않은 내게는 한 가지가 그 모든 인상을 망가뜨렸으니 그것이 잉여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 행동과 생기와 외침 소리 말이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것은, 그건 도끼로 마구 허공을 내리치는 사람 같다는 인상이었다.

 

평상시보다 환해진 눈빛으로만 자기 일에 침착하게 몰두한 사람의 집중력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언제나 그대로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서 나는 얼마나 다양한 차이를 발견했던가. 누구는 평상시보다 침착한 듯 보이고 싶어 했고 다른 누구는 더 엄하게, 또 누구는 더 명랑하게 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대위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꾸며 대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인이 이렇게 말했다. 〈La garde meurt, mais ne se rend pas(수비병은 죽는다, 그러나 항복하지는 않는다).〉 기억할 만한 경구를 남긴 다른 사람들, 특히 프랑스 영웅들은 용맹했고 정말로 기억할 만한 경구를 남겼다. 그러나 그들의 용맹함과 대위의 용맹함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건, 그게 무슨 말이든 어떤 대단한 말이 내 영웅의 마음을 간질이더라도 그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확신한다. 첫째, 그는 대단한 말을 하다가 그로 인해 위대한 일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위대한 일을 할 사람이라면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러시아의 용맹이 가진 특별하고도 고상한 성질이다. 그러니 우리 젊은 무인들 사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프랑스 기사도를 모방하려는 투의 천박한 프랑스 문구가 들릴 때 어찌 러시아인의 심장이 아프지 않겠는가?…

 

「그럼, 안타깝고말고.」 내 옆에서 얼굴을 찌푸린 채 장총에 기대어 서 있던 늙은 병사가 말했다. 「당최 무서운 줄 모르더니. 그러니 이렇게 되지!」 그가 부상당한 소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게다가 멍청하기는. 그래서 대가를 치른 거야.」

「그럼 당신은, 무서운가?」 내가 물었다.

「전혀!」

 

이미 오래전에 떠오른 투명한 달은 짙은 감색 하늘에서 하얘지고 있었다.

 

 

세바스또뽈 이야기

12월의 세바스또뽈

 

주위 어디로 시선을 옮겨도 당신은 전쟁 야영장의 불쾌한 잔재를 보게 된다. 필연적으로 첫인상이 가장 불쾌하다. 야영장과 도시 생활, 아름다운 도시와 더러운 야영지의 기묘한 혼합은 아름답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무질서로 느껴진다. 심지어는 모두가 공포에 휩싸인 듯, 공연히 호들갑을 떨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령, 지방 출신인 이 병사를 보라. 밤색 말 트로이카에 물을 먹이러 가는 병사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콧소리를 흥얼거린다. 분명 그는 군중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이다. 군중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으며 말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든 무기를 옮기는 것이든, 뭐가 됐든 그는 그처럼 평온하게 확신에 차서, 또 그 모든 일이 어디 뚤라나 사란스끄에서 벌어지기라도 하는 듯 무심하게 자기 일을 해낸다.

 

그렇다! 당신이 처음 세바스또뽈에 왔다면 필연적으로 실망하게 된다. 사람들 얼굴에서 불안감이나 당황, 혹은 심지어는 죽음을 각오한 열정, 결연함을 찾으려 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 건 없다. 당신이 보게 되는 건 침착하게 일상의 활동에 몰두하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당당하게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라. 불행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적인 연민을 담은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며 사랑과 동정의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이렇게요, 그만 다리에 총을 맞은 겁니다. […] 그래서, 보세요, 다리를 잃었네요.」

[…]

「처음 할 일은요, 나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생각을 않으면 아무것도 아녜요. 사람이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게 더 커지는 겁니다.」

 

의사들은 절단이라는 구역질 나는, 하지만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힘을 이루는 주요한 성질이 드러난다. 단순함과 완고함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훈장이나 지위나 협박 때문이 아니다. 다른 고양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동기란 바로 가끔씩 발현되는,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부끄러워하지만 누구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 ― 애국심이다.

 

세 죽음

 

「날 준비시키지 말아요. 날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요. […] 하지만 어쩌겠어요. 신이 원하시는 대로 되는 거죠. 우리 모두에게 허물이 많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죠. 모두 용서해 달라고. 모두 용서받을 거예요. 난 나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내게도 허물이 많아요. 하지만 내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요. 난 고통을 인내하며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홀스또메르

말이야기

 

하늘은 점점 더 높아지고, 아침 노을은 점점 더 퍼져 가고, 창백한 은빛 이슬은 점점 더 하얘지고, 낫 모양을 한 달은 점점 더 생기를 잃고, 숲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위풍당당한 노년이 있는가 하면 끔찍한 노년도 있고 처량한 노년도 있다.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위풍당당하기도 하다. 점박이 거세마의 노년이 바로 그러했다.

 

실제로 이 말의 모습에는 어떤 위풍당당함이 있다. 그리고 그건 그 말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성질들, 즉 얼룩덜룩한 털로 강조되는 노쇠함과, 스스로 아름다움과 힘을 자각하고 자신감과 침착함을 표현하는 태도가 마구 섞이는 데서도 나타난다.

 

점박이 거세마에게는 사람들보다도 이런 젊은 말들이 더 고통스러웠다. 점박이 거세마는 사람에게도 말에게도 나쁜 짓을 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에게 점박이 거세마는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왜 젊은 말들은 그를 못살게 구는 것일까?

 

그 얼굴에는 무력한 노년에 대한 추하고도 허약한 원통함이 서렸고 그다음에는 절망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행동이 아닌 말[言]에 의거해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뭔가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보다는 다양한 사물에 대해 그들 사이에 약속된 말을 하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그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하게 간주되는 그런 말은 이런 단어들이다. 〈나의〉, 〈나의 것〉. 그들은 이 말을 실로 다양한 사물과 존재에 사용한다. 심지어는 땅과 사람, 그리고 말[馬]에 대해서도 쓴다.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그들은 단 한 사람만이 〈나의〉라는 말을 쓰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약속된 놀이의 규칙에 따라 가장 많은 숫자의 물건에 〈나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들 말에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바, 〈나의〉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유 재산의 권리 혹은 감성이라는 저급하고 동물적인 인간 본성 이외의 다른 것에는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음을. 사람들은 〈내 집〉이라고 말하면서 절대로 그 집에 살지 않는다. 그저 집을 짓고 유지하는 일에만 호들갑을 떨 뿐이다. 상인은 〈내 가게〉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내 직물 가게〉라고. 하지만 자기 가게에 있는 가장 좋은 직물로 만든 옷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땅을 자기 것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땅을 한 번 보지도 않고, 한 번 걸어 본 적도 없다. 다른 사람을 자기 소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과의 관계는 온통 그들에게 해악을 가하는 데에만 있다. 여자를 자기 여자라거나 아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살면서 좋은 일을 할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자기〉 소유물을 더 늘릴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이제 나는 확신하건대, 바로 이 점이 사람과 우리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다.

 

나의 불행은 세 가지였다. 난 점박이다. 난 거세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든 생물이 그렇듯 내가 신과 나 자신에게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구간 관리인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백작의 말이 아니라, 또 하느님의 말이 아니라, 마구간 관리인의 말이라는 사실이 내게 초래한 가장 놀라운 결과는….」 점박이가 말을 이었다. 「내가 쫓겨났다는 사실이다. […] 다시 한 번 우리를 달리게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더 빨라졌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당황했다. 한시라도 빨리 나를 머나먼 곳으로 팔아 치워야 한다는 결정이 났다. 그래야 소문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내게 친밀하고 사랑스러웠던 모든 것과 영원히 작별하게 된 것이 오히려 기뻤다. 그들 사이에서 난 너무나 힘들었다. 그들 앞에는 사랑, 명예, 자유가 있는데 내게는 노동, 굴욕, 굴욕, 노동이 삶의 끝까지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점박이라서, 따라서 내가 누군가의 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병 장교 밑에서 난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보냈다.

비록 그가 내 파멸의 원인이기는 해도, 또 그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난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난 그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부유하며,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이 좋았다. 너희들은 우리 말들이 지닌 고결한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의 차가움, 그의 잔인함, 그에게 의존하는 나 자신, 이 모든 게 그를 향한 내 애정에 특별한 힘을 더했다.

 

난 앓았다. 사람들은 날 괴롭혔고, 그들 말로는 〈고친다〉고 하면서 불구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눈물에 기분 좋은 짭짤한 맛이 있다는 것을.

 

둘 다 한참을 침묵했다. 주인은 손님 앞에서 뭘 자랑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세르뿌호브스꼬이는 세르뿌호브스꼬이대로 자신이 망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내색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했다.

 

「뭐하러 그러나? 그냥 목을 따게. 오늘 당장 치워 버리세.」

[…]

〈고쳐 주려나 보다.〉 그가 생각했다. 〈그러라지 뭐!〉

그리고 실제로 말은 자기 목에 그들이 무슨 짓인가를 하는 걸 느꼈다. 말은 고통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고 한 발을 내질렀지만 그래도 참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렸다. 곧이어 어떤 액체가 그의 목과 가슴으로 큰 물줄기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온몸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한결 나아졌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이다

[…]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

말고기를 움켜쥐더니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어미 늑대는 같은 식으로 둘째, 또 셋째, 그렇게 다섯 마리 모두에게 고기를 뜯어 주고, 그런 다음에야 새끼들 맞은편에 누워 쉬었다.

[…]

여름이 되어 뼈를 줍는 농부가 그 대퇴골과 두개골을 가지고 가서 일에 썼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먹고 마시던 세르뿌호브스꼬이의 죽은 몸은 훨씬 나중에 땅에 묻혔다. 피부, 살, 뼈, 그의 몸 어느 것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신 말고는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니 신에게만 구하고 신의 은총을 비는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악쇼노프는 탄원을 그만두고 기대를 접었다. 그는 오로지 신에게만 빌었다.

 

「하느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거요. 어쩌면 내가 당신보다 백배는 더 나쁜 놈인지도 모르오!」

그러자 문득 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더 이상 집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고, 감옥을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으며, 그저 생의 마지막 시간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까르 세묘노프는 악쇼노프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을 때 악쇼노프는 이미 죽고 없었다.

 

까프까스의 포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8절

 

빵은 비싼데 일은 값쌌고, 그래서 버는 족족 먹어 치웠다.

 

「우리는 베푸는데 왜 우리에게는 아무도 베풀지 않는 걸까요?」

 

「이보게, 주린 배는 빵을 달라 하고 벗은 몸은 옷을 달라 하는 법이야. 먹고살아야지. 그래, 뭘 할 줄 아나?」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묜은 놀라 말했다.

「의지가 있으면 되네. 사람은 뭐든 배울 수 있어.」

「사람들은 일을 하지요. 저도 일하겠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없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겠어요! 그래서 애 엄마의 영혼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애 엄마의 영혼을 거두어 오고 세 가지를 깨우치도록 해라.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이 세 가지를 알게 된 다음 하늘로 돌아오너라.〉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리라〉

사람에게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1년이 가도록 해어지지 않고 뒤틀리지 않으며 솔기가 풀리지도 않는 그런 장화.

〈저이는 1년 앞을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르는군.〉

자기 육신에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요.

 

〈어미는 아이들을 위해 애원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아빠도 엄마도 없이 애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남인 저 여인이 아이들을 먹이고 키워 줬구나.〉 여자가 남의 자식을 가여워하며 울음을 터뜨릴 때 저는 그 여자에게서 살아 있는 하느님을 보았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무릇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미는 아이들의 인생에 뭐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부자도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죠. […]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기심으로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들은 사랑으로만 살아갑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곧 하느님을 간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이윤과 손실은 형제지간이다.

 

오늘은 부자지만 내일은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경우도 흔하고. 그에 비하면 우리들 농민의 삶은 믿을 만하거든. 농부의 배는 홀쭉하긴 해도 오래 간다우.

 

그렇게 굳건히 사니까 우리는 아무에게도 굽실대지 않고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아.

 

딱 한 가지 우리의 고충은 바로 땅이 적다는 거지! 땅이 많다면 난 그 누구도, 심지어는 악마도 무서워하지 않으련만!

 

일꾼이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파서 그를 묻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가 차지한 땅은 3아르신이었다.

 

바보 이반

 

「그래도 왕인데!」

그러면 이반은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왕도 먹고살아야지.」

대신이 와서 말했다.

「급여를 줄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없으면 주지 마.」

「그러면 일을 안 할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일하지 말라고 해. 그러면 더 자유롭게 일하게 되겠지. 거름을 나르라고 해. 많이들 쌌으니.」

사람들이 이반에게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찾아왔다.

「저놈이 내 돈을 훔쳤습니다.」

그러자 이반이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 말은 저 사람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잖아.」

이제 이반이 바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다.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당신보고 바보래요.」

이반이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 역시 바보였다.

 

그러는 사이 똑똑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이반의 왕국에는 바보들만 남았다. 돈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일을 해 자급자족하고 선한 사람들을 부양하며 살았다.

 

화가 난 따라깐 왕은 병사들에게 왕국 전체를 휘젓고 다니면서 마을과 집을 부수고 곡식을 불태우며 가축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

병사들은 기겁해서 왕의 분부대로 했다. 집을 부수고 곡식을 태웠으며 가축을 죽였다. 그래도 역시 바보들은 저항하지 않고 울기만 할 따름이었다. 노인들이 울고, 노파들도 울었으며, 어린아이들도 구슬프게 울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지? 왜 잔인하게 부수는 거야?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

병사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더 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 군대가 뿔뿔이 흩어졌다.

 

「죄송하지만, 말쑥한 신사 양반, 우리 시누이는 손에 물집이 생기지 않은 사람은 식탁에 앉히지 않는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나면 남은 밥을 줄 테니 그걸 먹어요.」

늙은 악마는 왕의 집에서 자신이 돼지처럼 대접받는 데 마음이 상했다. 그는 이반에게 말했다.

「모두가 손을 놀려 일해야 한다니 참으로 바보 같은 법입니다. 폐하는 정말 멍청한 법을 생각해 내신 겁니다. 대체 사람이 손으로만 일을 한답니까? 똑똑한 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반이 대답했다.

「우리 바보들이 어찌 알겠어. 우리는 모두 손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일할 뿐이야.」

「그야 바보들이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가르쳐 드리죠. 머리를 써서 일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러면 폐하도 손을 써서 일하는 것보다 그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반은 깜짝 놀랐다.

「그래? 우리가 달리 바보라 불리는 게 아니군!」

그러자 늙은 악마가 말했다.

「머리로 일하는 게 쉬운 건 아닙니다. 지금 폐하는 제 손에 물집이 없다고 음식을 주지 않으시지만 머리를 써서 일하는 게 백배는 어렵다는 걸 모르십니다. 어쩔 때는 골이 지끈거리기도 하지요.」

이반은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왜 스스로를 괴롭히지?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어떻게 그게 손을 써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는 거야? 차라리 쉬운 일을 하는 게 나아.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거지.」

 

「 저는 머리를 써서 일해 왔으니 이제 가르쳐 드리겠다는 겁니다.」

이반이 놀라 말했다.

「가르쳐 줘. 다음에 손이 지치면 머리를 써야겠네.」

악마가 가르쳐 주기로 약속하자 이반은 전국에 방을 붙였다. 말쑥한 신사가 나타났는데 모두에게 머리를 써서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고, 머리를 쓰면 손으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와서 배우라는 내용이었다.

 

늙은 악마는 어떻게 하면 일하지 않고 평생 살 수 있는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었다. 바보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신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기 일을 하러 돌아갔다.

[…]

그다음 날도 하루 종일 망루의 탑에서 떠들어 댄 늙은 악마는 힘이 빠졌다. 그는 휘청거리다가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고 말았다.

「보러 가요. 드디어 신사 양반이 머리를 써서 일하기 시작했대요.」

「정말이군그래. 말쑥한 신사가 말한 대로야. 다음번에는 머리가 아플 거라더니 말야. 저런 일을 하다가는 물집 정도가 아니라 머리에 혹이 생기겠군.」

 

이반의 왕국에는 아직도 한 가지 풍습이 지켜지고 있다. 손에 물집이 생긴 자는 식탁에 앉고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이 남긴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신부 세르게이

 

까사쯔끼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1840년대 인물 유형에 속했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부도덕한 이성 관계를 의식적으로 허용하고 마음속으로도 비난하지 않는 반면 아내에게는 이상적이고 천사 같은 순결을 요구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모든 여자가 그러한 최고의 순결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고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그녀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자들을 뛰어넘고자 수도사가 된 그의 선택을 이해했다. 그녀는 그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

그 안에는 다른 감정, 바르바라가 모르는 진실한 종교심도 있었다. 그 감정은 거만함과 최고가 되려는 열망과 함께 그를 지배했다. 천사라고 생각했던 약혼녀 메리에 대한 실망과 능욕감은 너무나 커서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 절망은 또 어디로 그를 이끌었는가? 바로 신, 그의 내면에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는 어릴 적 믿음이었다.

 

〈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찬송가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건 안다. 그리고 필요하다는 걸 아는 이상 찬송가를 들으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를 괴롭힌 건 단 하나, 약혼녀에 대한 기억이었다.

[…]

기분이 괜찮을 때는 그런 생각이 괴롭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 회상을 하면 그는 그 유혹을 뿌리쳤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나 문득 삶이 어둡게 느껴질 때면 자신이 믿게 된 원칙에 대한 확신을 잃고 기억에 사로잡혀, 말하기도 끔찍하지만, 삶의 방향을 튼 것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우 구원은 순종에서 왔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견뎌 내고 인내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닥칠 때면 까사쯔끼는 자신의 의지 대신 스승의 의지대로 살았고 그런 순종에는 특별한 평온함이 있었다.

 

모든 것의 근원이 그의 오만이라고 쓰고 있었다. […] 즉 나는 이런 사람이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긍지 때문이며 그래서 수도원장의 행동을 참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오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니까.

[…]

그렇게 세르게이 신부는 은자가 되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어떤 행동을 할까? 그래, 아마 비겁해지겠지. 다 자기 자신만 챙길 거야. 하긴, 나도 비겁해질지 모르지. 하지만 난 적어도 아름답잖아. 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런데 그 수도사는 어떨까? 그 사람이 정말 내 미모에 무심할까? 그럴 리가 없어. 남자들이 관심 있는 건 그거 딱 하나잖아. 지난가을의 그 사관생도처럼 말이야.

 

세르게이 신부가 은둔 생활을 한 지 6년째였다. 나이는 마흔아홉이 되었다. 그의 생활은 고됐다. 금식과 예배는 견딜 만했지만 정작 힘든 것은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면의 싸움이었다. 싸움의 근원은 두 가지로 의혹과 육욕이 그것이었다. 두 적은 함께 고개를 들곤 했다. 그는 그 두 적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들은 하나였다. 의혹이 사라지면 육욕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는 그 두 악마가 별개라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별개의 전쟁을 치렀다.

 

제게는 믿음이 없는 순간이, 시간이, 나날들이 있습니다. […] 당신은 왜 이런 유혹을 만드셨습니까? 유혹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상의 쾌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를 준비한다면 그것 역시 유혹 아닐까요?

 

안 돼. 이게 아냐. 이건 기만이야. 타인을 기만할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이나 신을 기만할 수는 없어. 난 위대한 사람이 아니야. 불쌍하고 우스운 사람이지.

 

그러면서도 그는 모두 다 듣고 있었다. 그녀가 옷을 벗을 때 비단 천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맨발로 바닥을 내디디는 소리도 들었다. 손으로 다리를 문지르는 소리도 들었다. 자신이 나약하다고, 그래서 곧 파멸할 것 같다고 느꼈기에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 그러나 들여다보고 싶다는 열망이 불시에 그를 사로잡았다.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말했다.

「너무 비인간적이시네요. 난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 가지. 하지만 난 한 손은 타락한 여자에게, 또 다른 한 손은 화로에 집어넣은 신부처럼 하겠다. 그런데 화로가 없구나.〉

[…]

「지금 가요.」 다시 이렇게 말한 그는 오른손에 도끼를 들고 왼손 검지를 통나무 토막 위에 올린 후 도끼를 휘둘러 두 번째 마디 아래를 내리쳤다.

 

「친애하는 자매여, 왜 그대는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파멸시키려하는 겁니까? 유혹은 이 세상에 있기 마련이지만 유혹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불행이 오는 것을…. 신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기를 비십시오.」

 

매달, 매주, 매일 세르게이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소멸하고 그 자리를 외부의 세계가 채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안과 밖이 뒤집힌 것이다.

세르게이는 방문자와 기부자들을 수도원으로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었고 그래서 수도원의 권력자들은 그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예를 들어 그에게는 더 이상 노동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활에 젖어들수록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외형적인 삶으로 바뀌고 그의 내면에 있던 생명수의 근원이 말라붙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신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하면 그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이 끼친 영향과 행동의 결과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타오르는 촛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수록 내면에서 타오르는 진실의 신성한 빛이 약해지며 꺼져 간다는 생각 또한 커졌다. 〈내가 하는 일 가운데 어느 정도가 신을 위한 것이고 어느 정도가 사람을 위한 것일까?〉 […] 영혼 깊은 곳에서 그는 느끼고 있었다. 신을 위한 그의 행동을 악마가 죄다 사람을 위한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을.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그만큼 영혼을 단련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들 나름의 요구를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모든 일에 익숙해진 세르게이 신부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 얼굴들에서 새로움은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여하한 신앙심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떼로 몰려든 그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의 축복과 말이 그들에게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인파에 치여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행복해했다.

 

세르게이 신부가 혼자 살면서 모든 걸 스스로 하고 전병과 빵만 먹던 때는 벌써 오래전이다. 이미 예전에 그는 자기 건강을 스스로 챙길 권리를 빼앗겼다. 사람들은 그에게 기름기는 없어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주었다. 그는 그 음식들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예전보다는 더 먹었다. 예전에는 혐오감과 죄의식을 느꼈지만 이제는 곧잘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며 먹었다. 지금도 그랬다. 그는 죽을 먹고 차를 마셨으며 흰 빵 반 덩이를 먹었다.

 

그의 기도는 타인에게는 기적을 일으켰으나 그 자신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찮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모두에게서 받는 사랑이 그는 좋았고 필요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사랑도, 겸손도, 순결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이 존재하는 걸까? 난 밖에서 잠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닐까? 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고 내가 그걸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 자물쇠는 꾀꼬리, 딱정벌레, 자연이지.

 

절망할 때면 보통 그랬듯이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기도를 올릴 대상이 없었다. 신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팔꿈치를 괴고 누웠다. 불현듯 잠을 자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를 감쌌다. 더 이상 손으로 머리를 괴고 있을 수 없어져 이젠 팔을 뻗고 그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후 곧바로 잠들었다. 잠은 겨우 순간에 불과했다. 그는 즉시 깨어나 꿈도 아니고 회상도 아닌 상태에 빠졌다.

 

양손을 앞치마에 닦은 후 5꼬뻬이까를 줄 생각에 지갑을 가지러 가다가 10꼬뻬이까짜리 은화 말고는 없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래서 빵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찬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득 자신이 돈을 아낀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루께리야에게 빵을 한 조각 자르라고 시키고 다시 10꼬뻬이까짜리 은화를 가지러 직접 윗층으로 올라갔다. 「벌을 받는구나. 아끼려다가 두 배로 주게 됐네.」

 

「빠셴까, 이제 내가 네게 하는 말을 참회로 받아 줘. 죽기 전에 신에게 참회하는 것처럼 말야. 빠셴까! 난 성자가 아니야,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하찮은 놈이지. 난 죄인이야, 더럽고 역겹고 타락한, 오만한 죄인이야. 제일 추악한 놈은 아닐지 몰라도 아주 추악한 놈이라고.」

[…]

「그렇지만 난 계속 살아가야 해. 난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래서 네게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거야.」

 

「그럼 집에서는 기도해?」

「기도하지. 그냥 습관적으로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진심이 없는걸.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추악함을 안다는 사실뿐이야….」

 

「고마워. 네 발아래 절을 하고 싶지만 그럼 네가 불편해할 테지. 고마워.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용서해 줘!」

「나를 축복해 줘.」

「하느님이 축복해 주실 거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용서해.」

 

그러니까 이게 내가 꾼 꿈이 의미하는 바로구나. 빠셴까야말로 내가 되어야 했지만 되지 못한 인물이다. 나는 신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을 위해 살았어. 반면에 그녀는 자기가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신을 위해 살고 있지. 그렇지, 하나의 선행, 그러니까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내민 한 컵의 물이 내가 사람들에게 베푼 그 어떤 은혜보다 귀중하다. 그런데 진정으로 신에게 봉사하려는 열망이 내게 있었을까?

 

그래, 있었어. 하지만 사람들의 찬양에 더럽혀지고 너무 웃자라 버렸지. 그래, 나같이 사람들에게 찬양받기 위해 살아온 사람에는 신이 없어. 이제 신을 찾아야겠다.

 

「순례가 신을 기쁘게 하리라고 정말 확신하는지요.」

「하느님이 받아 주시겠지요. 다리를 주셨으니 심장을 드려야지요.」

「(저들에게 말해 주세요. 내가 돈을 준 이유는 양초가 아니라 차를 사마시라는 뜻이라고요). 차, 차 말입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요, 노인장.」

 

무도회가 끝난 뒤

 

그러니까 여러분의 얘기는, 선악은 사람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환경에 달렸다는 거군요. 환경이 모든 걸 방해한다고. 하지만 나는 모든 일은 우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오.

 

여기 당신 같은 사람이 바로 요즘 젊은이요. 여러분은 몸뚱이 외에는 보지를 않지.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소. 내가 더 열렬히 사랑하면 할수록 그녀의 육체는 더욱더 희미해졌거든. 요즘 여러분은 다리며 복사뼈며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벗겨 보지만 내게는, 알퐁스 카가 말한 것처럼, 내 사랑의 대상에는 언제나 철갑 옷이 둘러져 있었소. 우리는 절대 벗기지 않았소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소. 난 그녀에게도, 또 나 자신에게도 그녀가 날 사랑하는지 묻지 않았소.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오. 내가 두려워한 건 단 하나, 뭔가 내 행복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었소.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참, 사랑은 어떻게 되었죠?」 우리가 물었다.

「사랑? 그날부터 사랑은 사라지기 시작했소. 여느 때처럼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생각에 잠기면 바로 광장에서 보았던 대령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요. 그러면 왠지 불편해지고 불쾌해지니 그녀와의 만남이 점차 뜸해질밖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 버렸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방향을 틀기도 하는 거요.」

 

알료사 항아리

 

그의 인생에 너무나 범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이러했다. 어느 날 사람들 사이에는 필요에 의해서만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놀라고 말았다.

 

바로 요리사 우스찌냐를 통해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스찌냐는 고아였고 젊었으며 알료샤처럼 주인집에서 일했다. 그녀는 알료사를 불쌍히 여겼고 알료샤는 처음으로 그가, 바로 그 자신이, 즉 자기의 노동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로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 그래? 우리가 뭐 평생 사는 건 아니잖아? 언젠가는 죽어야지.」 언제나처럼 알료샤는 단순에 말했다. 「고마워, 우스찌냐, 날 불쌍히 여겨 줘서. 우리가 결혼을 못 해서 다행이야.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어. 이제 모든 게 좋아.」

그는 생각했다. 여기가 얼마나 좋아, 시키는 일만 잘하면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으니 말야.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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