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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절망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2020. 6. 12.
절망

절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초기 대표작. 나보코프에게 확고한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 『절망』은 그가 쓴 러시아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베를린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 발표한 작품으로 1931년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을 단초로 집필했다. 주인공은 자신의 치밀한 살인 계획을 ‘예술 작품’으로 여기며 살인의 과정을 기록하는데, 작가는 자칫 진부한 범죄 이야기를 풍부한 문학적 장치가 수반된 긴장감 넘치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의 틀 내에서 후에 『롤리타』에 등장하는 천재와 악, 진정한 재능과 거짓 재능, 죄와 벌 등 문학의 영원한 주제들을 독창적으로 풀어낸다.

소설 『절망』은 참회를 거부하는 살인자의 고백록이다. 주인공 게르만은 자신의 치밀한 살인 계획을 ‘예술 작품’으로 여기며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살인의 과정을 기록한다. 독자는 자신을 완벽한 예술가로 간주하는 주인공 게르만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편집광 게르만의 정체를 암시하는 숨은 작가 나보코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볼 것을 요구받는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독자들과 문학적 유희를 벌이며 작가와 주인공 사이에서 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독자를 조롱한다.

 

 

제 1 장

 

나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작가이다. 더없이 우아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이 점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오직 삶의 술수를 꿰뚫어 보는 나의 재능에, 부단한 창작에 대한 나의 타고난 애착에 힘입어 일어난 것이다……

 

철학은 돈 많은 족속의 발명품.

 

나의 자질들 중 하나인 영감에 찬 가벼운 허위.

 

초콜릿은 좋은 물건이다. 오직 쓴 부류만을 사랑하는 숙녀들이 있다. 오만한 미식가들이다.

 

다름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받아들여야 할 내용물을 기다리는 투명한 용기같이 나는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기적을 보고 있었다. 너무도 완벽해서, 원인도 목적도 알 수 없어서, 기적은 내 안에 어떤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부자가 가난뱅이를 닮을 리가 있겠소.”

 

“나한테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겠소?”

그의 무의식적인 계산에 따르면 이 닮음을 확립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한 미묘한 예속 상태에 놓여 있었다. 마치 나는 복사판이고 원판은 그인 듯했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당신을 닮았소.” 반대의 경우, 즉 “당신은 그를 닮았소”라고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닮음에 내 의지가 관여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내가 본 그는 나의 분신, 즉 육체적으로 나와 동일한 존재였다. 바로 이 완전한 동일성이 그토록 고통스럽게 나를 뒤흔들었다. 반면 그의 눈에 비친 나는 미심쩍은 모방자였다.

 

‘나는 나’라는 증거들을 찾고 있었고, 찾아내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 지금 어딘가 교외의 덤불 가에 널브러져 있는 부랑자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증거들을 말이다.

 

실로 그 사람은 특히 자고 있을 때, 이목구비의 움직임이 없을 때, 내 얼굴을, 내 마스크를, 티 없이 깨끗한 내 시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죽음, 그것은 얼굴의 안식, 얼굴의 예술적 완벽이다. 생은 그저 내 분신을 망칠 따름이다.

 

문학 속 인물들의 핏기 없는 유기체는 작가의 감독하에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 있는 독자의 피로 가득 채워진다. 그러므로 작가의 천재성이란 인물들이 이 양식 덕분에 생기를 얻고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제 2 장

 

‘증오’는 너무 강렬한 단어인 거 같다. 그건 뭔가 가정적이고 기초적이며 여자들한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결점들은 성스러운 아둔함.

 

나에 대한 아내의 사랑 때문에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리라.

 

나는 우리가 함께 산 십 년 동안 나 자신과 과거와 나의 모험들에 관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왔는데, 그 모든 게 다 연결되도록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면 나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죄다 잊어버리곤 했다.

 

작가는 끝내지 않은 초고는 공개하지 않는 법이다. 미개인은 성향이 미심쩍은 기이한 사물을 만나면 그것에 이름을 지어 붙이려 하지 않는다.

 

5월이 지나갔고, 펠릭스에 관한 기억이 아물었다. […] 하지만 논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는’ 것은 사실 기억이 아니라 상처임을 지적하는 데나 관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이지 별 뜻은 없다.

 

그는 온순하고 재능 없는 화가였다. 어떻게 보아도 그는 참새처럼 불쌍했다.

 

“그런 얼굴은 말하자면 흔치 않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모든 얼굴은 유일무이합니다.”

“그런데 말이오, 모든 얼굴이 정말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실제로 특정한 얼굴형이 있잖소. 이를테면 동물형 얼굴 같은, 유인원같이 생긴 사람도 있고, 쥐같이 생긴 사람도 있고, 돼지형 얼굴도 있고……. 그 다음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형도 있잖습니까,”

“이보쇼, 신사 양반, 화가가 보는 건 바로 차이라는 것을 당신은 잊고 있소. 문외한 눈에는 다 닮아 보이지요.”

 

제 3 장

 

“말하기 무겁지만, 내가 보기에……”

그에게 ‘무겁다’는 말은 ‘어렵다’를 의미했다. 그의 엄숙한 말투 때문에 ‘무겁다’는 말은 정말 무겁게 느껴졌다.

 

껄걸 웃으며, 재치 있게 응답하며

(넌 아주 거리낌 없이 이별하는구나!)

빛에서, 절망에서 왜,

왜 너는 한밤으로 떠나보냈는가?

 

“내 생각을 지배하는 건 옵티미스무스(낙관주의)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객을 확보해주는 건 페시미스무스(비관주의)입니다.”

 

뒤죽박죽 얼룩덜룩한 내 이야기를 용서하시라.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내 기억이 쓰고 있다. 기억에는 나름의 기질, 나름의 법칙이 있는 법.

 

제 4 장

 

대체로 나는 늘 뛰어난 유머를 구사해왔다. 상상의 재능은 이 유머와 관련 있다. 유머가 따르지 않는 상상은 비통하다.

 

“…… 하지만 평정과 의지가 있네. 오래전부터 나는 부러운 운명을 꿈꾸었네. 오래전부터 지친 노예인……”

“…… 나는 도주를 궁리했네. 궁리했네. 나는. 도주를.”

 

그는 벤치에 앉아 지팡이로 땅에 무지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곤 할 것이다. 지팡이가 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누구나 그걸 그리니까. 우리 모두가 갇혀 있는 주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굴복. 그래, 그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앉아 있을 터, 나는 비통과 격정에 사로잡혀 내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상기할 것이다. 도무지 뽑아낼 도리가 없는, 자꾸만 쑤셔대는 커다란 이. 내 여자가 되어서는 안될 여인. 악몽의 기이한 지형으로 인해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곳.

 

나는 왠지 펠릭스가 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나 자신이 그를 생각해냈기 때문에, 그는 그림자를, 반복을, 가면을 갈망하는 내 환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제 5 장

 

마침내 결단을 내린 나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곧바로 그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다. 카메라 감독이 으스댈 때 그러듯 다리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 그다음엔 청색 재킷. 재킷 속에는 은회색 니트 조끼를 입었다. 좀더 위쪽에는 전에 봤던 옷깃. 지금은 비교적 깨끗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멈췄다. 그를 머리 없이 남길 것인가, 아니면 계속 빚을 것인가?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든 쥐는 제 집이 있지만, 모든 쥐가 거기서 나오는 것은 아니죠.

 

게르만(장난하는 누로) : “이야, 자네, 철학자 같은데.”

그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했다. “철학은 부자들의 발명품입니다.” 깊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가 반박했다. “그리고 종교, 시…… 도대체 이딴 건 말이지요. 모두 공허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아요.”

 

오래 다니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배울 게 뭐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인간이 영리하다면 배움이 무슨 소용입니까? 중요한 건 천성이죠.

 

따로 있을 때 서로 닮은 두 사람은 별 관심을 끌지 않지만, 함께 있을 때면 곧바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똑같이 가난한데 사는 모습은 다른 두 사람이 있어. 말하자면 자네 같은 사람은 드러내놓고 희망 없는 비렁뱅이로 살아가네. 그런데 똑같은 가난뱅이인 다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삶을 영위하지. 속 편하게 잘 입고 배불리 먹으며 부자 놈들하고 떠들썩하게 어울려 다니는 거야. 놀라운 일 아닌가? 그건 왜 그런가? 그건, 펠렉스, 계급이 다르기 때문이야. 기왕 계급 얘기가 나왔으니, 사등칸에 무임승차한 사람과 일등칸에 무임승차한 사람을 떠올려보세. 한 사람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가고, 다른 사람은 안락하게 여행하네. 하지만 둘 다 지갑은 텅 비었어. 더 엄밀히 말하면 비록 비었을 지라도 한 사람은 지갑이 있고, 다른 사람은 그나마 지갑도 없네. 그저 구멍 난 호주머니뿐이지. 내 말은 자네와 나의 차이를 자네에게 이해시키려는 거야. 나는 대체로 되는대로 사는 배우네. 하지만 끝없이 늘어나는 고무줄 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내겐 항상 있지. 자네에겐 그게 없어. 자넨 영원히 가난뱅이로 남을 걸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야. 그런데 우리 만남이 바로 그 기적인 거지.

 

그와 같은 부류의 녀석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선한 법이다. 자신을 속이려 한다는 낌새를 채면 그 즉시 선량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불쾌한 눈빛이 유리알처럼 빛난다. 무겁고 단단한 분노가 그 녀석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닮음이 지닌 가치는 그 완전함에 비례하네.

 

그래, 나는 이 대화를 기억한다. 하지만 정확히 전할 수가 없다. 무언가가, 뜨거운 무언가가,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끔찍이 싫은 무언가가 나를 방해한다. 벗어날 수가 없다.

 

약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희뿌연 거울이, 광기가 서린 기울어진 거울이 그렇게 우리 모습을 비추었다. 진짜 인간의 얼굴이 하나라도 비치기만 하면 그 즉시 금이 갈 것만 같았다.

 

분명 그는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귀 기울임에 귀 기울였다. 그는 그의 귀 기울임에 대한 나의 귀 기울임에 귀 기울었다. 뭔가가 툭 끊어졌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던 것과 전혀 다름을 깨달았다. 불시에 의식을 붙잡고자 시도했지만 미궁에 빠져버렸다.

 

기이한 눈뜸, 기이한 여명.

 

제 6 장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일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진지하고 전지전능한 어떤 불멸의 존재가 인체모형을 가지고 노는 짓 따위의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쏟는다는 사실을 수긍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게다가, 이것이 가장 얼토당토아니한 것일진대, 끔찍이도 진부한 역학, 화학, 수학 법칙들로 놀이를 제한하고는, 결코 - 명심하시라, 결코! -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과연 그는 온순한 히스테리 환자의 등 뒤에서만 도둑질하듯 은밀히, 에둘러서 - 그게 무슨 계시란 말인가! -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진실을 말할 뿐이다. 추측대 신의 이 모든 과업은 거대한 속임수이다. 물론 사제들이 그것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그들 자신이 그 속임수의 희생양이다. 신의 이념이란 세상에 아침이 왔을 때 재능 있는 망나니 녀석이 고안해낸 것이다. 푸른 시원을 믿기에는 어쩐지 신의 이념에서 인육냄새가 너무 강하게 풍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념이 무지의 소산이란 말은 아니다. 나의 망나니는 천상의 일에 능숙했다.

 

내가 신을 믿을 수 없고, 믿으려 하지도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신에 관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이다. 신에 관한 이야기에는 세상을 잠시 떠돌다 사라진 수많은 인간 영혼들의 악취가 배어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고대의 공포가 득시글거린다. 서로 섞이며 서로를 삼키고자 애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소리들이 울린다.

 

내게 신에 관한 이야기는 낯설고 끔찍하다. 나는 그게 전혀 필요 없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독재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황홀경도 어처구니 없이 어리석은 내 처지에 대한 생각을 거두게 하지 못한다. 신의 노예라는 처지 말이다.

 

신은 없다. 불멸도 없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승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며 익숙한 손을 뻗을 때에도,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칠 것이다.

 

자, 이제 걷잡을 수 없다. 내 분신을 향한 정열이 내 속에서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우선 그건 나를 위한 어떤 흐릿한 점이 베를린 시내에 출현한 것으로 표출되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점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내 존재의 중심이 되어버린, 저 자석 같은 흐릿한 점을 향해 기꺼이 가고 있었다.

 

제 7 장

 

문학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 부조리한 필체, 마이너스 필체는 내게 항상 거울을 떠오르게 한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이다. 나는 펠릭스도 일종의 마이너스 ‘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나의 선구자들은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실수를, 그 행위 자체에 이르는 과정의 빈틈없는 자연스러움보다는 행위 후에 흔적을 지울 방법에 더 큰 관심을 두는 실수를 범했다. 그 행위는 사슴의 고리 한 개, 대테일 중의 하나, 책의 한 줄일 뿐이데 말이다. 행위는 선행하는 모든 것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의 속성이 그러하다. 만약 일을 정확히 계획하고 수행했다면, 바로 다음날 범죄자가 자수한다 해도 아무도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지닌 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예술적 허구가 삶의 진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나는 여전히 편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걷고 있었다. […] 나는 이미 나의 우유부단에 넌더리가 났다. 확고부동한 내 의도를 생각하면 전혀 까닭 없고 무의미한 우유부단이었다.

 

재산을 내놓기를 꺼리는(이미 그런 족속의 피가 흐른다) 소유주의 우유부단이라 말함직했다. 게다가 이 경우 재산은 단순히 내가 보낸 돈에 국한되지 않고, 편지에 담은 내 영혼의 몫도 아울렀다.

 

제 8 장 

 

제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아요. […] 만약 내가…… 만약 내가…… 아내가 오래 울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지만, 용서하세요, 이건 다 아주 개인적인 슬픔이지요.

 

오를로비우스 같은 사람들은 속이기 아주 쉽다. 예의범절 더하기 감상성은 정확히 어리석음과 같기 때문이다.

 

아르달리온은 그걸 ‘명예의 문제’라 말했지만, 나는 명예가 개입된 모호한 문제들에 늘 극도로 회의적이다. 게다가, 잊지 마시라, 그건 돈을 구걸한 부랑자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항상 그 이름이 비밀에 부쳐지는 제삼자나 심지어 제사자의 명예다. 아르달리온이 그 인간에게 돈을 주었고, 그는 사흘 후에 돈을 갚겠다고 맹세했단다. 봉건영주의 후예들이 항상 제시하는 시한이다.

 

“내 죽음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

“내 죽음에서 신의 숨은 의도를 느껴. 피아노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이 음악의 창조를 의미하진 않아. 그런데 난 음악을 원해. 말해봐,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형에게 이로울까?”

 

그래! 그것은 한편으로는 고뇌에 찬 정신의 심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적인 구상이다.

 

자살은 방종이야. 순교자의 변덕에 응해주는 것, 죽음을 통해 선행을 베풀고 이익을 남기게 함으로써 그의 운명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다야. 속되고 물질적인 이익이지만 어쨌든 이익이지.

 

내가 당신에게 말한 게 전부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상상해보라고. 난 이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나 자신에게 주입했어. 리다, 알겠어? 그게 공포에 질려 미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야.

 

제 9 장

 

예술은 위대하고 강력한 것이다.

 

꼼짝 않고 앉아서 쓰고 쓰고 또 쓰고 있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는 이 상황은 이상하다. 내가 쓰고 또 생각하는 것의 내용은 대체로 같다. 나는 줄곧 쓰고 또 생각하는 상황에 머무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매달리다보면 핵심을 말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지체 없이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기필코 작품을 출간하리라는 점이 쓰면 쓸수록 분명해진다. 그렇지만 특별한 위험이란 것도 없다. 원고를 보내자마자 나는 사라질 테니까.

 

신세계를 꿈꾼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게르만과 펠릭스처럼 서로서로 닮았을 것이다. 겔릭스들과 페르만들의 세상, 장비 곁에서 쓰러져 죽은 노동자를 그의 완벽한 분신이 평온한 사회적 미소를 지으며 즉시 대체하는 세상.

 

실로 그때도, 즉 내 이야기의 시곗바늘이 딱 멈추었던 시각에도, 나는 멈춰서 지금처럼 꾸물댔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곧 맞닥뜨릴 일과 상관없는 복잡한 추론으로 바빴다. 나는 아침에 길을 떠났지만, 펠릭스와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만남과 떼어놓는 칙칙한 하얀 시간을 어디에다 처분한단 말인가?

 

평범한 인간은 맨발로 다니길 좋아한다. 이런 인간이 여름에 풀밭에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신발을 벗는 것이다. 하지만 맨발로 다니는 건 겨울에도 기분 좋은 일이다. 어린 시절이나 뭐 그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까.

 

그가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의 등에 총을 쏘았다.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한다. 허공에 걸려 있다가 투명한 주름을 펼치며 흩어지던 한 줄기 연기. 펠릭스가 쓰러지던 모습. 그는 곧장 쓰러지지 않았다. […] 묻는 듯했다. “이게 뭐죠?” 그리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그래, 이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또 기억한다.

 

그러나 단 하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다. 총소리, 대신 내 귀에는 끈질긴 소리가 남았다. 그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입술 위에서 떨렸다. 나는 그 소리의 장막을 뚫고 시체로 다가가서 탐욕에 찬 눈길을 보냈다.

 

작가는 모든 것에 몹시 익숙해져서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내가 그 짝이다, 그 짝. 하지만 창조자의 은밀한 확신이 있다. 이건 틀림없다. 이목구비가 완전히 굳어 고정된 지금, 닮음은 살해된 게 누구인지, 나인지 그인지, 과연 내가 몰라보게 만들었다. 그를 보는 동안, 고른 소리를 내던 숲이 어두워졌다. 흐릿해져가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소리를 내던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고인 물속에 어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여권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생동하는 호기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사진 속 펠릭스는 분명 나를 그다지 닮지 않았다. 물론 내 사진이라고 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느낌이 이상했다. 그 순간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그로 하여금 우리가 닮았음을 느끼지 못하게 한 진짜 이유이다. 그는 사진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까 실상과는 달리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봤을 거다. 무엇보다도 여권에 열거된 그의 간단한 개인적 특성조차 집에 둔 내 여권에 있는 몇몇 규정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어리석음, 부주의, 태만, 이 모든 것이 위 사실 속에서 표현되었다. 이것은 분명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긴 하다.

 

제 10 장

 

전쟁은 아주 끔찍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가듯 전쟁도 지나갔다. 모든 쥐는 제 집이 있다.

 

어느 날 풍물 장터에서 쌍둥이를 본 적이 있다. 그 둘을 분간해내는 사람에게 상을 내걸었다. 붉은 머리의 프리츠가 한 녀석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고, 그래서 녀석의 귀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자, 이게 다른 점이오!

 

난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내 것으로 만들어왔다. 네가 집은 건 네 거다. 내 돈도 남의 돈도 없는 법이다. ‘이건 뮐러 소유다’라고 쓰여 있는 동전은 없다.

 

과연 인간의 의지가 다른 인간을 장난감 인형으로 만들 정도로 강력하단 말인가? 정말 내가 그의 수염을 깎은 것인가? 놀랍다! 이런 것들을 상기할 때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펠릭스의 고분고분함이었다. 그의 터무니없는 어리석은 기계적인 순종이었다. 하지만, 재차 말하건대, 나는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도무지 거울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예술가는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회한을 느끼지 않는 법이오.

 

아직 명성을 누리지 못한,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자존심도 강한 천재적인 신예 작가인 나는, 3월 9일에 외딴 숲속에서 탈고하고 서명한 나의 이 작품을 사람들이 어서 평가해주기를, 기만이(모든 예술 작품은 기만이다) 성공하기를 고통스럽게 갈망했다. 반면 보험사가 지불하는 저작료는 내 의식 속에서 부차적인 것이었다. 오, 그래, 나는 사심 없는 예술가였다.

 

부서져 산산조각 난 물건이 무섭지 않듯이, 나는 망자가 두렵지 않다. 두려울 게 뭐냐! 이 기만적인 그림자의 세계에서 삶을 견뎌내지 못하지나 않을까,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어떤 놀라운 환호의 순간까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지나 않을까, 내가 두려워한 건 그것이었다. 그 순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창조의 환희와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을, 해방과 축복의 순간들을 살아내야 했다.

 

신문이 여기 어딘가에 이리저리 널려 있지만 정리할 짬이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은 금방 이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인자의 신원은 알고, 희생자의 신원은 모른다.

 

모욕적인 충격을 주었던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돌연 명확해졌다. 닮음에 관한 단 한 마디 말도 없었던 것이다. 닮음을 평가하기는커녕 […] 언급 자체가 없었다. 그 사람은 나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는 투였다.

 

머저리 오를로비우스 […] 그는 내가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고 이야기했다(자, 이건 예상 밖이다!)

 

피살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질 수도 없다. 그사이 나는 그의 이름으로 살아왔고, 여기저기 벌써 그 이름의 흔적들을 남겼다. […] 여러분, 실로 나는 내 이름을 닮았다. 그건 그에게 어울렸듯이 나에게도 어울린다. 그 점은 바보나 이해 못할 사실이다.

 

나를 미치고 폴짝 뛰게 만든 또 다른 사실은 내 여권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는 거다. 그 사진에서 나는 전혀 나 같지 않았고, 정말 범죄자 같았다. 너무도 악의적으로 고쳐놓았다. 정말이지 다른 사진을 실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를테면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모든 끔찍한 혼란과 헛소리는 타성과 아둔함과 편견에 젖은 사람들이 티 한 점 없이 완전무결한 내 분신의 시체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 그러나 완전무결함에 대한 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자, 인정을 받고, 내 머리가 낳은 자식을 옹호하고 구하며, 내 작품의 깊이를 세상에 해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오르막이었다. 나는 멈췄다 다시 쓰곤 했다. 진을 빼는 이 노역은, 그러나, 내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건 쓰디쓴 약이다. 중세의 잔혹한 숙청이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

 

이 다 써버린 종이와 작별하자니 몹시 아쉽다. 그렇지만 작별해야 한다. 다시 읽고 고치고 봉해서 용감하게 부쳐야 한다. 그리고 나는 더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 […] 과연? 독자가 상상하게 하라. 모종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를, 다른 여권을 구할 수가……

 

제 11 장

 

“저기로요?” 그가 물으며 가리켰다……

지팡이로, 독자여, 지팡이로, 지팡이로, 친애하는 독자여, 지팡이로 손수 만든 지팡이로. 벌겋게 달군 쇠로 이름을 새겨넣은 지팡이로. 츠바카우 출신 아무개 펠릭스. 지팡이로 가리켰다.

 

 

심지어 그의 시체가 내 시체라고 진짜 믿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팡이는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를 체포하는 줄로 생각하며 날 체포 했을 거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수치스럽단 말이오! 실로 모든 게 바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소. 그런데 지금 보니 실수가 있었소. 게다가 그게 어떤 실수요? 아주 하찮고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실수가 지금 드러난 거요.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그녀를 대하던 당신의 태도, 당신의 그 오만한 멸시, 끝없는 냉소, 속 좁은 잔인함, 또 우리 모두를 짓누르던 냉기.

 

아, 맙소사, 내 소설이 일기로 퇴화하는구나.

 

내가 유인원을 죽였다 치자. 누구도 날 건드리지 않는다. 특히 영리한 유인원이라 치자.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는다. 맨살을 드러낸 새로운 종의 말하는 유인원이라 치자. 건드리지 않는다. 이 미묘한 계단을 따라 조심스레 오르다보면 라이프니츠나 셰익스피어에까지 다다라서 그들을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게 서서히 일어나서, 언제 경계를 넘었는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은 후에 소피스트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아마도 이 모든 건 거짓 존재, 사악한 꿈이다. 그리고 나는 프라하 근교의 어느 풀밭에서 잠을 깰 것이다. 적어도 나를 이토록 빨리 궁지로 몰아넣은 건 좋다.

다시 커튼을 걷었다. 서서 바라들 본다. 그들은 수백, 수천, 수백만, 그러나 완전한 침묵, 들리는 건 숨소리뿐, 창을 열고 짤막한 연설을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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