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6. 12. 17:24
미국의 목가 2

미국의 목가 

필립 로스 저/정영목

1997년에 발표된 『미국의 목가』는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1960년대 말의 혼돈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몰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위상에 도취되어 한껏 달아오른 미국의 취기가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며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지는지를, 그 몰락의 파도 속에 개인의 삶이 어떻게 비극 속으로 휩쓸려 가는지를 예리하게 펼쳐 보인다.

필립 로스는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목가』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강렬했던 시절인 1960년대와 그 시대를 관통하던 격동을 잘 담아낸, 자신이 완성한 서른한 편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데뷔작으로 전미도서상을 거머쥐고, 퓰리처상, 펜/포크너 상, 펜/나보코프 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등을 수상하며 육십여 년의 작품 생활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고 발전시켜온, 이 시대 최고의 작가 필립 로스가 쓴 맹렬하고 충격적인 작품이 바로 『미국의 목가』다.

 

 

 

하루가 끝나면 꿈을 꿔,

꿈을 꿔, 그러면 그것이 현실이 될지도 몰라,

세상이란 절대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꿈을 꿔, 꿈을, 꿈을.

- 조니 머서, 1940년대의 인기가요 <Dream>에서

 

1부 기억 속의 낙원

 

1

 

스위드.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전쟁 시절, 뉴어크의 우리 동네에서 스위드는 마법의 이름이었다. 심지어 도심의 오래된 프린스 스트리트 유대인 게토에서 벗어난 지 딱 한 세대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고등학교 운동선수의 뛰어난 기량에 놀라 자빠질 만큼 완벽하게 미국화되지 않았던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름은 마법이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잊고 운동에 모든 희망을 걸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전쟁을 잊을 수 있었다.

 

사실 스위드 같은 아이에게 위트나 아이러니는 스윙할 때 멈칫거리는 것처럼 고쳐야 할 문제일 뿐이었다. 아이러니는 인간적 위로이며, 신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에 족쇄로 묶여 있었고, 역사의 도구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열광적인 존경을 받았다.

 

야구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지 않는 속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한 선수가 떠올랐다가 추락하는 속도다.

 

이 아버지들에게는 모든 일이 떨쳐낼 수 없는 의무이며, 옳은 길과 그른 길만 있지 그 중간은 없다. 이들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야망, 편견, 믿음의 복합물이 흔들릴 일이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탈출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이들은 에너지는 무제한이지만 능력은 제한된 남자들이며, 쉽게 친해지고 쉽게 지겨워하는 남자들이며, 무조건 중단 없는 전진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아들이었다.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단물, 좋은 물이 있으면 맥주도 만들 수 있고 가죽도 만들 수 있는데, 뉴어크에서는 그 둘을 다 만들었다. 그래서 커다란 양조장, 커다란 무두질공장이 있었고, 이민자들에게는 축축하고 냄새나고 등이 으스러질 것 같은 일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향년 아흔여섯이었네. 마지막까지 꼬장꼬장하고 싸우기 좋아하셨지. 그래서 고령이셨음에도, 아버지가 떠나시는 걸 보는 게 더 힘들었다네.

 

우리가 스위드를, 또 그가 무의식적으로 미국과 하나가 되는 것을 우상화한 데에는 희미하나마 수치감과 자기 거부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드를 보면서 일깨워진 서로 상반되는 유대인의 욕망들은 또 바로 스위드에 의해 진정되었다. 끼고 싶어하는 동시에 밖에 있고 싶어하는,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유대인의 모습이 이 스위드라는 의기양양한 스펙터클 속에서 해소되었다.

 

그는 자신의 완전성을 이루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제거해버렸다. 노력도, 양면성도, 이중성도 없었다. 그냥 스타일뿐이었다. 스타로서 타고난 신체적 세련됨뿐이었다.

 

나는 계속 그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런 뻔한 것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나의 거죽이 사라지면 또다른 거죽이 올라올 뿐이었다. 이 사람은 존재 대신 무개성을 갖고 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무개성이 광채를 발하는구나. 그는 자신을 위해 익명성을 고안했는데, 그 익명성이 그 자신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 그러다 마침내 이 사람이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가 이 사람 위에 올라타 정지를 명령한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 너는 어떤 것도 거스르면 안돼.

 

행인을 죽이는 건 걔네들한테는 아무 일도 아니야. 운전자들을 죽이는 것도 아무 일도 아니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도 아무 일도 아니고.

 

스위드는 다시 또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켄트, 크리스, 스티브, 수상스키, 요트, 스쿠버다이빙, 뗏목 타기…… 그때까지 나에게 한 이야기로 보아 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매력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서 무엇이 재미있고 무엇이 재미없는지 전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세계가 재미있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자족이라는 케이크의 층과 층 사이에 유독한 당의(糖衣)처럼 슬며시 들어와 박힌 그 어두운 그림자.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파헤치고 돌아다니는 것은 우스운 일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건 열 수 없는 단지야. 생각하는 것으로는 이 사람을 깨고 들어갈 수가 없어. 그게 이 사람의 수수께끼 중에서도 수수께끼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게서 뭘 얻어내려 하는 것과 같아.

 

이반 일리치의 삶이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매우 끔찍했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하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

 

우리는 우리의 피상성, 우리의 천박함과 싸워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전에, 만나기를 고대하는 동안 오해를 해버린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오해를 한다. 그러고 나서 집에 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 만남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또 완전히 오해를 해버린다.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사실은 이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착각일 뿐이며, 오해가 빚어낸 놀라운 소극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어쩌면 사람들에 관해서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래, 그런 정말 복받은 거다.

 

그 미소에는 어떤 속임수도 없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최악이었다.

 

여기에는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야. 늘 그랬어. 이 사람의 이런 동정 같은 태도는 꾸며서 나오는 게 아니야. 너는 존재하지도 않는 깊이를 원하는 거야. 이 사람은 무(無)의 화신이야.

그러나 내가 잘못 생각했다. 내 평생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잘못 알았던 적은 없었다.

 

2

 

일본의 무조건 항복 여섯 달 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적 도취의 기간에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솟아오르는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었습니다.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가 되어라!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목표를 가지는 것이었고, 목적은 목적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의 자기희생이라는 거의 법제화된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서 제멋대로 반항하는 태도를 뽑아버리고, 품위 없는 충동을 모두 지하로 밀어냈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그들의 흔들림 없는 그 열렬한 환상을 부수고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방황하려면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거나, 아니면 무척 어리석어야 했을 것입니다.

 

망상 가운데 노인의 노스탤지어에서 생긴 망상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없지요.

 

그 생생한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충만함. […] 그 자잘함, 그 엄청난 자잘함, 그 자잘함의 힘, 자잘함의 무게.

 

오랫동안 기껏 우리 자신을 불투명하게 칠해왔는데, 여기(동창회) 오니 곧장 우리가 투명하다고 믿었던 때로 돌아가게 되네.

 

여전히 나는 아이라가 누구인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아이라가 우리집에서 과일을 먹으며 아버지한테서 그의 생각을 묻는 질문을 들은 일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힘도 바닥난 상태였다. 그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뜯겨나와 망각으로 밀려들어간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럼에도 내가 놓쳐버린 그것이 아이라에게는 완전히 뿌리를 내려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따라서 아리아와 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왜 일반적으로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틀렸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

 

사실 사람들이 이런 데 앉아서 ‘과거’라고 부르는 건 과거의 조각의 조각도 아니잖아. 뇌관을 제거한 과거지. 사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어, 아무 것도. 노스탤지어일 뿐이야. 헛지랄이라고.

 

남이 자기 말을 들어주는 데 익숙해져 있는 차가운 존재였다. 이 얼마나 대단한 진화인가. 괴짜 소년이 스스로에게 냉엄한 확신을 가진 어른으로 다듬어 지다니.

 

“뭐 우리 둘 다 자기 말이 맞다는 걸 보여주려고 많은 걸 거는 아이였지.”

“그래, 틀린다는 건 나한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어. 절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지.”

 

“그 ‘똥덩어리’란 게 뭐야?”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그림이지. 켜켜이 쌓인 오해들. 또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그림. 쓸모없어. 주제넘고. 완전히 엉망이고, 그래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그 그림들을 기준으로 사는 거야. ‘이게 저 여자다, 이게 저 남자다, 이게 나다, 이게 그 일이다. 이게 그 일이 일어난 이유다……’”

 

멍청하게 길려졌고, 관습에 맞게 만들어진 거라는 등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그런 평범하고 품위 있는 인생이지만, 거기에서 끝이라고 말이야.

 

형이 단순하다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평생 아주 착했다는 이유로 형이 단순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모어는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단순해 보인다고 해서 절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그래도 형한테 자신에 대한 의문이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 만일 자신에 대한 의문이 인생에서 너무 일찍 찾아오는 것보다 나쁜 게 있다면 그건 그게 너무 늦게 찾아오는 거야. 형의 인생은 폭탄에 의해 박살나버렸어. 그 폭발의 진짜 피해자는 시모어야.

 

1968년 일이야. 난폭한 행동이 아직 새롭던 시절이지. 사람들은 갑자기 광기를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어. 공적 과시가 난무하고, 심리적 억제가 사라지고. 권위는 힘을 잃고, 아이들은 미쳐버리고, 모두가 위협을 느꼈지. 어른들은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계속 이 시모어라는 인간을 짓밟고 또 짓밟아봐. 그래도 이 인간은 그냥 계속 노력만 할거야.”

“가엾은 새끼. 그게 그 새끼 운명이었어. 짐을 감당하고 똥 같은 일을 다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진 인간이야.”

 

제리의 이론에 따르면 스위드는 착하고, 다시 말해 수동적이고, 다시 말해 늘 옳은 일을 하려 하고, 사회적으로 통제된 인격체라서 폭발하지 않고, 절대 분노에 굴복하지 않는다. 분노하는 특질을 자신의 채무로 떠안으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자산으로 가질 수도 없다. 이 이론에 따르면, 결국 스위드가 죽은 것은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격성은 사람을 닦아주고 치유해준다는 것이다.

 

삶에서 정당한 분노보다 사람을 더 의기양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는 말에는 이의를 달 수 없다.

 

신 대접을 받을 때 치러야 할 한가지 대가는 모여드는 신자들의 줄어들 줄 모르는 환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우스꽝스러운 아버지가 그런 뛰어난 아버지를 낳았다는 것, 그리고 그 아버지가 그런 아이를 낳았다는 것, 누가 그 이유를 좀 설명해주면 좋겠어. 유전학의 분리의 법칙이 적용된 것인가? 그래서 그애가 시모어 레보브한테서 체 게바라에게로 달려가야 했던 건가?

 

몸,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버릴 수 없고, 죽음의 이편에서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

 

스위드에게는 이 모든 일이 - 무엇이 안 그렇겠느냐만은 - 상황의 부조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또하나의 부조리로 끝이 나 버렸다. 폭탄으로.

 

두번째 결혼, 양식과 고전적인 절제가 지배하는 통합된 삶, 다시 한번 관습이 크든 작든 모든 것을 규정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방벽 역할을 하는 삶을 향한 두번째 도전, 다시 한번 가족 질서의 핵심에 놓인 표준 규칙과 규제에 충성을 맹세하여 전통적이고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겠다는 두번째 도전, 그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긋난 것, 특별한 것, 부적절한 것, 평가나 이해가 어려운 것을 피하는 능력이 있었다.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 생각한다. “이걸 이 사람한테 이야기해햐지.” 하지만 왜? 말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서 생기는 충동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나중에 기분이 더러워지는 이유다. 그렇게 마음의 부담을 덜어냈을 경우, 그 이야기가 진짜 비극적이고 끔찍하다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빠진다. 고백에 내재한 자기 현시가 비참한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드는 원래 ‘무슨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스위드 특유의 유토피아적 사고 형태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딸과 그 십 년의 세월. 스위드의 성으로 침투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 미국이라는 전염병.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의 목가로부터 스위드를 끌어내 그 대립물이자 적인 모든 것 속으로, 분노, 폭력, 반(反)목가의 절망 속으로, 미국 고유의 광포함 속으로 집어넣는 딸.

 

세심하게 조정된 선(善)으로 가득찼던 그가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위험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추며 살겠다는 것이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은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형은 그전에는 한 번도 “왜 모든 게 요 모양 요 꼴일까?”하고 물어본 적이 없어. 모든 게 요 모양 요 꼴로 늘 완벽한데 뭐하러 그런 걸 묻겠어?” 왜 모든 게 요 모양 요 꼴일까? 답이 없는 질문이지. 하지만 형은 너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그때까지는 그런 질문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거야.

 

사람들은 역사를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다.

 

스위드, 그의 동네, 그의 도시, 그의 나라가 희망에서 태어난 온갖 환상으로 부풀어 자신감의 절정에 이르며 환희에 찬 전성기를 맞이했던 시절, 그 시절 위퀘이크의 유명한 대표 선수였던 스위드가 우리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운명을 맞이한 이유는 무언가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소년에게든 어른에게든 불가능한 소망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심리적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고, 작가라면 미학적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영웅이 파멸할 때 그를 끌어안는 것 - 모든 것이 그를 깎아내리려 할 때 내 안에서 그 영웅의 삶을 펼쳐보는 것. 나자신이 그의 불운 안으로 들어간다고 상상하는 것, 영웅에게 나의 찬사를 집중하던 시절에 그의 정신없는 상승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비극적 추락이라는 당혹스러움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 - 그래, 그것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내가 문제가 아냐. 엄마가 문제야!” 선생이 메리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 식으로 봐주려고 할 때는 선생이 문제가 되었다. 모두가 메리를 안쓰럽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문제가 되었다. 메리가 갑자기 유창해져서 더듬거리지 않을 때는 칭찬이 문제가 되었다.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아이를 그 방에서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메리가 자신의 오점을 발판으로 아인슈타인이 되도록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괴로운 자기 점검은 끝날 줄 몰랐다. 답은 시원치 않았지만 질문은 바닥나지 않았다.

 

이제 그가 기억하는 그의 과거에는 순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이 실제로 하고 싶은 말보다 더한 것이거나 덜한 것임을 알았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람들이 실제로 하고 싶은 것보다 더한 것이거나 덜한 것임을 알았다. 그래,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뭔가가 달라졌지만, 사람들이 의도한 대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심지어 메리의 말더듬증보다도 더 당혹스러운 수수께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디에도 유창함은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말더듬이었다.

 

메리는 자신의 인생을 기형으로 만드는 것은 말더듬증이 아니라, 그것을 뒤집으려는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친 듯한 노력.

 

그들이 신경쓴 것은 메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메리가 말을 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산 채로 타-타-타-타-타-타 죽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밤낮없이 좆 같은 말더듬증과 씨름하느라 평생을 보내지는 않을 거야!

 

너는 전쟁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모든 것에 반대하는 거지.

 

“그애는 그런 성장을 원하지 않아.” “지금은 그렇지. 오늘은 그렇지. 하지만 내일이 있잖아.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유대가 있어. 그건 엄청난 거야. 우리가 그애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계속 이야기를 하는 한, 내일은 분명히 올 거야.”

 

“너는 전쟁에 화를 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화를 내고 있지. 하지만 전쟁에 화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런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너 한계가 뭔지 아니?” “한계. 아빠는 겨우 그딴 생각뿐이죠. 극단으로 가지 말라는 거. 참 나, 가끔은 아빠도 좆도 극단으로 가봐야 해. 아빠는 전쟁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쟁은 극단이라고요.”

 

“네가 미성년자고, 납에 나갔다 온다고 하고 나갔다가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네 부모와 젠장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어.” “하-하-하지만 아빠는 나를 미-미-미-미치게 만든다고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런 분별력 있는 부모 노릇 때문에요! 나는 이해받고 싶지 않아요. 자-자-자-자유롭고 싶다고요!”

 

“아빠가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빠가 말할 수 있는 거, 아빠가 가-가-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조-좆도 조-조-조그만 가-가-가족의 행복뿐이로군요!”

 

뭘 그렇게 두려워하세요? 아빠는 그저 두려움 더-더-더-더-덩어리일 뿐이에요. […] 아빠의 두려움을 나한테 다 토해내서 나도 아빠나 엄마처럼 두려움 많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내가 엉뚱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까봐요? […] 그게 아빠가 두려워하는 건가요? 아니겠죠. 아빠, 왜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전쟁 같은 거 말이에요.

 

아빠는 늘 내가 어떤 식으로든 좆같이 망가질 거라고 너무나 확신해요. […] 아빠는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아요.

 

“너는 정치적 급진파와 어울리고 있어.”

“급진파. 자-자-자-자기하고 생각이 다-다-다르다고 급진파래.” […] “극단이란 말은 자유라는 걸 엉뚱하게 오해해서 작은 나라에 포-포-포-폭탄을 퍼부을 때 쓰는 말이에요.”

 

아빠. 극단적인 건 생각이 아니라고요. 누군가는 변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할 만큼 뭔가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거예요. 아빠는 그걸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아빠 문제예요.

 

“네 고향에서 시작해, 메리. 그게 전쟁을 끝내는 길이야.” “혁명은 시골에서 시-시-시작되지 않아요.” “우린 지금 혁명 얘기를 하는 겡 아니야.” “아빠는 혁명 얘기를 하는 게 아니죠.”

 

 

2부 추락

 

4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오. 딱 한 단어 때문에 운이 좋다는 거요. 세상에서 가장 큰 한 단어 때문에. 바로 가족이오.

 

이런 사업에 붙어 있으려면 동기부여를 해줄 사랑과 유산이 꼭 필요하거든요. 여기서 견딜 수 있으려면 여기에 강하게 묶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죽고 싶고 그 아이를 찾고 싶고 그 아이를 죽이고 싶고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도 그 아이가 겪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 아이를 구하고 싶다고 부르고, 이런 고삐 풀린 분출, 이것은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라고 부르지만 효과가 없다. 나는 반은 미쳤다. 그 폭탄의 박살내는 힘은 너무 강력하다.

 

그녀를 가지 않게 계속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계속 장갑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장갑, 가죽, 그의 무시무시한 수수께끼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애원하고 간청할 수만 있다면, 이 무시무시한 수수께끼와 나만 단둘이 남겨두고 가지 말아줘요…… “원숭이와 고릴라도 뇌가 있고 우리도 뇌가 있죠. 하지만 원숭이와 고릴라에게는 이것 한 가지, 바로 엄지가 없습니다. 그 녀석들은 우리처럼 엄지를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보게 할 수가 없죠. […] 이것 덕분에 우리는 연장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고 다른 모든 걸 할 수 있는 거죠. 뇌보다 중요한 거예요.”

 

레보브 씨는 피부가 갈색이나 노란색인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검둥이가 지켜주는 안전한 저택에서 호화롭게 사는 지저분한 작은 자본가일 뿐이에요.

 

그들은 메리, 열여섯 살짜리 말더듬이 메리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과 그 가족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이런 어린아이의 손에 휘둘린다는 비현실성! 머리에 ‘노동계급’에 관한 환상이 가득한 이 혐오스러운 어린아이! […] 세계의 무대 위를 당당하게 걷고 있는 척하는 작디작은 존재! 정말로 하찮기 짝이 없는 이 돌멩이 같은 존재! 이들의 역겨운 사업이라는 것은 억압받는 자들과의 동일시로 얄팍하게 위장했을 뿐, 사실 분노에 찬 유아적 자기중심주의의 발현에 불과하지 않은가. 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이 여자의 막중한 책임감이라니!

 

생각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의 무지 옆에서 생각은 빛이 바랠 뿐이었다. 이들은 생각을 하지도 않으면서 전지全知의 존재가 되었다.

 

‘나는 지저분한 건 보고 싶지 않아. 어두운 건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에요, 도니. 세상은 사실 지저분하죠. 사실은 어두워요. 무시무시하다고요!

 

당신이 미움이라고 부르는 건 그애 엄마의 불안이었어. 나는 그 표정을 알아. 그건 말더듬증에 대한 불안이었어. 맙소사, 그건 미움이 아니었다고. 그 반대였어. 걱정이었단 말이야. 고민이었어. 무력감이었다고.

 

이 아이는 그를 아무리 모욕해도 물리지 않았다. 이 아이의 증오 때문에 그들 삶의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 아이야말로 증오 그 자체였다. 폭도인 이 아이야말로!

 

‘정치화된’ 미치광이.

 

그들이 헌신적인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자신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모두에게 아주 큰 칭찬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두운 아이의 눈. 흥분과 재미가 가득한 눈. 오만이 가득한 눈. 비합리성이 가득한 눈. 기묘함이 가득한 눈. 리타가 가득한 눈. 그 절반만이 연기였다. 흥분시키려는. 격노하게 만들려는. 부추기려는. 그녀의 의식이 바뀌어버린 상태였다. 격변을 일으키는 꼬마 도깨비. 재앙을 가져오는 요정. 그녀는 그를 괴롭히고 그의 가족을 파괴하는 데서 자기 존재의 사악한 의미를 찾는 듯했다. ‘폭력의 아이.’

 

오 년이 흐른다. 설명을 찾는 오 년.

 

물론 아직 잿더미가 되지 않은 사람들의 대탈출의 물결에 자신이 가담할 경우, 메리가 마침내 그를 비판하는 물샐틈없는 고발장을 쓸 것 -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러운 탐욕 때문에 흑인과 노동계급과 빈민을 희생자로 만든다! - 이라는 두려움만 없었다면, 그도 망설이지 않고 짐을 싸 떠났을 거라는 이야기, 지금 당장이라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상주의적인 구호에는 아무런 현실성이 없었다. 한 방울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딸이 미친 짓을 합리화 할 수 있는 기회를 그 자신이 제공할 수는 없었다.

 

“내 훌륭한 친구들이 신문을 읽다 말고, 흑인들은 죄다 데려다 줄을 세워놓고 쏴 죽여야 한다고 그래. 그럼 나는 그 친구들한테 히틀러가 유대인한테 한 짓을 이야기해야 해. […] 유대인들하고, 내 나이 또래, 나만큼 볼 거 다 본 사람들하고,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하고, 나는 그 사람들하고 말다툼을 하고 있다고. 내가 지지해야 할 것에 반대를 하고 있단 말이야!”

“왜?”

“양심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가 읽거나 보거나 듣는 모든 것은 한 가지 의미로 귀결된다.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족히 일 년 동안은 마을에 들어가면 잡화점이 있던 곳을 반드시 본다.

 

그것이 외적인 생활이다. 최대한 예전과 똑같이 생활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적인 삶이 따라붙는다. 짓누르는 강박, 억눌린 욕구, 미신적인 기대, 끔찍한 상상, 환상 속의 대화, 대답 없는 질문들로 이루어진 소름 끼치는 내적인 삶,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을 매질한다. 엄청난 외로움, 약해지지 않는 가책. 심지어 그 아이가 열한 살이고 자신이 서른여섯 살이었을 때 둘이 젖은 수영복을 입고 딜 해변에서 함께 집으로 차를 몰고 오다 키스한 것까지. 그게 원인일 수 있을까? 어떤 게 원인일 수 있을까? 어떤 것도 원인이 아닐 수 있을까?

어어엄마한테 키-키-키스하는 것처럼 나한테 키스해주세요.

일상적인 세상에서는 그 자신으로 살아가는 엄청난 허세를 품위 있게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남자로 가장할 때 찾아오는 모든 수치를 떠안으면서.

 

5

 

예상치 못한 것을 찾아내 뿌리째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상치 못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모든 것의 이면이 결국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에이번에 갔다. 그러나 돈은 그 아름다움을 노골적으로 자랑할 수 없었던 것처럼, 거기에서 멀어질 수도 없었다. 권력은 누려야 하고 무자비해야 하며, 아름다움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다른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이렇게 조용히 전심을 기울이는 것에서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비인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언젠가 그를 완전히 지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전적으로 혐오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것, 그 자신은 떡갈나무를 잘라 만든 대들보가 끄떡없이 무게를 버텨주고 있는 백칠십 년 된 돌집이 아니라는 것, 그 자신은 그보다 덧없고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그는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피로의 순간에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정복하려는 부모와 어리석고 불확실한 아이 사이의 긴장.

 

딸이 한 짓 때문에 딸이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가 없는 세상과 그 아이가 한때 있었던 세상과 그 아이가 지금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혼란스럽게 살아가는 대신, 그때든 지금이든 그 아이의 세상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큼만 그 아이를 미워할 수만 있다면.

 

산 채로 묻힌 스위드를 수의처럼 덮고 있는 느긋하고 미소 짓는 가짜 스위드가 아니라 다시 한번 환전히 자연스러운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살인혐의자의 아버지가 되기 전, 나뉘지 않는 하나의 존재였던 상태를 희미하게나마 재구축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쭉 뻗어나가는 신체적인 자신감과 자유를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 그를 두고 생각하는 것처럼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살 수만 있다면.

 

맹목적인 적대와 위협하고 싶은 유아적 욕망 - 그것이 그 아이이의 이상이었다.

 

미국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병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을 사랑했다. 미국인인 것을 사랑했다. 그러나 당시에 그는 감히 아이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악마, 모욕이라는 악마가 풀려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미국을 싫어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 속에서 살듯이 미국 속에서 살았다. 그의 젊은 시절의 모든 기쁨이 미국의 기쁨이었고, 모든 성공과 행복이 미국의 성공과 행복이었다. 이제는 단지 아이의 무지한 증오를 진정시키겠다고 그것에 관해 입을 다물 필요가 없다. 모든 미국적인 감정이 없다면 그가 한 인간으로서 느끼게 될 외로움,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 느끼게 될 갈망, 그래, 그의 성취에 의미를 부여한 모든 것이 미국적이었다.

 

레보브 씨 부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비극의 희생자예요. 차이가 있다는 우리는, 비록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족으로서 살아남을 거라는 점이에요.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으로 살아남을 거예요.

 

스위드가 보기에 다른 의미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외로움을 증언하는 것이 그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 그래, 우리는 외롭다. 몹시 외롭다. […] 외로움을 뜻밖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막상 경험할 때는 깜짝깜짝 놀라게 되지만, 자신을 뒤집어보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안이 안에 있어 외로운 대신 안이 밖으로 나온 채로 외롭게 되는 것일 뿐이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메리, 네 어리석은 아버지보다도 더 어리석은 메리, 심지어 건물을 폭파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건물이 있어도 외롭고 건물이 없어도 외롭단다. […] 인간이 만든 폭약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도 그것을 건드리지는 못한단다.

 

저 쓸쓸해요. 메리는 아주 조그마했을 때 그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 쓸쓸하다. 두 살짜리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말인 것 같았다. […] 어쩌면 그래서 말더듬증이 생긴 것인지도 몰랐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발음하기도 전에 신기하게 익혔던 그 모든 단어들, 심지어 “저 쓸쓸해요”까지 포함하는 어휘들의 감정적인 부하(負荷).

 

자기 자식한테서 달아난다? 무서워서? 그러나 아이의 영혼은 소중히 품어주어야 했다. “삶이야!” 그는 자신을 타일렀다. “나는 저애를 놓아버릴 수 없어! 우리의 삶이야!”

 

6

 

가장 편리하고 골이 빈 관념의 노예

 

왜 메리처럼 똑똑한 아이가 자기 대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아빠는 자기한테 기-기-기대되는 일만 할 뿐이라고요!

 

처음에는 ‘민중’이라는 이타적인 헛소리더니, 이제는 ‘완전한 영혼’이라는 이타적인 헛소리였다.

 

늘 과대한 비현실, 머나먼 추상만 있을 뿐, 자기를 찾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미친 사람의 합리적인 아버지.

 

“죄 없는 자식이라는 관념을 여전히 강렬하게 갈망하시는군요.”

“누구였어? 그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 없어. 누가 책임자야?”

“아빠, 저 하나만 싫어하시면 돼요. 괜찮아요.”

 

인생이란 우리가 살아 있는 짧은 기간일 뿐이다.

 

사실 스위드는 그동안 쭉 알고 있었다. 유혹에 빠지게 하는 자의 도움이 없었어도 메리 내부의 노여움은 모두 밖으로 터져나왔음을.

 

이것이 그들이 삶이 전개된 방식이었다. 메리는 아무것도 없이 유어크에 살고, 그는 메리 외에는 모든 것을 갖고 올드림록에 사는 것.

 

“세상은 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주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포기해요. 무엇이 우연의 일치를 이루느냐 하는 건, 아빠와 제가, 아빠……”

[…]

“나한테 영향을 주고 있단 말이야! 진드기 하난 못죽이면서 나는 죽이고 있단 말이야! 네가 거기 앉아서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게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어. 네 무력함이 나에게는 엄청난 힘이야.”

 

그들은 멈출 수 없는 기계처럼 자신들의 강철 같은 이상주의를 추동할 혐오를 만들어낸다.

 

우리 똑똑한 유대인 애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느님 맙소사, 부모들이 이제 잠시 억압을 안 당하나 했더니, 아이들이 억압이 있는 곳을 찾아 달려가다니. 억압 없이는 살 수가 없는가보구나. 한때는 유대인들이 억압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억압이 없는 걸 피해 달아나잖아. 한때는 가난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부를 피해 달아나잖아. 미친 짓이야. 부모는 너무 잘해줘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으니까 대신 미국을 미워하는 거야.

 

이 아이는 나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어떤 것의 힘 안에 들어가 있다. 미쳐버린 어떤 것.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들의 부모도 이것에 책임이 없다. 그들 자신도 이것에 책임이 없다. 뭔가 다른 것의 책임이다.

 

어이 흰둥이, 미쳐버린 어떤 것이란 바로 미국의 역사야! 미 제국이라고!

 

헌신적인 알제리 여자는 ‘거리에 홀로 있는 여자’라는 역할과 혁명적인 임무 양쪽을 본능적으로 익힌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알제리 여자는 비밀 요원이 아니다. 하지만 수습 기간도 없이, 브리핑도 받지 않고, 소란도 떨지 않고, 핸드백에 수류탄 세 걔를 넣고 거리로 나간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모방할 인물도 없다. 반대로 여기에서는 강렬한 극화가 이루어진다. 여자와 혁명가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이 알제리 여자는 곧바로 비극의 수준으로 올라간다.

 

아이의 진짜 냄새가 그에게 이르렀다. 썩어가는 산 것과 썩어가는 죽은 것의 악취를 제외한 가장 고약한 인간 냄새.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뭔가를 해보려고 점점 더 미쳐간다.

 

미래의 지문인 얼굴.

 

아이를 보호하고 또 보호하지만, 아이는 보호가 불가능하다.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해도 견딜 수 없고, 보호한다 해도 견딜 수 없다. 다 견딜 수 없다. 아이의 무시무시한 자율성의 끔찍함. 세상에서 최악의 것이 그의 자식을 데려갔다.

 

위로를 구하는 문제에서는 동생은 늘 적당하지 않고, 아버지도 적당하지 않고, 어머니도 적당하지 않고, 아내도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하고 강해져서 계속 남들을 위로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스위드는 제리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된다. 그 목소리의 짜증, 거친 독선을 듣고, 이 녀석은 나한테는 소용이 없군, 하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딸을 사랑해. 이 세상에서 그애만큼 사랑한 건 아무것도 없어.”

“물건으로서.”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물건으로서…… 형은 그애를 좆 같은 물건으로서 사랑했단 말이야. 형이 형 부인을 사랑하듯이.”

[…]

왜 위로한다는 핑계조차 없이 이런 공격을 하는 걸까? 대체 왜?

 

형이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예의바른 사람이지. 모든 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는 사람이지. 최고의 예절을 갖춘 사람이지. 절대 규약을 깨지 않는 아이야. 사회가 뭘 하라고 하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예절. 하지만 예절이란 건 형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거라고.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뱉고 있네. 안 그래? 네 사람?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

세상에서 전화를 하기에 가장 적당치 않은 인간에게 전화를 했다. 이 녀석은 살기 위해 칼을 휘두른다.

 

“맞아, 형은 배교자가 아니야. 형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지.”

“이해를 못하겠어. 네가 그 말을 하니까 꼭 모욕처럼 들려.”

 

제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만 들을 뿐이다. 왜 이것이 제리가 형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걸까? 형은 최악의 고난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제리는 성격 분석이라는 미명하에 오랫동안 형에게 품고 있던 모든 경멸을 쏟아내는 걸까?

[…]

이런 이야기를 꼭 해야 했다면, 왜 내가 으스댈 때 하지 않았던 걸까?

 

형은 모든 것에 가짜 이미지를 갖고 있어. 형이 아는 것은 오로지 좆 같은 장갑 뿐이야.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

 

그는 병원에서 하라는 일을 하지 않고, 아버지가 기대하는 일을 하지 않고, 아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하고, 하루 매분마다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말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어떤 것도 비밀이 아니다. 그의 의견도, 그의 좌절도, 그의 충동도, 또 그의 욕구나 증오도 비밀이 아니다. 의지의 영역에서 그는 얼버무리지도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는 왕이다. […]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 선택은 없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어김없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 절대 그것을 주지 않는다.

 

남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 자신을 탓해. 관용을 갖고 모든 입장을 존중해. 그래. 그게 ‘자유주의적’인 거야. 나도 알아, 자유주의적인 아버지.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중심에 뭐가 있어? 늘 상황을 지탱하려는 거. 그런데 그러다 씨발 지금 어떻게 됐나 보란 말이야.

 

“내가, 내가 충분치 않다는 뜻이라면, 그러면, 그러면…… 너한테 장담하는데…… 너한테 장담하는데,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인간이라 해도, 충분치 않은 거야.”

“바로 그거야! 맞았어! 우리는 충분치 않아. 우리 누구도 충분치 않아!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하는 사람도 포함해서 말이야!”

“세싱에, 일을 올바르게 하고 다니다니. 형, 겉모습을 깨버리고 형 딸의 의지와 형의 의지를 맞세우는 일을 할 거야, 말 거야? 운동장에서는 그랬잖아. 그래서 점수를 냈잖아, 기억나? 다른 선수의 의지에 형의 의지를 맞세워서 점수를 냈잖아. 도움이 된다면 이게 시합이라고 생각해.”

 

식민지 시대의 옛 미국, 형은 그 모든 겉모습이 대가 없이 그냥 올 거라고 생각했지. 점잖고 순수한 겉모습이. 하지만 그것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시모어. 나라도 폭탄을 던졌을 거야.

 

제리는 늘 장담한다.

 

 

3부 잃어버린 낙원

 

7

 

“히틀러가 한 일 가운데 존슨이 베트남 사람들한테 하지 않는 일은 없어요.”

“베트남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 들어가지는 않잖아.”

“베트남 자체가 하나의 커-커-커다란 수용소라고요!”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요.”

 

신교도 […] 그들이 바로 미국이다. […] 이제 아무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쟁의 교훈이었다.

 

그녀를 들어올린 다음 욕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 그녀도 그만큼이나 놀라곤 했다. 단지 그녀가 무척 아름다워 보여서가 아니라, 방금 한 짓이 그녀를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무척이나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사교적인 얼굴은 사라졌다 - 그냥 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남들에게는 비밀이었고 또 비밀이어야 했다. 특히 아이에게는.

그러나 이런 전시회가 스위드에게서 자극한 생각은 주로 한 캔버스를 얼마나 오래 보는 척하다가 다른 것으로 옮겨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가 실제로 하고 싶어서 했던 유일한 일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각 그림 옆의 벽에 붙어 있는 제목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돈이 그러지 말라고 했음에도, 그의 재킷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그건 놔두고, 붓으로 그려놓은 것을 봐”라고 말했음에도 굳이 제목을 보았지만, 붓으로 그려놓은 것을 보았을 때보다 더 낙담하고 말았을 뿐이다. <구성 #16> <그림 #6> <무제 #12>……

 

사람이 여러 겹의 생물이라는 것은 스위드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그가 정말 놀라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존재가 바닥난 것처럼 보일 때였다. […] 그들은 삶이 풍요롭고 충만할 때는 은근히 그들 자신이 지겨운 것 같았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과 건강과 균형 감각을 몽땅 처분해버리고 어서 다른 자아로, 진정한 자아로, 완전히 착각에 빠져 좆같이 망가져버린 자아로 내려가고 싶어 안달인 것처럼 보였다.

 

8

 

학자들의 세계, 그 세계란 늘 다른 사람들을 적대하고 무슨 말에든 도전하는 것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곳이었다.

 

뉴어크의 본질을 이루는 건 부패요, 새로운 건, 첫째, 인종이오. 둘째, 세금이오. 거기에 부패를 더하면, 문제 전체가 드러나지.

 

요즘은 이른바 ‘억압되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수치의 원인이 됩니다. 전에 억압되지 않는 것이 그랬던 것처럼요.

 

사람들은 도대체 모두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사람들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내편이었던 것은 그 가면뿐이야.

 

인생이란 것은 하나의 커다란 기만일 뿐이고, 나만 빼고 모두들 거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영향력, 그건 절대적이에요. 다른 사람의 요구처럼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는 건 없어요.

 

“에덴동산 이야기가 우리한테 말해주는 게 그거 아닌가요?”

“뭐? 뭘 말해줘?”

“죄 없이는 지식도 없다는 거요.”

 

“그 친구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저녁파티가 끝나면, 아마 모두들 누군가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9

 

광기와 도발, 인식 가능한 것은 없다. 그럴듯한 것도 없다. 앞뒤가 맞는 맥락도 없다. 그는 이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난을 수용하는 능력조차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잘못이라는 거로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모두 집에 있어요. 집은 항상 모든 게 잘못되는 곳이죠.”

 

그애한테 뭘 해줄 수 있겠냐고? 누구한테인들 뭘 해줄 수가 있겠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는 움직임 없는 카운트의 사진을 유리 없이 다시 책상 위의 벽에 걸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에 관해 아까와 다름없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운명의 힘이 정해준 그의 임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속해있던 황량함으로부터 저녁파티의 견고하고 질서 잡힌 우스꽝스러움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의 삶의 모든 기획이 계속 파멸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 저녁파티.

 

애초에 <목구멍 깊숙이>는 진짜 주제가 아니었다. <목구멍 깊숙이> 밑에는 메리, 실라, 셸리, 오컷과 돈, 부정과 배신과 기만, 이웃들과 친구들 사이의 불신과 균열이라는 주제, 잔혹이라는 주제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박살나버린 인간적 성실성, 모든 윤리적 의무의 조롱 - 그것이 오늘밤 이곳의 주제였다!

 

이자의 마누라 안에 숨어 있는 악마는 술이고, 이자의 안에 숨어 있는 악마는 정욕과 경쟁심이다. 봉인되고 문명화되었지만, 야수 같은 것. 그것이 가계에서 물려받은 공격성을 강화하고 있다. 출신으로 눌러버리는 것이다. 빈틈없는 예절의 공격성. 인도적인 환경보호주의자이자 계산이 빠른 야수.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것이 된 것은 지키고 가지지 못한 것은 몰래 빼앗고. 윌리엄 오컷의 문명화된 야만성. 동물적 행동의 문명화된 형식.

 

스위드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여자도 아름다웠지만 돈의 반도 못 따라갑니다”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름다움의 권위는 매우 비합리적인 거예요”하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었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 여자를 사랑해요.”

 

철저하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레보브 씨, 이건 나중에 풀도록 하죠.

나중에는 절대 풀리지 않소. 지금 풀거나 아니면 못 풀거나요.

 

사실 그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어차피 일 년에 딱 한 번뿐이었다. 그것도 추수감사절이라는 중립적이고 탈종교화된 시간에 모였다. […] 거대한 칠면조 한 마리가 모두를 먹이는 것이다.

 

뉴저지와 다른 곳의 모든 사람이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들의 비합리성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때다. 모든 불만과 원한이 유예된다. 드와이어 가족과 레보브 가족만이 아니라, 평소에 늘 다른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미국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 이것이 최고의 미국의 목가이며, 딱 스물네 시간만 지속된다.

 

사람들의 내면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은 그가 갖지 못한 기술 또는 능력이었다. 그에게는 그런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번호의 조합이 없었다. 누구든 선한 표시만 슬쩍 보여주면 그는 그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도처에 서서 “이게 나요! 이게 나요!”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일어서서 자기가 누구인지 말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 또한 자신이 슬쩍 내비치는 표시들을 믿었다. 사실 그들은 일어서서 이렇게 소리쳐야 했다. “이건 내가 아니오! 이건 내가 아니오!” […] 그러면 이 세상의 그 모든 슬쩍 내비치는 쓰레기들을 통과해 나아가는 방법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위드에게는 모든 것에 두 면이 있었다. 과거의 방식과 현재의 방식, 이 두 가지 면이 나란히 존재했다. 그러나 돈은 과거의 방식이 여전히 현재의 방식인 양 이야기했다.

 

자기의 기성품 인생.

 

사업을 일으켜나가거나 공장을 경영하는 일의 복잡함이나 위험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 그 모든 의식, 사람의 영혼의 모든 구석과 틈을 들여다보는 내성적인 그 모든 눈길, 바로 실라 같은 눈길은 스위드가 알고 있는 삶의 결을 역겹게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의 사고방식에서 보자면 삶이란 간단했다. 그냥 레보브 사람들처럼 자신의 의무를 열심히, 지칠 줄 모르고 이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질서가 자연적인 조건이 되었다. 일상생활은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단순한 이야기, 심한 흥분을 일으키지는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파동은 예측 가능하고, 전투는 억제 가능하고, 놀람은 만족스러웠다.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나를 싣고 움직이는 가벼운 파동뿐이며, 해일은 머나먼 나라의 해안에서나 일어나는 거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한때는 모두 그렇게 보였다.

 

정치적으로 그애를 변명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치적 변명이란 건 없으니까요. 정당화할 수 없죠. 절대 없어요.

 

출생, 승계, 세대, 역사 - 정말이지 거짓말 같았다.

[…]

그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넷이라는 수 너머를, 묶일 수 없는 모든 것을 보았다. 질서는 하찮은 것이다. 그는 대부분이 질서이고 아주 작은 부분만 무질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 거이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었는데, 메리가 그를 위해 그 환상을 해체해주었다. 그애가 염두에 둔 것은 특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애는 미국에게, 그녀 자신의 집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일탈이 승리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거짓말처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질서를 만들던 낡은 체제는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의 두려움과 놀라움뿐이다. 하지만 이제 어떤 것으로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여기 멀리 떨어진, 안전한 올드림록에서도.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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