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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도리스의 빨간 수첩 | 소피아 룬드베리

2020. 8. 8.
도리스의 빨간 수첩

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저/이순영

스톡홀름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96세의 도리스. 요양사와 종손녀 제니 말고 그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1928년부터 써왔던 빨간 수첩. 도리스는 그 수첩에 자신이 만나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을 기록해두었다. 도리스는 세상을 뜨기 전 그들과의 기억을 모두 쏟아내 글을 쓰고, 그 기억을 제니에게 전하고자 한다. 만남과 이별, 슬픔과 사랑, 희망과 실망으로 얼룩졌던 자신의 지난날이, 종손녀 제니에게 따뜻한 격려가 되어주길 바라며.

 

 

 

소금통. 약상자. 목 캔디 그릇. 타원형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혈압계. 돋보기 그리고 크리스마스 커튼에서 뜯어낸 붉은색 수직 레이스에 두툼한 매듭 세 개를 묶어 만든 돋보기 끈. 아주 커다란 번호 버튼이 있는 휴대폰. 가장자리가 구부러져 누런 속지가 삐져나온 붉은색 낡은 가죽 수첩.

 

울리카가 한 손에 컵을 들고 맞은편에 앉는다. 분홍색 장미를 손으로 그려 넣고 색칠한 컵이다. 도리스도 깨뜨릴까 봐 겁이 나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 그 컵이다.

[…]

도리스는 발을 질질 끌면서 식기세척기 쪽으로 가서 작동을 멈춘다. 그리고 손으로 칠을 한 머그잔을 꺼내 조심스럽게 닦아 찬장 가장 구석, 우묵한 디저트 그릇들 뒤에 숨긴다. 그리고 이쪽저쪽에서 보며 확인한다. 이제 보이지 않는다

 

에리크 알름

 

일생 동안 너무도 많은 이름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 제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오고 가는 그 모든 이름에 대해 말이야. 어떤 이름은 우리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또 어떤 이름은 사랑하는 이가 되거나 혹은 적이 되고. 나는 이따금 내 수첩을 들춰본단다. 수첩은 내 삶의 지도 같은 것이 되었어. 그래서 나는 네게 그것에 대해 조금 얘기하고 싶어. 너, 날 기억해줄 유일한 사람일 네가 내 삶도 함께 기억해줄 수 있도록.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 “거기에 네 친구들을 모두 적어두렴. 네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말이야. 앞으로 네가 가게 될 흥미진진한 모든 장소에서 만날 사람들. 그러면 넌 그들을 절대 잊지 않는 거지.”

 

아버지는 커다란 남자였어. 몸집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몸집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아버지의 생각을 말하는 거야. 아버지의 생각을 담기에 우리 집은 턱없이 좁아 보였어. 아버지는 끊임없이 더 넓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이름 모를 장소로 가고 있는 것 같았어.

 

아버지의 작업장이 없었더라면. 맡아야 하는 가업이 없었더라면. 해내야 하는 의무가 없었더라면.

 

아버지는 언제나 세상으로 나가고만 싶어 했어. 그런데 아버지가 한 일은 자신의 집 안에 흔적을 남긴 게 다였지. 직접 만든 여러 공예품, 엄마를 위해 우아한 장식을 새겨 넣어 만든 흔들의자. 직접 공들여 만든 나무 장식품들. 지금도 아버지의 책 몇 권이 꽂혀 있는 책장. 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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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이 작은 컴퓨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도리스는 매일 놀란다. 그녀가, 스톡홀름에 사는 외로운 한 여인이 원하기만 하면 전 세계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기술이 도리스의 하루하루를 채운다. 그 기술 덕에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은 더 견딜 만해진다.

 

도미니크 세라핀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기다렸어. 두 발을 단단히 모으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꽉 쥐었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혹은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 작은 방에 있을 때 나를 에워싸던 외로움이 지금도 기억나는구나.

 

삶은 그녀에게 친절했고, 그녀는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넉넉하게 살았으니까.

 

솔기에 피부가 쓸리는 검은색 옷을 입고 긴긴 하루를 보내면서 내 몸은 계속 지쳐갔어. 서열과 손찌검에 지쳐갔지. 그리고 내 몸에 손을 대는 남자들에게 지쳐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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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타 닐슴

 

“이봐 도리스, 사람은 말이지, 밤에 아주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예스타는 내가 가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어. 그러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밤공기 속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지.

 

사람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부인이었어.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주 많다는 걸 알려준 사람도 부인이었어. 때로 우리가 복잡한 교차로에 있게 되기도 하지만, 그 길이 곧게 펼쳐질 수도 있다는 걸 부인은 알려주었어. 그리고 커브길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가르쳐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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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타 닐슨

 

한번은 내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천재 화가라는 걸 어떻게 그처럼 확신하느냐고 물었단다. 그 반대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어.

[…]

“꼬마 아가씨,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예요. 형태, 선, 색. 이런 것들을 이용해 모든 인생 이면에 있는 신성한 원칙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지요.”

내 생각에,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즐긴 것 같아.

 

광기와 창의성은 함께 있는 거라고들 하지. 유달리 창의적인 사람들은 우울, 슬픔, 강박증과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들 해. […] 그 당시에는 불행하다는 느낌을 추한 것으로 여겼지.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어. 모두가 언제나 행복했지. […]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생각에 잠길 때 부인이 괴로움에 울부짖는 소리 같은 건 아무도 듣지 못했어. 부인은 아마도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파티를 열었을 거야.

 

“그림을 그리는 게 아무 가치도 없어요. 나는 이제 더는 그림을 보지 않아요. 명확한 색에서 삶을 보지 않아요. 예전 같지 않아요.”

 

난 아무것도 몰랐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내가 볼 때 아름다운 그림이란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었거든. 형형색색의 비틀린 정사각형들이 모여 다시 비틀린 형태를 만든 그림은 아니었어. […]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깃털 먼지떨이를 한 손에 들고서 나도 모르게 예스타의 그림들 앞에 가만히 서 있곤 하는 거야. 그 색들과 붓놀림이 합해진 모양을 보면서 어떤 때는 내 상상력이 마구 날뛰곤 하는 거야. 예스타의 그림에서 나는 늘 새로운 뭔가를 보았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느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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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세라핀

 

그 기차에서처럼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던 적은 내 인생에서 몇 번 없었구나. 나는 아버지의 꿈을 향해 가고 있었어. 내가 어린 시절 안전한 그늘에 있을 때 아버지가 책에서 보여주었던 그 꿈 말이야. 하지만 그 순간, 그 꿈은 악몽과 같이 느껴졌어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네가 살아가는 동안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바란단다. 그리고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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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세라핀

 

고급 동네들에서도 부인은 어울려 살 수 있었을 거야. 다른 우아한 부인들처럼 살았을 거야. 예쁜 드레스를 입고 값비싼 장신구를 걸치고 말이지.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런 동네가 아니었어. 부인은 어울려 살길 원치 않았어. 주변 환경과 대조를 이루고 싶어 했지.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도록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거야. 부인에게는 비정상인 것이 정상이었어. 그런 이유로 부인은 예술가와 저자와 철학자들을 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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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세라핀 - 사망

 

내 친구 도리스, 당신은 글을 아주 잘 쓰는군요. 아마도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예요. 계속 글을 써봐요. 글을 써야 한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그 느낌을 포기해선 안 돼요. 우리는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에요. 우리에게는 그 고귀한 능력을 가꿔야 하는 소중한 사명이 있어요. 도리스,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 안에 창작의 힘이 있다는 걸 믿어요.

 

나는 부인의 책장에 있는 사전과 책들 덕분에 프랑스어를 배웠어. 가장 얇은 책으로 시작해 소설들을 차례차례 읽어나갔어. 이 환상적인 책들은 내게 인생과 세상에 대해 아주 많은 걸 가르쳐주었단다. 모든 것이 그곳, 부인의 나무 책장에 모여 있었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그 나라들, 그 냄새, 그 환경, 그 문화.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은 그처럼 다른 세상에 살면서도 아주 비슷하더구나. 그들도 마음속에 불안과 의심, 증오와 사랑이 가득했어. 우리 모두가 그렇듯 말이지. 예스타가 그렇듯. 또 내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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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메라를 끈다. 방금 전까지 삶과 사랑으로 가득 찼던 화면이 검게 변한다. 침묵은 어떻게 그처럼 압도적일 수 있을까?

 

장 퐁사르

 

상대의 마음에 아무 관심 없는 것, 그건 그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굉장히 큰 모욕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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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늙는 건 재미가 하나도 없는 일이에요.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나면 그래요.”

 

“어머니를 닮았군요. 도리스도 어머니와 똑같이 두 눈이 반짝거려요. 사람들의 눈에서 삶을 볼 수 있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에요.”

 

예스타 닐슨

 

나는 아름다웠어. 내 두 눈은 커다랬어. 하지만 눈꺼풀이 처지지 않을 때까지만 그랬어. 두 뺨의 색은 고르고 예뻤지만, 피부에 닿는 햇살 때문에 색소가 파괴되기 전까지만 그랬어. 목의 피부는 탱탱했어.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고칠 수는 없었어.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절대 알지 못해.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을 그리워하지.

 

파리는 예스타가 자유로움을 느낀 도시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포로로 잡혀 있었어.

 

제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려줘요. 내게 신호를 보내줘요.

당신의 예스타

 

예스타의 불안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어. 내게 의지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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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눈물은 종이의 오른쪽 한구석에 내려앉는데, 그녀가 방금 사망이라는 단어를 썼던 곳이다. 종이가 액체를 흡수하면서 잉크가 번져나간다. 작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슬픔.

 

“누굴 가장 보고 싶어요?”

“왜 내가 골라야 하죠?”

“아니, 물론 그럴 필요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 우리 마음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하고 또 각자의 자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어요.”

 

엘레오노라 페스토바

 

뭔가를 강렬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어. 그들의 눈은 서서히 흐릿해지고, 그들은 일상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더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해. 내가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과거뿐이었어. 나는 더는 내가 그 일부가 될 수 없는 모든 것, 과거의 모든 것을 미화했지.

 

“다시는 그 사람하고 일하지 않을 거야.” 내가 코를 훌쩍였어.

“보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 보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중요했어. 노라가 클로드와 일한 것은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어. 그리고 나도 마지막이 아니었지. 바로 그런 것이 살아 있는 마네킹의 삶이었어. 우리는 그 사실에 의문을 갖지 않았어. 일을 잘한다는 건 요구에 따른다는 거였고, 아니라고 말하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렇지만 그 사람과 단둘이 있는 일은 절대 없도록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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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타 닐슨

 

실업률이 높고,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사기보다 돈을 저금하고 있어요

 

나는 지금 그 편지를 손에 쥐고 앉아 있어. 그 편지는 아직도 내게 있어. 제발, 제니, 내 편지들을 버리지 말아줘. 혹시 내 금속 상자를 보관하기 싫다면, 그걸 나와 함께 묻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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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오노라 페스토바

 

아름다움은 상대를 조종하는 데 그 무엇보다 효과적이었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이용하는 법을 금세 배웠단다. 화장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는 꼿꼿이 서서 아름다움이 발휘하는 힘을 즐겼지.

 

노라는 사랑보다 완벽한 조건을 찾고 있었어. 그 점에서는 단호했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가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노라에게 어린 시절의 연인이 있다는 걸 눈치 챘어. […] 이성은 사랑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더구나. 노라도 다르지 않았어.

 

노라는 벨이 울리면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나가보라고 부탁했어. 만일 벨을 누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면, 그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를 멀리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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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스미스

 

“당신의 가정은 당신의 작은 세계예요.” […] “당신만의 영지예요. 그래서 가정은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에 맞춰져야 하는 거예요. 주방은 그곳에서 요리하는 음식 형태, 실제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맞춰져야 하죠. 미래에는 집에 주방이 없을지 누가 알겠어요. 우리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레스토랑들이 있다면 무슨 이유로 집에 주방이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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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네스 알름

 

인정하기 참 고통스러운 사실이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희미해지지. 그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정도는 아니라 해도 말이야. 그들이 더는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정도는 아니라 해도 말이야. 하지만 처음에 느끼던 불안, 어찌해야 할지 모를 그 불안은 차츰 무뎌지고 마침내 조금은 덤덤한 느낌으로 바뀌지. 어떻게든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어떤 경우에는, 예전의 우정을 다시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도 하고, 상대를 향해 남아 있는 감정이 열정보다는 의무의 느낌을 더 띠기도 하지. 그들은 그저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는 거야. 편지를 쓰고, 편지를 읽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들에 대한 기억을 접어 봉투에 다시 집어넣고는 잊어버리는 사람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했던 어떤 사람이 되었지.

 

젊은 여성들은 자칫하면 모든 걸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추한 존재가 될 수 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래. 많은 여자가 반짝거리는 황금에 현혹되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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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네스 알름

 

우리는 그 라디오를 매일 저녁 들었어. 달리 어쩔 수가 없었어. 방송 내용은 점점 더 잔혹해졌고, 사망자 수는 몇십 명이 되었다가 몇백 명이 되었어. 전쟁이 눈앞까지 다가왔지만, 그것은 또 아주 멀게 느껴졌어.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어. 앙네스는 귀를 막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억지로라도 듣게 했어. 남들이 알고 있는 걸 앙네스도 알아야 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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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스미스

 

“그냥 천천히 걸어. 그리고 미소를 지어. 언니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그러면 다 해결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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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제닝

 

누구나 인생에서 좌절을 경험하지. 그리고 그 좌절은 우리를 변화시켜. 어떤 때는 우리가 알아채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우리가 모르는 새에 그렇게 되지. 하지만 아픔, 그 아픔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으면서 우리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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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제닝 - 사망

 

일레인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을 주었어. 무엇보다 그녀의 언어를 주었지. 그건 가장 큰 선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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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파커

 

나는 그를 어느 비 오는 날 만났고, 그래서 그는 내 기억 속에 비처럼 남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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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파커 - 사망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 그것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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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계신 곳을 그 사람이 알고 있었어요? 그분이 할머니를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제니, 사랑은 언제나 제 길을 찾아가는 법이란다. 진짜 사랑은 원래 그런 거야.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운명이라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믿었어.”

 

“다 잊어버려라, 앨런도 잊어버려. 너무 오래된 일이야. 제니, 누구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단다. 그게 정상이야.”

 

“완성하지 못한 사랑,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 누구나 그런 사랑을 갖고 있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는 그대로 떠나지 않는 사람.”

 

“이루지 못한 사랑만큼 완벽한 건 없는 법이지.”

 

예스타 닐슨

 

내가 쓴 이야기들은 우리 식탁에 더 많은 음식을 올려놓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단다. 나는 그 글들을 여성지에 팔았어. 잡지사에서는 사랑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떤 것이든 샀어. 팔리는 건 그런 글이었지. 사랑, 낭만, 행복한 결말, 이런 것 말이야. 우리는 예스타의 감색 벨벳 소파에 앉아, 내가 생각해낸 시시한 얘기들을 비웃었어.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믿는 모든 사람을 비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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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는 게 훨씬 수월했어. 그리고 젊고 아름다울 때는 언제나 모든 게 더 수월한 법이지. 더 많은 걸 거저 얻는 거야.”

 

예스타 닐슨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이 없었어. 그리고 우리가 젊은 시절에 내보았던 그런 용기, 일단 집을 떠나고 볼 용기 같은 것도 절대 없었지. 파리는 그저 꿈으로 남았어.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모든 상황이 아주 많이 좋아졌을 때에도, 그 도시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그림자처럼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웠어. 사실 그 도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지. 가구 안에, 프랑스 책들 안에, 그리고 그림들 안에 있어. 파리는 우리 두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은 도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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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줘버리겠다고 했어.”

“절 줘버리겠다고요? 누구에게요?”

“아무에게나. 뉴저지의 부자 동네 한 군데로 가서 거리에 널 두고 오겠다고 했어. 어떻게 살든 자기와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더구나.”

“어쩌면 엄마 말이 맞았는지도 몰라요. 제가 기억하기로, 엄마의 약은 엄마의 삶이 아니라 제 삶을 지배했거든요. 어떻게 살든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예요.”

 

“너는 아름다워. 그리고 재능이 있어. 정말 그래. 그걸로 충분해. 뭔가 다른 것에 집중해봐라. 만족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느니 네 재능을 개발해봐. 다시 글을 써봐. 널 위해 노력해봐. 결국,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란다. 너는 네 영혼 그대로의 사람인 거야.”

 

“그래, 제니 네가 살고 싶은 삶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 모든 걸······.” 도리스는 이 대목에서 잠깐 말을 멈추더니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글로 쓰는 거야.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네 기억을 낭비하지 마. 그리고 제발 네 재능을 낭비하지 마라!”

 

제니의 아주 나쁜 기억들은 모두 영어로 되어 있다. 제니의 아주 나쁜 기억들은 미국과 연결되어 있다. 스웨덴어는 안전을 나타낸다. 도리스는 사랑이다.

 

“정말 굉장해요. 할머니가 쓴 그 모든 글 말이에요. 매일 밤 조금씩 읽고 있어요. 제가 까맣게 몰랐던 내용이 너무나 많아요.”

“네게 내 기억들을 주고 싶어. 그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사라지지 않도록.”

 

“제가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궁금해요. 제 삶은 할머니의 삶만큼 흥미진진하지 않았거든요. 그 근처에도 못 가죠.”

“네가 그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은 법이야. 그저 버겁기만 하지. 그 오묘한 의미는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거란다.”

 

앨런 스미스

 

삶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을 때는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답으로 오직 사랑을 얻을 때란다. 그 사랑이 서로 어긋난다 해도 말이지. 그래서 예스타처럼 너그러운 사람과 사는 것이 기분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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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삶을 두려워하지 마. 그냥 살아.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거야. 웃어. 인생이 너를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바로 네가 인생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거란다.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그것을 잡아.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해 좋은 것을 이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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