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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2020. 8. 8.
태고의 시간들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저/최성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보고(寶庫)”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 『태고의 시간들』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출간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이자 그 문학 세계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태고의 시간들』에서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되는 공간인 가상의 마을 ‘태고’를 배경으로, 기이하면서도 원형적인 인물들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새롭게 창조한 소우주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은 태고부터 영원에 이르는 우주의 시간, 우리 인류 보편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폴란드의 국민 작가이자 이제는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선 토카르추크의 이 소설은 폴란드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니케 문학상의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고,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유서 깊은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폴란드 시사잡지 [폴리티카]가 선정한 ‘올해의 추천도서’에 뽑히기도 했다.

 

 

태고의 시간

 

태고(太古)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작은 마을이다.

 

태고의 북쪽 경계선은 타슈프에서 키엘체로 향하는 도로와 만난다. 도로는 혼잡하고 위험하다. 여행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이 경계는 대천사 라파엘이 지키고 있다.

 

태고의 남쪽 경계는 진흙투성이의 중앙광장 주변으로 성당과 양로원, 나지막한 다세대 주택 건물들이 들어선 소도시 예슈코틀레가 차지하고 있다. 마을은 위태롭다. 소유하고 싶고 소유되고 싶은 욕망이 들끓어오르기 때문이다. 마을과 태고의 경계를 지키는 건 대천사 가브리엘이다.

 

태고의 서쪽 경계에는 강변에 자리한 축축한 목초지와 작은 숲이 이어져 있고, 성(城)이 한 채 서 있다.

[…] 말들은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소유고, 목초지는 교구신부의 것이다. 이 서쪽 경계에 깃든 위험 요소는 바로 자만에 빠져 우쭐대는 것이다. 대천사 미카엘이 서쪽 경계를 지키고 있다.

 

태고의 동쪽 경계에는 태고와 타슈프의 영토를 가르는 백강(白江)이 흐르고 있다. […] 여기서 나타나는 위험성은 지나치게 영리한 척하다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이다. 대천사 우리엘이 이 경계를 지키고 있다.

 

창조는 신의 일이고, 이름을 붙이는 건 인간의 일이니까.

 

게노베파의 시간

 

침대에 누웠다. 쿠션과 면양말로도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발이 시려서 오랫동안 잘 수가 없었다. 물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잠들 때도 항상 발부터 꿈속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쟁은 첫 번째로 발견된 병균과도 같아서 뒤를 이어 또 다른 병균들이 들끓게 마련이다.

 

“혹시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세요? 왜 우리는 바보같이 이런 전쟁 통에 애를 낳을까 하는…….”

“분명 신께서…….”

“신, 신이라……. 그분은 잘난 회계사죠. ‘인출금’과 ‘융자금’을 관리하시니까요. 둘은 서로 균형을 맞춰야만 하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죠……. 부인께서는 분명 잘생긴 아들을 낳으실 거 같네요.”

 

“아마도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딸이 필요한 것 같네요. 다들 딸만 낳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죠.”

두 여인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미시아의 천사의 시간

 

천사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 세상에 담긴 가치와 영혼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천사의 눈에 미시아는 이제 갓 생겨나 환하게 빛나는, 텅 빈 공간으로 보였다. 곧이어 그 공간에 반쯤 의식이 깃든 한 영혼이 모습을 드러낸다

 

창조자는 천사들에게 본능도, 정서도, 욕구도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영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들이 가진 단 하나의 본능은 바로 연민이다. 창공처럼 무겁고, 무한한 연민……. 이것은 천사들이 가진 유일무이한 감정이다.

 

천사들에게 사건이란 시작도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꿈이나 영화 같은 것이다. 천사들은 여기에 관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천사는 인간과 같은 지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유추도 판단도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어떤 인간들은 천사를 멍청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천사는 애초에 자기 안에 있는 지혜의 나무에서 따 온 열매, 순수한 지식을 갖고 있다

 

천사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보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크워스카의 시간

 

누군가 가끔 소녀에게 보드카를 사주었고, 돼지비계를 바른 빵 한 조각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짜로 뭔가를 베푸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고, 특히나 술집에선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크워스카는 몸을 팔기 시작했다

 

“왜 내가 당신 밑에 누워야 하죠? 나는 당신과 동등한데.”

 

이것이 바로 크워스카가 배운 세상이었다.

배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밖에서 배우는 것과 안에서 배우는 것. 흔히 사람들은 전자를 최선, 나아가 유일한 방법으로 여긴다. […]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배워야만 한다. […] 그러나 내면에 도사린 ‘어리석음’, 다시 말해 학습을 필요로 하는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크워스카는 외부의 것을 내면으로 동화시키면서 세상을 배웠다.

 

크워스카는 태고와 그 인근에 사는 냄새나고 더러운 사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그들이 되어갔다.

 

그녀는 태고 전체를, 이곳에 깃든 모든 고통과 희망을 제 것으로 소화해버린 것이다

 

‘고통이 들어온 곳으로 다시 빠져나가는 것뿐이야.’

 

크워스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옆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쪼그라든 채 죽어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가슴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가슴은 아이보다 컸고, 고통스럽게도 살아 있었다. 파리들이 그 위에서 맴돌았다.

 

크워스카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싹을 틔우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가진 한 명의 거대한 인간 혹은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크워스카 주위의 모든 것은 한 몸이었고, 그녀의 육신조차도 그 거대한 몸의 일부였다. 그 몸은 장대하고 전능하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움직임 하나, 소리 하나마다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무(無)에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뭔가를 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힘이었다.

 

나쁜 인간의 시간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 태고의 숲에 나쁜 인간이 나타났다. 물론 이런 종류의 인간은 늘 숲에 살고 있을 법하지만 말이다.

 

나쁜 인간이 되기 전에 그는 평범한 농부였는데,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여하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넷째 날, 그는 마침내 세상의 방향을 의심하게 되었다. 다섯째 날이 되자 자신의 이성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여섯째 날,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고 왜 숲에 왔는지를 잊었고, 일곱째 날에는 자신의 이름을 잊었다.

 

그는 농부와 말을 죽였다. 말은 먹어치웠지만, 인간은 건드리지 않았다. 죽은 인간은 살아 있는 인간보다 더더욱 역겨웠다.

 

게노베파의 시간

 

1917년 봄, 방앗간이 문을 닫았다. 갈고 빻을 거리가 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비축해뒀던 곡식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태고 마을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소음이 사라졌다. 방앗간은 세상을 돌리고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1918년, 콜레라가 유행하고 마을의 경계선이 마구 파헤쳐졌을 때, 크워스카가 방앗간에 찾아왔다

 

“울지 마, 예쁜아. 네 아빠가 한창 네게 오고 계시는 중이란다.” 크워스카는 웅얼거리면서 마을 쪽으로 사라졌다.

 

크워스카는 미래를 볼 줄 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부터 게노베파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엘리였다. 그는 그녀에게 공포와 불안,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그의 시선에 그녀의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때부터 게노베파는 남편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꿈에서 맛보았던 바로 그 희열, 모든 행위와 시선들, 가쁜 호흡들이 어우러진 절정의 환희를 느꼈다. 그 환희는 통제 불가능하며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발현된 이 환희는 다시는 재현될 수 없기에 더욱 두렵고 무서웠다. 이미 실현되었고 흘러갔고 끝났고, 또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따분하고 혐오스러울 것이다. 한번 눈을 뜬 허기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할 테니.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희망을 잃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신이나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색채도 없고, 평면적인 것, 다시 말해 그가 소유한 성경책의 동판화 같은 것으로 전락했다.

 

상속자는 낯선 자들에게 약탈당한 자신의 집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세상의 악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신은 선한 존재인데, 어째서 악을 허락하는 거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은 걸까?’

 

젊음은 그 고유한 강렬함과 스스로의 에너지 속에서 지쳐간다. 어느 날 밤 혹은 어느 아침, 인간은 경계를 넘어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래를 향해, 즉 죽음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지금 당당하게 어둠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둠을 부정하고 그저 방의 불이 꺼진 것뿐이라 여기며 과거에 머물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인가.

 

상속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러움처럼 여기저기 퍼져 있는 고난과 죽음, 부패를 목격했다.

 

이 광경은 서서히, 그리고 부단히 거듭되는 분신(焚身)을 떠올리게 했다. 그 속에는 시간의 불길에 희생양으로 던져진 인류의 운명, 모든 생(生)이 깃들어 있다.

 

예슈코틀레 성모의 시간

 

예슈코틀레 성모는 이들에게 건강을 회복하는 힘과 능력을 주었다. 이러한 치유력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주어졌다.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그녀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멍 난 그릇처럼 그 힘을 빠져나가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그 힘은 땅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

예슈코틀레 성모화 앞에 나타난 상속자 포피엘스키도 그랬다. 성모는 그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려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예슈코틀레 성모는 그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해 선하고 유익한 힘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그 힘을 주었고, 그 힘에 흠뻑 젖게 만들었다. 그러나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유리구슬처럼 빈틈없이 견고했다. 선한 힘은 그의 몸을 미끄러져 흘러내렸고,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미약한 진동만을 안겨주었다.

 

미하우의 시간

 

미하우는 1919년 여름에 돌아왔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방앗간 앞에는 한 아이가 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군.’ 미하우는 생각했다.

 

“미하우, 그 어떤 남자도 날 건드리지 않았어요.”

 

미시아의 시간

 

미시아는 여느 다른 인간들처럼 불완전한 상태로 조각조각 나뉘어 태어났다. 보는 것, 듣는 것, 이해하는 것, 느끼는 것, 감지하는 것, 경험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녀 안에서 제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앞으로 미시아의 전 생애는 이것들을 온전하게 하나로 결합했다가 다시 부서뜨리는 데 할애될 것이다.

 

 

미시아의 그라인더의 시간

 

인간들은 동물이나 식물, 사물보다는 자신이 훨씬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식물과 사물보다는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여긴다. 식물들은 사물보다는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꿈꾼다. 그런데도 사물들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존속은 다른 무엇보다 더욱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미시아의 그라인더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나무와 도자기, 놋쇠가 하나의 물체로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나무와 도자기, 놋쇠는 ‘갈아낸다’는 관념을 물질로 형상화한 것이다. 커피콩을 갈고 나면, 거기에 끓는 물을 붓게 된다. 그라인더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창조란 단지 시간을 뛰어넘어 영구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무(無)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다른 사물들이 그러하듯 그라인더는 세상의 모든 혼란을 자신의 내부로 흡수한다. 폭격당한 기차의 풍경, 고여 있는 핏물, 매년 다른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두드리는 버려진 폐가가 그라인더 속에 저장된다. 그라인더는 차갑게 식어버린 인체의 따뜻함과 익숙한 것을 내팽개칠 수밖에 없는 절망을 자신 안으로 빨아들인다. 사람들이 그라인더에 손을 갖다 댈 때마다 각자의 손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 있다. 여느 사물들처럼 그라인더 또한 특별한 능력으로 이 모든 걸 흡수한다. 일시적인 것들,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을 자기 안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미하우는 동쪽의 먼 곳에서 그라인더를 찾아냈고, 전리품으로 군용 배낭 속에다 그것을 숨겼다. 그는 밤마다 병영에서 몰래 그라인더의 서랍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거기에는 안전함, 커피, 집의 향기가 났다.

 

사물은 시간도 움직임도 없는 다른 현실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단지 그 표면만 드러나 있고,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나머지 속에 물질적 대상의 의미와 본질이 숨겨져 있다. 커피 그라인더가 바로 그러한 예다.

 

그라인더는 간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라인더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어쩌면 커피 그라인더는 현실의 축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그라인더 주위에서 돌고 진보해나가는 현실의 축. 그라인더는 이 세계에서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일 수도 있다. 나아가 미시아의 그라인더는 ‘태고’라고 불리는 것의 기둥일지도 모른다.

 

교구신부의 시간

 

다음 해 요란한 홍수가 일어나자 신은 교구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일렀다. “강을 목초지와 분리해라. 흙을 가져와 제방을 쌓아서 강이 지류를 벗어나지 않게 해라.”

 

밤에 기도하다가 신부는 다시 신에게 조언을 구했다. 신이 응답했다.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해라.”

 

그리고 다시 한번 신께 조언을 구했다. “임금을 올려주어라.” 신이 그에게 말했다. “올해에 목초로 벌어들이는 이득이 전혀 없다 해도 하루에 15즈워티씩 지급해라. 내년에는 손해를 메꿀 수 있을 테니.” 현명한 조언이었다. 일은 진척되었다.

 

바로 이 따뜻한 바람이 성 요한 대축일에 비를 내렸다. 강의 수면은 1센티미터씩 부풀어 올랐다. […] 다음 날 밤, 흑강은 모랫둑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매년 그랬듯이 목초지를 향해 범람했다.

일요일에 신부는 강론대에서 강이 저지른 짓을 사탄의 행위와 비교했다. 사탄은 물과 같아서 매일, 매시간, 인간의 영혼을 삼키려 든다. 그러므로 인간은 둑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교구신부는 강론 후에 오래도록 불안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흑강에 대한 증오 탓에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 명색이 신부라는 자가 어떻게 이런 부조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고작 강을 증오하다니.

 

신부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지는 않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오리나무 가지를 꺾어 뻔뻔하고 둥그런 강의 몸뚱이를 마구 내리쳤다.

 

엘리의 시간

 

“도시로, 키엘체로 도망가요, 우리.”

“…… 모든 게 우릴 갈라놓고 있어. 너는 젊고, 나는 늙었어. 너는 유대인이고, 나는 폴란드인이야. 너는 예슈코틀레 출신이고, 나는 태고 출신이지. 너는 미혼이고, 나는 유부녀야. 너는 자유로운 상태지만, 나는 이미 정착했더.”

 

플로렌티카의 시간

 

사람들은 광기란 어떤 대단하고 극적인 사건이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

[…]

반면에 플로렌틴카는 별다른 사유도 없이 광기에 사로잡혔고, 이유 없이 미쳐버렸다.

 

플로렌틴카의 몸은 쪼그라들고 점점 왜소해져갔다. 끊임없이 잉태와 출산을 반복했던 여성으로서의 시간이 끝난 뒤, 그녀의 몸에 남은 거라고는 커다란 빵 한 덩어리가 들어 있는 듯 우스꽝스럽게 부풀어 오른 배뿐이었다. 여성성이 사라진 뒤, “아이 한 명에 이빨 한 개씩”이라는 속담이 일컫듯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이빨도 남지 않았다. 모든 일은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었다. 플로렌틴카의 가슴은 세월의 풍파로 인해 납작해지고 늘어져서 몸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어 갔다. 쪼글쪼글해진 피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신구를 싸는 박엽지를 떠올리게 했고, 그 아래로 플로렌틴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인 가느다란 파란 정맥이 보였다.

 

모든 게 달랐다. 단지 세상의 윤곽만이 같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플로렌틴카는 자기에게 미쳤다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인간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밤, 박해자인 달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광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플로렌틴카는 개와 고양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깨우쳤다. 마음속에 떠오른 그림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대화였다. 동물들이 상상한 그림들은 인간의 언어처럼 구체적이거나 함축적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깊은 성찰이 없었다. 대신에 인간들이 하듯 상대와 거리를 두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물을 내면에서부터 바라보았다. 덕분에 세상이 훨씬 더 친근하게 보였다.

 

미시아의 시간

 

서랍

사진, 달의 돌, 온도계, 모조품 장신구, 잭나이프, 성화, 돼지 뼈, 볼타전지, 약, 카드

 

크워스카의 시간

 

금발의 젊은 남자

 

미하우의 시간

 

사랑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뭔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뭔가를 항상 선물했다. […] 하지만 그가 바란 건 보다 고차원적이고 지속적이며 고귀한 것, 인간보다는 시간에게 더욱 익숙한 그런 것이었다. 시간 속에서 그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시간 속에서 미시아를 영영 멈추게 만드는 것. 덕분에 그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 되었다.

 

이지도르의 시간

 

이지도르 출생

게노베파의 의심

 

“뇌수종인 것 같아요.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거 같습니다. 방법이 없네요.”

[…] 게노베파는 이지도르를 사랑했다. 마치 오갈 데 없는 강아지나 불구가 된 동물을 사랑하듯이.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순수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이듬해 포피엘스키는 크라쿠프 출신의 젊은 미래파 화가인 마리아 셰르와 사랑에 빠졌다. […] 그의 애인은 미래파 그 자체였다. 어떤 면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했지만, 대부분은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이었다. […] 그녀와 비교해보면 상속자의 아내는 마치 18세기 풍경화 같았다. 세부적인 항목들로 가득 차 있고 조화로우며 정체되어 있었다.

 

새로 산 자동차를 타고 크라쿠프에서 성으로 돌아오면서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마리아와 함께 브라질로, 아프리카로 도망치는 계획을 꿈꾸었다. 하지만 막상 집 문턱을 넘어서면,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지속적이고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미칠 듯한 열정에 빠져 지낸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마리아 셰르는 미국으로 떠난다고 상속자에게 선언했다.

 

그가 한 달이나 누워 있었던 건 비단 기력이 약해져서나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잊기 위해 애썼던 사실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머지않아 멸망한다는 사실, 현실이 마치 썩은 나무처럼 부서지리라는 사실, 내부에서부터 곰팡이가 피어나서 원료를 부식시키고 말 것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종국에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상속자의 몸은 이미 굴복했으니 무너져버릴 것이다. 자신의 의지도 마찬가지이리라.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길 때까지, 그 시간의 간극이 점점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랍비와의 대화는 상속자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

“질문을 모으고 있군요. 잘됐네요. 당신의 수집 목록에 추가할 만한 질문 하나가 내게 있거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

“어떤 종족의 시간은 이미 끝나가고 있어요. 이제부터 마땅히 당신의 소유가 되어야만 하는 뭔가를 당신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익사자 물까마귀의 시간

 

이런 영혼은 속수무책이며 무력하기 마련이다.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끈질기게 육신으로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영혼은 자신이 탄생하여 늘 머물던 세계, 자신을 물질계로 떠밀어 보낸 그곳을 그리워했다.

 

일말의 희망도 없는 방랑을 되풀이한 끝에 영혼은 육신으로 돌아오거나 육신을 떠났던 장소로 되돌아오곤 했다. 차갑게 죽어버린 육신은 영혼에게 마치 타다 남은 집터의 잔해 같은 것이었다. […] 신의 법칙에 따라 죽은 육신은 “안 돼”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은 증오스러운 집이 되었다. 죽음의 장소는 또한 영혼에게 증오스러운 감옥이었다.

 

무심하고 공허한 상태로 영혼은 자신의 영토를 헤매고 다녔다. 어쩌다 동물이나 인간과 맞닥뜨릴 때면 분노의 감정 때문에 잠시 살아났다. 그 순간 그의 존재는 의미를 획득하곤 했다. 그는 마주친 대상에게 어떻게든 악(惡)을 행하려 했다. 크든 작든 악임은 분명했다.

 

보스키 영감의 시간

 

매일 아침 보스키 영감은 지붕에 올라가서 썩은 널들을 교체했다. 그의 일은 끝이 없었고, 시작도 없었다. 특정한 지점을 정해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방향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무릎을 꿇은 채 지붕널의 너비와 길이를 쟀고, 여기저기를 분주히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파베우 보스키의 시간

 

보스키 영감의 아들 파베우는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뭔가를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자신도 아버지처럼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전락해서 평생 지붕 위에 올라가 지붕널이나 맞추며 살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젊은 보스키에게 무엇보다 확실한 수단은 지식이었다. 지식과 교육은 누구에게나 열린 가능성을 보장했다. 물론 포피엘스키나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은 교육의 혜택을 누리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불공평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배움의 길은 열려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므로 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긴 했지만.

 

게임의 시간

 

게이머는 얼음판 위에 갈라져 있는 금을 보듯 자신의 길을 본다. […] 신을 믿는 게이머는 그 길을 가리켜 ‘신의 판결’ 혹은 ‘신의 손가락’이라 말한다. 전능하고 위대한 창조주의 손끝이 여행자를 이끌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을 신봉하지 않는 자라면 ‘우발적인 사고’ 또는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것이다. 게이머는 종종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분명 작은 목소리로, 혹은 확신 없이 말할 것이다.

 

태초에 신은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단지 빛과 어둠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했다.

 

빛이 스스로 움직였고, 타올랐다. 빛의 기둥이 갈라져서 어둠으로 흩어졌고, 거기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질료(質料)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신이 눈을 뜰 때까지 빛의 기둥은 온 힘을 다해 그 질료를 강타했다. 신은 의식이 명료하지 않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자기 말고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기에 자기가 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를 부를 수 있는 이름도 없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도 없었기에, 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처음으로 자신을 상세히 살펴보다가 문득 ‘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안다는 건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고 신은 생각했다.

 

신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잡을 수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만이 신과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으로 스스로에게 기도를 하면서 그는 자기 안에서 모순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거울 속에 비친 상(像)은 현실이 되었고, 현실이 상 속에 투영되었다.

 

신이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혹은 신이면서 인간인가, 아니면 신도, 인간도 아닌가? 내가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면 그들이 나를 만들어냈는가?”

 

미시아의 시간

 

미시아 - 파베우

 

미하우의 시간

 

미하우는 파베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집을 지으려면 최소한 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러면 미시아의 결혼도 늦출 수 있으리라.

 

플로렌틴카의 시간

 

바구니를 준비하는 아낙들도, 축성을 해주는 성모도 모두 여자였다. 다들 음식은 여자의 소관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남자인 신은 전쟁이나 재난, 정복, 원정과 같은 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기에 먹거리는 여자들이 주관했다.

 

집의 시간

 

지하실이 만들어지자 다들 이곳을 가리켜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완전한 집이 탄생한 건, 지붕을 얹고 그 위를 화관으로 장식하고 난 뒤였다. 벽이 사방을 틀어막아 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갇힌 공간이야말로 집의 영혼이다.

 

파푸가 부인의 시간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물론 기대했던 바가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미시아의 수호천사의 시간

 

아들 출산

 

크워스카의 시간

 

“꿈을 꾸었어요. 달이 내 방 창문을 두드리더니 말했죠. […] 그녀에게 가서 날 용서해달라고 이야기해주렴. 나도 이제 늙어서 심신이 많이 허약해졌다고. […] ‘무엇 때문에 그녀가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인간의 용서가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러자 달이 대답했죠. ‘인간들의 고통이 내 얼굴에 검은 주름을 새기거든. 이러다 언젠가는 인간의 아픔 때문에 사그라들고 말 거야.’ 달이 그렇게 말했어요.”

 

“달은 태양의 가면일 뿐이에요. 밤에 세상을 지켜보기 위해 가면을 쓰는 거죠. 달은 기억이 짧아서 한 달 전에 벌어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모든 게 뒤죽박죽되거든요. 그만 달을 용서해주세요, 플로렌틴카!”

 

루타의 시간

 

“이 경계는 타슈프를 지나고, 볼라를 지나고, 코투슈프를 지나 계속 이어져 있어. […] 내가 가장 무서운 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마치 솥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말야.”

 

“배낭을 꾸리고 음식을 준비해서, 경계를 따라가봐야겠어. 잘 살펴보면, 어딘가에 구멍이 있을 거야.”

“걱정 마, 이지도르. 우리에게 다른 세상은 필요 없잖아.”

 

신의 시간

 

시간을 초월한 신이 시간과 시간의 변형된 형태 속에 현존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땐(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변화하고 움직이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고 흔들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면 된다

 

신은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신은 모든 변형 속에서 박동한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조금만 있고, 때로는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신은 그가 거기에 없는 순간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과정의 일부인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불변의 대상을 고안해내고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완벽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리하여 신의 불변성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사람들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그렇게 상실하고 말았다.

 

신은 크워스카를 육체적으로도 괴롭혔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가슴이 신비한 기적의 모유로 가득 차올랐는데, 그 안에 신이 현존했다. […] 그녀의 모유는 어린 크라스니의 눈병을 낫게 했고, 프랑크 세라핀의 손에 난 사마귀도, 플로렌틴카의 종기도, 예슈코틀레에서 온 유대인 아이의 피부병도 낫게 했다.

이렇게 병을 고친 모두가 전쟁에서 죽었다. 신은 바로 이렇게 현현하곤 한다.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전쟁이 일어날 거래요.” 아내가 말했다.

“문명 세계에서 전쟁은 없어.” 그가 대답했다.

“문명 세계에서라면, 정말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전쟁이 일어날 거라네요.”

 

독일군이 성에 나타난 바로 그날 새벽, 상속자는 마침내 자신이 개가 되는 꿈을 꾸었다.

 

쿠르트의 시간

 

그들은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베어마흐트의 필요에 따라 압수!”

쿠르트는 그때마다 자신이 강도가 된 것만 같았다.

그는 밤마다 기도했다. “부디 동쪽으로 더는 진군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여기에 남았다가 왔던 길로 다시 집에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해주십시오.”

 

1943년 초, 그로피우스 대위가 동부전선으로 발령받았다. 아마도 밤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쿠르트는 진급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진급은 위험한 일이고, 집에서 멀어졌다는 의미였다.

 

쿠르트의 병사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쿠르트는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총을 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향을 향한 향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그들은 총을 쏘았다.

 

지휘관으로서 그는 이 어이없는 총격을 멈추게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쿠르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세상의 종말을 목격하는 증인이며, 세상을 죄와 부패로부터 깨끗하게 만드는 사명을 수행하는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뭔가를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해야만 했다.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세상은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러니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노베파의 시간

 

엘리의 죽음

 

셴베르트 가족의 시간

 

유대인 가족

 

미하우의 시간

 

미하우가 보았던 건, 지금 이 전쟁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전쟁이었다. 예전에 자신이 횡단했던 광활한 대지가 또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이것은 꿈이리라. 모든 게 후렴구처럼 되풀이되는 것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하니까. 그는 언제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 광대하고 고요하며, 마치 군대의 끝없는 행렬이나 고통 속에 잠잠해진 폭발처럼 끔찍한 꿈이었다.

 

이지도르의 시간

 

“러시아인들은 신이 없다고 말해요.”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란다.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게 쟁점이지.”

“나는 신이 있다고 믿어요. 만약 진짜로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을 믿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되겠죠. 하지만 신이 없다고 해도, 내가 그를 믿는 건 별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반은 자신의 얼굴 높이에서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그 순간 이지도르의 눈에는 이반이 자기를 향해 윙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반이 첫 번째 손가락을 내밀었다.

“신은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손가락이 합세했다. “아니면, 신은 현재 없고, 과거에도 없었다.” 세 번째 손가락이 나타났다. “아니면, 신은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제 이지도르의 앞으로 네 개의 손가락이 모두 내밀어졌다. “신은 아직까진 없었지만, 앞으로 나타날 것이다.”

 

“네가 방금 말한 그곳, 그러니까 하늘 아래에 아예 신이 없다고 상상해보렴. 돌보고 지켜주는 그 누구도 없이 이 세상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혼돈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좀 더 나쁘게 가정해서 그저 자극이나 충동으로 작동하는 기계, 그러니까 망가진 볏짚 절단기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는 거야…….”

 

이지도르는 이반 무크타가 시키는 대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사고력을 최대한 강하게 만들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러자 짧은 순간에 모든 게 완전히 달라 보였다. 텅 빈 공간이 사방에 펼쳐졌다. 그 죽은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무력하고 외로워 보였다. 사건들은 우연의 결과로 일어나고, 그 우연이 실패하게 되면 자동으로 법칙이 작동했다. 자연의 주기적이고 기계적인 법칙. 역사의 피스톤과 톱니바퀴. 내부에서부터 썩어버린 개연성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냉기와 슬픔이 사방에 만연했다. 모든 피조물이 뭔가를 끌어안고, 뭔가에 들러붙고, 사물을 그리고 서로를 의지하기를 간절히 갈망했지만, 결과는 고통과 절망뿐이었다.

이지도르가 목격한 이 모든 것의 속성은 일시적이었다. 겉은 알록달록한 껍데기에 싸여 있지만, 모든 것은 몰락과 부패, 파멸 속으로 융합되었다.

 

이반 무크타의 시간

 

이반 무크타는 이지도르에게 중요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 시작은 신이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네 안에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어. 내 안에도 있지.”

“모두에게 불꽃이 있나요? 독일인들도?”

“응. 모두에게 있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결합되게 마련이란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지. 결합의 필요성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강렬한 욕구란다.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왜 우는 거니? 동물이 가여워서?”

“집에 가고 싶어요.”

“물론이지. 어서 가렴! 누구나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루타의 시간

 

능욕

 

미시아의 시간

 

몇몇 용감한 사람들은 이따금 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다. 집 앞 텃밭에 영글어 있는 감자나 밀가루를 가지러 간 이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미래가 불투명한 숲속에서의 삶이 견딜 수 없어서 무작정 뛰쳐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쁜 인간의 시간

 

사람들에게서 스며 나오는 체취는 나쁜 인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따금 낯설긴 해도 기분 좋은 향기도 있었다. 구운 고기나 삶은 감자, 우유, 양가죽이나 모피, 치커리로 만든 커피나 재, 호밀의 냄새가 그랬다. 고약하기 짝이 없는 냄새도 있었는데, 그것은 동물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에게서만 풍기는 냄새였다

 

사람들이 숲으로 왔기에 나쁜 인간은 마을로 갔다.

 

게임의 시간

 

세 번째 세계에는 신도 인간도 없었다.

 

미시아의 시간

 

미시아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마치 통조림통의 뚜껑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신이 사람들을 가두어놓은 것만 같았다.

 

미하우의 시간

 

낮은 짧았다. 마치 병들어 끝까지 버티기 힘든 환자 같았다.

 

익사자 물까마귀의 시간

 

숲은 영혼들 때문에 잠시 하얗게 변했다가 일순간에 텅 비었다.

 

미하우의 시간

 

정원 - 무덤 - 십자가 - 닭

 

미하우는 라일락 나무 아래서 구토를 했다. 그때부터 그 누구도 그 닭들이 낳은 달걀을 먹지 않았다.

 

게노베파의 시간

 

“젊은 여자는 다 나이 많은 여자의 딸이지. 게다가 당신한테는 이제 딸도 아들도 필요 없잖아.”

 

언젠가 파베우가 미시아에게 “정신에도 마비가 온 것 같다”고 속삭이는 것을 게노베파는 들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다들 편할 대로 생각하라지. 내 정신에도 마비가 왔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그러고 나서 발과 무릎, 사타구니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들도 모랫길이나 들판, 정원처럼 먼 곳에 있고,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인간이라는 연약한 재료로 만들어진, 부서진 조각상 같았다.

 

“나는 몸이다.” 게노베파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게노베파의 몸 안에서 암세포나 곰팡이처럼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영상이 자라났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결국 움직임이니까. 죽임을 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몸 안에 있다.

 

게노베파는 온종일, 날이 저물 때까지 그들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행렬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게노베파가 두 눈을 감아보아도 그들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신 또한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게노베파는 알았다. 그리고 신의 얼굴을 보았다. 흉터가 가득한, 검고 끔찍한 얼굴이었다.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게임의 시간

 

하지만 인간은 감사할 줄 몰랐다. 땅을 경작하고 자손을 번식하느라 분주한 나머지, 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자 신의 마음속에서 슬픔이 솟아났고, 거기서 어둠이 배어 나왔다.

 

신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인간을 짝사랑했다.

 

파베우의 시간

 

멘토 우클레야

 

버섯균의 시간

 

버섯균은 죽음의 생(生)이고, 부패의 생이며, 모든 죽은 것들의 생이다.

 

이지도르의 시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절대 그 짓을 안 할 거야. 증오하는 사람들과만 할 거야. 갈래. 원하면 따라와.” 루타가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넌 변했어.” 이지도르가 조용히 말했다.

“변한 게 당연하지. 그게 뭐가 이상해? 세상은 악랄해. 너도 봤잖아. 도대체 어떤 신이 이따위 세상을 만든 거지? 신이 사실은 악마이든지, 아니면 악을 용납해준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모든 걸 망쳐버렸거나.”

“그런 말 하면 안 돼…….”

“난 해도 돼.” 루타가 말하며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여전히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한 개의 얼굴과 양옆에 있는 두 개의 옆모습뿐이었다. 이제야 그는 뭔가 부족한 듯한 이 알 수 없는 느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만물의 근저에 깔린 슬픔, 모든 사물과 현상에 깃들어 있는 슬픔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한꺼번에 모든 걸 파악하고 아우른다는 건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루타가 마치 이지도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네 번째 얼굴은 볼 수가 없어. 그게 바로 태고의 중심이거든.”

 

크워스카의 시간

 

나쁜 인간

 

루타의 시간

 

우클레야와 결혼

 

미시아의 시간

 

미시아 - 파베우

이지도르 - 루타 - 우클레야

 

아델카의 시간

 

미시아, 파베우의 딸

 

파베우의 시간

 

파베우는 자신이 길가의 한옆에 내던져진 돌멩이나 버려진 아이 같다고 느꼈다. 그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 거친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바닥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운 채 스스로가 매초 무(無)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생생히 감지했다.

 

루타의 시간

 

루타는 심지어 우클레야를 사랑하겠다는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몸이 성치 않은 커다란 짐승처럼 그를 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클레야는 그녀의 사랑을 원치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그녀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었다.

 

미시아의 시간

 

지금의 미시아는 바로 저 과수원 같았고, 시간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여느 다른 존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셋째를 출산하고 나서 미시아는 살이 많이 쪘고,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은 채 가느다래졌다. 눈동자 색깔도 이제는 씁쓸한 초콜릿처럼 어두웠다.

 

과수원의 시간

 

과수원에는 해마다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사과나무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배나무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몽상에 빠져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몽상에 빠져 있다가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다. 심지어 이미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파베우의 시간

 

아버지 보스키의 죽음

 

죽은 자들의 시간

 

그는 죽음 또한 삶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학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자들, 마치 시험처럼 죽음의 과정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죽은 자들의 시간 속에 갇히게 된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생을 찬미할수록, 생과 더욱 강렬하게 연결될수록 죽은 자들의 시간은 더욱 혼잡해졌고, 공동묘지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죽은 자들은 이곳에 와서야 ‘삶이 끝난 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음을 깨닫게 된다. 죽고 난 뒤에 비로소 생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 발견은 헛된 것이었다.

 

루타의 시간

 

루타는 태고 마을의 경계선에 도착했다. 그 순간 그녀는 몸을 돌려 얼굴을 북쪽으로 향했다. 순간 루타는 자기 안에서 모든 경계선과 관문과 폐쇄된 공간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자유로운 감정을 맛보았다.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쳤다. 루타는 무엇 하나 남김없이 온전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게임의 시간

 

다섯 번째 세계에서 신은 고독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다.

 

릴라와 마야의 시간

 

미시아와 파베우의 쌍둥이 딸

아델카의 동생

 

보리수의 시간

 

모든 식물이 그렇듯 보리수는 영원한 꿈속에서 살아간다. 그 꿈의 기원은 나무의 종자(種子)에서 비롯된 것이다. 꿈은 보리수와 함께 자라거나 확장되지 않고, 늘 그대로이다. 나무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 속에 갇혀 있다.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나무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영원히 이어지는 꿈이다. 나무의 꿈에는 동물의 꿈과 달리 감정이 없고, 인간의 꿈과 달리 이미지도 없다.

 

1년에 네 번씩 일어나는 사계절의 변화를 나무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계절이 순서대로 바뀐다는 것도 모른다. 나무에게는 네 가지 특성이 늘 한꺼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일부는 겨울이고, 봄의 일부는 가을이다. 열기의 일부는 냉기이고, 탄생의 일부는 죽음이다. 불은 물의 일부이고, 흙은 공기의 일부다.

 

나무의 입장에서 인간은 영원하다. 그들은 고시치니에츠의 길가에서 항상 보리수 그늘 밑을 오가고 있다. 나무가 보기에 그것은 정체도, 움직임도 아니다. 인간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다. 다시 말해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늘 똑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도끼질하는 소리, 천둥소리는 나무의 영원한 꿈을 방해한다. 인간들이 죽음이라 부르는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꿈의 중단 상태일 뿐이다. 사람들이 나무의 죽음이라 일컫는 것은 동물들의 불안한 현존과 관련이 있다. 존재에 대한 자각이 또렷해지고, 강해질수록 두려움도 배가된다. 하지만 나무는 동물이나 인간이 품고 있는 불안의 세계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나무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감흥도 없는 그의 꿈은 다른 나무에게 전달된다. 그렇기에 나무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무지가 나무를 시간과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지도르의 시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 신에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테고, 그가 창조한 세상의 질서를 깊이 있게 연구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아마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타는 어째서 떠났을까, 어머니는 왜 병에 걸렸고, 왜 죽었을까, 아버지는 또 왜 죽었을까, 무엇 때문에 사람들과 동물들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을까, 신은 왜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

 

수사가 이지도르의 말을 가로막았다.

“세상을 개선하겠다고……. 흠, 매우 흥미롭구나. 하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야. 세상은 개선할 수도, 개악할 수도 없단다. 그저 지금의 상태로 유지될 뿐이지.”

“하지만 여러분은 스스로를 ‘개혁가’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아, 그것 때문에 오해를 했구나, 얘야. 우리는 세상을 개혁할 생각이 추호도 없단다. 그 누구의 이름으로도 말이야. 우리가 개혁하는 건 신이란다.”

 

“어떻게 신을 개혁할 수 있죠?” 이지도르가 놀라서 물었다.

“할 수 있단다. 사람은 변해. 시대도 변하고. 자동차도, 위성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신은 말이야, 때로는…….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뭔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거든. 신은 매우 위대하고 전능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상상에 부응하기에는 조금씩 부족할 때가 있어.”

 

이지도르는 신을 이해하는 데 자신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신의 성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이지도르는 아무런 가책도 거리낌도 없이 채광창의 액자 속에서 여자의 모습을 한 신을 보았다. 그러자 안심이 되었다. 그녀에게 기도할 때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은 평화가 유지되었지만, 결국에는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이 다시 기도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느 날 이지도르는 다락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조각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불현듯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무심결에 ‘하느님 맙소사’라고 감탄사를 내뱉다가 이지도르는 순간적인 깨우침에 눈을 떴다. 바로 이 단어 속에 신의 성별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루’, ‘하얀색’, ‘하천’, ‘하품’, ‘하지만’, ‘하하하’처럼 남성형도 여성형도 아닌 중립적인 단어였다.

 

파푸가 부인의 시간

 

파베우의 여동생.

 

이지도르의 시간

 

무엇인가가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걸어갈 때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당장 눈앞에서는 사라지지만, 어딘가에 계속 남아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그런 것일까? 어쩌면 시간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과거를 먼지처럼 흩어지게 해서 결국엔 돌이킬 수 없이 부서뜨리길 바라는 게 아닐까?

 

크워스카의 시간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렇듯, 태고 마을에도 질료가 혼자 힘으로 무에서 생성되고 스스로를 창조하는 공간이 있다. 이것은 극히 미세한 현실의 일부분이며, 전체를 놓고 볼 때 필수적인 요소도 아니다. 따라서 세상의 균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렇듯, 태고 마을에도 현실이 자취를 감추는 공간이 따로 있다. 마치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듯 말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산 너머에 있는 벌판에서 그러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 이후로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선명해졌다. 땅속에 분화구가 생겼다. 그리고 그 분화구는 황사와 풀 더미, 벌판에 뒹구는 자연석들을 불가사의한 나락 속으로 끌어당겼다.

 

게임의 시간

 

신은 여섯 번째 세계를 우연히 창조하고는 떠나버렸다. 신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세상을 창조했다. 그래서 그의 피조물에는 실수나 허점이 많았다. 명백한 것도, 영구적인 것도 없었다. 검은색은 흰색과 이어지고, 악은 때로 선의 얼굴을 내보였으며, 선도 때로는 악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홀로 내팽개쳐진 여섯 번째 세상은 그리하여 스스로 창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유한 의지력으로 창조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신이라 불렀다. 세상은 수백만의 신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의지는 충동에 예속되어 있었기에, 여섯 번째 세계에 혼돈이 찾아왔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많았다. 시간은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사람들은 여태껏 없던 뭔가를 억지로 만들어내려다가 죽음을 맞았다.  

 

마침내 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을 참지 못해 단 한 번의 결심으로 모든 피조물을 파괴해버렸다. 이제 여섯 번째 세상은 콘크리트 무덤처럼 공허하고 조용해졌다.

 

이지도르의 시간

 

편지 - 감금 - 암호

 

랄카의 시간

 

사고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삼켜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 그 끊임없는 변화를 내면화해야 한다. 시간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작동한다. 그 너머 어디에도 시간은 없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 속에 시간을 묶어놓는다.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그 고통을 미래로 끌고 가기도 한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절망을 창조한다. 하지만 랄카는 단지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견딜 뿐이다.

 

동물은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간도 꿈을 꾸다가 이와 비슷한 느낌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깨어 있는 동안엔 무조건 의미를 찾아 헤맨다. 인간은 시간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끊임없이, 헛되이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난다는 건, 동물에게는 죽음이다.

 

감정을 느끼고 겪는 건, 랄카나 미시아나 마찬가지다.

동물들의 감정이 오히려 더 순수하다. 그 어떤 생각도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랄카는 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드문 경우에만 신을 체감하는 인간과는 달리, 동물은 끊임없이 신을 인지한다. 랄카는 풀밭에서 신의 향기를 맡는다. 시간이 랄카와 신을 갈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랄카는 그 어떤 인간도 갖고 있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내면에 품고 있다. 예수님 또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이와 비슷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손주들의 시간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저는 아버님이 이해가 돼요. 저한테도 옛날에 소중한 물건들만 넣어두는 서랍이 따로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때 미시아는 어린아이였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다 자란 성인 남자였다고요.”

“우리 집에도 이지도르가 있으니까요…….”

“하긴 어쩌면 정상적인 가정마다 그런 사람이 한 명씩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광기의 단면들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누군가가요. 그가 일종의 안전 밸브처럼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해주는 걸 수도.”

 

포피엘스키의 딸이 말했다. “다 잘될 거예요. 세상이 전과 많이 달라졌잖아요. 더 커지고, 더 나아지고, 더 밝아졌으니까요. 예방주사도 생겼고, 전쟁도 끝났고, 사람들의 수명도 늘어났고……. 안 그래요?”

미시아는 유리잔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

 

게임의 시간

 

일곱 번째 세계에서 인류의 첫 번째 자손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곡에 도착했다. “자, 힘내자. 여기다 도시를 짓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는 거야. 그리고 신이 우리를 분열시키지 못하게 하나의 인종으로 똘똘 뭉치자.”

 

그들을 내려다보며 신은 불안해졌다. ‘저들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인종으로 남아 있는 한, 저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걸 다 이룰 수 있으리라. 저들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각자의 머릿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을 가두어서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되면 서로 반목하느라 지쳐서 나를 내버려두겠지.’

신은 그렇게 했다.

 

사람들은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고,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자신들이 보았던 것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세상의 경계를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은 자신의 구속을 가장 뼈아프게 실감했다.

 

파푸가 부인의 시간

 

파푸가 부인 죽음 - 아들 야네크

 

넷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시간

 

겨울이 되자 이지도르의 슬픔은 배가되었다. […]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신이 부재한 세상의 풍경.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이지도르를 깨웠다. 이지도르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주방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시아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음식 냄새가 밴 앞치마 바람으로 이지도르를 꽉 끌어안았다.

“누나에게서 엄마 냄새가 나.” 이지도르가 말했다.

[…] 이 낯익은 냄새가 버림받은 텅 빈 세상으로부터 이지도르를 돌아서게 했다

 

시간의 네 가지 양상   공간 과거 현재 미래

 

미시아의 시간

 

여태껏 살아 있는 건 기적이지만, 자신이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틀림없이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의 눈에 미시아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시아는 결국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임종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즉 미시아의 영혼이 그녀의 몸에서 분리되고 생물학적 두뇌 활동이 멈춰지게 되면, 미시아 보스키는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녀의 모든 레시피가 사라진다는 뜻이고, 닭의 간과 순무를 넣어 만든 그녀만의 특별한 샐러드와 초콜릿 크림을 끼얹은 케이크와 생강 과자 또한 영원히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종국에는 그녀의 생각과 말, 그녀가 직접 겪고 몸담았던 모든 일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인생처럼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어둠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고 가족들은 확신했다.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숨을 수 있는 껍데기를 찾아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버텨내는 것이다.

 

파베우의 시간

 

이지도르의 시간

 

이지도르는 실망했다.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뼈마디가 쑤시고, 잠을 이룰 수 없을 따름이었다.

 

이지도르는 격리병동으로 옮겨져서 서서히 죽어갔다.

죽음이라는 건, 지금껏 이지도르를 형성해왔던 모든 것들이 체계적으로 분열되는 과정이었다. 급속도로 진전되는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면서, 자기 완성형이면서, 극도로 효과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마치 얼마 전에 양로원에서 도입한 정산 시스템처럼 컴퓨터에서 불필요한 정보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뒤를 이어 이지도르의 감정이 사라졌다. 먼 옛날 그가 맛보았던 벅차오르는 감동(미시아가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끝없는 절망(루타가 떠났을 때), 기쁨(그녀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 확신(넷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발견했을 때), 공포(그와 이반 무크타를 향해 총알이 날아왔을 때), 자부심(우체국에서 보상금을 받았을 때), 그 밖의 수많은 다른 느낌들.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아니엘라 수녀가 “그가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이지도르가 내부에 간직하고 있던 빈 공간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상의 것도 지상의 것도 아닌, 오직 이지도르의 것이었다.

 

그때 양로원에 크워스카가 나타났다.

[…]

“세상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얼른 떠나렴. 다시 돌아오라는 꼬임에도 절대 넘어가선 안 돼.”

 

게임의 시간

 

신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신은 자신이 세상 속에 가두어놓고, 시간의 굴레에 얽매어놓은 인간들처럼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따금 인간의 영혼은 만물을 꿰뚫어 보는 신의 시야에서 감쪽같이 벗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신의 갈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자신 말고도 절대 불변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질서로 인해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모형으로 결합된다는 사실을 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조차 아우르는 그 질서 안에서 시간에 의해 흩어져버리는 순간적인 모든 것들이 마침내 시간의 너머에서 일제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기 시작한다.

 

아델카의 시간

 

“제가 변했나요?” 아델카가 물었다.

“나이를 먹었구나. 다들 그렇듯이.”

 

“제가 여기에 온 건,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예요. 대학도 졸업했고 일도 하고 있어요. 딸아이도 이미 다 컸고요.”

“왜 아들을 낳지 않았니?”

목구멍에서 다시금 익숙한 응어리가 차올랐다.

 

아델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선반에 놓인 커피 그라인더를 재빨리 꺼내어 짐 가방 안에 넣었다.

“얘야, 넌 너무 늦게 돌아왔어. 이미 모든 게 끝났단다. 죽을 시간이 되었거든.”

 

“아무것도 필요치 않단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델카는 이해했다.

 

아델카는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니 승객은 아델카 혼자뿐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그라인더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이상하다는 듯 백미러를 통해 아델카를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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