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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우람이는 언제나 우람하게 안긴다. 저멀리서 달려오는 우람이를 보면 잠깐 갈등하게 된다. 내가 받아낼 수 있을까? 할머니는 언제나 우람이를 우람하게 반겨 안는다. 우선 집에 오면 현관부터 할머니를 찾아 와락 안긴다. “할머니! 할머니 사랑해.” “할머니도 우람이를 너무 너무 사랑해.” “우람이도 할머니 너무 너무 너어무 사랑해.” 그들의 사랑행각은 매일 얼굴 보면서도 만날 때마다 유난스럽다. 오늘은 한술 더 뜬다.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세요.” 우람이는 300원을 할머니에게 내밀며 한마디 한다. 할머니는 손녀가 마냥 귀엽기만 하다. “우리 우람이가 이제 할머니 용돈도 챙겨주고… 다 컸네.” 할머니는 천원 지폐를 우람이에게 준다. “자… 이건 할머니 선물.” 어라! 우람이에게 묻는다. “우람아, 꼬모 사랑.. 2012. 11. 29.
생사람 잡기 미선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툴툴대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글쎄, 이게 말이나 돼.” 미선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제 저녁에 비디오 가게에 갔는데 글쎄 연체료를 만원을 내라잖아!” “물론, 내가 늦게 가져다줬으니 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녀는 그녀의 잘못을 안다. “전화라도 한번 해줬어야 하잖아. 근데 자꾸 전화를 했다는거야. 난 받은 적이 없거든.” 난 그녀가 등록된 번호가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도 잘못 했지만, 그쪽도 잘못이 있으니 반반씩 책임을 지자고 했더니.” 그녀는 책임을 나눌 줄 안다. “말도 안된다며 연체료를 내지 않으려면 거래를 끊든지 거래를 계속 하려면 연체료를 다 내라잖아.” 그녀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를 수긍하지 못한다... 2012. 11. 29.
당당하게 화를 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 탁닛한의 “화” 중에서 오늘의 화두는 화였다. 구부장이 언제나 먼저 입을 연다. “당연히 술이지. 화를 풀고 화를 잊게 만드는 데는 술이 역시 최고 아니겠어?” 오늘 아침 그의 얼굴에는 못보던 상처가 있다. 그는 화는 풀었지만, 상처가 남았다. 그 상처가 욱씬거릴 때마다 화가 나지 않을까? 미선은 눈물이라고 말했다. “화를 눈물로 씻어버려. 한참을 울고 나면 내가 왜 울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내가 보기엔 그녀는 눈물이 아니라 망각으로 화를 달래는 것 같지만, 스스로 눈물이라고 하니 눈물이라고 믿어 주자. 나는 잠으로 화를 달랜다. 잠은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잠시 화가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물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깨어나면 다.. 2012. 11. 29.
전환점 길을 잃었다. 조금 전부터 이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서 다시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안 그 시점에 난 바로 돌아서지 못한다. 거리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 내가 길을 묻지 않는 이상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갈 것이다. 난 절대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돌아설 전환점이 필요하다. 전환점이 나타날 때까지 앞으로만 전진하고 목적지와는 점점 멀어진다. 전화가 왔다. “야! 어디야!” “다 왔어. 바로 앞이야.” 우선, 전화선 너머의 친구를 다독거려 놓고 또다시 앞으로만 걷는다. 드디어 전환점을 발견했다. 거리의 가판대에서 신문을 하나 산다. 마치 신문을 사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다는듯이. 지금까지 왔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간다 나는 무엇이 두.. 2012. 11. 29.
진단 기분이 나쁘다. 끈적거리는 더위 탓일 수도... "허허… 냉수욕을 해보면..." 불안한 미래 때문일지도...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지." 지겨운 회사 탓일 수도... "때려치워!" 지저분한 집 탓일 수도... "웬만하면 청소를 하지." 나 자신에 대한 짜증과 한심함일 수도... "You can do it!" 볼 것 없는 TV탓일수도... "그냥 듣기만 해." 내일 어김없이 나가야 하는 직장 탓일 수도 있고… "때려치우라니까!" 아니면,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냐, 자네는 지금 분명 기분이 나쁘네." 근데, 뉘신지?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본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없다. 설마, 내 기분은 아니겠지? 2012. 11. 29.
핑계 주말이다. 멋진 삶을 살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맘에 담고 싶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싶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도 없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고… 인사동을 걷고 싶다. 문화적 향취에 빠져 전시회도 보고 잠깐 쉬는 동안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번잡하고 전시회는 생각만큼 이해하기 싶지 않고… 운전을 배우고 싶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드라이브도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가고도 싶다. 하지만, 운전은 무섭고 자동차 살 돈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공원을 산책하며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게 이렇게 .. 2012. 11. 29.
눈빛 미루씨, 이제 이 정도는 눈빛만 봐도 척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아니다. 눈빛만 봐도 척 알 수 있게 되려면 입을 열어 말을 주고 받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언제나 시간을 생략하고 결과만 바란다. 아니다. 눈빛만 봐도 척 알 수 있게 되려면 서로를 알고자 하는 감정의 교류도 전제되어야 한다. 그는 전제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결과만 바란다. 아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의 눈빛만 봐도 척하니 알고 싶지 않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하인”에 나오는 글이다. 서너 번씩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타나지 말라. 오직 개들만이 첫번째 휘파람에 응답할 뿐이다. “캣! 캣! 캣!” “캣”이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는 서너 번 불러도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눈빛만 봐도 척하니 안.. 2012. 11. 27.
터미네이터 또다시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미래를 야기한 과거를 돌려놓기 위해 그 미래의 과거인 현재로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터미네이터. 1편에선 그래도 되는구나, 했다. 2편까진 그럴 수도 있다, 했다. 근데 3편까지 뭐가 자꾸 문제인지 다시 과거로 오더니, 또다시 4편이 만들어질거라는 얘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다. 아무리 과거를 바꾸어도 여전히 미래가 그 모양 그 꼴이라면, 무엇 때문에 자꾸 과거로 돌아오는거지? 차라리 그들의 현재인 우리의 미래에서 좀더 치열하게 문제해결점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다시 되돌아올 과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각해?” “생각이 많아서 삶이 피곤하겠다고 생각해. 넌 어때?” “피곤해.” 2012. 11. 27.
취사선택 아이는 들을 것과 듣지 않을 것을 안다. 아이는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나름 삶의 방식일 지도 모른다. 시작은 언제나 다정하다. 식탁 앞. 우람이는 밥만 빼고 모든 먹거리에 대한 식탐이 있다. "밥을 먹어야 착한 아이지. 자~ 이거 맛있다." 우람이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도리질을 해댄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저녁을 먹고 나면 텔레비전 앞에 앉는 게 수순이다. 아이는 만화 속으로 뛰어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텔레비전 코 앞에 앉아있다. 아이의 엉덩이를 잡고 밖으로 끌어낸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라 그랬지?" 우람이는 어김없이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텔레비전 앞으로 간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이걸 그냥 확!" 누군가 말리지 않는다면 마지막은 언.. 2012.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