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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타는 로버트 워커 신부 | 헨리 레이번 (Henry Raeburn, 1756-1823)

2012. 9. 18.

 

 

 

 

스케이트 타는 로버트 워커 신부


The Reverend Robert Walker Skating

 

헨리 레이번

Henry Raeburn, 1756-1823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OVTTWG

Works of Art       http://bit.ly/OVUk3p

Wikipedia           http://bit.ly/OVTH9Q

 


“신부님, 왜 스케이트를 배우려 하세요. 겁도 많으시면서.”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서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가는 건 좀 무섭긴 하구나. 내가 넘어져서 아픈 것도 겁나지만, 저 많은 사람 속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내 서투름 때문에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그게 더 무섭단다. 그래도 얼음 위를 지치며 날아다니는 자유로움은 두려움에 앞서 훨씬 부럽구나. 겁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어.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딛고 나아가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 하는 겁쟁이를 네가 좀 도와주려무나.”
“신부님, 제 두 손을 잡으세요. 균형을 잡으세요. 저랑 함께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요. 조금씩, 천천히, 저를 믿으세요.”
“그래, 훨씬 믿음직하구나. 어린 천사의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를 타다니 신의 은총이다. 내가 넘어지려고 하면 네가 잡아줄 테니 훨씬 맘이 놓이는구나. 두려움을 떨칠 때까지는 네 손을 놓지 않을 거야. 너도 내 손을 놓지 않겠지.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네 손을 떠나서도 얼음 위를 날아다닐 수 있겠지? 지금은 네 두 손을 잡고 마주 보고 타지만, 그땐 네 한 손을 잡고 앞을 보고 호수 위를 돌 수 있을 거야. 생각만 해도 멋지구나.”
“앗! 조심하세요, 신부님. 아슬아슬해서 볼 수가 없어요. 거봐요, 넘어지셨잖아요. 제가 뭘 잘못 알려 드렸나요?”
“얘야, 넌 잘못한 게 없단다. 이제 겨우 얼음 위에서 서 있게 되었잖니.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거야. 서툰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모든 걸 책임질 필요는 없어. 배우는 사람이 감당할 부분도 있거든. 가르치는 사람은 책임감 못지않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단다. 넘어질 필요가 있어. 다시 일어날 용기만 있으면 되는 거야. 다시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면 그때 네가 와서 내게 말해다오. 넘어지는 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일어나서 다음 발을 내딛으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신부님, 그래도 조심하세요. 신부님이 다칠까 봐 걱정돼요.”
“누굴 가르친다는 것은 겁나는 일이지. 너도 어느새 겁쟁이가 되었구나.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나아가고 있잖니. 물론, 아직은 자꾸 넘어져서 위태로워 보이지만, 처음을 생각해봐. 얼음 위에 서 있지도 못했던 그때, 한발도 떼지 못했던 그때를. 분명히 나아지고 있지? 다칠 수도 있겠지. 나도 아플까 봐 겁이 난단다.
하지만,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어. 믿음이 두려움을 감싸 안아준단다. 겁 없이 살아가는 삶이 더 무서운 거야.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단다. 믿음도 없어서 나아가려 하지 않는 삶이란다. 난 그게 더 무섭단다.
꼬마 선생님, 걱정하지 말고 나를 봐다오. 내가 나아가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응원해다오. 비록 겨우 한발 내딛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다음 한발을 내디딜 수 있게 용기를 다오.”    
“와! 신부님, 보세요. 정말 멋지게 얼음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네요. 이제 누구의 도움도 없이도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요. 이제 신부님은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아요. 기다리세요. 저도 탈래요. 신부님, 함께 타요.”
“그래, 이제 우리는 나란히 갈 수 있겠구나. 너도 뿌듯하지? 나도 뿌듯하단다. 얼음 위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달리는 기분이 참 상쾌하구나. 넘어지고 뒤뚱대는 동안은 바람을 느낄 수가 없었거든. 발끝만 보았으니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볼 여유가 없었어. 자유롭게 날아가는 기분이야. 잠깐이나마 걸어 다니는 인간과는 다른 뭔가가 된 느낌이야. 능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이제 양팔을 휘저어 속도를 내지 않아도 팔짱을 끼고 타는 여유도 생겼단다. 느린 속도를 즐길 정도로 점점 나아지고 있어. 사람들이 많지만, 호수 위가 너무 평화롭구나. 평화 위에서 홀로 떠다니는 느낌이야. 정말 좋구나.”
“신부님, 스케이트 하나 타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은 떨어요. 저기 호숫가에서 잠깐 쉬어요. 어, 신부님! 어디 가세요. 좀 쉬었다 타자니까요? 신부님!”
쾅!
“신부님! 왜 또 넘어지는 거예요? 잘 타셨잖아요.”
“꼬마 선생님! 한 가지 더 가르쳐줘야겠다. 어떻게 멈추는 거지? 내가 아는 멈추는 법은 넘어지는 것밖에 없으니. 나아가는 게 전부가 아닌데 가끔 잊어버리곤 하지. 자, 이제 멈추는 법을 알려다오. 멈추고 싶을 때마다 넘어질 수는 없잖니. 멈출 때마다 넘어져야 한다면, 그건 정말 무서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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