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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2012. 10. 14.

 

 

 

 

비극, The Tragedy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Qcep4O

Works of Art       http://bit.ly/QceGEQ

Wikipedia           http://bit.ly/QcegOB

 

 

언제 뭘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너무 오래전이기 때문인지, 한계에 다다른 허기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날이 매섭게 차가워졌다. 소금기 머금은 냉기가 텅 빈 배 속을 채운다. 그러나 허기는 가시지 않는다.
우린 죽기 위해 바닷가에 있다.
우리는 죽어본 적도 없으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는 추위를 잊기 위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친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살고자 하는 발버둥 같아 마음이 아프다.
여름에 일자리를 잃었다.
찬란한 여름은 비극과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의 비극은 그때 시작되었다. 세상은 바야흐로 불경기에 접어들었고, 실직은 모두의 고민이 되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네는 벌어놓은 것으로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했다. 일자리 찾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나 같은 이가 세상에 너무 많았고, 나 같은 이를 쓰지 않으려는 고용주 또한 세상에 너무 많았다.
단발적인 막노동만을 겨우 몇 번 했을 뿐이다. 그것도 운이 억세게 좋았을 때 말이다. 대부분은 빈손으로 들어가 아내와 아이의 실망스런 눈빛 앞에 짐짓 희망의 미소를 지어대곤 했다. 내 노력과는 달리, 아무도 미소 속의 희망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진 괜찮았다.
술이 늘었고 한탄이 늘었고 침묵이 늘었다.
술에 취하면 아이에게, ‘너만 한 나이에 나는 ……’으로 시작되는 긴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아내에게는 둘만 있을 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말해야 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상황파악은 아이가 가장 먼저 했다.
부모가 제 먹을 것을 구해올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집 밖을 돌아다녔다. 일거리를 구하는 일이 여의치 않자 도둑이 되었다. 우리 또한 여의치 않았으므로, 아이를 나무라기에 앞서 그 획득물로 배를 채우기 급급했다. 아내는 아이를 격려했고, 나는 모른 척했다.
주인집 물건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안전했다.
뭐든 위험해지기 전까지는 안전한 법이다. 주인집을 건드린 것은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주인은 우리를 의심했다. 우리는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아니지, 우린 도둑이지. 이 진실은 언제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우리는 도망가기 급급했다.
마지막에 우리는 구걸을 했다.
잘 곳도, 가진 것도, 일자리도 없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마지막이 도둑질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자존심을 굽히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배고픔 앞에선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사람들은 적선을 베풀지 않는다. 거지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 사람들은, 거지에게 동전을 꺼내다가 슬그머니 주머니 속으로 다시 집어넣는다.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다. 모두가 몰락의 대열에 서있다는 불안감이 세상에 자욱하다. 불경기는 악순환이다.
다시 바닷가이다.
우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린 죽지 못할 것이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웠다. 죽음 뒤의 평안보다 죽기까지의 공포가 먼저 왔다. 아이는 죽고 싶지 않을 거고, 난 아이를 죽일 수 없다. 아내는 바다를 싫어했고, 난 이미 해가 뜨고 있음을 알았다. 해가 뜨면 조금은 따뜻해진다. 빛과 함께 온 따뜻함이 오늘은 뭔가 달라질 것 같은 희망을 안겨준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매번 현혹된다. 더 이상의 고통은 참지 못할 것 같지만, 우리는 언제나 고통을 참는다.
그리고 악순환의 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우리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은.
우린 오늘 밤에 또 여기 나올지도 모른다.
배고픈 스산한 밤이면 우리는 죽고 싶어진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죽지는 못할 것이면서.
이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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