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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1967)

2012. 9. 8.

 

 

 

향수, Homesickness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1967


 

 

 

 

 

관련 링크

공식사이트 http://www.magritte.be/?lang=en

위키백과    http://bit.ly/Q5fY7Z

wikipedia   http://bit.ly/Q5fM8J

 

 

날개가 있어 슬프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정작 가고 싶은 곳에는 갈 수가 없다. 내 잘못으로 기인한 결과이므로 원망은 없다. 다만, 그리움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내게 내려진 형벌이다.

천사는 지상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삶을 마칠 때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까지의 여정을 인도하는 역할이 전부이다. 세상 만물은 제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만물은 자기자신에게는 신으로 군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커다란 흐름을 방해하게 되면, 그와 연관된 수많은 신들의 권능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금기이다.

그러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하물며 들풀까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인도하고 도와줄 존재가 있고, 또한 그들에 의해 세상은 움직여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만, 누군가 정해놓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당신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 때문이다. 천사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실, 스스로 제무덤을 팠다고는 믿고 싶진 않겠지. 그들은 다른 이가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언젠가는 함정에서 구해주길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세상의 선입견은 천사들에겐 위협적이다.

맹수는 아프리카 초원을 유유자적 거닐었다. 초원을 가르며 불어오는 한줄기 뜨거운 바람에 실려온 냄새의 이질감이 경계심을 일깨웠다. 잠시 후 경계의 대상이 나타났다. 사냥꾼들이다.
그 옛날 맹수가 사냥꾼이던 시절이 지나갔다. 이제 맹수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맹수는 으러렁거리며 초원을 가로지르지만, 사냥꾼의 총구에서 뿜어내는 굉음과 지프차가 굴러가는 속도에 대항할 수가 없다.

사냥꾼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맹수는 울부짖는다. 제발 도와달라고… 하필 그 순간에 내가 거기 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는 반사작용 같은 거였다. 난 맹수를 안고 날았고, 사냥꾼는 나르는 맹수를 보았고, 맹수는 하늘 위에서 사냥꾼을 보았다. 세상의 흐름이 크게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금기의 위반이었고, 금기를 깨면 대가를 치뤄야 한다.

난 정신을 잃었다. 맹수는 내 손을 벗어나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냥꾼은 총에 맞은 맹수가 아니라 산산히 부서진 맹수를 포획했다. 그들이 보았던 광경은 잘못 본 것으로 치부되었다. 잘못 보았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는 현상을 푸는 가장 믿을만한 가설이다.

깨어보니 난 지상에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수많은 무리들 틈에 있으나 교류할 수는 없다. 천사의 모습을 유지한 채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난 혼자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난 혼자여서 고독하고, 천사여서 죽지 못하고, 금기를 깬 천사이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혼자는 아니다. 나 때문에 산산조각난 맹수의 영혼을 내게 붙여주었으니까… 녀석을 원망하진 않지만, 그리 위안이 되진 않는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달고 다니는 꼴이니…

 

내가 할 말이다. 녀석의 월권으로 난 새로운 삶에 다다르지 못하고 녀석과 함께 영원히 쳇바퀴를 돌게 될 것이다. 그는 이유를 알지만, 난 이유를 모른다. 언제나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위안이 되라고 날 그의 곁에 두었을 리가 없다. 난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주제모르는 천사녀석에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하늘이 열렸고 녀석은 들어올려졌고 다시 하늘은 닫혔다.
뭐야, 용서인가? 하지만, 나는?
그제서야 난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알았다.
하늘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변명없이 내 죄를 시인하길 기다렸다.
결국, 난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자백한 꼴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곧 내가 그 금기를 어긴 천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깨닫음이 지나가자 녀석의 향수병이 내게 옮겨 붙었다.
난 기원한다.
녀석이 향수병에나 걸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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