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대부분 선(善)하다.
굳이 악(惡)할 필요가 없다.
백수린의 단편집 <여름의 빌라> 중 “고요한 사건”
“나”는 재개발 이슈를 보고 무허가주택 밀집 지구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 소금고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곳에는 아파트 지구와 달동네의 경계가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의 경계가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고양이 아저씨가 젊은 사내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을 목격한다. 고양이 아저씨가 죽을 수 있다는 다급함에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알리지만, 아버지는 외면한다.
그 기억은 어린 “나”의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이 된다.
창밖에 내리는 커다란 눈송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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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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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
하얀 목화밭과 검은 광산이 공존하는 1930년대 미국의 탄광 마을에 사는 일가족의 이야기다.
가장인 앨버트는 선한 사람이다.
백인 소녀들을 강간한 죄로 사형에 처해진 흑인 소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갤러웨이의 흑인 인부들은 그 소녀들이 성매매를 하는 아이들이었고, 흑인과 성매매한 사실이 발각되자 난처해져 거짓말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인들은 소녀들이 정직했으며 소년들은 사형선고 받을 짓을 했다고 말했다.
앨버트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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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든 백인이든 점박이든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법이나 다른 규율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법이나 규율은 울타리를 치고 선을 규정하는데, 왜 그런 선 긋기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선 안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선 안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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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부분 선하다.
우리가 속한 선(線) 안에서의 선(善)은 안전하다.
그곳엔 선을 넘지 않는 비겁함이 공존한다.
그리고 말한다.
선을 넘는다는 것.
그것은 다른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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