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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2012. 10. 3.

 

 

 

점심, The Luncheon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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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이 죽어나가도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
그녀는 오늘 아침 남편을 땅에 묻었다. 하루아침에 미망인이 되어버린 그녀는 집에 돌아와 망연자실 창가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다. 아침에 남편을 땅에 묻고 점심에 아들을 먹인다는 것은 미망인에겐 무리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이 더 어울린다.
나는 그녀의 친구이며 죽은 자의 애인이다. 미망인은 울 수 있으나, 애인은 울 수 없다. 더구나 미망인 앞에서는.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챙겨 먹이는 것 정도는 미망인의 친구가 할 일이다. 아이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슬픔이 밀려온다.
그는 나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버리지 못했다. 아이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너무나 도덕적이었기 때문이다. 불륜을 아무도 몰래 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 누구의 손가락질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고 덧붙이곤 했다. 나는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종종 그가 날 사랑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듦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신이 없으면 의심을 하게 되고, 의심은 사랑을 변질시킨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그의 아내와 그를 공유해야 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제 그의 사랑을 확인할 필요 없이, 오로지 나만 그를 사랑하면 된다. 난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의 침대맡 서랍 속의 약을 치웠다. 그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었다. 신의 예정보다는 조금 앞당겨진 것이긴 하지만.
난 내가 무섭다.
지독한 슬픔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는 자신이 너무 무섭다.

남편은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아무도 모르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가 안정된 가정을 가져야 할 시점에 남편은 나타났다. 사실, 남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남편이 그때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와 결혼한 것이었다. 내겐 안정된 가정이 필요했고, 내가 사랑을 기울일 대상인 아이도 생겨났으므로 그의 사생활엔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일은 복잡해질 테고 머리만 아플 테니까. 그는 가정을 깰 인물은 못된다. 그거면 됐다.
그러나 친구에겐 화가 났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나의 친구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남편의 애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의 믿음을 배신했다. 남편과의 자질구레한 사생활까지 다 털어놓았으므로, 그녀는 내가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연민을 심어주고, 그녀의 죄책감을 덜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용서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쩌면, 남편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침에 애인을 땅에 묻고 점심에 그의 아들을 챙겨 먹이고 있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 오히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로했다. 사실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숨겨진 애인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난 그녀가 남편의 약을 치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를 탓하지도, 약을 채워놓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죽음을 예정했고, 나는 묵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을 때, 그는 필요한 약을 찾지 못했다. 그리 슬프진 않았다. 내겐 달라질 게 없다. 남편이 있을 때도 남편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난 내가 무섭다.
슬픔이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자신이 정말 무섭다.

그녀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지?"
그녀 곁에서 포만감에 젖어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흔들린다. 눈물을 닦으며 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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