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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 | M. C.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

2012. 10. 5.

 

 

 

또 다른 세상, The Another World


 

M. C.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

 


 

 

 

 

관련 링크

공식사이트         http://www.mcescher.com

Gallery              http://bit.ly/SOrDFo

Wikipedia           http://bit.ly/SOoBkJ

 


삶은 지루하다. 눈을 뜨면 언제나 24시간의 하루가 주어진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하기 싫은 말을 해야 한다. 지루한 삶을 연장하기 위해.
삶이란 게 묘해서 지루한 단조로움으로 미칠 지경이라도, 그 이유만으로 삶을 끝낼 수는 없다. 누군가 내 삶을 끝장내 주겠다고 호의를 베푼다면 난 기겁을 하고 도망칠 것이 분명하다. 삶과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만큼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문제다.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길 원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무난한 삶을 살아왔음에도 삶에 대한 애착이 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둠이었다. 나는 사람머리를 달고 있는 새가 되어 있었다. 텅 빈 정육면체 공간이 무한한 공간에 떠다닌다. 각 면에는 창이 뚫려 있는 열린 공간이고, 각 창틀마다 사람머리를 가진 새들이 앉아 있다.
"여기가 어디죠?"
"여긴 또 다른 세상입니다."
"또 다른?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세상이 또 있다는 얘기입니까?"
"그건 모르겠군요.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알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와는 달리, 당신에겐 이곳이 또 다른 세상이겠지요."
“내 이전의 삶을 어떻게 되었죠?”
“이전의 삶도, 지금의 삶도, 그리고 미래의 삶도 오로지 당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당신의 이전의 삶에 대해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이전의 삶은 어디입니까?"
"우린 이 세상이 출발점입니다. 이전의 삶은 알지 못하고, 이후의 삶은 아직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타나긴 하지만, 누군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나는 왜 여기 있지요?"
"글쎄요. 당신이 이 세상에 적합했던 모양이군요."
"내가 뭘 어찌했다고?"
"우리는 각자의 창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이 창이 보여주는 세상 이외엔 관심이 없지요. 보시다시피 우린 날개를 가진 새입니다만 뚫려진 창밖으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새의 몸통의 가졌지만, 머리가 사람의 머리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생각이 많습니다. 우리도 생각이 많습니다. 저 끝은 다다를 수 있는 유한한 공간일까? 무한한 공간일까? 내가 보는 세상이 세상의 일부인가? 전부인가? 내가 날아갈 때 어디를 향해 언제쯤 어떻게 날아가야 하나? 날아간다면 돌아올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정작 날아가진 않습니다. 우린 열린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에 갇혀 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당신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건데, 어떤가요?"
"……."
"당신이 삶을 사랑하게 된다면 당신에게 적합한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생각이 삶을 지배해서 정작 살아가는 걸 무기력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처럼 삶을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말입니다."
"그럼, 생각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생각만 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곳에 머물겠다면 창은 얼마든지 있으니 생각하기 좋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십시오. 당신의 창은 당신이 떠나지 않은 이상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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