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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2012. 10. 9.

 

 

 

푸른 밤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QPLqpD

Works of Art       http://www.edvardmunch.info

Wikipedia           http://bit.ly/QPL95Y

 

 

지난밤 달빛은 유난히 차가웠다. 칼날 같은 푸른 달빛이 날카롭게 스며들어와 그의 목숨을 베어버렸다. 그를 발견한 건 가족이었다. 항상 힘들어했기에 그 밤이 가장 힘든 밤인 줄 알지 못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시간에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유서도 없었다. 죽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가족은 죽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했지만 죽을 만큼 힘든 줄을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죽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는 잘생기고 인기도 많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젊디젊은 스타다.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서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놓아버렸다.
그는 목숨을 끊는 그 밤 많은 사람과 통화를 했었다.
“나, 너무 힘들어. 아무도 날 이해해주질 않아. 이렇게 말하면 모두 배부른 소리라고 해. 난 너무 아픈 데 그건 아픈 것도 아니라고 해.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아픔은 뭐지?”
“괜찮아질 거야. 내일 아침이 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야. 너무 하찮은 일이라 오늘밤의 심각함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날 걸. 생각하지 마. 모두 잊어버리고 잠을 좀 자. 생각이 많은 건 좋지 않아. 지금 네 상태로는 좋은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수면제라도 한 알 먹고 다 잊고 잠을 자. 넌 스타야. 그걸 잊지 마.”
“사람들은 왜 나를 미워할까? 그들은 나를 미워하지만, 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해. 난 눈을 마주 보고 물어보고 싶어. 왜 나를 미워하는지. 하지만, 그들은 실체가 없어. 미움으로 똘똘 뭉쳐진 거대한 덩어리 같아. 마주할 눈은 하나 없지만, 떠들어댈 입은 너무 많아. 언젠가 그 미움에 깔려 죽을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널 욕하는 이들은 네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를 찾아낼 거야. 대중 스타가 가장 쉬운 상대일 뿐이지. 그리고 욕한 대상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까 더 쾌감을 느끼는 거야. 넌 그들에게 욕할 다수 중의 하나지만 넌 욕하는 그들이 전부지. 상황을 잘 봐. 네게 불리해. 그걸로 일일이 아파하면 살아갈 수가 없어.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대범해야 해. 잠을 좀 자. 내일이면 달라져 있을 거야.”
그는 그 밤을 버티지 못했다. 지금 그의 장례식장에 있다. 그 통화가 점점 길어지자 살짝 짜증을 낸 것 같기도 하다. 그날 밤의 통화는 언제나 하던 하소연의 연장이었다. 하소연을 들어주고 조금 도닥거려 주고 조금 맞장구를 쳐주는 일상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언제나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 내일이 장례식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말 다른 것이 하나 없었다.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을 만난다. 그들 중 꽤 많은 이들이 그 밤에 그와 통화했다. 개중에는 늘 통화를 해오던 나 같은 친구도 있고 뜬금없이 통화한 지인도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많은 이들과 이야기했다. 많이 아프다고 많이 힘들다고 죽을 만큼 그렇다고 말했다. 모두가 나와 같았다.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고 한숨 잠을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질 내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수많은 통화를 하면서 살려달라고 구조요청을 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낌새를 알아챘더라면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의 하소연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 그 정도는 누구나 아프다, 그래도 넌 가진 게 많지 않으냐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면서 내 생각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해해 주려 하지 않는 것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를 챙겨보아도 진실은 그가 가지고 떠나버렸다.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장례식장의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면 왜 말하지 않았을까, 의아해했다. 그는 항상 말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모든 게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 의미들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그는 서슬 퍼런 그 차가운 밤에 그는 삶을 홀로 끝내버렸다.
그가 흙에 묻히고 며칠이 지났다.
그의 집 앞 길가에서 볼펜에 묶인 쪽지 하나가 발견되었다. 제발 살려줘, 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쪽지를 창으로 던졌던 것이다. 구해줄 가능성이 희박한 익명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구조신호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끝까지 기다렸다. 그는 주변 사람을 시험한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었으면서 끝내 살려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고작 한 말이라곤, 너무 아프고 힘들어, 가 전부였다. 그에겐 충분했지만, 내겐 충분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다만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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