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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부 | 툴루즈 로트렉(Taulouse Lautec, 1864-1901)

2012. 10. 10.

 

 

 

세탁부, The Laundress


 

툴루즈 로트렉

Taulouse Lautrec, 1864-1901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ReAEYP

Works of Art       http://bit.ly/ReAYH6

Wikipedia           http://bit.ly/ReADnT

 

 

 

창을 통해 호수공원이 보인다. 신록이 푸른 5월의 공원은 신록을 즐기기에 충분히 한가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공원 한가운데는 공원이름에 어울리는 호수가 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떠다닌다. 창 바로 아래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모양이다.
창은 어느새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호수공원의 풍광을 보여주는 브라운관이 되어 있다. 채널은 단 하나뿐이다. 내가 외면하지 않는 한 브라운관에 주사(走査)되는 화면은 끊임없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난 외면할 수도 없다. 텔레비전이란 그런 것이다. 곁에 있으면 싫어도 저절로 손이 가는 과자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꼭 먹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풀밭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끊임없이 먹어대는 몇 무리의 가족들이 있고, 한편에는 팔짱을 끼고 필요 이상으로 느릿느릿 걷고 있는 연인들, 쓸데없는 낭만을 좇느라 헛된 힘을 쓰며 노를 젓는 또 다른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는 사람들, 호수가 벤치에는 책장을 넘기는 초로의 신사, 그 건너편 벤치에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이 엄마들, 건강증진이 최대의 목표인 듯 밤낮으로 호수를 따라 뛰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다.
청각을 자극하는 그들이 쏟아내는 직접적인 음향은 아무것도 없다. 음향은 다만 창 바로 아래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뿐이다. 아직 세상사를 알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아이들. 아이들은 세상에서 웃기만 하면 된다. 울더라도 곁에는 달래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항변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고달프다고. 그래, 네 인생을 쉽게 말할 생각은 없다. 너도 고달플 때가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너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얘들아, 긴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을 따지자면,  너희가 훨씬 높은 확률 아래 살아가고 있다. 너희는 공놀이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다. 어른들은 공놀이가 행복의 아주 미미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애써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인정하는 어른이라면 그래도 행복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다. 대부분은 그나마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단한 행복을 위해서 소소한 행복을 잃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점점 대범해지는 사람들이지.
내가 창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저 공원을 걸으며 그들이 뱉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아마도 저들의 평화로운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실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풀밭에 앉은 가족에게서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아내와 아내를 면박 주는 남편의 큰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연인들은 오해를 풀려고 만나 더 큰 오해로 다투고 있을지도 모르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배를 뒤집을 기회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대로 호수로 곤두박질치고 싶은 건지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 초로의 신사는 자신을 박대하는 아들 내외를 피해 나온 건지도 모르고, 벤치의 아이 엄마는 말을 듣지 않은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을지도 모르고, 호숫가를 뛰어가는 사람들은 내일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창을 통해 보이는 공원의 풍광은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재(實在)는 아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 한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은 계속된다. 공원은 소시민의 휴식처지만, 그 속에서 소시민들이 행복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록이 푸른 5월 일요일 오후.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기꺼이 공원을 거니는 그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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