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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나 리고티의 초상 | 펠리체 카소라티 (Felice Casorati, 1883-1963)

2012. 10. 15.

 

 

 

 

  

헤나 리고티의 초상, Portrait of Hena Rigotti


 

펠리체 카소라티

Felice Casorati, 1883-1963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Rw21kp

Works of Art          http://bit.ly/Rw23J2
Wikipedia              http://bit.ly/Rw14Zl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그녀는 항상 아름다움을 확인했다. 어제와 같은 대답을 오늘도 듣기를 원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스스로 흡족할 때 거울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세월은 정직하고 거울은 세월을 반영한다. 아름다움은 슬프게도 순간이고, 그녀도 원하는 대답을 더는 들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살아오는 내내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자는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다움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을 차지해야만 행복하다고 가르쳤다. 그녀는 어머니의 삶을 알고 있다. 아름다웠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모든 걸 누렸지만, 사랑만은 누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모든 걸 남겨두고 홀로 떠났고, 어머니는 모든 것을 누렸기에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딸에게 자신의 삶이 행복이라고 가르치며 끝내 버림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도도했고 우아했다. 그녀의 성격적 결함조차 아름다워서 한때의 치기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구혼자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했고, 그녀의 경쟁자들이 그녀를 시기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한다는 의미였기에, 찬미나 시기 모두를 대놓고 즐겼다. 그럴수록 찬미와 시기는 더 열렬해졌다.
남편도 구혼자 중 하나였다. 그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걸맞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부자였고, 그에 대해 쩨쩨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저택과 빛나는 보석을 주었지만, 그녀는 고마움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딸이 태어났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했고, 딸의 탄생을 기뻐했다. 언뜻 보면 그녀는 가장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그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라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모성애를 강요하는 칭얼대는 아기는 성가셨고, 그녀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남편은 착하기만 한 바보 같았다. 그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 같았고, 실제로 아름다움은 시들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화가를 불러들여 초상화를 그렸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이제 거울을 보지 않았다. 대신 절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화폭에 새겨 넣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대면했다. 그림 속의 그녀는 항상 아름다웠지만, 그녀는 그림에 대고 가장 아름다운 이를 묻지 않는다. 그림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림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멈춰진 시간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림 속의 그녀는 이미 과거이기 때문이다. 이제 거울 앞에 다가와 자신을 비추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거울은 벽에서 내려져 검은 천에 덮여 한구석에 세워졌다. 그 자리에 아름다운 그녀의 초상이 대신 걸렸다.
이제 딸은 사방을 뛰어다닌다. 딸은 여전히 낯설다. 아무리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시끄럽게 뛰어다녀도 남편은 딸을 한없이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으면 그들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완벽한 그녀의 삶에도 필요한 조건이니까.
그녀는 딸이 그녀의 침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딸의 성장은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대면하게 한다. 시간의 흐름. 어린 딸은 젊어지고 있지만, 자신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딸은 침실로 들이닥쳤고,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거울로 돌진했다.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고, 딸은 피를 흘리고 있다. 그녀는 딸을 탓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고, 딸은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소란에 놀란 남편이 들어와 그녀의 뺨을 쳤다. 그녀는 정신을 차렸고, 딸도 울음을 멈췄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떠났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낯익은 뒷모습이다. 그녀의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는 왜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그들은 나 없이 행복할까? 나는 그들 없이 행복할까?’
깨어진 거울 조각 하나가 늙고 추한 그리고 홀로 남겨진 그녀를 비추고 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면 묻지 말았어야 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불쌍하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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