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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18

"나"로 사는 것 “나”로 산다는 것이 힘든 시대가 있었다. 용기가 필요했고, 투쟁을 해야 했고, 좌절을 겪기도 한 시대. 의 엘우드는 마틴 루터 킹이 흑인의 인권의식을 막 일깨우던 시기를 살았던 흑인 소년이고, 의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자이니치(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 2세이다. 니클의 소년들 | 콜슨 화이트헤드 판결로 인종 분리 정책 중단이 선언되었다. 엘우드는 검둥이들이 언제부터 리치먼드에 숙박할 수 있게 되는 거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엘우드는 호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할머니 해리엇을 따라 호텔에 갔고, 주방에서 놀곤 했다. 주방 사람들은 가끔 엘우드와 누가 더 빨리 그릇의 물기를 닦는지.. 2021. 8. 23.
이름 이름은 정체성이며, 상징이며, 존재 증명이다. 이름은 억압된 사회에서 가장 먼저 부인된다. 금지된 이름은 특히 어떤 기운이나 역사의 힘이나 해묵은 갈등이나 그 나라가 오래전에 이 나라에 내린 명령과 강제가 서려 있다고 생각되는 이름이고 이름의 본디 국적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밀크맨 | 애나 번스 내 이름은 오브프레드가 아닌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금지된 이름이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이름은 중요한 문제다.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은 테러와 보복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폐쇄적인 지역공동체가, 는 가임 여성은 출산의 도구로, 불임 여성은 이름뿐인 아내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가부장적 억압사회가 배경이.. 2021. 6. 16.
교수대의 비망록 | 율리우스 푸치크 어느 날 보안서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다. 전등 불빛으로 환한 대기실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확인하던 그때, 율리우스 푸치크의 글이 그를 위로했다. 푸치크는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면서도 글을 썼다. […] 기행은 그 단호함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지만, 세상에 그런 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김연수는 에서 체코의 공산주의자 율리우스 푸치크 을 언급한다. 그래서 찾아본 책이 이다. 체코의 언론인이며 작가, 문예평론가 그리고 공산주의자인 율리우스 푸치크는 게슈타포에 체포된 후 처형되기 전까지, 한 간수의 도움으로 담배종이 등에 글을 남겼다. 푸치크는 형장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글은 살아남았다. 1942년 4월 24일의.. 2021. 5. 14.
순자 順子 일본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 질곡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순자”들이 있다. 순할 순順에 아이 자子. 쥰코, 순한 아이.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순자였어. 내 친구도 순자였다. 순자가 순자의 동무였다. 연년세세 | 황정은 황정은의 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순자가 등장한다. 삼십오 년 된 노포에서 일하는 순자,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갈골에서 부모와 사별한 순자, 지경리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순자, 그리고 그 순자가 열다섯살 때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에서 만난 순자. 내 동무, 이웃, 동갑이자 동명同名인 순자. 연년세세 | 황정은 그 시절, 여자아이에게 원하는 바가 이름에 투영된다. 말 잘 듣는 아이, 불평 없는 아이. 순자의 시대는 평탄.. 2021. 4. 30.
이면(裏面) 기록은 사실을 전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면(裏面)이 존재한다. 검열을 거치는 문서 중에 군대와 감옥을 오가는 편지가 있다. 체코의 언론인이며 작가, 문예평론가인 율리우스 푸치크가 게슈타포에 체포된 후 처형되기 전까지, 프라하의 감옥에서 담배종이 등에 틈틈이 적어둔 글과 편지들을 모은 책이 이다. 푸치크는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 두 누이에게 내가 편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찾고 또 찾아내는지 너희들로서는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너희가 편지 속에 써 보내지 않은 것까지 찾아낸단다. ----- 감옥을 오가는 글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푸치크는 사형일을 기다리며 가족의 편지 속에서 지워진 혹은 쓰지 못한 사랑과 슬픔의 마음을 찾아낸다. 는 1930년대 일제 침략기의 만주, .. 2021. 3. 31.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저/조혜진 역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고요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뉘앙스의 공포‘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탄생『피버 드림』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다. 환경재앙을 섬뜩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직품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창궐이라는 위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만타 슈웨 블린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작가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다. 우연히 “창비 서평단 모집”을 보고 신청했다. 며칠 후 당첨 메일과 함께 얇은 중편소설 가제본 도서가 도착했다. 제목 “피버 드림(Fever Dr.. 2021. 3. 12.
너무 시끄러운 고독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은 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작품이다. 그는 슈크보레츠키,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체코 문학의 세 거두로 추앙받고 있다. 앞의 두 작가와 달리, 끝까지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글을 쓴 작가다. 그로테스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들은 즐겨 묘사하는, 유머 감각이 넘치는 작가이다. 감시와 검열 속에서 글쓰기를 놓지 못한 작가의 유머에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우수가 깃들여 있다. 첫 문장이다. -----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 폐지 더미와의 사랑. 그 사랑이 온전할까? 폐지 더미 속은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이는 “인간적”인가? 이야기는 끊임없이 “인간적”이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 .. 2021. 3. 6.
선(線) 안의 선(善) 사람은 대부분 선(善)하다. 굳이 악(惡)할 필요가 없다. 백수린의 단편집 중 “고요한 사건” “나”는 재개발 이슈를 보고 무허가주택 밀집 지구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 소금고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곳에는 아파트 지구와 달동네의 경계가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의 경계가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고양이 아저씨가 젊은 사내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을 목격한다. 고양이 아저씨가 죽을 수 있다는 다급함에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알리지만, 아버지는 외면한다. 그 기억은 어린 “나”의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이 된다. 창밖에 내리는 커다란 눈송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 2021. 2. 18.
역사란 무엇인가? 줄리언 반스의 . 소설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제목이었다. 주요 화자인 토니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인물이었기에. 원제 인데, 번역기식 직역은 “결말의 의미”, “결말의 감각”이고, 어느 블로그에 '마지막에서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번역해두었던데, 훨씬 그럴 듯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친구 토니, 에이드리언, 콜린, 앨릭스 네 친구로 시작해서, 토니와 에이드리언, 그리고 그들과 베로니카의 관계, 결국 홀로 남은 토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 수업 시간에 네 친구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어린 그들은 대답한다. 토니, 승자들의 거짓말. 콜린, 생양파 샌드위치. 죽자고 반복하니까.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 에이드리언,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 2021.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