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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

걸어가다

2020. 7. 25.

인생을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 중에서 의지가 될 만한 이로 둘을 꼽을 수 있다.

스승과 부모.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스토너의 스승 슬론 교수는 스토너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길을 안내한다.

제자가 학문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한눈에 간파한 스승.

안정된 수입, 타인의 선망이 아닌 아주 간단한 이유,

대상에 대한 사랑.

 

"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월트."

"사부님이 일기예보원이나 뭐 그런 사람이라도 되나요?"

"그래, 맞는 말이다. 이 지역의 하늘은 믿을 수가 없지.

하지만 내 말은 비가 안 온다는 게 아니라

비가 내리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공중곡예사 | 폴 오스터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은 언제나 존재한다.

시련과 고난을 피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럼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왜냐면 시련과 고난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시련을 만난다.

 

소피야가 이 곡을 선택했을 때 백작은 곡이 ‘즐겁다’, ‘매우 발랄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려를 에둘러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우려를 표명한 다음에는 세 발짝 물러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도 아니고 두 발짝도 아닌, 세 발짝이었다. 어쩌면 네 발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발짝은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이 걱정한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그 결정이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모스크바의 신사 | 에이모 토울스

 

세 발짝 물러서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그들이 선택할 수 있게.

당신의 해답을 만인의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때 “거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하지 않게.

딱 세 발짝만……

 

쉽지 않다.

딱히 제자나 자녀가 아니더라도,

뒤를 따라 걸어오는 세대에게 이상적인 앞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상(理想)은 꿈이지만, 우리는 이상을 그린다.

이상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그 비슷한 언저리에라도 도착하지 않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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