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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 - 앵그르(J.D.Ingres, 1780-1867)

2012. 9. 8.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 


Comtesse d'Haussonville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 ~ 1867


 

관련 링크

웹사이트       http://www.jeanaugustedominiqueingres.org

네이버캐스트 http://bit.ly/Q5hcQA

                   http://bit.ly/Q5hgjm

wikipedia      http://bit.ly/Q5gQcK

 

 

백작은 내게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나는 부인을 사랑했고, 백작은 부인을 소유했으며, 부인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백작은 아름다움을 수집했지만 독점욕이 강했고, 나는 아름다움을 탐했지만 화폭에 담는 것 이상의 소유가 허락되지 않았고, 부인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백작은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백작부인과 나와 아무런 실질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다. 그는 이번 기회에 내가 설 자리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았다.

부인 또한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끊임없이 구애를 했으니 그건 당연하다. 나는 그녀를 본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연모의 편지와 선물을 전하며, 기꺼이 백작부인의 정부(情婦)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녀는 편지와 선물을 내치지는 않았지만, 한번도 답장이나 수락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점욕이 강한 백작이 아내의 정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화가는 그의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연정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아름다움이란 때론 사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상화 의뢰를 기꺼이 수락했다.
백작은 그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후한 사례를 약속했고, 난 선물을 살 돈이 필요했다.

부인은 결혼반지와 화려하진 않지만 값어치가 느껴지는 보석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우아한 포즈를 잡았다. 백작은 그림을 그릴 때 한 구석에 앉아 부인과 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요하게 앉아 있었으나, 그 넓은 홀을 답답하게 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듯 했다. 부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두 남자의 시선을 우아함과 더불어 조금은 오만하게 즐기고 있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은, 내겐 아픔이면서 즐거움이었다.
나는 백작의 의도대로 나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아내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겐 사랑이 없었다. 이것은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쁜 형세다. 사랑이 없으면 내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니까…
이 모든 것은 내겐 아픔이었다.

내게 단 하나의 기쁨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림이었다.
백작은 그림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이 존재하는 한 화가는 언제나 존재감을 가진다. 백작부인은 그림 안에서, 화가는 그림 밖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오로지 내게만 의미있는 또하나의 초상화를 그렸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이 그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에는 백작이 준 보석도 보이지 않고, 그녀의 우아한 오만함도 없다. 다만, 나의 사랑을 받아들인 소박한 여인만이 있었다.
결국, 이 초상화는 두 여인의 초상화이다. 백작의 아내와 화가의 연인.

백작부인는 그동안 내가 보냈던 선물 중의 하나인 머리장식을 하고 포즈를 잡았던 것이다. 그녀는 흠모자가 필요했고, 흠모자들에게는 헤프지 않은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백작이 원하는 초상화는 완성되었다.
백작은 아내의 초상화에 만족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연인의 초상화를 그에게 선물했다.
물론, 백작은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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