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킨다는 것의 부끄러움
무지일 수도 있고, 속물성일 수도 있고, 비밀일 수도 있고.
들켰을 때, 모멸감과 분노와 허탈함이 뒤따른다.
에이미와 이저벨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엄마, 예이츠예요. 이이츠가 아니라.”
이저벨이 돌아보았다. “뭐?” 당혹감이 벌써 목으로, 가슴으로 퍼지고 있었다.
<예이츠 시 선집>
그들은 이저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그들이 그 혐오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자기에 대해 이따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음을 깨달았다.
[…]
그녀가 집 앞 진입로로 들어서면서 느낀 것은 깊은 분노와 고통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도 생명을 지탱할 수 있으리라고 절대 믿을 수 없었던, 그런 분노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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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저벨은 낯선 존재, 딸 에이미와 함께 살고 있다.
에이미는 학교 교사와 부적절한 만남을 이저벨에게 들킨다.
하지만, 들킨다는 것의 부끄러움은 이저벨의 몫이다.
이저벨의 무지. 교사의 집에 있는 <예이츠 시 선집>을 보고서 그들이 어머니인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그리고 에이미의 “예이츠” 정정은 그 결과라는 것.
결국 분노와 고통은 이저벨의 몫이다.
슬픈 짐승 / 모니카 마론
당신이 이 뼈대를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말했던 사람이지요. 그녀가 말했다. 내 남편은 그 말에 아주 감동해서 바로 그날 저녁 내게 그것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놀라워요. 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당신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소박함이에요.
프란츠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바로 지난 주말에 박물관과 브라키오사우루스를 구경했다고, 그 거대한 동물이 텐다구루에 살아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자 자신도 남편도 경건한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
프란츠가 작은 금발의 아내와 함께 나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장소들이 프란츠와 그의 아내의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 블리커 스트리트, 그리고 피렌체 전체가 그들의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의 그 1제곱미터는 내 것,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프란츠의 아내는 도발적으로 세심하게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식탁보 위의 주름 하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자 무릎 위에 두 손을 엇갈리게 놓았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나는 그녀를 때리고 싶다는 제어하기 힘든 욕구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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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박물관에서 일한다.
아침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에서 사랑과 경의를 표한다.
어느 날 그 곁에서 그 의식에 공감한 프란츠와 사랑에 빠진다.
프란츠는 유부남이다. 프란츠가 아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녀와의 시간을 희생하자, 극심한 질투에 사로잡혀 프란츠의 집에서 아내를 대면한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의 그 1제곱미터.
아내는 프란츠와 자신만의 공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또한 그녀의 몫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와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과 같지 않다.
사랑이 보답받지 못하면 우리는 분노한다.
누구에게 향한 분노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랑하는 딸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남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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