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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

경계

2023. 6. 13.

 

경계가 있다.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여자와 남자, 아군과 적, 나와 나 이외의 것……

그리고 …… 에 생략된 수많은 경계들.

경계의 기준점에는 내가 있다. “라는 존재의 물리적, 심리적 위치.

 

백교수의 집 문은, 특별히 손잡이의 단추를 눌러 두지 않는 한 자동으로 잠겨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늘 손잡이의 단추를 누르거나 열쇠 가지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초인종 소리가 났다그런데 아무도 온 사람이 없어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비바람에 현관문이 닫히고 말았다나는 경찰관에게 길게 설명했다. 말이 짧은 사람은 설명이 긴 법이다경찰관은 내게 말했다.
"Are you locked out, aren't you(
밖으로 갇힌 거군요)?" 

하늘의 문 | 이윤기

 

라는 존재를 집안에 남겨둔 사람은 밖이 아무리 넓어도 밖으로 갇힌 존재가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랠프 월도 에머슨이 친구였다는 것 아셨소?"

"몰랐습니다." 가마슈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피니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친구였다오. 소로는 전에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겨진 정부의 어떤 법에 항의하다가 감옥에 갇혔지. 에머슨이 면회를 가서 말했다오. '헨리 어쩌다 여기 들어오게 된 건가? 소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시오?"

"모르겠군요." 가마슈가 말했다.

"랠프, 어쩌다 그 바깥에 있게 된 건가?"

살인하는 돌 | 루이즈 페니

 

소로의 신념은 에머슨을 바깥에 둔다.

에머슨에게 감옥은 불편한 공간이지만, 소로에게 감옥은 신념의 공간이다.

 

카지미르 외삼촌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어둠의 경계야. 실제로 우리 뒤의 육지가 물속으로 가라 앉아버린 듯했고,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이어진 한줄의 모래띠만이 물의 황무지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자주 온단다(I often come out here). 외삼촌이 말했다. 여기 오면 내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어디로부터 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It makes me feel that I am a long way away, though I never quite know from where).

<이민자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 W. G. 제발트

 

그리고 여기(here), 경계가 있지만 기준점(where)을 상실한 이민자가 있다.

 

경계를 허물자고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경계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경계는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기준점을 상실하면 공허함은 느낀다.

경계를 허물자는 것은, 내가 있는 경계 밖을 관대하게 바라보자는 말인지도 모른다.

경계의 안과 밖에 있는 소로와 에머슨이 친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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