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덧칠하기/그림, 그리고

목맨 사람의 집 | 폴 세잔느(Paul Cezanne, 1839-1906)

2012. 10. 3.

 

 

 

목맨 사람의 집


The Suicide's House

 

 

폴 세잔느

Paul Cezanne, 1839-1906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SE1B7O

MOMA              http://bit.ly/SE1WaI

Wikipedia           http://bit.ly/SE1aub

 

 

사람 사는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면 상가(喪家)가 되지만, 사람 살지 않는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면 죽은 자의 집이 된다.
그 집은 목맨 사람의 집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집은 목맨 사람의 집이었고, 산 사람은 아무도 그 근처를 얼씬거리지 않았다. 생명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면 웬만하면 죽음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다. 
경작하는 작물마다 매번 농작물 파동을 겪은 농부들은 짐을 싸들고 도시로 떠나갔고, 집은 버려지더니 결국 폐가가 되었다. 그 중 몇몇은 도시인으로 편입되지 못했고, 빈털터리로 돌아와 쓰라리고 억울한 사연만을 간직한 채 폐가에서 목을 매달았다. 그 후로, 그 집은 목맨 사람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몇 해 걸러 한 번씩 목맬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어쩌면 그 집은 목매기 좋은 집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을사람들은 그 집을 피해 다녔지만,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나그네들이나 뭘 모르는 어린 녀석들이 가끔 그 집 앞을 지나다녔다. 그들 중 몇몇은 목맨 끈을 동여맨 상태로 떠돌아다니는 창백한 영혼들을 보았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 진위는 아무것도 확인된 바 없지만 어느새 믿기지 않는 진실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그 집을 없애버리자고 몇 번 결의했지만, 아무도 망치나 횃불을 들지 않았다. 살아가다 보면 확인되지 않아 더욱더 믿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죽은 자를 해하는 일은 아무래도 산 사람에겐 꺼림칙한 법이다. 그래서 죽은 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마을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들이닥치더니 이상한 기구를 가지고 측량을 하고 깃발을 몇 개 꽂아두고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도저가 와서 목맨 사람의 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밀어버렸고, 네 기둥에 철근으로 뼈대를 세우고 시멘트를 채웠다. 겉모습은 거울 같은 유리가 뒤덮여서 완성 즈음엔 건물 자체가 보석처럼 빛났다.
순식간에 죽은 자들은 머물 곳을 잃었다.
누가 이 시골에 이런 으리으리한 빌딩을 지을까,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무슨 연구소라고 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다. 건물 안에서 먹고 자고 그리고 연구를 한다고 했다. 마을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들만의 영역에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그네의 구경거리는 되었으나 나그네를 맞아들일 생각은 없었고,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아무것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낮에는 햇빛에 반짝이고 밤에는 대낮처럼 환한 그 집은 마을과 따로따로 살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목맨 사람의 집이 그리웠다. 가끔 주위를 어정거리다가 망자의 혼을 보고 기겁을 하던 일은 정겹게 기억되기까지 했다. 이제 목맬 사람들도 목맬 곳을 잃었다. 그 빌딩은 산 사람에게서도 뭔가를 뺏어갔다.
 어느 날.
대책 없이 용감한 아이 하나가 그 건물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왔다. 마을사람들은 아이 주위에 몰려들어 이것저것 물어댔다.
아이는 말했다.
"거긴 목에 알록달록한 끈을 매고, 하얀 옷을 입고, 낯짝 허연 사람들이 가득 했심더."
어디선가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랑께 거거이 목맨 사람들 아잉교?"
그때서야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마을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곳은 목맨 사람의 집이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