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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 | 로버트 루이스 리드(Robert Lewis Reid, 1862-1929)

2012. 10. 9.

 

 

 

깊은 생각, Reflections


 

로버트 루이스 리드

Robert Lewis Reid, 1862-1929

  

 

 

 

 

 

 

 

관련 링크

Works of Art       http://bit.ly/VJccVj

Wikipedia           http://bit.ly/VJbqrf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게로 오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선택했다. 이제 곧 내게로 와서 내게서 머물 것이다. 행복하다. 비난받을 만한 불안한 행복이지만 순간 행복했다. 순간이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와 만나면서도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와의 사랑도 진실했다. 다만, 변한 것뿐이다. 나와의 사랑이 이전의 사랑을 변질시켰다.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부당하다. 그녀와의 결혼 얘기가 나오자 그는 선택해야 했다. 나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 또한 시작부터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사랑만큼 도덕에 무감각한 감정이 있을까?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다.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와 만나면서 가끔 그녀 이야기를 했다. 우리 만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떳떳한 것이라는 듯이, 게다가 나는 가끔 그녀의 편을 들기도 했다. 이건 우정 이상의 어떠한 것도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우리의 불편하고 달콤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서로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는 줄 알면서도 서로 속고 속이고 있었다.
내가 불쌍했다. 세 사람의 관계를 모두 안다면, 아무도 나를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두 사람 사이에서 헤매는 이상 아무도 완전한 사랑 속에 있지 못했다. 그에게 달렸다. 내 사랑은 오롯이 나와 동떨어져 있다. 선택하지 않는 그를 원망하고, 주저하는 그를 의심하며 불안하게 선택을 기다린다.
그는 그녀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그건 확실하다. 그가 선택을 못 해서 그렇지, 선택한다면 나를 선택할 것이다. 결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상황은 점점 짜증이 난다. 나는 선택받고 싶은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는 가장 난처해하면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내게는 그녀에게 상처주기가 두렵다며 기다려 달라 하고, 그녀에게는 뭔가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면서도 착각이라고 착각하게 하고 있다. 그의 우유부단함이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
최후통첩을 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내 반쪽 사랑을 채워주든지 던져버리든지 하라고 했다. 완전한 하나가 되든지 텅 비워주든지, 반쪽은 불안하다. 그도 인정해야 했다. 다 가질 수는 없다. 양쪽에 절반밖에 주지 못하면서 그는 하나 이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충족일지 모르나, 우리에겐 상실이다. 우리라는 범주에 그가 아닌 그녀를 포함하게 되면서 내 사랑도 변질되고 있다.
어느 새 사랑에 갇혀 버렸다. 그는 나를 선택했고 그녀에게 통보하러 떠났다. 그가 다시 문을 들어설 때면 사랑은 온전해져 있을까? 선택이 끝난 시점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내가 원한 것이 선택을 받는 것인지 버림을 받는 것인지 헛갈렸다. 선택받았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그를 사랑해서 떠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런 줄 알았다. 그가 망설였기 때문에 떠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시작부터 불안한 관계였다. 서로 사랑이라고 쉽게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론이 났는데 의문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전혀 상쾌하지 않다.
그의 선택이 끝나자 내 선택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만 바라보며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내 사랑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의 선택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시 저 문을 들어설 그를 맞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데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그가 망설인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어쩌지? 그녀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아파 온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일일까? 사랑은 도덕에 무감각한 감정이다.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고 있는 이 순간이 정말 사랑일까?
떠나야 한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그를 만나면 설명할 수 없다. 전화를 해야 할까?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주제넘은 짓이다. 그도 나도 선택을 했다. 그 결과가 행복이든 불행이든 감당할 수밖에 없다. 짐을 싸야겠다.
전화가 울렸다. 그의 전화면 어쩌지? 전화가 계속 울린다. 그가 화가 난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았나? 벨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진다. 전화를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니, 할 수 없어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도 뜸을 들였다. 하지만, 전화 저편의 소리는 여자 목소리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단박에 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표정했다.
“저, …… 사고가 있었습니다. …… 그는 죽었습니다. …… 당신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는 끝내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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