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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 월터 랭글리(Walter Langley, 1852-1922)

2012. 10. 9.

 

 

 

고아, The Orphan


 

월터 랭글리

Walter Langley, 1852-1922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T0ag4M

Works of Art       http://bit.ly/T0aw3K

Wikipedia           http://bit.ly/T09TqF

 

 

 

“천천히 먹어도 된단다. 부족하면 말하렴. 충분히 있으니까.”
얼마나 굶주린 것일까? 아이는 대답도 없이 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녀린 몸집에 홀쭉하게 들어간 볼살, 여러 날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았다. 제대로 입지도 못해서 살갗은 발갛게 일어나있었고,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갑작스러운 따뜻함에 깨져 버릴 것 같이 아이는 연약했다. 아이에겐 가혹한 겨울이었다.
아이는 시장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누군가 생각났을 것이다. 아이가 문을 들어섰을 때 내가 떠올린 그 아이, 내 아들이고 그녀의 손자였던 아이, 이제 우리 곁에 없는 아이. 아이가 떠나가자 불을 피워도 전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슬퍼했고 이 슬픔이 처음이 아니어서 더 슬펐다. 아이의 아버지이자 내 남편이고 어머니의 아들인 그도 폭풍우 치던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죽음. 우리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바다는 남편을 삼켰고 땅은 어린 아들을 삼켜 버렸다. 바다는 아내의 눈물로 푸르러지고, 땅은 어머니의 피로 붉어진다. 바다와 땅과 하늘이 원망스러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깨달을 뿐이다.
누구 하나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거센 폭풍우였지만, 내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마을 아이들을 모두 데려갔어도 내 아이만은 무사해야 했다. 예외 없이 내 아이를 데려갔을 때 넋을 놓아버렸다. 바닷가 마을, 아낙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가슴에는 슬픔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떠나간 이에겐 죽음이 끝이지만, 남겨진 이에겐 슬픔이 영원하다.
“우리가 키우죠. 넉넉하진 않아도 돌볼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더 일거리를 찾으면 공부를 시킬 수도 있을 테고. 적어도 거리를 헤매며 구걸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내일 당장 아침 일거리를 찾아봐야겠다. 우선은 임시로 아이 잠자리도 마련하고, 내일 방 하나를 치우고 아이 방을 꾸며보자꾸나. 내일은 바빠지겠구나.”
“아이 옷도 좀 만들어야겠어요. 옷이 너무 얇아서 이 겨울을 나긴 힘들겠어요. 아이에게 또 뭐가 필요하죠? 학교도 보내야죠. 내일 선생님과 상의를 해야겠어요. 우선, 좀 씻겨야 할까요?”
“오늘은 너무 힘든 하루였을 테니 그냥 재우자꾸나.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왔으니 먹고 나면 무척 졸릴 거야. 물도 데워야 할 테고 아이에겐 추위도 그렇지만 졸음도 견디기 어려울 테니. 내일부터 하나하나 챙겨보자꾸나.”
“이 아이가 자라면 이 좁은 바닥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려 하겠지요. 어머니, 아이가 떠나고 싶다면 잡지 말고 떠나보내요. 전 아이가 바다에 나가는 것은 싫어요. 차라리 오랫동안 볼 수 없더라도 땅을 밟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꾸나.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하자.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바다도, 아이가 원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단다. 바닷가 남자들은 바다가 삼켜버린 모든 것을 보고 자라면서도 바다를 떠나지 못하지. 우리도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아이는 어느새 그릇을 떨어뜨리고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안고 침대로 옮겼다. 새털처럼 가벼운 아이가 품을 파고든다. 한동안 잊었던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침대에 누이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이는 비몽사몽 간에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든다.

아침은 상쾌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겨진 이들이 아니다. 함께 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 입맛에 맞는 것이 무얼까? 이런 고민도 오랜만이군.
거실 한가운데 망연자실 서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상쾌한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다.
“떠났어.”
아이는 떠났다.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박차고 이 집을 떠났다. 우리를 떠났다. 감자를 조금 훔쳐갔다. 우리에겐 조금이지만 아이가 가져갈 수 있는 최대였다. 또다시 남겨졌다.
생각해보면 그리 배은망덕하거나 황당한 일은 아니다. 아이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한 번도 아이의 현재를 묻지 않았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고아라고 단정했다. 아이는 고아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에게는 먹을 것이 생기면 함께 먹어야 할 가족이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하지만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떠나고 나자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꿈을 꾼 것이다. 꿈은 언젠가 깨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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