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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레슨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2012. 10. 10.

 

 

 

피아노 레슨, The Piano Lesson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RS0DEe

위키백과          http://bit.ly/RS0f8N

wikipedia         http://bit.ly/RS04dF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하늘거리는 바람과 따뜻한 한 줄기 빛이 창가를 타고 내리는 시간, 엄마가 가르쳐 준 단 하나의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이 곡은 눈을 감고도 연주할 수 있다. 손가락이 건반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 온몸으로 그 희미한 진동을 감지한다. 공기를 가르는 진동은 엄마에게 이르러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로 완성되고, 엄마의 얼굴에는 어느새 살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엄마의 미소를 보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는 엄마의 것이다. 엄마는 음악이 흘러넘치는 가정을 꿈꿨다. 내게 피아노를 가르치려 했으나, 난 애초부터 피아노가 싫었다.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이상의 감흥을 내게 주지 못했다. 나는 일찍부터 피아노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물건임을 알았다. 내게 피아노는 테이블이나 의자와 같은 여느 가구와 다름이 없었다.
난 평범한 아이들보다 수십 배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겨우 엄마가 가르쳐준 단 한 곡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의 대화가 가능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내게 들려준 말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사랑한다고. 그러나 엄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난 의심을 배웠다. 너무 엄격했다. 내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가 나를 가장 잘 알면서도 지나치게 몰아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엄마는 피아노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명백한 것을? 엄마는 진정 날 사랑하는 것인가? 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데, 엄마는 내게 꼭 피아노를 가르쳐야 했을까?

난 피아노를 사랑했다. 남편이 떠났을 때도 피아노를 쳤고,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아이는 자시의 연주를 듣지 못한다. 진동의 차이는 느끼겠지만,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스스로 행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는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이 한없이 고요한 물건을 두드려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없는 아이. 말을 하지 못해서 싫다는 의사표시로 피아노를 마구 두드려대는 아이. 난 아이를 사랑한다. 내가 피아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이가 건반을 두드릴 때 이는 미묘한 진동으로 음률을 느끼고,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피아노곡 하나를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 났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곧 내 눈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 세상은 너무 밝았다. 내게 남겨진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되면 더는 해줄 수 없는 것을.
난 피아노에게 내 아이를 소개해주고, 아이에게 내가 피아노에서 느낀 행복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피아노를 싫어했으나,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즈음 엄마를 이해했다. 아니, 화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아노를 싫어하게 되면서 엄마도 싫어하게 될 즈음의 일이었으니까.
이제 창가에 스며든 한줄기 빛은 밝기가 아니라 따뜻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아직도 아이는 피아노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 시간이면 항상 피아노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곡이다.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스치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엄마는 피아노 선율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이는 피아노 선율에 실어 엄마에게 말을 한다.
피아노 레슨은 끝났지만, 피아노는 계속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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