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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부인 |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

2012. 10. 10.

 

 

 

X부인, Mrs. X


 

조르주 루오

Georges Rouault, 1871-1958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Qcxoya

Works of Art       http://www.rouault.org

Wikipedia           http://bit.ly/QcxsOC

 


아파트 관리인으로 30여 년을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집주인은 집세만 정확하게 나오면 아파트 관리에 간섭하지 않았고, 입주자들은 집을 비우라는 큰소리 몇 마디면 소소한 하자들은 참고 넘어갔기 때문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초로의 신사가 찾아와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자신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계약서 작성 없이 방을 빌릴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
집주인은 돈만 받으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으므로, 난 그를 입주자로 맞아들였다. 물론, 집주인에게 전해줄 집세와 그가 낸 집세와의 차액은 내 주머니로 들어왔다. 그는 얼마든지 낼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해 보였고, 집주인은 그 돈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돈으로 수공으로 만든 편안하고 우아한 흔들의자를 살 수 있었다. 70여 년 만에 편하게 앉을 의자 하나 마련한 것을 두고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가 요구한 것은 하루 세끼 식사 제공과 집 안 청소가 전부였다. 후한 사례가 따랐으므로 그리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식사는 정확한 시간에 문 앞에 가져다 두었다. 노크해도 듣지 못할 테니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가 오후 3시에 한 시간 정도 산책하러 나가면 그동안 집 안 청소를 했다. 청소라고 해도 별로 치울 것도 없었다. 간단한 청소와 오렌지 껍질을 가져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방은 주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방도 주인을 닮아가는 듯했다. 반면에 위층은 아기 울음소리와 사내아이의 뛰는 소리로 무척 소란스러웠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노인은 이 방에서 견딜 수 있었다. 사실 듣지 못하므로 견딜 필요도 없었다. 그는 항상 자기만의 공간에 정적과 함께 있었다.
이 방에서 그를 말해주는 것은 침대 곁에 있는 약병밖에 없었다. 약병에는 의사 처방 없이 복용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보기에도 섬뜩한 빨간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약병의 약은 내내 줄어들지 않았다. 그가 약을 먹는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내 정장을 입었고, 지닌 옷도 정장 몇 벌 정도가 다였다.
그는 이곳에 사는 내내 수수께끼였다.
그리고 오늘, 그는 아침 식사에 손도 대지 않았다. 먹을 생각이 없나 보다 했다. 점심도 그대로였다. 조금 이상했다. 두 끼 정도 건너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밥맛이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3시에 청소를 하러 들어갔을 때 그가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죽어 있었다. 많이 놀랐지만, 곧 그를 이해했다.
그는 약을 먹지 않았다. 그 약은 성한 사람에겐 치명적이지만, 죽을 사람에겐 연명을 가능케 하는 약인 게 분명했다. 그는 약을 먹지 않음으로써 기나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는 언제나 정장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을 게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자신만의 진실을 안고 떠났다. 나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순간 그 약병을 움켜쥐었다. 막연히 이것이 내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뒤돌아보았을 때 채 닫히지 않는 문틈으로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놀람이 연민으로 바뀌기 전에 내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신원불명의 두 구의 시체가 한 건물에서 나왔다.
노신사는 자연사이고 관리인 노파는 자살이다.
노신사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노파는 30여 년을 그 아파트를 관리했으나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했다. 그 집을 드나들었던 세입자들도 집주인도 그녀를 관리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이름을 알려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을 때 그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듯이, 죽었을 때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보고서 이름을 적는 텅 빈 공간에 'X'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고 '신원불명' 이라고 새겨진 붉은 스탬프를 보고서 중앙에 비스듬히 찍었다.
이것으로 X부인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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