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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씨 |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

2012. 10. 10.

 

 

 

X씨, Mr. X


 

조르주 루오

Georges Rouault, 1871-1958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Qcxoya

Works of Art       http://www.rouault.org

Wikipedia           http://bit.ly/QcxsOC

 

 

그는 지난밤 10시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블록 떨어진 코너에서 야채가게를 8년째 한다는 야채가게 주인은 그를 계산이 정확한 신사라고 회상했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15분쯤 가게 앞을 지나갔고, 3시 45분쯤에 다시 가게 앞을 지나갔다. 아마 3시에서 4시 사이에 항상 산책을 한 모양이다. 그는 언제나 말쑥한 정장차림이었고, 혼자서 조용한 산책을 즐겼다.
3시 45분쯤에는 가게에 들러 오렌지 더미 위에 5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올려두고는 말없이 오렌지를 하나 들고 가곤 했다. 물론, 오렌지 하나 값에서 한 푼이라도 모자라는 금액이었다면 그를 불러 세웠겠지만, 그 반대였으므로 가게주인은 굳이 조용한 신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3시 30분쯤 찾아가 그에 대해 물었을 때 가게주인은 많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혹시, 그 신사 이름을 아시나요?"
"아뇨. 그는 아주 정확한 신사 중의 신사였죠. 그 이상은 ……."
가게주인은 그가 생전에 정확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말했다.
그가 살던 방 바로 위층에 사는 부부는 그를 매우 조용한 노인이라고 말했다.
위층 부부는 다 큰 사내 녀석 하나와 갓난아기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부부는 둘 다 돈을 벌기 위해 온종일 집을 비웠기 때문에, 사내 녀석은 아기를 돌봐야 했다. 그러나 사내아이는 아기를 돌보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다. 아기는 하루 종일 울어댔고, 사내아이는 내내 뛰어댔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모두 밥벌이를 하느라 낮에 집을 비우지 않았다면, 이 부부는 벌써 아파트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의 피해자라면 아래층의 노인이었다. 매일 한 시간의 산책 외에는 집을 비우는 법이 없었던 노인은 위층의 소란과 소음에 아무런 방어막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혹시, 그 노인의 이름을 아시나요?"
"아뇨. 그는 조용한 노인이었어요. 한 번도 우리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거든요."
이 부부는 조용한 사람은 소란과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집주인은 그를 802호 입주자라고 말했다.
집주인은 그를 본 적도 없었다. 아파트는 따로 관리인을 두고 있어, 집주인은 집세만 챙길 뿐 입주자들과의 직접적인 대면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서 집세는 꼬박꼬박 정확하게 내고, 집에 대한 불평은 전혀 없는 모범적인 입주자라고 들었다고 했다.
"혹시, 802호 입주자의 이름을 아시나요?"
"아뇨. 난 그를 만난 적도 없다니까요."
집주인은 만난 적이 없으므로 이름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는 듯 내뱉었다.
"혹시, 해리슨 포드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해리슨 포드? 내가 그를 무슨 수로 만나겠습니까?"
오늘 그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802호의 열린 문을 수상하게 여긴 그 소란한 사내아이가 시체를 발견했다. 평상시처럼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침대 위에 흐트러짐 없이 누워 있었다.
형식적인 탐문은 끝났다.
정확한 신사이며 조용한 노인인 모범적인 802호 입주자는 심장병으로 자연사한 신원불명의 노인으로 결론이 났다.

보고서 이름을 적는 텅 빈 공간에 'X'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고 '신원불명'이라고 새겨진 붉은 스탬프를 보고서 중앙에 비스듬히 찍었다.
이것으로 X씨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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