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각풍경

홍학의 자리 / 정해연

2023. 1. 8.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잘록한 허리밤을 새워 지분대던 가슴과 길쭉한 다리사랑을 나눌 때면 천장을 향해 만족스러운 듯 뻗던 희고 긴 손가락이 기억과 함께 호수 바닥으로 사라졌다쉴 새 없이 움직이던 그를 재촉하듯 질러대던 교성은 이미 숨을 잃은 다현이 더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준후는 교사이다.

준후는 이혼을 거부하는 아내와 별거 중이다.

다현은 외로운 아이다.

어머니는 사기로 수감된 감옥에서 자살하고 돌봐주던 할머니는 죽었다.

준후와 다현은 부적절한 관계이다.

 

첫 장면에서 준후는 다현의 시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런데 다현은누가 죽였을까?

 

준후는 다현의 시체를 유기하지만, 다현을 죽인 것은 아니다.

준후는 다현과의 관계가 자신의 평판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시체를 유기한다.

한편으론 살인범의 존재가 궁금하지만, 한편으론 위협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건 선생님뿐이에요.”

“맞아.”

“선생님을 이해하는 건 나뿐이에요.”

“이제 화가 풀렸나 보네.”

 

"난 당신을 잘 알아요."

영주가 준후를 따라 벌떡 일어섰다준후는 말끄러미 그녀를 보았다다현도 그랬다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안다는 것'에 그렇게들 집착하는 걸까자신을 가장 잘 안다던 다현은 알까다현의 죽음에 자신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을.

 

그는 다현을 이해하는 것은 준후뿐이라는 말에는 긍정하지만, 준후를 이해하는 것은 다현뿐이라는 말에는 긍정하지 않는다. 아내인 영주도 준후를 안다고 말하지만, 준후는 견디지 못한다.

 

“고등학생을 왜 그렇게까지…… 이런 어린애가 그 정도로 원한을 살 일이 있을까요?

“사람 일은 아무도 몰라아무도.

"아무도”라고 말하는 순간 강치수가 준후를 응시했다.

 

아무도 모른다.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한편으론 거북하다. 그 앎이 참에 가까울수록 더.

 

"아루바라는 섬이 있어요."

다현이 홍학에 대해 얘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네덜란드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 가면 홍학을 볼 수 있대요.”

[…]

“아름답죠?”

”그러네.”

“가보고 싶어요, 같이.”

 

다현은 준후를 알았다. 준후의 인생에 다현의 자리가 없음을.

 

홍학 사진이었다잔뜩 구겨져 마치 홍학이 울상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강치수가 답했다.

"외로웠겠죠."

 

홍학을 닮은 다현은 겹겹이 외로운 아이다.

 

이 독서후기는 친절하지 않다. 반전이 묘미인 소설에서 스포 없이 쓰려니 어쩔 수 없다.

살인자를 찾는 스릴러이다. 살인범을 찾는 과정에서 반전과 반전의 반전이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의 반전도 있다. 추리 과정보다 이 반전에 더 놀랐다. 독자인 나의 편견이 드러나는 순간.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홍학의 자리 / 정해연

홍학의 자리 정해연 저 『홍학의 자리』는 10년 가까이 스릴러 장르에 매진하며 장편 단편 할 것 없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을 발표한 정해연 작가의 작품이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meetjul.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