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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2012. 9. 17.

 

 

 

 

  개, The Dog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

     1746-1828


    관련 링크

    네이캐스트 http://bit.ly/PkRWUL

                     http://bit.ly/PkS4Uh

    위키백과    http://bit.ly/PkS5HO

    wikipedia    http://bit.ly/PkRHt1

 

인생에서 늪을 만나면 돌아가야 한다. 늪인 것을 알 수만 있다면. 불행히도 대부분은 알 수가 없다. 발이 조금 빠졌을 때 빠져나와야 한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위험하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듯이 한 발 더 내딛게 되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칠수록 점점 빠져 들어가고, 어느 순간 늪은 먹이의 저항을 무시하고 먹어치울 기세로 단숨에 몸통을 빨아들인다. 그 순간 게임은 끝난다.

부장은 부서가 없어져서 소속을 잃은 부서원들에게 6개월 재교육과정을 마치면 성적에 따라 다른 부서에 재배치한다고 말했다. 정리해고의 전(前)단계다. 부서가 없어졌는데 부장은 재교육대상이 아니다. 그는 다른 부서를 맡기로 했단다. 늪을 알아봤고 돌아갈 줄 알았다.
자네는 일도 잘하고 의욕도 있으니 교육을 마치면 재배치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무능하지만, 자네는 젊고 능력이 있으니 교육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부장의 말을 믿었다. 스스로 젊고 능력 있다고 생각했고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에, 부장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었다. 나이만 먹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꼬박꼬박 챙기는 다른 무능력자들과 나는 다르다고 믿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늪의 초입이었다. 그때 빠져나와야 했다. 굴욕을 당하기 전에.
부서원 중 서넛은 교육대상에서 빠졌다. 대상이 모두가 아니라면 선택된 누군가가 생겨나면, 교육대상이 된 부서원은 어떤 기준에서 탈락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 불안감이 부서원 사이에서 오간다. 그놈들은 부장에게 울고불고 사정하거나, 간이라도 빼줄 듯이 아부를 해서 빠진 것이다. 나잇살 처먹고 그따위로 살고 싶으냐며, 나이 든 몇몇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도 마음속으론 부장에게 거하게 술이라도 한잔 사면서 사정이라도 했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미처 생각을 못하고 시기를 놓친 자신의 빠릿빠릿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상황을 합리화했다. 듣고 싶은 교육이다. 회사에 다닐 동안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돈과 시간을 내주고 교육을 허락한 것이다. 내겐 기회다. 실제로 교육은 들을 만했다. 기초 교육이라 따라가기 어려운 교육은 아니었다. 이런 기초적인 교육이 다른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어떠한 능력을 배양해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교육생들은 교육받을 생각이 없는 이가 다수였고,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있었다. 소수는 다수를 경멸했다. 그들을 보면 이 집단이 낙오자에 실패자임을 일깨운다.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해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같은 부류가 되는 것이다.
시험이다. 결과가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다수는 컨닝페이퍼를 만든다. 소수는 최소한 자존심은 세우려고 공부한다. 선생은 학생들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절망적이다. 시험성적의 공정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성적은 상관없다는 말이다. 이 교육의 목적은 분명하다. 모욕을 주고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목적이라면 이 교육은 실패다. 그들은 어떠한 모욕과 굴욕을 당하더라도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짙은 어둠이 뒤덮인 깊은 늪이다. 점점 빠져들고 있다.
수료식 전날이다. 연장자 중 한 명이 까만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굳이 묻지 않았지만, 상가에 가야 한다고 양복을 입은 이유를 말한다. 이유를 들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는 저녁에 회사의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마지막 발버둥이다. 소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다. 뒤에서 그를 욕하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성토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나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다. 교육생들은 난리를 친다. 성적은 회사로 곧장 보내진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건 회사에서 성적과 상관없이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이 뻔한 다수가 더 난리다. 부장에게 전화했다. 아마도 내가 그들과 다르므로, 내 말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끝까지 그들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했다. 부장은 이미 이 문제에 신경을 껐다. 제자리를 지켜냈고 결정권을 잃었으므로 더는 나쁜 사람일 필요가 없다. 회사는 교육생의 거센 항의에 어쩔 수 없이 성적을 공개했다.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회사는 아무도 자르지 못했다. 다수는 고개 숙일 줄 알았고 인맥을 찾아 자리를 찾을 줄 알았다. 성적이 공개되었으므로 그들을 자르지 못하는 한, 소수도 자를 수 없었다. 냉혹할 자신도 능력도 없으면서 예산을 낭비하면서 헛짓거리를 한 것이다. 늪에 빠진 것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감원을 시행했다. 소수의 교육생은 대부분 진심으로 기쁘게 퇴직을 희망했다. 미련도 없고 애착도 없다. 훌륭한 교육의 대단한 성과물이다.

늪에 빠져 고개만 간신히 들고 구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때가 가장 잔인한 순간이다.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기다림은 잔인하다. 그렇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 같은 인생이라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온다. 또 다른 늪의 초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은 후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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