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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문(戀文) -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2012. 9. 18.

 

 

 

연문(戀文), The Love Letter


 

폴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 1746-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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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애인 편진가 봐. 벌써 몇 명이야. 사랑은 없고 놀이만 있나 봐. 저 여자에게 놀아난 남자들이 셀 수가 없대. 주변에 그렇게 남자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구애를 하나 봐. 남자들은 저런 여자가 뭐가 좋아서 그러지?”
“예쁘긴 하지. 그래도 예쁜 여자가 한둘인가? 저 정도 예쁜 여자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성격도 나쁘지. 구애를 즐기지만, 선택을 하진 않잖아. 글쎄, 예전에 어떤 남자는 답장을 받지 못해서 자살까지 했대. 답장을 해주는 게 뭐가 어려워. 웃기잖아. 저런 여자에게 매달려서 안달복달하는 남자들도 지지리 못났지만 그런 남자들을 갖고 노는 저 여자도 참 못돼 먹었어.”
“어디서 굴러온 건지 근본도 모르는데, 갑자기 마을에 들어와서 남자들이 흔들어대는지. 소문에는 도시에 남편이 있다나 봐. 남편이 바람기를 못 견디고 쫓아냈다는 거야.”
“에이, 아니래. 부자 남자들을 꾀서 돈을 뜯어내서 먹고 살았대. 그 집 하인한테서 들은 거니까, 정확해. 돈은 좀 있나 봐. 거기 먹잇감이 다 떨어져서 이곳으로 옮긴 거래.”
“여긴 부자가 없는데 농사짓는 이들이 전부잖아. 성에 차지 않아서 답장도 해주지 않는 건가? 그럴 거면, 부자 많은 도시로 갈 것이지.”
“그게 정말이라면 곧 떠나겠네. 이곳은 눈을 씻고 봐도 저 여자가 욕심낼 만한 남자가 없잖아.”
마을에 새로 들어온 여자는 많은 소문을 달고 다녔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세간과 옷차림은 처음부터 마을과 겉돌았다. 남자 없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혼자 사는 여자를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여자는 일하지 않았다. 우아한 자태로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하며 꼭 빨래터 앞에서 보란 듯이 연애편지를 읽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다. 그녀는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연애편지만큼 빨래터의 수군거림도 즐기는 것 같았다. 남자들이 답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편지를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가씨, 왜 꼭 여기서 편지를 읽으세요. 사람들이 수군거리잖아요. 아가씨가 이러시니 자꾸 이상한 말이 떠돌죠.”
“소문이란 게 왜 날 것 같아. 그것도 헛소문이. 소문의 흐름은 권력의 흐름이야. 물론, 완벽하게 내가 조절할 수 있어야겠지. 소문이 진실이라면 내 약점이 되니까 걱정해야겠지만, 완벽하게 헛소문이라면 상관없어. 적어도 내가 그들보다는 뭔가를 더 쥐고 있다는 거니까.
사람들은 부러운 거야. 매우 예쁘거나 너무 완벽하거나 너무 부자라서, 뭔가 나쁜 짓을 했을 거로 생각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끊임없이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초라함이 결국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인정해야 하거든.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탓한 뒤에 가장 마지막에 자신을 돌아보는 거야. 그나마 마지막에 자신을 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 대부분은 거기까지도 못 가. 가장 쉬운 핑곗거리를 찾아. 그게 나야.
재밌잖아.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떻게 변화되어 내게 다시 돌아오는지 보는 것도.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다 쥐고 있는데 뭐가 무서워. 난 재밌어 죽겠어.
처음 여기서 읽은 게 연애편지가 아니라는 건 네가 알잖아. 이번 항해에서 구매해야 하는 물품목록이었지. 내가, 아니, 여자가 사업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들은 여자가 받는 편지는 연애편지뿐이라고 생각해. 아직은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며칠 있다가 실제로 연애편지가 하나 둘 날아들기 시작했어. 첫 편지에 대한 착각이 이곳 남자들에게 용기를 줬어. 누가 시작했는지는 상관없지. 누가 했으니 나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야. 재밌어. 내가 답장을 하지 않으니 경쟁이 되어버렸어. 그들의 편지에는 사랑이 없지. 내가 사랑이 없는 게 아냐. 아마 그들 사이에선 벌써 내기가 되어 있을 걸. 그들이 즐기는 만큼 나도 즐기면 돼. 공평하잖아.
아, 그리고 여자들. 그들도 마찬가지야.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 하나가 들어와서 그들의 남편과 아들을 유혹한다고 생각하겠지. 연애편지를 읽은 건 사실이니까. 이상하지. 그들은 남편과 아들을 탓하지 않아. 답장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내가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텐데, 나를 탓해. 남자들은 상대하지 않는 것에 안달하고, 여자들은 상관하지 않는 것을 못 견디는 거야. 지금쯤 소문을 못 견디고 사라졌으면 하겠지.
이제 몸도 많이 나아졌으니 곧 떠날 거야. 여자들은 그것 보라며 남자들은 닦달할 테고, 남자들은 정신 차린 척하며 또 다른 여자를 기웃거리겠지.
내가 그 모든 걸 노리며 적당히 밑밥을 깔았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거야. 가끔 나도 시험에 들긴 해. 이 모든 걸 나만 안다는 건 좀 섭섭한 일이야. 그렇지 않아.”
“에취, 에취.”
그녀를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에 깜짝 놀란 듯 재채기를 했다. 하녀도 깜짝 놀라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금방 봤어? 도시에서 몹쓸 병에 든 거야. 예사 기침이 아니었어. 오래 살진 못할 거야.”
“그래, 그렇게 나쁜 짓을 해대니 벌을 받은 게지. 그래서 하늘은 공평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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