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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두 여인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

2012. 9. 12.

 

 

 

창가의 두 여인


Two Women at a Window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


 

 

 

관련 링크

Artble        http://bit.ly/OfFaUQ

위키백과    http://bit.ly/OfFfYN

wikipedia   http://bit.ly/OfEXRu

 

 

“어머, 저것 좀 봐. 또 싸움판이야. 유모! 빨리 여기 와서 구경해봐. 얼마나 재밌는데.”
“어유, 아가씨,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크게 말하지도 말고요. 아유, 저이들이 보면 어떡해요.”
“뭐 어때. 원래 싸움이란 건 구경거리야. 구경거리가 되기 싫으면 길에서 싸우지 말았어야지. 걱정하지 마, 저들 관심사는 오직 싸움에서 이기는 거니까. 구경꾼은 안중에도 없어. 누구 편을 들면 돌아보겠지만, 구경만 한다면야. 구경꾼은 누구 편도 아니거든. 저 봐. 저 둘이 뒤엉켜 굴러다녀도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비켜주면서 자리를 만들어주잖아. 저게 구경꾼의 자세지.”
“뭣 때문에 싸운 거예요?”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알 필요도 없고. 구경꾼은 상관하지 않는 거야. 어느 한 쪽을 편들면 그때부턴 싸움꾼이 되는 거야. 난 저 시장판에서 싸워대는 무리와 같은 부류이긴 싫어. 유모도 그렇지. 창밖의 시장판은 난리법석이야. 사고팔고 싸워대는 곳이야. 우리는 그 위에 있잖아. 쯧쯧, 상대가 안 되겠어. 덩치는 있는데 날렵하지 못하군. 끝났네. 내일 다시 시작되겠지만.”
“유모, 저길 봐. 오늘도 그 어린 연인이 어김없이 노상 카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네.”
“그러네요. 아름다운 연인이죠? 행복해 보여요.”
“그래. 행복해 보이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건 그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일하는 수줍은 청년이야. 소녀를 사랑하거든. 행복한 연인을 깨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사랑을 고백할 용기가 없는 가련한 청년이지.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비겁자일 뿐이야.”
“아가씨,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사랑에 빠진 소녀는 저 청년의 존재도 모를 걸요.”
“젊고 아름다운 소녀는 매일 저 가게에서 과일을 사. 아마도 시장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서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 모양이야. 청년은 언제나 붉게 물든 얼굴로 소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과일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넣어주지. 안타깝지만 소녀는 아무것도 몰라. 내 생각엔 소녀는 길거리에서 청년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차이더라도 용기를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착한 사람은 못되겠지만, 사랑을 얻을지도 모르잖아. 사랑을 얻지 못하더라도 결론은 날 텐데.”
“그래도 아가씨는 너무 대놓고 봐요. 나라면 누가 날 훔쳐보는 건 싫을 것 같은데.”
“뭐? 난 유모 말대로 대놓고 봐. 훔쳐보는 게 아니라고. 그건 전혀 다른 거야. 저 꼬마, 또 나왔다. 잘 봐! 하나, 둘, 셋! 성공!”
“뭐예요?”
“저 꼬마는 북적거리는 저녁 시간에 어슬렁거리면서 저 빵 가게를 지나가. 꼬마는 주인이 손님과 흥정하고 있을 때 빵 한 덩어리를 훔쳐. 매번 훔치는데도 주인은 눈치를 못 채. 꼬마는 그 빵을 덩치 큰 저 녀석한테 주지. 꼬마는 제 손을 더럽히면서도 배불리 먹지 못해. 불합리하지. 시장판은 그런 곳이야.”
“아가씨는 아는 것도 많아요.”
“매일 시장판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알게 돼. 멀리서 보면 전체를 볼 수 있어. 그들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경밖에 없어. 상관할 순 없어. 내 인생의 잔재미 정도지.  재밌지 않아?”
“정말 구경만 해도 되겠어요? 아가씨는 남의 삶을 구경하느라고 이 창가에 붙어 있지만, 사실 두려운 거죠? 상처받을까 봐, 도둑맞을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에이, 무슨 소리야. 나도 내 삶이 있어.”
“하지만, 아가씨는 매번 남의 삶만 이야기하잖아요. 아가씨, 혹시 저 아래 시장판 말고 저 건너편 창을 본 적 있어요? 멋진 청년이 아가씨를 보며 미소 짓고 있네요. 알고 있나요?”
“누구? 저 사람은 뭐야? 왜 날 보고 있는 거지? 기분 나빠.”
“아가씨, 저 청년이 하는 게 아가씨가 하는 거랑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데요. 멋진 청년이잖아요? 자, 이제 창가에서 떨어져서 저 시끌벅적한 시장판에 가서 빵 한 덩어리만 사오세요. 자, 냉큼 다녀와요. 엉덩이를 걷어차기 전에요.”
“유모가 사오면 되잖아! 왜 내가 해야 해?”
“유모는 늙었잖아요. 나이가 드니 따뜻한 창가가 좋아요.”
아가씨는 마지못해 빵을 사러 나간다. 유모는 창가에 다가가 건너편 창가를 바라본다. 어느새 청년은 창가에서 사라졌다. 거리를 보니 아가씨의 뒤를 청년이 따르고 있다. 유모는 기대한다. 내일은 카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그들을 볼 수 있기를.
“삶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조금 아프고 밑지고 잃는다 해도 산다는 건 멋진 거예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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