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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파는 일꾼의 죽음 | 카를로스 슈바베(Carlos Schwabe, 1877-1926)

2012. 10. 13.

 

 

   

 

무덤 파는 일꾼의 죽음 


The Death of the gravedigger

 

카를로스 슈바베

Carlos Schwabe, 1877-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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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군요. 좀 놀랍지만 그리 무섭지는 않아요. 다행입니다. 오히려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그건 좀 놀랍습니다.”
오늘이 그날이다. 평생 무덤 파는 일을 했지만, 오늘은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거다. 죽음의 천사는 아름다웠지만, 죽고 싶지 않은 늙은이에게 아름다움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판 무덤에 묻힌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쭈그러진 이 늙은이를 만나는 거라고 평생 생각해왔다. 아름다운 죽음의 천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들의 마지막이 추한 늙은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지난밤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내 마지막 세상이 흙빛이 아니라 순백인 건 축복일까요?”
처음에는 죽은 자가 무서웠지만, 곧 무덤덤해졌다. 탄생이 있는 한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 먹고 살기에 적당한 안정적인 일거리였다. 그들의 죽음이 나를 살게 했다. 죽음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죽음은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잠이다. 나는 흙을 덮어주고 그 속에서 편안한 잠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그들은 흙 속에서 흙이 되어간다. 그들의 영혼은 무엇이 되었을까, 항상 궁금했다.
무덤이란 죽은 자의 안식처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자의 위안이다. 잊지 않고 있다고 일깨울 끈 같은 것이다. 잊히지 않을 거라는 산 자의 희망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기에 바쁘다. 곧 무덤도 잊어버린다. 이제는 관습이다. 이제 아무도 무덤에 희망을 품지 않는다. 하얀 눈이 내렸다. 죽기엔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라, 더욱 안타까운 날이기도 하다.
“당신이 보인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도 무언가 계속된다는 것이겠지요? 어딘가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차라리 죽음 이후의 삶이 무(無)였으면 한다. 살아온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무섭지만, 완벽하게 온화하고 따뜻하고 게다가 영원한 평온함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삶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삶의 다른 면을 다채롭게 볼 수 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얻게 된 경지다. 영원한 평온함이란 걸 견딜 수 있을까? 파도 없는 바다, 바람 없는 들판, 벌과 나비가 없는 꽃밭 같지 않을까? 한 걸음 물러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면을 찾을 수 없는 삶. 평온하나 심심한 삶 이후의 삶.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면 영혼도 향기가 되어 휘발되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를 기억하는 나는 이승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당신은 침묵인가요? 당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군요. 당신을 따라가야 하나요? 당신이 나를 데려가나요? 무덤은 계속 파야 할까요?”
죽음은 내 곁에서 아무 말도 없이 침묵하며 기다린다. 나를 말리지 않는다. 무덤을 끝까지 파야 하는가? 결국, 흙을 덮어주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이다. 내가 무덤을 다 파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 대신해줄 것이다. 그만둬도 된다. 그만둘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멈추지 않는가? 내가 멈추는 그 순간이 정말 내 생의 마지막이다. 죽음도 내가 멈추길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적어도 이곳은 아니다.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있을 리가 없다. 오늘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일을 하러 온 것뿐이다. 오늘 죽을 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이 무덤은 내 무덤이 아니다. 어제 죽은 누군가의 무덤이다. 그렇다. 나는 오늘 죽음을 만났다. 그녀가 나타난 이상 결말은 명확하다. 피할 수 없다. 남의 무덤에서 내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 계속 무덤을 파고 있다. 더 깊게. 멈출 수 없어서.
“눈이 감기는군요. 마지막이 다가오나 봅니다. 눈을 감으면 당신이 사라집니다. 당신의 옷자락 끝이라도 붙잡고 따라가려면 당신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죽음이 아닌가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는 무덤을 팔 수 없다. 무덤은 이미 내 한 몸 눕히기에 충분하다. 한계에 왔음을 알았다. 정말 마지막이다. 죽음이다. 무덤에 누워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눈을 본다. 눈이 몸 위에 쌓인다. 차가운 눈이 내 몸을 데운다. 마지막이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도 사라졌다. 그녀를 따라가야 하는데 …….
캄캄하다. 마지막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에 깨닫는다. 그녀는 허상이며 환상이다. 아름다운 그녀는 내 마지막에 마련해둔 나의 배려이다. 평생 무덤을 판 초라한 늙은이가 꿈꾸었던 죽음의 마지막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허상도 환상도 없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무(無)이다.
마지막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에서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끝이다. 더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했던 끝인가? 답을 찾긴 글렀다. 눈을 감는다.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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