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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

순자 順子

2021. 4. 30.

 

일본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 질곡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순자”들이 있다.

 

순할 순順에 아이 자子. 쥰코, 순한 아이.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순자였어. 내 친구도 순자였다. 순자가 순자의 동무였다.

연년세세 | 황정은

 

황정은의 <연년세세>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순자가 등장한다.

 

삼십오 년 된 노포에서 일하는 순자,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갈골에서 부모와 사별한 순자, 지경리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순자, 그리고 그 순자가 열다섯살 때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에서 만난 순자. 내 동무, 이웃, 동갑이자 동명同名인 순자.

연년세세 | 황정은

 

그 시절, 여자아이에게 원하는 바가 이름에 투영된다.

말 잘 듣는 아이, 불평 없는 아이.

순자의 시대는 평탄하지 않았고, 순한 아이는 순하게 살 수 없었다.

순한 아이는 강한 아이가 되었다. 생계를 책임졌고,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

이름처럼 순한 순자는 그 시대를 버텨내지 못했다.

 

이민진의 <파친코>에도 강하게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순자가 있다.

유부남 한수의 아이를 가진 순자는 현지처를 제안하는 한수를 거부한다.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민 목사 이삭과 결혼하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사참배 문제로 이삭이 수감되자, 순자는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두 아들과 살아가는 일이다.

 

“나라면 겁을 먹었을 거야. 내가 김치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지? 실제로 여기 서서 김치를 판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고 그런 소리를 했던 것 같아. 동생은 정말 용감해.” 경희가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예.” 순자가 아름다운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파친코 | 이민진

 

순자는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한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방법을 찾아내는 순자가 있었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도 강인했지만, 비극으로 삶을 마감한 순자를 만났다.

 

[애틀랜타 총격] “우리 할머니는 천사였어요”…기억해야 할 한인의 삶

 

故 김순자 씨의 손녀에 따르면 그는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고, 편의점 직원이나 야간 청소부, 접시닦이 등 고된 육체노동을 쉬지 않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배역도 “순자”이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순자의 인생을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다. 우리는 “순자”로 대표되는 할머니를 한둘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역사 속에서 질곡의 시간을 버텨낸 모든 순자씨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 내가 구입한 <파친코>에는 주인공 이름이 1권에는 순자, 2권에는 선자로 나온다. 출판사에 문의했으나 답이 없었고, 검색으로 작가가 "선자"가 맞다고 수정을 요구했다는 글이 있다.

드라마에도 "선자"로 나오는 것을 보면 맞지만, 개인적으론 "순자"가 더 시대성과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 글은 그 의도를 보기 전에 쓴 글이다.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누가 본다고... ^^ ) 굳이 수정하고 싶지 않아 그냥 냅둔다. (혹시나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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