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각풍경

"나"로 사는 것

2021. 8. 23.

 

“나”로 산다는 것이 힘든 시대가 있었다.

용기가 필요했고, 투쟁을 해야 했고, 좌절을 겪기도 한 시대.

 

<니클의 소년들>의 엘우드는 마틴 루터 킹이 흑인의 인권의식을 막 일깨우던 시기를 살았던 흑인 소년이고, <파친코>의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자이니치(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 2세이다.

 

니클의 소년들 | 콜슨 화이트헤드

 

판결로 인종 분리 정책 중단이 선언되었다.

 

엘우드는 검둥이들이 언제부터 리치먼드에 숙박할 수 있게 되는 거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엘우드는 호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할머니 해리엇을 따라 호텔에 갔고, 주방에서 놀곤 했다.

주방 사람들은 가끔 엘우드와 누가 더 빨리 그릇의 물기를 닦는지 내기를 했다. 항상 엘우드가 이겼고, 사람들은 엘우드의 뛰어난 실력에 졌다는 듯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숙박비를 내지 못해 도망간 외판원이 남긴 백과사전을 걸고, 주방에서 접시 닦기 내기가 벌어진다. 백과사전을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엘우드는 최선을 다해 접시 한 개 차이로 간신히 이긴다.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환호한다.

 

이런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너는 꼿꼿이 일어서 너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백과사전은 안이 비어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너를 속여 텅 빈 것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게서 너의 자존감을 빼앗아가는 사람도 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엘우드는 집에 돌아와서야 백과사전의 속이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환호와 호의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들은 검둥이 꼬마 하나를 놀리며 그들끼리 즐거워했다.

그들 속에 자신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파친코 | 이민진

 

노아는 조선인 2세이다.

노아는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한다.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조선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국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그는 대학에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일본인 아키코와 사귄다.

 

“대체 이유가 뭐야? 네가 조선인이라는 게 부끄러운 거야?”

“네가 조선인이라도 난 아무렇지 않아. 네가 조선인이라서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아. 무지한 사람이나 인종차별주의자인 우리 부모님이라면 다르겠지만. 난 네가 조선인이라서 좋아.”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그가 조선인임을 일깨운다.

 

노아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자 교육받은 사람, 자유로운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노아가 아닌 조선인 노아를 사랑한다. 조선인 노아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다. 노아는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조차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의 호의에 담긴 악의는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준다.

엘우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소년원 “니클”에 가게 되고, 노아는 자신에게서 조선인을 지운다.

"나"로 사는 것은 엘우드에겐 투쟁이었고, 노아에겐 체념이었다.

결말은, 둘다 비극이다.

비극의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나”로 살고 있는가?

 

 

 

'사각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식주의자  (0) 2022.06.03
이율배반  (0) 2022.06.03
역사의 아이러니  (0) 2022.06.03
누가 우리를 대변하는가  (0) 2022.01.13
이름  (0) 2021.06.16
교수대의 비망록 | 율리우스 푸치크  (0) 2021.05.14
순자 順子  (0) 2021.04.30
이면(裏面)  (0) 2021.03.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