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각풍경

누가 우리를 대변하는가

2022. 1. 13.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1971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해상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했다.

2016년 첫 장편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오늘날 전쟁들이 내전 일방에 대한 미국의 전투 장비 지원으로 시작해서, 미국이 부추긴 전쟁을 피해 도망친 겁에 질린 난민들의 도착으로 끝이 난다고 말한다.

우리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똑같은 양상을 보았다.

 

 

나는 스파이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두 얼굴의 남자입니다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저 모든 문제를 양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소설은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의 자술서이다.

그는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에 심은 고정 간첩으로, 미국 CIA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다. 그는 이중간첩이면서 프랑스 신부와 베트남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는 이중의 이중성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양면의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2배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절반의 관점을 둘 갖는 것이다.

 

책에서는 정체성, 동조, 선악의 경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등 수많은 논제를 이야기하지만, 이 글에서는 대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본다.

 

는 작가주의 미국 영화감독이 그리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의 자문역을 맡는다.

는 자신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베트남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용과 배역에 대해 이야기 해도 감독은 수용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에 실린 그의 이름은 베트남인의 고증이라는 액세서리일 뿐이다.


남베트남군 군인 [비록 미군들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친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적일 수도 있으므로결국 어쩌면 친구든 적이든 어느 한 이유로는 피살될 예정인 사람’의 범주였지만 말입니다.

 

베트콩(‘어쩌면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혐오스러운 빨간 물이 든 공산주의자일 수도 있지만어차피 그[혹은 그녀]를 죽인다고 해서 진짜로 누가 상관이나 할까 싶은 사람’)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민족해방전선 게릴라들이었습니다.

 

미국인에게 남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이미 전형이 형성되어 있고, 그 전형은 절대적으로 미국의 관점을 반영한다. 포악하고 잔인한 베트콩, 패배한 전쟁에 대한 변명, 그리고 패배를 희석하는 영웅담 등등.

  

즐겨평소대로 행동해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감독은 우리가 이 사내를 고문하면서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거야맞지?

가장 작은 엑스트라가 말했습니다그런데 그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고문 장면 연기하는 베트남 단역배우에게 하는 감독의 말이다. 생각은 말에 투영된다. 감독은 베트콩뿐만 아니라(이 또한 당연시 할 수 없지만) 베트남인 모두가 평소 고문을 자연스럽게 즐긴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베트남 철수 전, “CIA에서 활동하면서 이중간첩의 숙명상 어쩔 수 없이 북베트남인들을 고문하는 것에 참여한다. 미국 영화에서 베트콩의 잔인성을 말하지만, 미국의 잔인성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미국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을 대변한다.

 

그가 한 일은 베트남인 역할에 베트남인을 좀더 많이 캐스팅할 수 있게 한 것이 전부였다.

 

이 전쟁의 존재가 학생들이 읽으려고도 하지 않을 교과서의 한 문단에 불과하고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 죽어 그들의 육신은 먼지가 되고 기억은 원자가 되고 감정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될 때이 예술 작품은 여전히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서 전쟁에 관한 작품일 뿐만이 아니라 그 전쟁 자체가 될 겁니다.

 

영화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일면을 본다. 다면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가까이 있고, 다면의 관점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영화는 재미있고, 통쾌하고, 살짝 의미도 있으니, 굳이 노력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전 참전국이었고, 베트콩은 우리의 적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변할 수 없어요. 할리우드가 우리를 대변하지.

 

작가는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동조자>는 한때 베트남인이었던 사람이 베트남을 대변한 작품이다.

아마 베트남 내에도 베트남 전쟁을 그린 영화나 문학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닿지 못한다(나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으로 작가는 퓰리처상 외에도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결국 미..을 대표하는 세..적인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탄 미국인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가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사각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것이 아닌 모든 삶의 무게에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기억해야 해.  (0) 2023.01.08
채식주의자  (0) 2022.06.03
이율배반  (0) 2022.06.03
역사의 아이러니  (0) 2022.06.03
"나"로 사는 것  (0) 2021.08.23
이름  (0) 2021.06.16
교수대의 비망록 | 율리우스 푸치크  (0) 2021.05.14
순자 順子  (0) 2021.04.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