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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以前)

사랑

2023. 6. 7.

작성일 : 2016년 4월 29일

 

사랑을 해석하다가 사랑을 놓친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시작한 사랑도 소통의 언어가 다르면 지속이 어렵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 사랑 그 자체만을 믿고 해석을 포기하든지,

하나, 상대가 해독 가능한 표현으로 바꾸어 주든지,

하나, 소통을 포기하고 끝을 보든지.

 

“넌 왜 나를 괴롭히는 거지?”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아니야, 넌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을 원하지. 고통을 원하지는 않아.”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사랑만을 원할 뿐이야.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더라도.”

“그래서 일부러 나를 괴롭히는 거로구나.”

“그래.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보려고.”

나무 위의 남작 | 이탈로 칼비노

 

소통은 포기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슬픈 결말을 예고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사랑만을 원할 뿐이야.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더라도.

오! 달콤하고도 잔인한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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