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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以前)

울 까닭

2023. 6. 7.

작성일 : 2016년 6월 10일

 

죽음에 대한 하나의 견해.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존재방식의 변화이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 생명의 근원이 되어 세상 만물에 깃든다.

뿌리내린 나무에도, 날아다니는 새에도, 호흡하는 공기에도 깃든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물이 되고 세상이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울 까닭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그녀가 우는 것을 멈추게 될 거라고요.”
“그렇다면 사는 게 너무 쉽겠군요.”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논리적으로 완전히 설득하진 못한 모양이다.

우는 것을 멈춰, 사는 게 쉬워진 것 같진 않으니……

 

미드 <앨리 맥빌>에 나오는 에피소드 하나.

뇌 수술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을 건드려 슬픔에도 울지 못하고 항상 웃는 남자.

울 수 있었던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수술을 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건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울 까닭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그것도 슬프다.

울 까닭은 그냥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말리지 않았다.

나는 슬픔이 눈물에 잘 녹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슬픔이 눈물에 잘 닦인다는 것을 믿는다. 

두물머리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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