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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順子 일본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 질곡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순자”들이 있다. 순할 순順에 아이 자子. 쥰코, 순한 아이.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순자였어. 내 친구도 순자였다. 순자가 순자의 동무였다. 연년세세 | 황정은 황정은의 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순자가 등장한다. 삼십오 년 된 노포에서 일하는 순자,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갈골에서 부모와 사별한 순자, 지경리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순자, 그리고 그 순자가 열다섯살 때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에서 만난 순자. 내 동무, 이웃, 동갑이자 동명同名인 순자. 연년세세 | 황정은 그 시절, 여자아이에게 원하는 바가 이름에 투영된다. 말 잘 듣는 아이, 불평 없는 아이. 순자의 시대는 평탄.. 2021. 4. 30.
이면(裏面) 기록은 사실을 전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면(裏面)이 존재한다. 검열을 거치는 문서 중에 군대와 감옥을 오가는 편지가 있다. 체코의 언론인이며 작가, 문예평론가인 율리우스 푸치크가 게슈타포에 체포된 후 처형되기 전까지, 프라하의 감옥에서 담배종이 등에 틈틈이 적어둔 글과 편지들을 모은 책이 이다. 푸치크는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 두 누이에게 내가 편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찾고 또 찾아내는지 너희들로서는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너희가 편지 속에 써 보내지 않은 것까지 찾아낸단다. ----- 감옥을 오가는 글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푸치크는 사형일을 기다리며 가족의 편지 속에서 지워진 혹은 쓰지 못한 사랑과 슬픔의 마음을 찾아낸다. 는 1930년대 일제 침략기의 만주, .. 2021. 3. 31.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저/조혜진 역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고요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뉘앙스의 공포‘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탄생『피버 드림』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다. 환경재앙을 섬뜩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직품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창궐이라는 위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만타 슈웨 블린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작가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다. 우연히 “창비 서평단 모집”을 보고 신청했다. 며칠 후 당첨 메일과 함께 얇은 중편소설 가제본 도서가 도착했다. 제목 “피버 드림(Fever Dr.. 2021. 3. 12.
너무 시끄러운 고독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은 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작품이다. 그는 슈크보레츠키,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체코 문학의 세 거두로 추앙받고 있다. 앞의 두 작가와 달리, 끝까지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글을 쓴 작가다. 그로테스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들은 즐겨 묘사하는, 유머 감각이 넘치는 작가이다. 감시와 검열 속에서 글쓰기를 놓지 못한 작가의 유머에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우수가 깃들여 있다. 첫 문장이다. -----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 폐지 더미와의 사랑. 그 사랑이 온전할까? 폐지 더미 속은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이는 “인간적”인가? 이야기는 끊임없이 “인간적”이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 .. 2021. 3. 6.
선(線) 안의 선(善) 사람은 대부분 선(善)하다. 굳이 악(惡)할 필요가 없다. 백수린의 단편집 중 “고요한 사건” “나”는 재개발 이슈를 보고 무허가주택 밀집 지구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 소금고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곳에는 아파트 지구와 달동네의 경계가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의 경계가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고양이 아저씨가 젊은 사내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을 목격한다. 고양이 아저씨가 죽을 수 있다는 다급함에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알리지만, 아버지는 외면한다. 그 기억은 어린 “나”의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이 된다. 창밖에 내리는 커다란 눈송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 2021. 2. 18.
역사란 무엇인가? 줄리언 반스의 . 소설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제목이었다. 주요 화자인 토니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인물이었기에. 원제 인데, 번역기식 직역은 “결말의 의미”, “결말의 감각”이고, 어느 블로그에 '마지막에서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번역해두었던데, 훨씬 그럴 듯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친구 토니, 에이드리언, 콜린, 앨릭스 네 친구로 시작해서, 토니와 에이드리언, 그리고 그들과 베로니카의 관계, 결국 홀로 남은 토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 수업 시간에 네 친구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어린 그들은 대답한다. 토니, 승자들의 거짓말. 콜린, 생양파 샌드위치. 죽자고 반복하니까.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 에이드리언,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 2021. 1. 26.
예술이란 무엇인가? 백석(1912~1996)은 시인이다. 쇼스타코비치(1909~1975)는 작곡가이다. 과 은 예술이 예술로 존재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갈등하는 시인과 음악가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시작 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백석의 문학적 생애의 마지막 7년을 다룬다. 은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밤을 지새우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피의 숙청 시대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잠옷 차림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붉은 기린아, 아프리카의 기린아, […] 네 목에 깃발을 달아보자 붉은 깃발을 달아보자, “우리나라에 있는 곰이나 범을 두고, 왜 머나먼 아프리카의 기린을 끌고 와 붉은 깃발을 다느냔 말이오?” 기행은 기린을 생각했다. 붉은 깃발을 목에 매단 기린이 그의 눈에 보였다. 엄종석.. 2021. 1. 10.
선입견 단편집을 몇 권을 읽었다. 서머셋 몸 단편선 | 서머멧 몸 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입견에 대한 단편 2편 소개해본다. 화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까지 가는 여객선에서 막스 켈라다와 한 방을 쓰게 된다. 이름만 듣고 영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물론 그는 영국사람이다. 막스 켈라다란 사람을 알기도 전에, 나는 도저히 그와 친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14일 동안이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까지 가는 길이었다) 한 방을 나눠 써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낙심천만인데다가, 상대방의 이름이 스미스나 브라운이었다면 그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모든 일에 끼어든다. 그의 거만함과 독단과 허세는 미움을 받지만, 그는 아랑.. 2020. 12. 28.
이유를 모른다 2020.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