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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 정도는 ...... 작별인사 / 김영하 중에서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그게 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혹시 물을 못 먹어서 죽은 걸까요?” 늘 발코니에 물을 놔두었는데 지난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물그릇을 집안으로 들였다가 다시 내놓는 것을 잊어버렸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네 잘못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 가끔은 내 감정도 쇼윈도 안의 진열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여주기 위한 감정일까? 나조차도 만질 수 없는데……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 정도는 내 탓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이 아닐까?.. 2023. 1. 8.
내 것이 아닌 모든 삶의 무게에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기억해야 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중에서 한때 나는 무신론자였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 중략 - 그렇다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도 역시 믿지 않는다. 단지 만사가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은 믿는다. 때때로 내 것이 아닌 모든 삶의 무게에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곤 해. 되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기 전에 방향을 바꾸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었다. 잃고 싶지 않았으나 잃어버린 삶을 기억해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기억해야 해. ----- 이태원 참사에 대한 외신 기자의 말. 한국은 참사가 발생하면 책임질 이 하나 벌주고 빨리 잊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상처 입은 이들은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하지만, 사회는 트라우마를 가져.. 2023. 1. 8.
정신승리법 작성일 : 2016. 4. 20. 아Q는 세상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인간이다. 실제로는 승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착각을 불러일으켜 자위하고 넘어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루쉰은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조롱했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자기합리화보다 심각하다. 자기합리화는 죄책감이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으로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원인을 의식하고 있지만, 정신승리법은 아예 원인에 대한 자각 없이 그 승리를 정말 믿어버린다. 그리고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자존심.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경멸하고 낮추는 데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는 말만 빼면 만 남았다. 아Q정전 | 루쉰 어찌 하다 보니 을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 새로운 관점으로 또다시 읽게 된.. 2022. 6. 6.
목소리 작성일 : 2016. 04. 18. 선택의 순간, 답을 알지 못할 때 기도를 한다. 신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삶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아니면 약간의 힌트라도 얻길 바라며. “갈 길을 선택하려고 갈림길에 설 때마다, 오! 무정한 목소리여, 나는 당신의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넌 도망칠 때마다 앞으로도 항상 내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넌 아직 나를 모르나? 넌 내가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겠지? 아냐, 난 네 목소리야.” 영혼의 자서전 | 니코스 카잔차키스 도망칠 때마다 듣는 신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면, 난 결국 선택이 아닌 핑계를 찾고 있었다는 거다. 정답이 있는데 오답을 향해갈 핑계. 어려운 길은 가지 않고 쉬운 터에 안주할 핑계.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신의 목소리를.. 2022. 6. 6.
2014년 4월 16일 작성일 : 2016. 4. 15. 2014년 4월 16일. 벌써 세월호 2주기이다.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잊고 있었다.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하는 뜻이었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과거는 잊고 있었고, 미래 할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현재라는 순간을 영원히 살고 있다. 어느새 그날이 되어서야 그 의미를 떠올리는 특별한 날이 되어 버렸다. 우연히 본 글이다.. 2022. 6. 6.
디지털 저장강박 작성일 : 2016. 4. 14. 사진은 취미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한다. 필름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인물사진 위주로 찍었다. 인물이 없는 사진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필름의 제약 때문인 듯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출사 한 번 나가면 2~300장은 거뜬히 찍는다. 사진의 양이 많아지니 사진 정리도 차일피일 미룬다. 2014년 끝자락 사진을 아직도 정리하고 있다. 2015년 1년 치가 남았고, 2016년 사진을 찍고 있다. 생각해서 찍는다기보다 마구 찍는다. 많이 찍으면 게 중 한둘은 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초점이 맞지 않고 흔들린 사진도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열정’이라는 것이 가장 분별력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정신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인생사용법 | 조르주 .. 2022. 6. 6.
충분한가? 작성일 : 2016. 4. 13. 비에 씻기고 햇빛에 닦인 나뭇잎의 초록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하는 태평한 사람, 자연의 경이에 몰두하여 자연을 찬미하는 나머지, 선과 악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몽상가, 한가하게 인간사를 잊어버리는 명상가, ...... 그들은 모두 평화롭지만 혹독하고 박정하고 무자비한 마음이 차 있는 정신의 소유자이다. 결코 환희를 맛볼 수 없지만 항상 황홀해 있다. 레 미제라블 | 빅또르 위고 정치가 출렁일 때 “레 미제라블”을 보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지난 대선 때 완독했고 이번 총선에 밑줄을 다시 본다. 당선자들이 충분하다 태평하지 말고 황홀함에 취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이 충분하다 할 때까지, 국민이 환희를 맛볼 수 있을 때까지. 2022. 6. 6.
레 미제라블 | 빅또르 위고 작성일 : 2016. 4. 12. 자신에게 유리한 허구에다 필연이라는 가면을 씌우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정치가. 수완가들이 부르짖는 이론. 성공에 약간의 파국을 섞어 그 성공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무서워 떨게 할 것, 일을 진전시키는 한 걸음 한 걸음에 공포의 맛을 뿌릴 것, 될수록 일을 완만히 진행시켜 진보를 늦출 것, 승리를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 정의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할 것, 거대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을 재빨리 잠옷을 입혀 재울 것, 사건을 술책 속에 얼버무릴 것, 이상을 갈망하는 정신에다 탕약을 섞은 감로수를 먹일 것, 지나치게 성공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혁명에 차양을 달 것. 1830년에는 이 이론 - 이미 1688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에 응용된 - 이 실행되었다. .. 2022. 6. 6.
채식주의자 마거릿 애트우드 중에서 “네가 죽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먹지 마라.” “네가 먹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죽이지 마라.” “씹할 채식주의자들 — ‘모든 신들은 육식성이다.’ — 로라 체이스.” 한강 중에서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 2022. 6. 3.